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의 아렌델 #1
- 위기의 아렌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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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아렌델 #19

*
"못 살겠다! 무능한 정부는 물러가라!"
"옳소! 물러가라!"
위즐턴 전역에서 산발적으로 이어지던 시위는 점점 더 그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정규균이 시위의 확산을 막기 위해 시위대와 대치를 해 봤지만 그들 역시 딱히 시위를 진압할 강한 의지같은 건 없었다. 정규군들도 이미 짧게는 일주일부터 길게는 두달까지 봉급이 밀린 병사들이 상당수였으니까.
게다가 때아닌 겨울까지 찾아와 그나마 정상적이던 산업 기반인 농업마저 크게 타격을 입은 상황. 여론이 험악해지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경제 침체기 초기에는 사단의 원흉이었던 공작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워 그를 파면하는 것으로 어찌어찌 불만을 잠재웠다지만 이제 불길은 그런 것으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크게 번져 있었다. 왕정 국가의 시위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시위대의 열기는 뜨거웠다.
"듣자 하니 아렌델도 전쟁이 났다던데. 서던 제도 놈들이 쳐들어갔대."
"흥, 그러라지."
"그런데 왕자님도 아렌델 사절단으로 파견되었다던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 아냐?"
"알 게 뭐야. 윗대가리들이 뭘 하든 신경 안..."
웅성거리는 시위대 한가운데를 황급하게 가로질러가는 말에 탄 남자 하나. 그의 등짐에는 둘둘 말린 벽보가 가득 들려 있었다. 거리는 일시에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지더니 곧 사람들의 시선이 일순간에 그에게 집중되었다. 말에서 내린 남자는 벽 게시판에 들고 온 두루마리 벽보 하나를 넓게 펴더니 반듯하게 붙이기 시작했다. 벽보의 가장 위쪽에는 크고 선명한 글씨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협곡이 아름다운 나라, 아렌델로 오세요!'
*
다행히 필립의 상태는 빠르게 호전되어 갔다. 고비를 넘기던 날 밤, 코로나 진영에서 넘어온 의무관 하나가 가지고 온 정체불명의 황금빛 약초를 달인 물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의 몸은 급속도로 회복되었다. 엘사가 달아 준 배지가 심장 쪽을 향한 화살을 반쯤 막아 줬다는 점도 결정적이었다. 아렌델 시도 다시 재건되었고 죽은 자들에 대한 합동 장례식도 치뤄졌다. 필립을 포함한 위즐턴 사절단이 떠나기로 한 전날, 아렌델은 모처럼 축제 분위기에 젖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둘 다 축하해요."
"고마워, 언니."
"감사드립니다, 여왕님."

왕궁 앞 광장 한가운데서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 안나와 크리스토프. 눈부시게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안나와 조금 어색한 정장을 차려 입은 크리스토프 앞에서 주교가 결혼 서약서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미처 다 읽기도 전에 안나는 크리스토프의 얼굴을 가까이 당겨 와 정열적으로 키스했고 기습 공격(?)을 당한 크리스토프는 짖궂은 표정으로 안나를 높이 번쩍 들어올려 응수했다. 그 장면에서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뭇 아렌델의 젊은 남성들이 눈물을 훔쳤다.
"공주님께서 벌써 결혼을 하실 줄이야. 그것도 저 얼음 장수하고!"
"나한테 시집을 오셨다면 더 잘 해드릴 자신이 있는데."
"꿈 깨라고, 공주님께선 니들이 아렌델에 있는지도 모르실걸!"
한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옆자리의 아가씨에게 일침을 맞은 청년 둘이 풀이 죽는다.
"크흑,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그치 마쉬멜로?"
어느 새 왕궁까지 내려와 결혼식을 참관하고 있는 올라프가 마쉬멜로의 어깨 위에서 감개무량한 듯 눈물을 훔치며 한 말이다. 마쉬멜로가 결혼이 뭔지 알지 모를지는 며느리도 모르겠지만.
커플 옆에서 가만히 웃으며 사람들을 바라보던 엘사는 시선을 한쪽으로 잠시 돌리더니 다시 안나를 본 채 작게 말했다.
"미안해, 안나. 나 잠깐 어디 좀 갔다올게?"
활기찬 분위기 가운데 안나는 엘사의 눈만 간신히 바라본 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엘사는 군중들 속으로 파고들어 왕궁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여왕이 바로 옆으로 지나친 자리에 있던 남자 몇몇이 갑자기 심장을 부여쥐고 숨이 턱 하고 막힌 채로 쓰러졌다는 것만 빼면 축제 분위기는 전혀 식지 않고 계속되었다.
"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두 분 정말로 축하드려요!"
엘사가 잠깐 바라본 방향에서 필립이 숨을 헐떡이며 나타났다. 그 뒤로 위즐턴 선원들과 사절단 일행 역시 나타났다. 안나는 한껏 들뜬 채로 감사를 표했다. 그러더니 안나는 크리스토프를 갑자기 와락 끌어안은 채로 광장 한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향해 목청껏 외쳤다.
"나, 기분 좋아졌어! 오늘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한테 제가 한턱씩 낼게요!!! 오늘 밤새도록 놀아 보자고!!"
"와아아아아!"
목이 졸린 크리스토프가 미처 '뭐?'하고 대답하기도 전에, 우렁찬 함성이 온 아렌델이 떠나갈 듯이 울려 퍼졌다.
*
수백 명을 실은 배 몇 척이 속속들이 아렌델 항구로 진입했다. 사람들은 각자 짐을 잔뜩 챙겨갖고 있었다. 대부분 위즐턴 사람들이었다. 위즐턴 전역에 붙은 벽보를 보고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었다.
젊은 계층의 인구를 상당히 상실한 아렌델이 위즐턴과의 국교 회복의 일환으로 대규모 이주 사업을 실시한 것이었다. 특히 남자들이 많이 모자랐었는데 이제는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주 홍보 포스터에 홍보모델로 여왕과 공주의 초상화를 그려 넣었더니 효과가 만점이었기 때문에... 물론 저들 중 상당수는 공주는 바로 어제 결혼식을 올렸다는 사실에 절망할 것이었다. 아무렴 어떻겠는가.
아렌델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인구 부족 문제 해소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전망되는 사업이었다.
"30분 뒤에 출발합니다! 모두 빨리빨리 오르십시오!"
들어오는 배와는 대조적으로, 한 척의 배는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역시 위즐턴 선박이었다. 긴 여정을 끝낸 위즐턴 사절단이 귀환을 위해 속속들이 배에 오르고 있었다. 안나와 크리스토프, 그리고 대신들과 시종들이 모두 부둣가로 배웅을 나와 있었다. 필립은 갑판 위에서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군중 속에 엘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왕자님? 불편한 거 있으면 바로 말씀하십시오. 바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왕자가 머무를 선실 문 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한 뒤 한 말이다. 그러나 안쪽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선원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봤지만 객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렌델로 올 때와 달리 그다지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왠지 그때의 기억이 겹친 탓에 선원은 혼비백산해 항해사와 선장이 있는 방으로 달려들어갔다.
*
엘사는 끝내 배웅단이 있는 곳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녀는 가만히 집무실에 앉아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왕님? 여왕님! 안에 계십니까?"
필립의 목소리였다. 엘사는 인상을 썼다.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왕님? 안에 계시는 거 다 압니다. 문 좀 열어 주시겠습니까?"
엘사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달칵 하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열린 문으로 숨을 가쁘게 헐떡이는 필립이 걸어 들어왔다. 엘사는 여전히 집무실 책상 앞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왜 오셨어요?"
필립은 바짝 긴장했다. 공주의 결혼식 때부터 엘사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았지만 여기서까지 이토록 차갑고 냉랭하게 맞이할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소한 작별 인사 정도는 해 줄 줄 알았는데? 필립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왔습니다."
필립은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감사했습니다. 모두 다."
여전히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계속 보던 업무에 집중한 채로, 엘사는 다시 말했다.
"그게 다인가요?"
필립은 또다시 움찔했다. 예전의 그 같았으면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뒤돌아 문 밖으로 뛰쳐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용기를 내기로 한다.
"아무것도 없던 저를 바꿔 주셔서... 나중에 꼭..."
엘사의 얼굴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러나 필립 역시 바닥을 보고 있던지라 그것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나중에 꼭 좋은 국왕이 되어서 ... 여왕님 앞에 당당히 서겠습니다. 그렇게 보답하겠습니다."
"웃기지 말아요."
필립은 깜짝 놀랐다. 엘사의 발언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 때문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섭도록 차갑던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 동안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엘사는 오른손을 그녀의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필립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향해서 다가갔다.
"왜.. 당신이 고마워하는데요... 제가 더 고맙고..."
가늘게 떨리던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 새 반쯤 울고 있었다.
"그리고 미안해서...."
양 팔꿈치를 책상에 괴고 얼굴을 감싼 채 흐느끼기 시작한 엘사. 필립 역시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엘사의 울음소리가 육성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하자 필립 역시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거칠게 닦아내야만 했다.
"숲에서 했던 얘기... 한번 더 해도 될까요, 여왕님...?"
엘사는 비로소 고개를 들어 필립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는 빨갛게 상기된 눈을 뜬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있어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
필립을 비롯한 위즐턴 사절단의 완전한 귀국 이후, 아렌델과 위즐턴의 국교는 다시 회복되었고 두 나라간에는 다시 예전처럼 상선이 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위즐턴의 국왕은 건강상의 문제를 이유로 필립에게 선위할 것을 선언했으며 몇 차례 해프닝이 있기는 했지만 필립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필립은 아버지가 아직 한창 나이고 누구보다 건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왕위에 올랐던 아버지는 그저 쉬고 싶으셨던 것일 뿐이었다.
각국에서 새 왕의 즉위를 축하하는 서신들이 속속 도착했다. 아직 정식으로 대관식을 치른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왕위 승계는 끝났으니 상관은 없었다. 사과문도 겸해서 함께 전해진 서던 제도의 서신부터 공주의 감성이 한껏 묻어나온 코로나의 서신까지. 필립은 쌓인 서신들을 정리하던 도중 아렌델에서 보내온 서신을 발견했다. 그는 잽싸게 봉투를 뜯은 뒤 서신을 펴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서신은 걸작이었다. 다만 어조라던가 어휘라던가... 엘사 여왕의 그것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쓴웃음을 지으며 서신을 옆으로 치우려는 찰나, 서신의 끝자락에 다른 글씨체로 쓰인 문구 하나가 필립의 눈에 띄었다.
'두려움을 이겨라.'
지난날 검은 숲에서 필립이 엘사에게 해 줬던 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패비가 필립에게 전했던 말이었다. 문구 밑에는 다른 말이 함께 쓰여 있었다.
'약속 꼭 지키세요.'
"물론이죠."
평화롭게 웃으며 나즈막히 혼잣말하듯 대답하는 필립. 곧바로 백지와 펜을 준비한 뒤 답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첫머리의 시작은 다음과 같았다.
'내 안에 있는 살아갈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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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끝났다
진짜 끝남
근데 다음번에 후기로 한번 더 찾아뵙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요.
위기의 아렌델 #후기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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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제보해주면 고칠게요
오타가 왜나오는거지 ㅅㅂ 여튼 제보해주면 바로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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