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 목탑의 건립 배경
진흥왕 때 삼국간의 우위를 차지했었던 신라는 제27대 선덕여왕 때 들어서, 백제 군사가 신라 서울 근교까지 쳐들어오는 등 백제와의 전쟁에서 열세에 빠지게 되었다. 이 때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 온 자장법사의 요청에 의해 불교로써 나라를 지키는 9층 목탑을 세우게 되는데, 이 황룡사 목탑은 신라 주위의 아홉 나라를 모두 항복시키겠다는 강력한 호국의지가 담긴 탑이었다. 목탑 조성의 총 책임자는 제25대 진지왕의 아들인 이간 김용춘 이었으며, 기술 공사의 책임자는 백제 기술자 아비지였다. 9층목탑의 건립 의도를 알아차린 아비지는 공사를 중단하려고 했으나, 꿈속에서 신인이 내려와 탑을 완성하는 것을 보고, 하늘의 뜻으로 생각하고 탑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삼국유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황룡사 목탑의 건립 배경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神人은 자장법사에게 절하고 나서 또 묻는다.
"그대의 나라에 무슨 어려운 일이 있소?"
"우리나라는 북으로 말갈에 연하고, 남으로는 왜국과 이어졌으며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가 번갈아 국경을 범하는 등 이웃의 침입이 횡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백성들의 걱정입니다."
신인이 말한다.
"지금 그대의 나라는 여자를 왕으로 삼았으니 덕이 있어도 위엄이 없소. 그러한 때문에 이웃나라에서 침략을 도모하는 것이니 그대는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시오"
지장이 물었다.
"고향에 돌아가면 어떻게 이익되는 일을 해야 합니까?"
신인이 말한다.
"황룡사의 호법룡은 바로 나의 큰 아들이요. 범왕의 명령을 받아 그 절에 와서 보호하고 있으니 본국에 돌아가거든 절 안에 9층탑을 세우시오. 그러면 이웃나라들은 항복할 것이며 구한이 와서 조공하여 왕업이 길이 편안할 것이요. 탑을 세운 뒤에는 팔관회를 열고 죄인을 용서하면 외적이 해치지 못할 것이요. 다시 나를 위해서 경기 남쪽 언덕에 절 한 채를 지어 함께 내 복을 빌어주면 나도 또한 그 은덕을 보답하겠소" 말을 하고 옥을 바친 후 이내 형체를 숨기고 나타나지 않았다.
정관 17년(서기 643) 16일에 자장법사는 당나라 황제가 준 불경, 불상, 가사, 폐백 등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와서 탑 세울 일을 임금에게 말했다. 선덕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이 일을 의논하자 신하들은 말한다.
"백제에서 공장이를 청해 데려와야겠습니다."
이에 보물과 비단을 가지고 백제에 가서 청하게 했다. 이리하여 아비지라고 하는 공장이가 명을 받고 와서 나무와 돌을 재고, 이간 용춘이 그 역사를 주관하는데 거느리고 일한 장인들은 2백명이나 되었다. 처음에 절의 기둥을 세우던 날에 공장이는 꿈에 본국인 백제가 멸망하는 모양을 보았다. 공장이는 마음속에 의심이 나서 일을 멈추니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여 어두워지는 속에서 노승 한사람과 장사 한사람이 금전문에서 나와 그 기둥을 세우고는 중과 장사는 모두 없어지고 보이지 않는다. 공장이는 이를 후회하고 그 탑을 완성시켰다.
신라의 불교는 호국불교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황룡사의 목탑 또한 그러한 호국불교의 면을 확실히 보이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뒤이어 삼국유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며 국가의 안위를 위하여 황룡사 목탑을 지은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 뒤에 고구려왕이 신라를 칠 계획을 하다가 말했다.
"신라에는 세가지 보배가 있어 침범할 수 없다고 하니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황룡사 장육존상과 구층탑, 그리고 진평왕의 천사옥대입니다."
이말을 듣고 고구려왕은 그 침범할 계획을 그만두었다. 주나라에 구정이 있어서 초나라 사람이 감히 주나라를 엿보지 못했다고 하니 이와 같은 따위일 것이다.
신라 27대 여왕이 임금이 되니 비록 도는 있으나 위엄이 없으매 9한이 침범하는 것이다. 만일 대궐 남쪽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우면 이웃나라가 침범하는 재앙을 진압할 수 있을 것이다. 1층은 일본, 2층은 중화, 3층은 오월, 4층은 탁라, 5층은 응유, 6층은 말갈, 7층은 거란, 8층은 여진, 9층은 예맥을 진압시킨다
---황룡사 9층 목탑은 특이하게도 다른 목탑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상징이 있다. 이른바 각 층마다 진압시켜야 할 주변국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인데, 그 당시 신라 주변의 9나라를 지칭하고 있다. 호국불교의 목적이 바로 황룡사 목탑의 건립 배경임을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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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진흥왕 14년(553) 황룡사가 창건되고, 그로부터 92년 이후에 선덕여왕 때인 정관 19년(645)에
황룡사 9층 목탑이 건립됐음.
9층목탑의 각 층은 구한(九韓)이라 불렸으며 신라가 진압시켜야 할 인접국으로 상징된다고 하는데,
1. 日本- 왜 倭國이 아니라 日本인가요?
2. 中華는 唐나라? 대략 645년이면 당나라 태종이 10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공격을 개시할 때이고
신라는 당과 연합하여 고구려 공격를 공격할 시점이고,삼국중에 문화적으로 가장 후진국이었던 신라는
당시 문화 선진국이었던 당나라와의 문화교류를 중히 여겼는데....?
唐황제가 신라의 왕이 여자라고 무시해서 열받은 것일까?
3. 오월(吳越)은 어느 나라? 당나라 멸망 이후의 5대 10국의 오월을 말하는 건 시기적으로 볼 때
당연히 아닐 것인데.... 무슨 나라인가요?
4. 탁라(托羅)는 지금의 제주도?
5. 응유(應遊)는 백제? 아니면 중국 강소성 동해현 둥북쪽 섬?
아무리 봐도 백제는 아닌거 같음.
시기적으로 백제의 국명은 南夫餘 였는데?
그런데 실제로 그 당시 신라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국가는 백제였는데
왜 백제가 빠졌을까?
6. 말갈(靺鞨)은 말갈족을 말하는 것인가?
말갈은 주나라 때는 숙신(肅愼), 한(漢)나라 때에는 읍루라고 불렸는데....
말갈족들이 단독으로 국가를 세웠던 것인가?
6~7세기 경에 말갈의 신라에 대한 위협도는?
7. 단국(丹國)은 도대체 어떤 세력?
거란을 말하는 것인가?
8. 여적(女狄)은 여진족?
9. 예맥(穢貊)은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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