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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상플이얌 79화

ral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9.23 22:17:21
조회 257 추천 0 댓글 4

약간은 이른 아침.

다혜는 선반 아래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다혜 "어디갔지...."


그녀는 상자를 찾고 있었다.

글러브와 어릴적 사진이 들어있는 알록달록한 상자.

그러나 이상하게도 상자가 항상 두던 곳에 없었다.


다혜 "깊게 넣어놨었나...."


뒤적뒤적


놓던 곳 보다 더 깊이 뒤져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어디로 간건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어제, 헤어지기 전에. 

홍난으로부터 이상하게 예장동 집에 있던 사진들이 익숙하단 소리를 들었기에 상자 속 글러브와 사진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었는데....

그녀는 당황했다.


다혜 "혹시.... 아버님이나 한나가 다른데로 치웠나...."


그래도 집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았다.

쓰레기를 모아서 버리는 입장에서, 

모아놓은 쓰레기를 치울 때 그녀는 상자를 본 적이 없었다.


드르르륵


두리번 두리번


다혜는 방을 나와 상자를 찾기 시작했다.


노갑 "머하냐 애미야?"


거실에 있던 노갑이 물었다.


다혜 "아버님. 혹시 컴퓨터쪽 선반 아래 있던 파란색 상자 못보셨어요? 뚜껑은 초록색에 줄무늬상자요"

노갑 "아니? 못봤다. 왜? 중요한거냐?"


전혀 모르는 듯 했다.

걱정스런 물음에 다혜는 대충 둘러대었다.


다혜 "아뇨. 그건 아닌데 그냥 갑자기 없어져서요"

노갑 "그러냐? 나도 찾아보마"


둘은 같이 거실을 뒤졌다.

그러나 거실 어디에도 상자는 없었다.


초조하다.

다혜는 이 방 저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아직 곤히 자고 있는 한나방까지 소란을 무릎쓰고 뒤지기 시작했다.


부스럭부스럭


한나 "하아아암~"


결국 한나가 소음에 깨고 말았다. 

일어난 한나는 옷장을 뒤지고 있던 다혜에게 물었다.


한나 "엄마 뭐해?"

다혜 "한나야. 일어났어? 그.... 혹시 알록달록한 상자 못봤니? 안에 글러브랑 사진 든거?"

한나 "아. 그거"


뭔가 아는 것 같았다.

한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책상 밑 서랍을 열어 상자를 꺼냈다.

왜 이걸 서랍에 넣어놓은거지?

다혜가 의아해했다.


다혜 "이걸 왜 한나가 가지고 있었어?"

한나 "엄마 어릴 때 모습 보고 싶어서. 안에 든 거 엄마 어릴 때 사진 맞지?"


보고 싶으면 말하고 보면 되는데....

굳이 몰래 가져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찾았으니 큰 문제는 아니여서 다혜는 한나를 혼내지 않았다.

그녀는 상자를 열어 사진을 봤다.


다혜 "응. 맞아. 엄마 어릴 때 사진이야...."


회한에 젖었다.

그 때.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그랬으면 홍난이 환생하기 전에도 알아봤을텐데....

아쉬워하던 다혜는 멀뚱멀뚱 쳐다보던 한나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슬퍼보였다.

한나가 물었다.


한나 "엄마 무슨 일 있어?"

다혜 "한나야.... 지난번에 엄마랑 잠깐 친척 이야기 했었지? 그게...."


이야기를 하려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홍난이 자신과 가족이 되는걸 거부한다면 어쩌나.

그렇다면 한나에게 이 사실을 알려줘봤자. 괜히 상처만 될 것 같았다.

홍난이 받아준다면, 그때서 한나에게 알려주는게 괜찮을 것 같았다.

다혜가 고개를 저었다.


다혜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한나가 궁금해했다.


한나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말아?"

다혜 "별거 아니야. 학교 갈 준비해야지 한나야"


....

학교 갈 준비를 하기엔 시간이 너무 일렀다.


한나 "지금? 일곱신데?"


좋지 않은 변명이였다.


다혜 "어...."


막무가내로 우길수 밖에 없었다.


다혜 "일찍 준비하면 좋지! 준비해!"


다혜 자신이 생각해도 숨기고 있는게 훤히 보인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다행히 한나가 넘어가주었다.


한나 "알았어. 여자는 비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니까. 봐줄게!"


다혜가 해괴해했다.


다혜 "누가 그런 소리를 해?"

한나 "이연 언니가! 여자는 비밀 하나쯤은 있어야 더 신비롭고 아름답게 보인대!"


그리곤 콧망울을 치어드는데.

그 모습이 사뭇 귀여웠다.

다혜가 웃었다.


다혜 "신비롭고 아름답기 이전에. 깨끗해야지. 눈꼽꼈다. 가서 씻고. 가방도 싸"

한나 "엄마는 준비 안해?"

다혜 "엄마는 오늘 오전 근무가 없는 날이거든. 떠넘기지 말고. 가서 준비해"

한나 "응~"


-----------------------------------



점장실. 

오늘도 해준은 책상에 누워있었다.


팔랑


책 넘어가는 소리.

그래도 아무것도 안하던 어제와는 다르게 그는 누운 상태로 책을 보고 있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환생에 관한 책.

하지만 이번엔 책을 보며 생각하는 대상이 달랐다.


해준 '홍난이는 결국 이연씨한테 가버렸네.... 나는 혼자 남았고....'


생각할수록 처진다.

대체 자신이 이연보다 못한게 뭔지 지금도 모르겠다.

못해준 것도 없고, 화나거나 슬프게 한 일도 없는데.

왜 홍난이 자신과의 연을 끊은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연이 잘났다는건지....

자괴감에 뻑뻑 한숨을 내쉬었다.


팔랑


해준 '전생의 연이 다시 만나면 끌린다는건가....'


이연과 심각하게 관계가 있었던 전생의 홍난.

그것 때문에 지금의 홍난도 이연에게 끌린 것 아닌가 싶었다.

그랬기에 전생에 살았었던 집에서 이연에게 끌린 것이고, 

이연 역시 그랬기 때문에 홍난에게 끌린 것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별 다른 일이 없었음에도 자신을 버린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였다고 해도,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해준 '그렇다면 애초에 내가 그 둘 사이에 껴버린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둘 사이에 꼈다기엔. 

해준 자신은 너무나도 홍난을 좋아했었다.


첫만남에도 그렇고 그 이후에도 쭈욱 그랬다. 

홍난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다. 

놀고 싶고, 같이 장난치고 싶고.

그녀가 기뻐하면 자신도 기쁘고, 그녀가 즐거워하면 자신도 즐거웠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그녀를 좋아했었다.


36 평생 냉철한 인생이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여자를 좋아해서 이렇게 휘둘리다니....


해준 '혹시 나도 전생의 연이라 끌린건가? 그래서 홍난이만 보면 그렇게 좋았나?'


그렇게도 생각해봤지만 그 가정엔 심각한 오류가 존재했다.

해준은 환생한 사람이 아니였다. 

더구나 전생의 홍난과 만났던 건 환생한 영수였다. 

해준 자신은 어디까지나 그 날. 로비에서 홍난을 처음 마주쳤었었다.


해준 '그 날 하는 짓이 애 같아서. 귀엽다고 생각한게 문제였지.... 하아....'


그건 결코 전생의 연 같은게 아니였다.

오히려 운명에 가까웠다.

물론 그 운명은 지금 다른 사람과 이어졌다만 말이다.

그는 괴로워했다.


해준 "...."


이마를 책상에 기댔다.

책을 접어서 내팽겨쳤다.

꼬장을 부리곤 눈을 감아버렸다.


똑똑똑


노크가 울렸다.

문여는 소리와 또각거리는 소리 때문에 누군가 들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이 해준에게 다가와 천천히 물었다.


???? "언제까지 누워계실겁니까? 점장님?"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올려다보니 왕비서가 보였다.

나가 떨어진 책을 들고 있는. 찌푸린 얼굴이였다.

오랫만에 보는 얼굴인데 그런 표정이라니.

해준도 기분이 좋지 않아 마주 찡그려주었다.


해준 "왜 오셨습니까?"

왕비서 "백화점에 아주 기묘한 소문이 돌아서요. 점장님이 하루종일 어퍼져 있다는 소문이요"


톡톡 쏘아붙이는 말. 

해준은 더욱 더 찌푸렸다.


해준 "네.... 뭐...."

왕비서 "회장님께서 많이 걱정중이십니다. 그렇게 빈둥빈둥 누워있으면. 백화점 매출 130퍼센트 인상은 언제 할거냐고 말입니다"

해준 "그거야 지금 이미 70퍼센트 정도는...."


왕비서가 그의 말을 끊었다.


왕비서 "그거. 제가 말씀드려봤습니다만. 스캔들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일어난 일시적인 매출 증가가. 진짜 매출증가냐고 물어보시더군요?

        팔리는 품목이 죄다 여성용 의류인데. 대체 걔가 뭘 한게 있냐! 라고 하셨습니다"


쓸데없이 깐깐하다.

그보다.

스캔들 때문에 일어난 현상에 죄다 여성용 의류라니....

사람들 역시 자신과 홍난보단 이연과 홍난을 지지한다는건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책상에 다시 푹 퍼져버렸다.


해준 '역시.... 내 편은 아무도 없구나....'

 

왕비서가 기막혀했다.


왕비서 "더 퍼져버리시는 겁니까?"


그러나 해준의 반응이 없었다.

완전히 기운이 빠져서 대꾸조차 해줄 분위기가 아니였다.

이대로라면 소귀에 경을 읽는 꼴 밖에 안됐다.

왕비서가 잔소리를 멈추고 나머지 말을 했다.


왕비서 "어쨌든. 매출인상 반드시 하시라고 하셨습니다. 백화점에 헛짓거리 하는 놈들도 확실히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해준이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왕비서 "그럼 이만"


왕비서가 나갔다. 

적막한 점장실.

그렇지만 해준은 딱히 힘 날 일이 없어서 계속 축 늘어졌다.

그렇게 있기를 잠시.

정신을 놓아버린 해준에게 뻥! 하는. 문을 확 제치는 소리가 들렸다. 

점장실을 그렇게 들어올 사람은 홍난 밖에 없었다.

해준이 화색이 되서 고개를 들었다.


해준 "왔...."


하아....

재국이였다.

왜 왔나. 굳이 알 필요 없었다.

해준은 다시 풀이 죽어 책상에 누웠다. 


해준 '미련하게.... 홍난이가 이제 여기 올 리가 없는데....'


죽다 못해 아주 땅까지 파고 들어갈 기세였다.

동태 눈깔에 메말라버린 숨.

재국이 몹시 불쾌해했다.


재국 "뭐냐? 그 자세는? 난 볼 필요도 없다는거냐?"


해준이 답했다.


해준 "아닙니다...."


아니라곤 하지만 목소리가 저 아래 있었다.

볼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재국은 신경쓰지 않고 손님용 쇼파에 앉았다.


재국 "거 지난 번 양아치들 잘 잡았더라? 덕분에 백화점 가격이 더이상 안떨어지던데?"

해준 "형님 좋다고 한 일 아닙니다만...."

재국 "나 좋다고 한 일 아니여도. 결국엔 내가 득봤지 하하하하. 석원이 그 새끼. 아주 재대로 물먹었던데?"

해준 "그건 그렇죠"


재국답지 않게 덜 공격적인 모습.

말을 빙빙 돌리는 모습이 수상쩍었다.

해준이 지적했다.


해준 "그래서 뭔 말이 하고 싶어서 온겁니까?"


재국이 헛기침을 했다.


재국 "험험. 그 뭐냐.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그.... 홍난인지 하는 여자. 언제 송이연 옆에서 치울거냐고. 

      이제 백화점 괴롭히는 새끼도 없는데. 빨리 그 일이나 처리하지 그래?"

해준 "...."


또 홍난의 이야기가 나왔다. 

이별한 사람한테 잘 해보라고 응원을 하다니.

본의는 아니였겠지만 참 사람 속을 잘 긁는다 싶었다.

해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재국 "대답 안하냐? 언제 할거냐고. 그 일"

해준 "다른 사람한테 알아보십쇼. 전 이제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재국 "뭔소리야? 어떻게 할 수 없다니?"


돌려 말했지만. 

재국이 이해를 못했다. 

다시 돌려서 말해봤자 이해할 것 같지 않았다.

해준은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해준 "헤어졌다고요. 홍난이랑. 그러니까 제가 뭐 어떻게 할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젠"


씁씁하다. 

헤어졌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 

입맛이 써도 너무 썼다.

토해내듯 뱉은 그 말이.

말을 한 자신에게도 비수가 되어 박혔다.

괴로워 하는 해준.

그에게 재국이 다시 물었다.


재국 "그게 뭔소리야? 어?"

해준 "...."


재국이 그의 멱살을 잡아챘다.


재국 "이 등신새끼!"


재국이 해준을 던지듯 밀쳐냈다.

화를 다스리지 못해서 좌우로 왔다갔다 거렸다.

재국.

불현듯 어제 영찬이 했던 말을 떠올랐다.


'''''''''''''''''''''''''''''''''''''''''''

영찬 "몰라! 간식 만들기 전에 엄마랑 번개걸이랑 침대에서 놀고있었는데. 재밋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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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드득


이가 갈렸다. 

그제야 재국은 영찬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연이 그 불여우랑 놀아날만큼 놀아났다는 것을 말이다.


으드드득


속이 뒤집혔다.

영찬이 있을때도 그런 분위기였다면.

영찬이 없을땐 대체 얼마나 그렇고 그런 짓을 했을지 감이 안잡힐 정도였다.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분노로 인해 눈이 파르르 떨렸다.


재국 "이런 씨...."


그는 테이블을 차버리더니 문을 쾅 닫으며 점장실을 나갔다.


만신창이의 점장실.

딱히 치우기도 귀찮다.

해준은 자세한 사정을 몰랐기에.

재국이 적당히 이연에게 홍난과 사귀는 걸 따지러 갔겠거니.... 생각하며 다시금 책상에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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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띵동띵동

띵동 띵동띵동


이연의 집. 

아침부터 초인종 소리로 시끄러웠다.

뭐가 그리 급한지.

시달리던 이연이 현관문을 열자 재국이 있었다.


이연. 

질색했다.


이연 "아니 왜 또 왔어? 또 헛소리하러 왔어?"

재국 "했냐?"


너무 뜬금없는 말에  이연은 이해를 못했다.


이연 "뭘?"

재국 "했냐고"

이연 "그러니까 뭘?"


다짜고짜 했냐고만 물어보는데 당연히 알수가 없었다.

맥락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했냐고만 물어보는데 알 수가 있어야지....

이연이 계속 이해하지 못하자 재국이 재대로 말했다.


재국 "그년이랑. 잤냐고"


아.

이연은 순간 자신이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이연 "뭐?"

재국 "한홍난 빌어먹을 년이랑 잤냐고! 송이연"


자?

아니 그 이전에.

홍난을 욕하자 이연이 화를 냈다.


이연 "당신이 뭔데 우리 홍난이를 욕해? 이년 저년이라고 하지마! 당신...."

재국 "내가 욕하던 말던! 그년이랑 잤냐고!"


증오 가득한 눈빛. 

흡사 그렇다고 말하면 다 뒤집어 버리겠다는 눈빛이였다.

이연을 향한 독점욕이 다시 한 번 집착으로 불타오른 것이다.

저 광기어린 독점욕 때문에 자신이 10년간 시달린걸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졌다.

그러나 이연은 한발짝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이연 "그래 잤다. 자면 뭐? 어쩔건데!"

재국 "미쳤어? 무슨...."


오히려 이연이 쏘아붙였다.


이연 "그걸 왜 당신이 따져? 이혼했잖아? 그리고 당신은 기지배들이랑 안놀아났어?"

재국 "그건 그거...."

이연 "그건 그거긴. 지금이 쌍팔년도인줄 알아? 지는 결혼생활 중에 바람 났으면서 남한테 헛소리질이야"

재국 "그래도 애 엄마가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어?"


완전히 내로남불이였다. 

우기면 뭐든지 해결 될거라고 생각하는 그 꼴이 정말 징그러웠다.


재국 "허튼 짓거리 하지말고 당장 그 년 집에서...."


그렇지만 듣는 이연도 예전의 그 이연이 아니였다. 

재국의 행동엔 내성이 생길만큼 당해왔던 과거가 있었고

혼자만 기억하고 있었다만 그걸 이겨낸 기억도 있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아했다. 


이연 "당신이나 헛소리하지 말고 꺼져"


그녀가 재국을 밀쳐내고 문을 잠궈버렸다.


띵동 띵동띵동


인터폰이 미친듯이 울렸다.

시끄러운 집.

방에 있던 홍난이 슬며시 나왔다.


홍난 "저 분.... 내비두면 하루종일 누르실 거 같은데...."

이연 "누르라지. 이렇게 꺼버리면 되는데 뭐"


이연이 전원 버튼을 꾸욱. 

길게 눌러서 인터폰을 꺼버렸다.

집안이 조용해졌다.


이연 "나 없을때 저 인간 나타나면 이렇게 인터폰 꺼버려. 알았지? 그리고 그냥 신경끄고"


홍난이 미소지으며 답했다.


홍난 "네~"

이연 "저 인간. 참을성이라곤 요만큼도 없어서 얼마 있다가 그냥 돌아갈거야. 길게 있는다고 해도, 어차피 오후에 일있으니까 

      승재랑 제길이가 오면 쫒아낼거고"

홍난 "아.... 그렇겠네요.... 어?"


홍난이 뭔가를 목격했다.


홍난 "저기. 저 분 끌려가요"


이연이 뒤를 돌아보니 재국이 정장입은 경호원들에게 끌려나가고 있었다.


이연 "그러네? 아 너네 경호원들인가? 기자만 내쫒을 줄 알았는데. 차재국한테도 안쫄고. 

      의외로 일 잘하네. 어머님이 좋은 경호원 붙여줬나봐 ㅎㅎㅎㅎ"

홍난 "네. 그런가봐요. 그래도 좀 무서웠는데. 다행이네요 ㅎㅎㅎㅎ"


무서워? 

이연이 물었다.


이연 "왜? 불량배도 패놓고는. 차재국이 뭐가 무서워?"

홍난 "그렇잖아요. 저렇게 막 눈 돌아간 사람은 뭔 짓 할 지 모르거든요. 그래도 경호원들 있으니까. 허튼 짓 못하겠죠?"


확실히. 

가끔 돌아버린 사람이 홧김에 뭔가를 저지르는 일이 있긴하다.

그러나 재국은 그런 짓을 하기엔 너무 가진게 많았다.

그럴 인간이 아니였다.


이연 "못해 못해. 저 인간 겁 많아서 절대 못해. 맨날 말만 저러는거지...."


이연이 홍난을 껴안았다.


이연 "그리고 설사 허튼 짓 하더라도. 언니가 지켜줄게. 우리 홍난이. 반드시 지켜줄게"


든든했는지 홍난이 웃었다.


홍난 "네~ ㅎㅎㅎㅎ"


귀가 스쳤다.

가까워진 거리 만큼이나 사랑이 느껴졌다.

홍난이 이연을 마주보며 물었다.


홍난 "근데. 잤다는 소리는 뭐에요? 우리 아직 그런 사이 아니지 않아요?"


툴툴대며 따지는 모습. 

째려보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이연이 변명했다.


이연 "아니 뭐.... 그냥.... 저 인간 짜증나기고 하고 그래서...."


그런데 말하다보니. 굳이 변명을 해야 하나 싶었다. 

스멀스멀

장난기가 피어올랐다. 

이연이 야릇하게 말했다.


이연 "그런 사이 아니면. 지금이라도 그런 사이 되볼래?"

홍난 "엣?"


홍난의 입술을 향해서 거침없이 전진했다.

키스.

가볍게 닿고, 다시 깊숙히 닿았다.

부드러운 입술의 맛을 느끼며, 천천히 더 깊게 들어갔다.

아예 안쪽에 까지 닿을 찰나.

홍난이 그녀를 밀어냈다.


이연 "아니 왜~"


달뜬 얼굴로 거실로 도망갔다.

그녀는 의자 뒤에 숨어 빼꼼 얼굴만 내밀었다.


홍난 "오.... 오후에 일 있다면서요!"


이연이 둘러댔다.


이연 "음.... 그렇긴 한데.... 그래도 조금쯤은...."

홍난 "무.... 무슨...."

이연 "ㅎㅎㅎㅎ 장난이야. 장난"

홍난 "으으...."


그런데 홍난의 얼굴이 좀처럼 원래의 색을 찾지 못했다.

발그레 해진 볼을 하고서는 아쉬운 듯한 표정이였다.

아.... 아쉬워?

이연이 슬그머니 말했다.


이연 "다음에. 다음에 일 없을 때.... 그 때...."


꼴깍


말을 다 마치지도 못했는데.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한 집이라 더 크게 들리는 듯 했다.


홍난 "지.... 진짜요?"


이연도 부끄러워했다.


이연 "아니 흠흠...."

홍난 "흠흠...."


기류마저 빨개졌다.


홍난 "거.... 거실에 에어컨을 안켜놔서 더.... 덥네...."


어색함을 참지 못했는지 홍난이 슬그머니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배시시


이연이 웃었다.


***********************************************



익어버린 뺨을 가리고 나는 침대에 몸을 묻었다.


홍난 "아으으~!"


방방


아쉬움에 발버둥을 쳤다.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건데.

잠깐만 참으면 되는데.

부끄럽고 간지러워서 나도 모르게 피했다.


홍난 "피.... 하면 안되는건데...."


하아....

조건반사적으로 피한 내가 싫다.

생각 할 시간도 없이 피해버렸다니.

어쩌면 버릇이 되버린 건지도 몰랐다. 


홍난 "그런 느낌은 처음인걸 어떻하냐구...."


여지껏 경험해본적 없는 느낌이였다.

언니가 건드리기만 하면 눈이 풀리고, 신경이 빳빳히 섰다.

온 몸이 떨리고, 만져지는 모든 곳이 달아올라서.

정말 어떻게 돼버리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분이 이상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아무나 경험하지 못한다는 그 절정인가 싶었다.


홍난 "나.... 미쳤나보다...."


같이 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만지는 것만으로도 오르다니....

정말.... 못하고 죽은 처녀귀신도 아니고....


솔직히 내가 많이 밝히긴 한다.

그래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런 적은 없었다.


요즘 세상에 솔직히 서른 먹은 처녀가 어딨겠는가. 

당연히 관계도 몇번 가진 적 있었다.

그런데. 

유독 언니에게만 그랬다.


관계중에도 이런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었는데. 

언니가 손만 대면.

봉숭아가 터지듯 내 안에서 뭔가가 솓구쳐 올랐다.

그 생전 처음 느끼는 기분이 두려웠다.

미칠듯한 찌르르르함과 그 뒤에 숨겨진 오싹함이 무서웠다.


홍난 "...."


만지기만 해도 이정도인데.

관계를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다 못해, 터져서 죽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싶었다.


홍난 "하아.... 언니.... 많이 원하던 것 같았는데...."


그러나 피할 수 없었다.

하자고 조르는데. 계속 안한다고 버티기도 뭐했다.

내가 그럴 마음이 없나 하면 그것도 아니고.

내가 언니 입장이였어도 너무한다 생각했을 거다.


홍난 "그렇다고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할 수도 없고...."


많이 미안했다.

마음은 이미 진작에 다 허락해버렸건만.

상황이 닥치면 늘 피하다보니 여기까지 와버렸다.

언니도 상황이 닥치면 날 조심스러워 하는 듯 했다.


밀어내면 따라오지도 않고.

다음에~ 다음에~ 라고 말하며 미루는게.

날 배려해주는 것 같아 고맙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바보도 아니고.

당연히 알았다. 

언니가 엄청 아쉬워 한다는 걸. 

백년해로 하기로 하고서도 받아주지 않는 나를 분명히 원망도 했을거다.


홍난 "바보 멍청이.... 언니도 처음이라 힘들텐데...."


여자끼리.

분명히 언니도 처음일터였다. 

언니도 나와 마찬가지로 두렵고 무서울터였다.

그런데도 나 무서운 것만 생각해서 못하겠다니.

이기적이기 그지 없었다.


홍난 "그치만.... 자꾸 안좋은 생각만 나는걸...."


만약에.

혹시나 하고 나서.

언니가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속궁합이 안맞아서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우리가 그런 사이가 되면 어쩔까 걱정됐다.


물론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야 이미 언니가 만지기만 해도 터질 것 같고,

언니도 내가 키스만 하면 눈이 풀리는게 그럴 일은 없어보였다.


그런데 왜 자꾸만 좋지 않은 쪽으로만 생각되는지....

내 스스로가 답답했다.


깝깝하고 콱콱 막혀서.

나는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크게 소리 질렀다.


홍난 "아아아악~~~~"


속이 뻥 뚤린다.

조금은 상쾌해진 것 같았다.


홍난 "후우...."


다짐하기로 했다.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기로, 너무 간지러워 하지말기로.


그리고 주먹을 쥐고 숨을 고르며.

나는 굳게 마음먹었다.


홍난 "후우.... 다.... 당하는게 무서우면.... 내가 해버리면 되는거야. 

      하아.... 응! 내.... 내가 해버리면 되는거라고!"



--------------------------------------------------



예장동 집.


다혜는 동생의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


전 날. 

홍난이 이연의 부름에 방으로 들어가고나서.

다혜는 혹시나 싶어서. 

영수의 핸드폰에 한형이라고 저장되어 있던 동생의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따르르릉


역시나. 

그녀의 예상대로 벨소리가 울려댔다. 

소리를 쫒아 그녀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크게 들리는 소리를 따라서. 

검은 옷이 한 벌 걸려있는 옷걸이로 향했다.

검은 옷. 

홍난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있는 요리복이였다. 


다혜 "홍.... 난? 이거 홍난이 옷인가?"


생각할 시간도 없이


두런두런


밖에서 홍난과 이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요리복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발견해 끄고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옷을 들고 방을 나섰다.


'''''''''''''''''''''''''''''''''''''''''''''''''


다혜 "그러고보니 홍난이가 우리집에서 요리 한 적이 있었는데...."


환생하기 전에도, 하고 나서도.

홍난은 다혜의 집에서 요리를 한 적이 있었다.

환생하기 전의 홍난은 기억이 안난다지만. 

환생 후의 홍난의 모습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빠른 손길에, 동시에 여러가지를 하는 모습.

그땐 꽤 신기하게 바라봤었다.


다혜 "환생하기 전엔 쉐프였다니까...."


그래서인지 플레이팅이 완벽했었다. 

레스토랑에서 나올듯한 비주얼의 음식들이였다.

당연히 맛도 일품이였다.


다혜 "이연씨는 좋겠네. 맨날 홍난이 요리 먹구...."


전에도, 지금에도. 

변함없이 동생의 사랑을 받는 이연이 어쩐지 조금은 부러웠다.


그러고보면 둘은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다.


한나에게 듣자하니 홍난은 권투를 좋아한다고 했다.

권투....

글러브가 생각난다.

환생을 했어도 그 남자같은 취미는 여전히 바뀌지 않은 듯 했다.

다혜에게는 그 점이 살가웠다.


다혜 "내 가족...."


달라졌다면 오히려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비록 전의 모습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알수 있는 취미가 같아서 환생을 했어도 여전히 자신의 동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혜 "아 참 이럴때가 아니지.... 핸드폰 보러왔는데 딴 생각하고 있었네...."


할 일이 있었다.

집에서. 혹시라도 노갑이나 한나가 볼까봐.

굳이 여기까지 들고온 핸드폰. 

다혜는 그것을 확인했다.


꾸욱


핸드폰을 켜보니 비밀번호가 걸려있지 않았다.

과연. 

홍난 특유의 털털함 그대로였다.


우선 통화기록부터 뒤졌다.

통화기록엔 영수과 이연의 번호, 

그리고 자신의 번호가 잔뜩 찍혀있었다.


분명히 자신의 핸드폰엔 흔적조차 없었는데....

동생의 핸드폰엔 자신과 전화를 했다는 통화기록이 수두룩하게 찍혀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곳에도 분명 자신의 흔적들이 있을 터였다.

다혜는 사진들도 뒤졌다.

갤러리를 키자 마자 주르르 사진들이 보였다.


대부분은 이연과의 즐거운 시간을 찍어놓은 사진이였다.

그러나 가끔 보이는 사진들 중. 

다혜 자신을 멀리서 몰래 찍어놓은 사진들이 보였다.


루치아에서 일하는 모습, 한나와 놀아주는 모습, 영수와 떠드는 모습 등.

멀리서라도 몰래 자신을 사랑했었던 동생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다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혜 "이렇게 좋아했으면서 어떻게 숨기고 살았대.... 자매라는걸...."


정성스레 찍은 사진들.

그 마음이 다혜에게 전해졌다.


뚝뚝


눈물이 떨어졌다.

다혜는 고개를 들었다. 

화장이 번지지 않게 휴지로 눌러가며 눈물을 닦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촉촉한 눈과 코.

한참을 훌쩍이다 진정하고 나서 다시 핸드폰을 보려는데 언뜻 눈에 띄는게 있었다.


다혜 "글러브?"


반투명한, 빨간 글러브가 벽에 걸려있었다.

속이 비춰서 벽이 그대로 보일 정도로, 윤곽과 색만이 겨우 보였다.

눈물 때문에 울렁거려서 잘못봤나 싶었지만 다시 닦고 확인해봐도 여전히 글러브가 보였다.

다혜는 놀랐다.


다혜 "뭐.... 뭐지?"


일어나서 다가갔다.

조심스레.

손을 가져다대니 반투명함이 사라지며 글러브가 손에 잡혔다.

그녀가 글러브를 잡아 내렸다.


다혜 "이거.... 분명히 없었는데...."


어제 거실을 확실히 눈에 담았던만큼. 

그녀는 자신할 수 있었다.

이 글러브는 어젯밤, 아니 방금 전까지 분명히 존재하지 않았다.

투명함이 사라진 그 현상이 신기해서 다혜는 자꾸 글러브를 문질렀다.


문질문질


글러브는 너무나 잘 만져졌다.

아무리 만져봐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보면 볼수록 붉은 색이 진해지는 것만 같았다.


다혜 "...."


그녀가 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글러브 말고도 다른 무언가도 나왔을 거란 기대에서 였다.

세심하게. 하나하나 보기 시작한 그녀.

그런 그녀의 눈에 작은 소액자 사진이 눈에 띄었다.

중년 여성이 홀로 찍혀있는 사진이였다.


다혜 "어제 있던거긴한데.... 이상하게 자꾸 눈에 밟히네...."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


에.... 어디까지나 X이버 웹소설 정도의? 그런 수위를 유지합니다

근데 네이X 웹소설이  전연령이용간데 생각보다 수위가 높더라고....

로맨스 소설 정도의 수위라고 생각하면 편할 듯.



쓰기는 목요일날 다썼는데.... 맘에 안들어서 갈아 엎다보니.... ㅈ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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