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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다섯장

운영자 2017.04.13 09: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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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다섯장

  

  

유튜브 속에 나와 있는 소설가 김훈과 앵커 손석희의 15분 가량의 짧은 인터뷰를 들었다.

“하루에 원고지 다 섯 장 정도만이라도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 달이면 백오십장 일 년이면 장편 하나가 나올 거 아닙니까?”

글의 장인 김훈의 원고지 다섯 장은 그의 피를 찍어 쓸 정도로 고뇌가 어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쓴 문장들을 보면 무릎을 꿇고 경건한 자세로 읽고 싶을 정도로 처절한 고뇌와 수련이 배어 있는 것 같다.

“저는 제 글이 후세에 남겨져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책을 한권 쓸 때마다 다시는 쓰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다가 몇 달 후면 다시 원고지를 대하게 됩니다.”

쓴다는 것은 그의 본능인 것 같았다. 그는 철저히 현대의 기계와는 거리를 두고 살았다고 했다. 운전도 못한다고 했다. 컴퓨터도 배우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다룰 줄 아는 것은 자전거뿐이라고 했다. 돋보기 초점에 태양열을 모아 종이를 태우듯 그는 영혼을 글에 집중해 피를 토하듯 글을 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김훈씨가 한국일보기자시절 데스크를 봤던 부장과 친하다. 김훈의 상관이었던 그는 매일 원고지 한 장짜리 기사를 맡겼었다고 했다. 김훈은 원고지 한 장짜리 기사를 쓰는데도 밤새 수많은 파지를 내면서 고뇌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지난주 일요일 교회예배가 끝난 후 만난 작가 김훈의 왕년의 상관은 차를 마시며 얘기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새로 낸 ‘공터에서’라는 김훈의 책을 사서 읽었어. 그 친구 책은 매일 조금씩 여러 날에 걸쳐 음미하면서 읽어야 해. 그렇게 공들여 쓴 거니까 말이야. 만난 지는 오래되지만 난 정말 궁금한 게 있어. 김훈이는 가난했어. 돈을 어떻게 쓰는 지를 모르는 사람으로 난 생각했어. 그가 신문사를 그만두고 작가가 되어 이제 돈을 벌었을 텐데 그걸 어떻게 쓸까가 가장 궁금해. 김훈은 돈을 모르는 사람으로 난 알고 있거든.”

그는 현대문명의 이기인 기계들을 모를 뿐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돈도 모르는 인간 형태인지도 모른다. 그는 목숨을 건 글의 장인이다. 문득 벌써 오래전에 죽은 원로 소설가 정을병씨가 살아서 내게 했던 이런 말이 떠오른다.

“일본의 작가들을 보면 평생 문장 하나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 많아요. 시골 외진 곳에 틀어박혀서 아름다운 문장에 일생을 걸죠. 그래야 좋은 문장이 나오는 겁니다. 노벨문학상을 탄 가와바다 야스나리도 ‘설국’이라는 작품을 십년동안 문장을 고치고 또 고쳐서 보석으로 만들어냈죠. 좋은 문장들은 그래야 나오는 겁니다.”

생명력 있는 좋은 글들을 남기는 글의 장인들을 보면 부럽다. 변호사인 나는 지난 30년 동안 법정에 제출하는 글을 써 왔다.

세상에 내놓는 글은 아니지만 한 인간의 생애에 관한 내용들을 담아야 하는 것 들이었다. 하루에 다섯 장만 써도 좋겠다는 김훈같은 작가에 비할 때 난 얼마나 사무적으로 기계적으로 글을 써 왔나 속으로 참회를 한다. 법률지식의 나열은 글이 아니다. 그런 지식은 판사의 머릿속에 더 많이 들어있다. 변호사가 글에 판례를 많이 적어내는 것은 의뢰인에 대한 사기라는 생각이다. 판례를 몰라 재판을 못하는 판사는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아픈 마음과 간절한 영혼을 글로 전달해 주어야 했다.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을 참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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