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책임과 결단

  사회와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비전은 정치적 조건이 뒷받침될 때 실현될 수 있습니다. 1996년 처음 국회의원이 된 이래 국회와 행정부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 나는 우리 사회와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민주정부에 대한 국민의 비판은 엄중하고 정치에 대한 불신 역시 높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국민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되, 소극적인 변명으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정치의 긍정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의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제3부에서는 평소에 내가 가졌던 이런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또한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정치인으로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과제와 대외정책의 방향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7장 능력 있는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적극적 자세

  언제부터인가 정치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낙후된 영역으로 비판받아 왔습니다. 정치인과 국회의원은 국익을 팽개치고 파당적 이익에만 골몰하는 믿지 못할 집단으로 폄하되고 있습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집단은 2003년에 이어 2005년에도 국회로 나타났습니다. 중앙정부 부처, 청와대, 지방정부 역시 밑에서 선두를 다투고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평가 앞에서 말 못할 곤혹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국회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뼈를 깎는 반성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 개개인은 부정부패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높은 도덕성과 공적 윤리로 무장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일을 맡고 있다는 무한한 책임감과 헌신성, 말의 신뢰성과 행동의 사려 깊음 등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는 단지 정치인 개인이나 정치권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물론이고 국가 전체의 안녕 및 번영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 속에서만 발전합니다. 정부의 정책은 국민 다수의 지지가 있을 때 정당성을 가질 수 있으며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정치와 정부가 민주적 권위를 가지고 국민의 신뢰를 얻을 때 가능합니다.

  2005년 나는 여당의 원내대표이자 당의장으로서 심각한 정치적 갈등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국회에서 일은 않고 싸우기만 한다”는 언론의 질타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2005년 정기국회에 임하면서 “일을 하되 싸울 것은 싸워야 한다”고 당에 요구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대변하는 가치는 한나라당이 고수하려는 가치와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부 사학의 이익보다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중요시했으며, 부동산 투기 세력의 이익보다는 절대다수 국민의 주거 안정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사탕발림의 무책임한 감세정책이 아니라 경제의 도약과 양극화 해소에 필요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뒷받침할 건전 재정을 주장했습니다.

  나는 이러한 정책의 차이를 국민에게 알리고 국민의 심판을 받기 위해 야당 원내대표에게 TV토론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무조건 반대로 일관했습니다. TV토론은 물론 국회의 정상적인 의사 절차까지 거부했습니다. 나는 이러한 반의회적 행태야말로 정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나라당을 제외한 다른 야당과의 합의를 통해 개혁입법을 통과시키고 예산안을 처리했습니다. 내가 싸워야 한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의회주의 원칙에 따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야당이 반대한다고 대책 없이 기다리는 것은 상생의 정치가 아니라 책임의 방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현대 사회에는 도처에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더욱이 낡은 구질서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해소하여 사회발전을 이룩하려면 기득권 집단과의 갈등은 불가피합니다. 이런 점에서 갈등 없는 변화란 존재하지 않으며, 갈등을 부정하는 것은 현 상태를 무조건 긍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갈등은 민주적 권위를 통해 적절하게 다루어질 때 민주주의라는 기관차의 좋은 연료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치인이 사회의 중요한 갈등에 대해 회피하지 않아야 합니다. 갈등적인 사안에 대해 사려 깊게 검토하고 토론을 통해 최대한 합의를 도출하되,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책임 있게 결단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일 때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정치인이 갈등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사안에 대해 경쟁적으로 대안을 제시하여 국민의 의사를 묻고 그 결과에 책임지려는 자세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정당과 정치 지도자들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정치의 적극적인 역할을 책임 있게 수행해야 합니다. 국회와 정부는 국가의 안전과 발전에 필요한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유대와 결속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 정치입니다. 특히 약육강식의 시장경쟁에서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들이 보호받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국가 정책에 반영시킬 수 있는 것은 정치의 기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나는 정치인들이 국민의 비판에 대해 소극적으로 변명할 것이 아니라, 정치의 역할과 국가의 기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이익과 가치를 적극적으로 대표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결단력을 발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