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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거짓예언자들 (16)-감옥과 시편23장

운영자 2015.05.18 14: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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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과 시편23장

  

미디안 광야 위로 보랏빛 감도는 남빛하늘 가득히 별들이 무리지어 떠올랐다. 오랜만에 보는 투명한 보석 같은 영롱한 별들이다. 북두칠성이 보였다. 우리가 등지고 있는 거대한 암벽의 테두리가 밝아지더니 달이 그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달빛이 생생히 쏟아지면서 붉은 모래사막이 은색의 달빛바다로 변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광야가 안개 같은 달빛의 바다로 변해있었다. 달빛의 바다는 밀물이 되어 바로 앞까지 몰려와 있었다. 광야의 수도사 이목사와 나는 부드러운 어둠에 젖은 모래 언덕위에서 끝없이 얘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목사가 말했다.

“예수님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세상사람 들의 뇌리에는 잘생기고 훤칠한 백인남자죠. 그런데 저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못생기고 몸도 날아갈 듯 빈약한 사람이었을 거예요. 예언서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모습으로 구세주가 나타난다고 했잖아요? 우리는 초라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광야의 수도사인 그의 말은 더러 논리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획일성 보다는 순간순간 떠오르는 걸 내게 전했다.

“우리는 광야 같은 인생길을 떠돌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이 광야에서 40년을 떠돌았습니다. 이 광야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잘 모르겠는데요”

내가 대답했다.

“성경 속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광야로 나간 이유를 뭐라고 했습니까?”

이목사가 내게 성경을 건네주면서 되물었다. 내가 신명기의 그 부분을 찾아 플래시를 비추며 읽기 시작했다. 모세는 이렇게 말했다.

“40년 광야에서 떠돌게 한 목적은 여러분의 고집을 꺽어 겸손하게 낮추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주께서 여러분의 고집을 꺽을 때는 여러분을 굶주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만나를 먹여주셨습니다. 그 목적은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주께서 여러분에게 가르치시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산다는 건 뭘 의미할까요? 교회에서 목사들이 말씀을 전달한다고 하는게 그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물었다.

“제 경험으로는 말씀을 전달하는 것과 설교는 다르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설교는 예화집이나 다른 목사들이 하는 패턴을 보고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말씀을 전하는 건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그걸 주셔야 전할 수 있습니다. 설교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말씀은 사람이 완전히 달라지게 합니다. 그게 말씀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설교를 하면 몸이 피곤해 질 수 있지만 말씀을 전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오히려 몸에 생기가 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죠. 제가 말씀을 전하면서 경험한 건 말이 튀어나가면서 나의 영도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는 거죠. 나도 들으면서 그래 맞아 하고 감탄한 적이 많아요.” 

교회 안에서 억지로 히브리어나 논문을 인용하면서 지식자랑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공감이 가지 않는 외국의 사례를 대면서 억지로 설교를 조립하는 목사들이 있었다. 그런 얘기들은 가슴을 치지 못했다.

“변호사인 저도 성경 말씀을 감옥안의 죄인에게 배달하는 역할 정도는 합니다. 한번 들어보실래요?”

내가 말했다. 믿음을 가진 사람마다 각자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자리에서 나름대로의 소명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감옥 안에 있는 강간범인 그를 떠올리며 얘기를 시작했다. 

  

지하철 천왕 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왔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2시다. 남부구치소로 가는 길이다. 하얀 햇볕이 바늘같이 따갑다. 점심을 걸렀더니 속이 쓰리다. 뭔가 뱃속으로 집어넣어야 할 것 같았다. 튀김과 순대를 파는 포장마차가 보였다. 마음 좋아 보이는 가게 주인이 끓는 기름 속에 반죽을 묻힌 얇게 썬 고구마를 넣고 있었다. 오뎅 한 꼬치와 떡뽁이를 주문했다. 비닐을 씌운 작은 플라스틱 접시에 음식이 담겨 나왔다. 나는 종이컵에 담긴 오뎅 국물을 마시면서 내가 맡은 괴물을 떠올렸다. 신문에 크게 보도될 정도의 흉악범이었다. 십년동안 남의 집에 들어가 강도와 강간을 한 상습범이었다. 수사기관에서는 귀신같은 그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 10년 만에 우연히 디엔에이검사에서 그 정체가 발각된 것이다. 어떤 변호사도 맡지 않으려고 하는 감옥 속의 흉악범들을 찾아간다.

그들의 내면은 악령에 붙잡혀 있었다. 인간자체도 절대고독과 절망의 늪 속에 빠져있다. 세상이 버린 그런 사람의 영혼을 한명이라도 구하면 주님이 기뻐하실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영혼을 구한다는 건 교만한 말이다. 그냥 찾아가서 예수를 소개하는 정도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마음이 여린 일반목사들은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악마의 발톱에 잡혀 있는 영혼을 구한다는 건 거의 실패로 끝났다. 15년 전 대도라 불리던 도둑을 찾아갔었다. 죄인들에게 찾아가는 변호사는 마른 우물안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뚜껑이 열리고 줄이 내려오는 듯한 반가움일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면 흡수력이 최고다. 그러나 그건 순간이었다. 물고기가 물에서 나오면 금세 썩듯 그들이 세상에 노출되면 하루사이에 변질된다. 대도는 출소 후 전국교회를 돌아다니면서 간증을 하다가 도둑으로 다시 돌아갔다. 도둑으로 평생 사는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모든 존재에게 주님이 준 소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쁜 짓을 하다가 감옥에서 비참한 일생을 마치는 자기 같은 존재는 비참을 알리는 하나의 샘플역할이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어려서부터 영혼 깊숙이 박힌 쓴 뿌리는 뽑히기 힘들었다. 십사오년 전 쯤 되는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의 어느 날이다. 부산교도소로 탈주범 신창원을 찾아갔었다. 그역시 강도살인죄를 지은 무기수였다. 우람한 덩치의 무술교도관 들이 지키는 컨테이너 안에서 그를 만났다. 사방의 철판 벽에서 악마 같은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체인으로 묶인 신창원이 독 오른 눈길로 물었다.

“도대체 찾아온 이유가 뭐요? 난 돈도 없는데.”

자기를 이용하려고 접근하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따로 보상을 해 주는 분이 있어요. 공짜가 아닙니다. 그러니 변호사 보수는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뭐요?”

신창원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 옆에 있던 무술교도관들도 눈이 동그래졌다. 

“그게 누굽니까?”

신창원이 물었다. 옆의 교도관들도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나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천정 쪽을 가리켰다. 여러개의 눈동자가 천정 쪽을 보았다. 몇 초간 진공 같은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그들사이에 알아 차렸다는 표정이 번졌다. 그 순간이었다. 앞에 앉았던 선임 무술교도관이 나를 보면서 소리쳤다.

“그런 예수면 내가 먼저 믿을께요. 변호사님”

성령은 그렇게 순간적으로 흐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탈주범 신창원의 속에 성령은 자리 잡지 못한 것 같았다. 감옥의 벽에서 귀신 얘기는 해도 성령은 거부하는 것 같았다. 범죄인은 마귀의 영역이었다. 주님의 전위대로 앞장서 찾아가는 것 까지만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영혼을 선택해서 구해주는 건 그분이 할 일이었다. 다른 사람을 통해 하실 수도 있고 직접 그들에게 나타나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오늘도 흉악범을 찾아가고 있다. 손에는 ‘시편’이 들려있다. 그 부분만 코팅을 해서 들고 다니며 읽고 또 읽는다. 그게 나의 예배고 기도이기도 하다. 언덕길을 따라 30분쯤 걸어가니까 옮겨 지은 남부구치소가 나왔다. ‘드르르릉’하는 금속성 마찰음을 내면서 육중한 철문이 저절로 열렸다. 출입증을 바꾸고 삭막한 회색의 구치소 안으로 들어갔다. 장방형 낮은 건물들이 여기저기 웅크리고 있다. 창에 견고하게 박힌 철창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구석건물 안에 있는 접견실로 갔다. 늙은 교도관이 돋보기를 코에 걸치고 책상 위에 놓인 모니터를 보며 감시하고 있다. 전자기기의 발달이 감옥에도 영향력을 미쳤다. 교도소의 이중 벽 사이로 난 레일을 따라 CCTV카메라가 사람대신 순찰을 돌고 있다. 유리상자로 된 4호실을 배정받았다. 괴물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마귀를 연상케 하는 역삼각형의 얼굴에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이다. 작게 뜬 눈 안쪽의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나를 살폈다. 흉악범을 만나는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 장면이 뇌리에 떠오른다. 대충 그들의 주변에서는 깊은 우물 속에서 피어오르는 냉기 비슷한 게 감돌고 있다. 그가 보는 앞에서 나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잠시 기도한다. 약한 인간에 불과한 나 개인은 그들 내면에서 비웃고 있는 악령을 이겨낼 힘이 없다. 악령을 인정한다면 더 강한 성령의 존재를 불러다 모셔야 한다. 나 역시 성령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눈을 떴다. 그와 눈과 눈이 마주쳤다. 번들거리던 그의 눈이 양같이 변해 있었다. 성령의 힘이다. 이런 신비한 경험을 여러번 했다. 나는 오랫동안 변호사를 해 온 나의 방식대로 괴물에게 접근했다. 

“공소장을 보고 왔는데 제 생각으로는 어떤 정신질환을 앓거나 그런 의심이 드네요. 정신질환인 심신미약사유와 진지한 반성이라는 참회 이외에는 형이 감경될 사유가 전혀 없네요.”

일단 그의 편이 되어 주고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 순간 그의 눈이 반짝이면서 화답한다. 

“저도 몰라요. 어떤 때는 하늘에서 쏴아 하고 별이 쏟아지는 환청이 들려요. 사람 목소리도 들리구요. 끙끙 앓는 소리도 나고 비웃는 소리도 들리고 죽인다는 욕을 하는 것 같아요. 귀신이 나한테 붙어있는 느낌이 들어요.”

그건 사실인 것 같았다.

“왜 그러죠? 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인가요?”

“사실대로 말해도 되요?”

“해보세요.”

“오래전에 못된 일을 한 적이 많아요. 어두운 골목 안에서 벽돌장을 들고 숨어 있다가 가는 사람의 뒷통수를 후려친 적도 여러번이었어요. 땅에 사람이 엎어지면 벽돌로 계속 머리통을 깠어요. 마지막에는 머리가 깨져서 철퍽거리는 묵같은 소리까지 나더라구요. 그냥 도망을 갔었는데 그 정도면 죽었을 지도 몰라요. 사람을 죽이기도 했어요. 곱슬머리에 옥니를 가진 독한 놈인데 저한테 인상을 쓰고 덤볐어요. 그래서 주먹으로 배를 깠는데 반대편 벽에 까지 나가떨어지더라구요. 나중에 그 남자를 병원 데리고 간 사람을 만났는데 장파열로 죽었다고 하더라구요.” 

“그걸로 잡혀서 감옥가진 않았구요?”

내가 물었다.

“이상하게도 안 걸렸어요. 공소시효가 벌써 오래전에 다 지나버렸어요.”

“그게 원인이 돼서 누구의 소리가 들리고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군요.”

“그럴 때면 불안해서 밖으로 나가 밤이 샐 때까지 막 돌아다녀요. 그러나 어떤 충동이 일어나면 나도 모르게 남의 집에 들어갔어요. 담장을 타고 개스관을 타고 창문을 통해 들어가는 긴장된 순간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집중이 됐어요. 그러다 그 집에서 범죄를 하고 다시 나와 길을 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해질 수가 없어요.”

그는 발끝에서 머리까지 범죄에 오염되어 있었다.

“왜 나의 도움을 청했죠?”

내가 물었다.

“저 같은 놈에게 조금이라도 형을 깍아 줄 마음이 생길 판사가 어디 있겠어요?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 밖에 도움이 될 사람이 없었어요. 나를 위해서 형을 깍아 주는 게 아니라 자기네끼리 안면으로 봐주는 거죠. 그런데 사건이 워낙 그러니까 내 사건을 맡겠다는 전관변호사가 없었습니다. 젊을 때 감옥 안에서 알게 된 형님이 나를 위해서 여러 변호사 사무실을 다녔어요. 그런데 일반 변호사사무실 어디서도 제 사건을 맡겠다는 데가 없어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아는 목사님을 통해서 엄 변호사님을 찾아간 겁니다.” 

변호사를 시작할 때부터 다른 변호사들이 다 거절하고 맡지 않는 사건이 내게 왔었다. 살인, 조폭, 마약, 절도등 이 사회의 쓰레기통에 들어있는 범죄들이었다. 쩔은 분뇨 같은 범죄에 젖은 그들의 영혼이 다시 사는 방법을 항상 생각해 보았다. 삼십년 변호사생활동안 진정으로 참회하는 인간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게 현실이다.

“저도 변호사로서는 이 사건에 대해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무기징역 같은 중형이 선고될 거라고 예상을 합니다. 사건기록을 봤는데 도무지 정상참작을 받을 사유가 도무지 없네요.

절도와 강도의 전과도 많으시고 더구나 파렴치범으로 분류되는 강간죄가 여럿이시네요.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힘들겁니다.”

“어떻게 하면 저 같은 죄인에게 기적이 일어납니까?”

그가 물었다.

“시키면 내 말대로 할 용의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나는 요즈음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얼마 전 법원장을 마치고 나온 선배한테서 들은 얘기가 있다. 30년 법관생활의 결론은 어떤 교화정책도 죄인들을 새사람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이 들어가 믿음으로 다시 탄생하는 수 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 중견부장판사 한 사람이 내게 재미있는 간증을 해 주었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시편23편을 만 번 암송하면 좋은 대학에 간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걸 열심히 실천했더니 고등학교 설립이후 처음으로 서울법대에 합격한 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사법연수원 때도 다시 그걸 시도 했더니 연수원을 수석으로 졸업하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걸 실천해 보기로 했다. 시편 전체를 코팅해서 가지고 다니면서 끝없이 읽고 있다. 시편을 암송하고 찬송하며 성령에 취하라는 말이 있었다. 그걸 감옥안의 중죄인에게도 한번 적용해 보고 싶었다. 

“시편23편을 만 번 읽어볼래요? 재판에서 기적이 일어나나 보게.” 

내가 제의했다.

“시편 23편요?”

“그래요 길지도 않고 짧아요.”

나는 그걸 얘기해 준 부장판사의 체험담을 그에게 얘기해 주었다.

“변호사님 제가 머리가 복잡하고 의심이 꽉 찬 놈입니다. 심지어 황학동 벼룩시장에 가서 코란을 사서 보기도 했어요. 나 같은 놈이 그게 될까 의심입니다.”

“간절한 염원을 가지고 하면 그게 하나님을 거쳐 그 감동이 담당 판검사한테 미쳐 형이 깍인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변호사로서의 살아있는 경험입니다. 감옥 안에 있는 전과자들을 보면 잔머리와 얕은꾀로 재판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리 판사를 속이려고 해도 결국에 가서는 실패하더라구요. 어때요 한번 해 볼 생각이 없어요? 밑져야 본전 아닌가요?”

“그렇다면 한번 해 볼께요.”

“확신을 가지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혼자 똑똑한 척 하지 마세요. 그래도 가방끈이 조금 더 긴 저도 믿잖아요? 저는 또 칸트 같은 철학자가 영이 존재하고 저세상이 있다고 하는 걸 보고 믿습니다.” 

나는 그와 헤어져 구치소에서 나와 시편23편을 암송하면서 언덕을 넘고 있었다. 내게 주어진 작은 소명이라고 여겼다. 

이철수 목사가 텐트로 들어가고 나는 혼자 광야의 모래언덕위에 서 있었다. 달빛이 비치는 깊은 밤의 광야는 신비했다. 하늘에는 보석을 뿌린 듯 영롱한 별들이 깜빡였다. 안개같이 앞에 펼쳐져 있는 달빛바다로 혼자서 걸어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혼자 끝없이 걸어가면 광야 저편에 무엇이 있을까. 외로움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바로 이 광야에 살던 모세는 무엇을 봤을까. 그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봤다. 광야에서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받았다.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님을 인생의 저녁에 와서야 알게 됐다. 이제야 그 분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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