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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거짓예언자들 (7)-소망촌

운영자 2015.03.17 09:40:33
조회 1442 추천 2 댓글 0
소망촌 

  

사무실로 육십대 중반쯤 되는 남자가 찾아왔다. 그는 육십년대 박장로가 만든 소망촌 남은 신도들 천명을 대표해서 왔다고 했다. 소망촌 이라고 하면 나는 어린 시절 먹어봤던 작은 비닐 속에 담긴 달콤한 캬라멜이 떠올랐다. 신도들이 소망촌 공동체에서 만든 물품들을 보따리에 싸서 팔러 다녔다. 편물점을 하던 어머니는 이따금씩 그 소망촌 캬라멜을 사두었다가 내게 주곤 했다. 1955년 박장로는 민족의 구원자 역할을 했다. 그가 설교하는 한강백사장집회에는 백 만명 이상이 몰렸다. 연인원 오백만 명이 자발적으로 참석한 그의 천막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병 고침을 받은 외에 이슬같이 내리는 성령을 보았고 죄가 타는 냄새와 성령의 향취를 코로 맡았다고 했다. 당시 한국의 기성교인 중에서 한번이라도 천막집회에 참석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기성교회의 목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기성교회 목사의 대부분인 이천명이 박장로에게 안찰을 받았었다. 1957년 박장로는 삼만 제단을 마포구 청암동에 세우고 소사에 소망촌을 건설했다. 지금도 더러 도심의 외딴 곳에 소망촌의 소박한 가게들이 존재한다. 기자출신의 칠십대 대학선배는 지금도 늙은 누님이 소망촌에 살고 있다면서 이렇게 어린 시절 경험을 얘기했다.

“난 말이지 어릴 적에 할머니 손을 잡고 한강 백사장에서 열리는 박장로의 집회에 간 적이 있어. 한강변에서 수만명이 가마니를 둘러쓰고 박 장로를 기다리는 거야. 그 분이 언제 나타날지 몰랐어. 새벽녘이면 물안개가 강변을 뽀얗게 덮었었지. 대단했어. 전쟁 후 사람들의 영혼이 황폐해 졌을 때 박장로라는 사람이 구세주 같이 나타나 민중의 지친영혼에 안식과 위로를 준 면이 있지. 우리 누님은 소망촌에 재산을 다 바치고 늙었는데 지금도 부산 기장에 있는 소망촌의 초라한 공동숙소에서 살고 있어.” 

1980년대에 박장로는 자신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온 감람나무 하나님임을 선포하고 새로운 종교인 천부교를 탄생시켰다. 그는 1990년2월7일 사망했는데 지금도 그 신자들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가 이 땅에서 할 일을 다 하시고 육신을 벗고 지금은 낙원에 계신다’고 했다. 그게 내가 알고 있는 소망촌의 개요였다.

“왜 오셨습니까?”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온 소망촌 신도를 대표해서 왔다는 사내에게 물었다. 늙은 사내의 눈에는 맺히고 맺힌 원한의 빛이 서려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신앙촌에 재산을 뺏긴 신도들의 재산을 일부라도 찾았으면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뺏기다니요?”

“전국에 공장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는 1950년대 엄청나게 돈을 버신 분이었죠. 초창기 신앙촌은 우리 아버지 돈으로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아버지는 박장로에게 전 재산뿐 아니라 우리 자식들까지 바친 분이죠. 저는 누나와 함께 소사에 있는 양계장을 개조한 신앙촌의 집단합숙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포로수용소 막사 같던 합숙소는 A동에서 F동까지 여러 가구가 살았어요. 제일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F동은 한사람이 들어가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어요. 밤에는 이불하나에 온 가족이 들어가 자는 거죠. 영하 이십도의 칼바람이 그냥 들어왔어요. 그런 집에서 새우잠을 자고 새벽 네 시면 일어나 예배당에 모여 새벽기도를 했죠. 얼음 같이 찬 예배당 마루 바닥에 앉아있던 어른들의 구멍 난 양말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해요. 먹는 것도 비참했어요. 외국에서 수입하는 닭 사료를 끓여먹고 살았어요. 그걸 반죽 하면 확 풀어져 먹을 수도 없었죠. 밀기울을 먹기도 하고요. 그래도 수제비가 나오는 날은 좋은 날이었어요. 그걸 먹고 해가 떠오르면 성전건설대로 공사현장에 투입됐죠. 신앙촌의 제단은 그렇게 만들어 졌죠. 배급형식으로 좁쌀 다섯 되 쌀 한 되 줬어요. 저와 누나가 그걸 가지고 연명했어요. 누나는 밭에 가서 버려진 배추잎과 뿌리를 구해다가 김치를 담고 산에 가서 나물을 뜯어왔어요. 제가 이렇게 키가 작은 건 그때 못 먹어서 그렇습니다. 다른 가족들은 그래도 집집마다 먹을 걸 조금씩 숨겨놓고 살았는데 고지식한 우리아버지는 모든 걸 박장로한테 바치고 자식들은 그렇게 고생을 시켰다니까요. 당시 소망촌에서는 연탄가스로 매일 사람들이 죽어나갔어요. 장례반이라고 시신을 치우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는데 얇은 나무 관을 만들어 죽은 사람을 자전거 바퀴를 단 수레에 실어 나갔죠. 매일같이 관이 실려 가던 공동묘지로 향하는 구부러진 산 비탈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신앙촌의 기억은 지금도 악몽이예요.”

나는 마치 탈북자의 얘기라도 듣는 것 같았다. 종교탄생의 이면이었다. 그가 계속했다.

“오십년 대는 전쟁고아가 많았어요. 박장로는 그 아이들을 돌본다고 많이 모았어요. 전쟁고아 이백명 가량을 화순쪽 탄광에 가서 일하게 했는데 어느 날 매몰사고가 난 거예요. 그 당시만 해도 어수룩해서 지방 파출소장에게 돈을 주고 사고를 덮었는데 그 영혼들은 아직도 땅 속에 다 있습니다. 저는 알죠. 그걸 발굴해야 하는데 아직 안 되네요.”

“박장로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찬반양론이 있는 교주에 호기심이 일었다. 

“박장로는 남대문교회장로였죠. 그 영성을 인정해서 교회 김치선 목사가 부흥회를 할 수 있도록 안수를 했죠. 김치선 목사도 당시 유명한 분이었어요. 박장로는 아주 미남이예요. 그만큼 잘 생긴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목소리도 기가 막힙니다. 박장로는 집회 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예배스타일을 바꿨어요. 경건예배를 없애고 박수치게 하고 큰북 작은북 심벌즈를 요란하게 치게 했죠. 음악이 들리는 가운데 잘생긴 박장로가 그 좋은 목소리로 사람들의 혼을 빼 놨죠. 설교내용도 이제 세상 끝이 왔는데 돈이 있어도 아무 소용없다고 했어요. 저는 박장로의 셋째아들과 함께 소사 소망촌에 있는 시온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였어요. 그 집에 자주 놀러갔었죠. 철조망이 쳐 있고 초소 같은 안내실이 있었던 게 기억이 나요. 헌금을 많이 내는 우리 아버지가 왔다고 하면 박태선 장로가 앉아있다가도 맨발로 뛰어나갔죠. 어릴 적 박장로와 더러 같이 밥 먹고 박장로가 화장실 가는 것 까지 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이라고 선언하는 걸 저는 받아들일 수 없었죠.”

“박태선 장로의 안찰이라는 건 어떤 거였죠?”

내가 물었다. 사내가 분노한 어조로 말했다.

“박 장로는 사람의 눈에서 죄가 나온다고 눈 안수를 했어요. 안수하겠다고 사람들이 줄을 서 있으면 양쪽 엄지가락 끝으로 사람들의 눈을 한 번씩 콱 찍는 거죠. 그게 안찰이예요. 눈이 찔리면 으악 하고 사람들이 놀라서 뒤로 나가떨어지곤 했어요. 또 ‘배 안찰’ 이라고 있었는데 눕혀놓고 마귀가 있다고 주먹으로 배를 까는 겁니다. 우리 삼촌이 소망촌에서 함께 살았는데 박장로한테 비판적이었어요. 박장로는 자기한테 맹종하는 사람만 거기 묵게 하지 저항하는 사람은 바로 내쫓아요. 삼촌한테 마귀가 든 것 같다면서 방바닥에 눕혀놓고 안찰한다고 이마를 까고 배를 주먹으로 질렀어요. 그걸 이마안찰 배 안찰이래요. 말이 안찰이지 반 죽여 놓는 폭력이었죠. 삼촌은 맞아죽을 것 같다면서 바로 나가 버렸죠. 나도 지금 박장로가 살아 있다면 박장로에게 눈 안찰을 해 주고 싶어요 이걸로 그냥 콱”

그는 독이 오른 눈으로 양쪽새끼손가락을 펴서 허공을 향해 확 찌르는 자세를 취했다. 그가 나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왕 말한 김에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생수얘기도 해줄까요?”

“그건 뭐죠?”

내가 되물었다.

“박장로는 큰 딸을 금딸이라고 불렀어요. 그 딸이 죽으니까 부활시킨다고 이상한 짓을 했어요. 우리가 뽑아 올려 먹던 지하수를 생수라고 해서 그걸 가지고 딸의 시신을 매일같이 깨끗이 닦게 했어요. 죽은 사람이라도 열심히 닦으면 피부가 반질반질해 지더라구요. 그렇게 조금만 더 하면 부활한다는 거예요. 박장로의 그런 방법을 나중에 이단에서 그대로 답습 하더라구요.”

“박장로가 처음부터 그랬어요?”

내가 물었다. 

“아니죠 처음에는 신실하고 영성도 건전했죠. 그에게 성령의 은사가 내릴 때 전국에 육백개의 지교회가 생겨났어요. 재산을 헌납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어요. 사람들이 박장로를 숭배하고 돈이 생기니까 변질되기 시작했어요. 박장로는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더라구요. 수조원의 돈이 생겼어요. 교회유지재단을 만들어 문광부에 등록하고 전국 교회들의 재산을 흡수했죠. 회사를 만들어 재단 돈을 그쪽으로 보냈죠. 그 회사의 지분은 아들들 명의로 해놓구요. 재산이 점점 늘어나서 천문학적 숫자가 됐는데 예수교 장로회 소속이니까 교단의 간섭을 받을 우려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유지재단의 정관을 바꾸어 기성교단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었죠. 그래서 새로 종교를 만들고 정관변경신청을 한 겁니다. 문광부에서는 그렇게 하면 종교가 달라지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거절했어요. 박장로측은 전두환 정권시절 국보위에 엄청난 금액을 헌납하고 거기 있던 실세인사에게 돈을 주고 기어코 정관변경을 했죠. 그때 교회탑에서 십자가를 떼어내고 월계수와 비둘기를 달았어요. 그러자 교인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어요. 우리는 기독교인인데 무슨 짓이냐 하고 반대한 사람들이 생긴 거예요. 박장로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쪽으로 가서 천부교 신자가 됐죠. 그렇지만 따라가기를 거절한 신자들은 자기네가 바친 전 재산이 결국 도둑을 맞은 겁니다. 박장로 일족에게 재산을 빼앗긴 거죠. 박장로의 가족들은 김일성같이 호화롭게 살았어요. 큰아들이 여자 탈랜트들과 염문을 뿌린 건 세상이 아는 일이고 부산의 기장 앞바다 죽도에 그 집 별장이 지금도 있어요. 저는 옆에서 보면서 그런 게 너무 싫었어요. 싸웠죠. 죽음의 고비도 여러 번 넘겼습니다. 같이 싸우던 사람 중에는 행방불명이 된 사람도 많아요. 나는 박장로 앞에서 분신을 하기 위해 휘발유통을 가지고 간 적도 있어요. 그러다 신앙촌을 뛰쳐나왔죠. 그런데 어느 날 이단을 전문적으로 쫓던 탁명환씨가 찾아와 저보고 소망촌의 모든 잘 못된 걸 바로 잡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신학공부를 하기 시작했죠. 목사가 되어 소망촌의 신도들을 모았어요. 고소를 하기도 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죠. 소망촌에 모였던 재산들은 박태선이나 그 아들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기 위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안타깝게도 신앙촌의 일세대 분들은 거의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아버지도 이용만 당하고 불쌍하게 저 세상으로 가셨죠. 저는 지금 소망촌의 남은 신도들을 이끌어 가면서 그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더 기가 막힌 건 우리가 살던 소사의 움막에서 사람들이 모두 나와 그곳이 황폐해 지니까 하이에나 같은 땅 사기꾼들이 그걸 몽땅 먹어버린 겁니다. 유령인물을 내세워 그 움막집들을 자기들이 소유자라고 확인소송을 제기해 등기를 한 후 건설회사에 팔아버린 거예요. 희생자들이 남은 뼈까지 다 발라 먹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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