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소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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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라는 정치 공동체 없이 진실하고 완전한 시민적 삶은 영위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치의 역할은 한 사회 안에서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는 시민의 세계를 만드는 데 있습니다. 국가는 그 과업을 수행하도록 주권을 위임받은 존재이며, 정치가는 구체적으로 그 과업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정치가는 시민에 대해 ‘책임성’(accountability)이라는 윤리적 의무를 갖게 됩니다. 이때 책임성이라 함은 응답한다(answer for)는 뜻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정치가는 사회를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그 동안 어떤 역할을 했으며 앞으로 어떤 비전과 정책 대안을 가지고 국가를 경영하고자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그러한 책임성을 실천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정치적 비전과 대안에 대한 나의 응답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개인이나 집단 간의 제어되지 않은 갈등과 이익 추구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갈등과 경쟁은 불가피한 것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 공동체 전체를 위한 협력도 필요하고 공적인 것에 대한 존중도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 사회가 마땅히 가져야 할 통합성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공적인 것이 약해질 때 개인적 욕망의 수위는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그만큼 자신만의 사적 이익에 골몰하면서 사회를 분열시키게 됩니다. 이런 조건에서 행복과 웰빙을 말한다 한들, 그것은 자신을 과시하는 것일 뿐 진정 자신의 내면적인 행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삶이 의미 있고 보람 있는 것은 자신 이외의 것에 헌신하고, 그럼으로써 마음속에 ‘우리’라는 더 큰 주체를 가질 때입니다.

  자신의 시선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불행과 고통, 공동체 전체의 문제를 향하고 있을 때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내가 오늘 한국의 현실을 무겁게 느끼는 이유는 이처럼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공동체를 위해 좋은 정치를 실천하는 일은 그래서 더 절박한 과업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