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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소설 나부랭이나 쓰는 놈

운영자 2014.04.22 17:03:18
조회 1196 추천 7 댓글 2

경찰서 수사과 형사 철 책상 앞에 나는 쭈그리고 앉아있다. 나를 대하는 형사의 얼굴은 신기한 놀이 감을 앞에 둔 아이같이 호기심과 원인모를 쾌감이 배어 있다. 담당형사 뿐 아니다. 조사팀 전체가 옆에서 힐끗힐끗 나를 보며 즐거워하는 것 같다. 

“정계로 나가려고 이런 글을 쓰는 겁니까?”

담당형사가 궁금한 듯 물었다.

“아닙니다. 제가 가장 혐오하는 분야입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정치 혐오증을 가지고 있었다. 권력의 종말은 감옥이라고 내게 가르쳤다.

“그럼 좌파구나”

형사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좌파라뇨?”

“당신 소설들을 보면 부자들을 욕하니까.”

“북한의 공산당이 싫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내려왔대도요 그럼 부자를 비판한 예수도 좌판가요?”

“그럼 왜 변호사가 그런 글을 써서 고소당하는지 난 이해 못하겠네요”

형사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는 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나의 법정소설이 고소를 당했다. 이윽고 내가 형사에게 천천히 대답하기 시작했다. 

“나는 변호사가 아니라 작가로 이 자리에 온 겁니다. 작가는 말이죠 사회적 부정과 비리를 볼 때 감옥에 들어갈 각오를 하고 또 모든 재산을 날리겠다는 순교자적 정신으로 문학을 해야 합니다. 그게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악을 녹이는 독을 뿜어야 살아있는 참여의 글이다. 나는 변호사를 하면서 법정이라는 제단 뒤에서 행해지는 비리를 글로 발표해 왔다. 

그리고 일 년에 한번쯤 피의자가 되어 수사기관에 소환됐다. 때로는 피고가 되어 법정에 서기도 했다. 내가 쓴 글 때문에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나는 매일 기도를 하면서 나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건 ‘믿음을 가진 작가변호사’ 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이다. 

“피의자의 학력과 경력은 무엇입니까? 판사 했어요? 아니면 검사?”

형사는 내 배경을 알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다.

“죄인한테 학력경력은 무슨? 그냥 죄인이라고 써요”

“그래도 조서 작성 상 필요해서 그럽니다. 어떻게 변호사가 됐는지 말씀해 주세요.”

형사의 어조가 사정조로 한 풀 내려갔다. 나는 어떻게 이런 기형적인 변호사가 됐을까. 그리고 작가가 됐을까 경찰서 수사괴 형사의 책상 앞에서 나는 청록색의 짙은 안개 저쪽의 소년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모두 바람 같은 우연한 사건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중학 3학년 꽃샘바람이 부는 봄 어느 날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른이나 아이나 세상은 패거리를 형성하고 그게 힘이 되어 지배와 복종관계를 형성한다. 요즈음 아이들에게 일진이라는 불량 써클이 있듯이 그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종류의 아이와 그 부모들에게 나는 짓밟혔다. 그 시절 나는 사회성이 없었다. 그렇다고 힘 있고 돈 있는 집 아이들에게 접근할 지혜도 없었다. 누가 싸움을 걸면 피하지도 못했다. 학교에서 속칭 ‘짱’이 되고 싶었던 재벌 회장 집 아들의 희생제물이 되어 버렸다. 어느 날 수업도중 쉬는 시간이었다. 복도에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귀에서부터 날카로운 통증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얇은 칼날에 귀가 잘리고 뺨이 갈라진 것이다. 경동맥이 끊어졌으면 즉사할 칼부림이었다.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마흔 바늘을 봉합했다. 한 달가량 집에서 쉬면서 병원을 다녔다. 그런 어느 날 학교에서 나를 무기정학에 처한다는 결정이 통보됐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난 일방적 피해자였다. 기습을 당했고 저항조차 할 틈이 없었다. 당시 학생의 징계결정은 교직원들의 배심제 였다. 검사역할을 하는 규율담당교사가 사안을 조사해 처벌 안을 교무회의에 올리면 교사들이 찬반 투표를 하게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수학선생이 나를 보자고 했다. 그는 교사들이 모두 재벌회장 사모님의 초청으로 워커힐 호텔에 가서 양식을 대접받고 돈 백 만원과 양복표를 받은 후 투표를 했다고 말했다. 처벌안은 불량학생인 내가 재벌 집 아이와 교내 세력다툼을 하다가 상처를 입었다는 내용이었다고 했다. 부잣집 아들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학교의 그런 행동이 옳지 않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말해주는 거라고 했다. 교장의 명령으로 나의 처벌 안에 관련된 사항들이 입을 다물도록 엄중히 보안조치가 됐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이번에는 재벌 집 아들의 담임선생이 내게 고백했다. 자기는 담임이라 훨씬 많은 돈을 받았다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들은 속이 후련 해 질지 몰라도 당시 소년이었던 나는 그 현실을 감내하기 힘들었다. 어느 날 훈육선생이 학교의 구석방으로 나를 불러 말했다. 너는 앞으로 커서 돈이면 다 되는 이 썩어빠진 세상을 뒤엎으라고. 나는 충격으로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바랜 느낌이었다. 자퇴를 하겠다고 했다. 담당교사는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래도 명문인데 나중에 졸업장은 세상을 나는 날개역할을 할 텐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나는 정신적으로 방황했다. 세상을 뒤엎는 혁명가가 되고 싶고 테러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늦은 밤 카바이트 불을 켜놓고 책을 파는 청계천의 노점상을 다니며 스스로를 의식화 할 수 있는 사상서적을 찾아 헤맸다. 소년시절의 상흔은 나를 빨리 철들게 했다. 가난하고 힘없는 집 아들의 엉뚱한 반항은 바로 이 세상에서 감옥이라는 쓰레기통 속으로 직행하는 운명인 걸 깨달았다. 나는 합법적으로 사회변혁에 참여할 수 있는 차선의 길이 뭔지 생각했다. 인권변호사가 그 길이라고 생각했다. 법과대학에 진학하고 고시에 도전했다. 낙방 또 낙방의 연속이었다. 증오의 가시가 박혀있는 내게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지을 리가 없었다. 절망의 골짜기에 빠져 바닥에 누웠다. 거기서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막연히 그렇지만 간절히 하나님을 불렀다. 제발 한번만 내 편이 되어 주시면 일생 연탄구루마를 끌더라도 감사하겠다고 약속했다. 바로 그해 나는 합격했다. 그렇게 변호사가 되었다. 작은 법률사무소를 차렸다. 사건이 없어 파리 날리는 변호사였다.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백번을 읽으면 미치고 천 번을 읽으면 종교를 하나 만든다는 말을 들었다. 미치고 싶었다. 백번을 넘게 읽자 성경속의 신비한 기운이 마음속에 박혀있던 쓴 뿌리를 뽑아내는 것 같았다. 사고방식이 바뀌는 것 같았다. 다른 변호사가 돈을 잘 벌면 사건 없는 나는 그만큼 더 귀한 시간을 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골프를 치고 술을 마실 때 나는 내가 벌어들인 시간으로 문학을 하기로 했다. 어려서부터 잠재의식처럼 작가의 꿈이 있었다. 사무실에 세계문학전집, 한국문학전집, 철학, 역사책들을 놓고 번호를 매겨가면서 한 권 한 권 독파해 나갔다. 소설가 김동리씨의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는 청년시절 세계문학전집을 싸들고 절로 들어가 한 권 한 권 고시 공부하듯이 독파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세계문학작품의 틀 속에 한국의 현실을 집어넣으면 작품이 되겠다고 결론을 지었다는 것이다. 나는 적막한 법률사무소 안에서 어느 기성작가에도 뒤떨어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독서했다. 보이지 않는 그분의 손이 나를 먼저 넌픽션 작가와 컬럼니스트로 만들었다. 그 계기는 1998년 황사바람이 미친 듯 불어대던 봄날 서울구치소에서 만난 어떤 죄수 때문이었다. 징역 30년째 살고 있던 그가 뜬 끔 없이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변호사 윤리규정을 보면 인권과 사회정의를 위해 일한다고 나오는데 그 사회정의라는 게 도대체 뭡니까?”

그리고 그는 몇 명의 교도관들이 죄수 하나를 패다가 죽으니까 몰래 야산에 매장해 버린 사실을 알렸다. 그가 덧붙였다. 

“나 같은 죄인이 그런 걸 말하면 도둑놈이 헛소리를 한다고 세상은 말합니다. 그러나 변호사는 그런 인권유린을 세상에 알려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요? 바로 그게 변호사가 수행할 사회정의 아닐까요?”

그 죄수를 통해 나는 변호사의 길을 자각했다. 그러나 권력의 힘은 막강했다. 내가 기자들에게 알려도 소용없었다. 오히려 노골적인 협박만 받았다. 나는 직접 글을 써서 기고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십자가를 져야 했다. 수시로 고소를 당하고 배상판결을 받으면서 피를 흘렸다. 세례요한처럼 직격탄으로 얘기하다가 목이 잘리는 것만이 바른 길일 수는 없었다. 좀 더 지혜로운 길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예수님도 비유로 말했는데 소설이야 말로 그 안에 진실을 담을 수 있는 좋은 그릇이면서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창작예술의 영역 같았다. 그 길도 우연히 내 앞에 다가왔다. 원로소설가 정을병씨의 횡령사건 변호인이 된 것이다. 오헨리도 은행원으로 있으면서 횡령범으로 감옥에 들어갔다가 세계적인 소설가가 됐다. 세르반 테스도 세금징수원을 하다가 횡령혐의로 감옥에서 돈키호테를 썼다. 그러나 정을병씨는 무죄였다. 아랫사람이 거액을 횡령하면서 소설가 협회장인 그의 코를 꿴 것 같았다. 독특한 성격의 그는 검찰도 법원도 개의치 않았다. 오해한 수많은 소설가들의 공격에도 해명조차 할 마음이 없었다. 횡령이 아니라 괘씸죄에 걸려 그는 감옥에 있었다. 그는 특이한 소설가였다. 5.16군사혁명시절 강제노동을 시킨 건설현장으로 잠입해 그 본 것들을 소설로 발표했다. 그 댓가는 ‘문인간첩’이라는 누명과 고문 그리고 감옥생활이었다. 그는 몽둥이찜질과 뜨거운 라디에이터 위에서 써커스 단의 훈련받는 곰처럼 양발이 타들어가던 고통을 마치 남의 얘기같이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소설가는 책상 앞에서 관념으로 말장난을 하는 게 아니라 체험을 피로 쓰는 거라고 했다. 그는 감옥 안에서도 나의 변론 요지서를 보면서 이걸 단편소설로 만들어 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가 석방이 된 후 한 달에 한 두 번씩 광화문 뒷골목의 연포탕 집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의 옛날식 다방 ‘추’에서 문학얘기를 나누었다. 한번은 그가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엄 변호사 나는 톨스토이나 토스토엡스키의 작품들을 보면서 정말 절망해. 나는 3류도 못되고 4류나 5류정도 밖에 안되는 구나하고 말이지. 그런데 한국 내에서는 소설가 협회장으로 얼굴이 명함으로 통할 정도로 원로대접을 받았지. 이게 나의 모순이야. 그렇지만 어떻게 해? 5류라도 나름대로 죽기 전날까지 글을 써야지 그게 나의 길이야”

문단에서 그에 대한 오해와 적도 많은 것 같았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내가 남해의 지주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건방졌어. 감옥에 들어가도 작가들이 내게 독화살을 쏴 대는 건 다 내 교만의 댓가지. 정연희씨가 특히 앞장서서 나를 공격했지. 그것도 사실 내가 먼저 잘못을 한 거요. 예전 정연희씨가 젊었을 때 스캔들에 휘말렸던 적이 있어. 나는 그때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글을 써서 상처를 준 적이 있거든. 그 죄 값을 받은 거요. 사실 지금도 미안하지. 그렇지만 나라는 인간은 스스로 다가가서 화해를 하지 못하는 옹졸한 인간이요. 같은 고향출신인 백시종이도 소원한 사이가 됐지. 그가 모른척하고 나한테 슬쩍 사과 한 상자만 보내도 마음이 풀릴 텐데 말이야----” 

내면에 있는 그의 영혼은 어떤 환한 빛을 본 느낌이 들었다. 그때 이미 죽음의 천사가 그에게 다가와 노크를 하고 있을 때인 걸 나중에 야 알았다. 그는 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다. 그 무렵 우연히 한 살인사건을 맡았다. 감방에 있는 아는 죄수가 나보고 한번 해보라고 소개한 사건이었다. 내가 맡은 살인범은 청부를 받고 여대생을 죽였다. 재벌급 사모님이 판사사위를 돈으로 싸 들여왔는데 사위와의 관계가 의심이 되는 한 여자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시간을 아껴가며 공부하던 여대생이 처참하게 살해됐다. 양팔의 뼈가 조각이 나 있었다. 죽음보다 더한 고문을 당한 것이다. 머리의 한 부위에 집중적으로 납 탄 일곱 발이 박혀 있었다. 잔인한 살인이었다. 그 살인범은 양심이 없었다. 왜 죽였느냐는 나의 물음에 계약을 했으니까 이행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사모님은 싸이코 같았다. 그런 종류의 인간에게 찍히면 불행이었다. 돈의 힘은 무서웠다. 법정의 방청석은 사모님을 지지하는 회사직원으로 가득 찼다. 전직 고위 법조인으로 구성된 변호인단이 사모님의 결백을 조작하고 나섰다. 법정의 공기 속에는 부정의 악취가 진동했다. 어느 날 묘한 흥정이 들어왔다. 납치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죽였다고 총대를 메 주면 50억원을 주겠다고 사모님 측에서 조건을 제시했다. 50억원은 어떤 인간의 영혼도 살 수 있는 거액이었다. 살인범은 당장 협상에 응하겠다고 했다. 결정적 증인인 그가 말 한마디만 바꾸면 판검사도 어쩔 수 없었다. 타협을 하면 나도 돈을 더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때 속에서 나를 찌르는 가시가 있었다. 소년시절 받았던 억울한 상처의 기억이었다. 내가 변호사가 된 건 바로 사모님 같은 돈 가진 악마와 싸우기 위해서였다. 지혜가 필요했다. 나는 살인범에게 사형을 당하면 그 돈이 무슨 의미냐고 되물었다. 뼈를 조각내고 머리에 총알 일곱 발을 박은 게 가벼운 과실치사죄로 인정 될 것 같으냐고 논리적으로 되물었다. 재판장은 그를 사형에 처하고 싶다고 말했다. 목숨이 더 중했던 살인범은 일차거래에 응하지 않았다. 판결에서 사모님과 그는 똑같이 무기징역을 받았다. 재판장은 그들을 죽이고 싶지만 평생 사형판결을 내린 적이 없어 목숨을 살려준다고 했다. 살아난 악마들의 다음 행동은 뻔했다. 살인범은 내가 그의 다음거래를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사모님이 재심을 신청하면 살인범은 돈을 받고 말을 바꾸어 주겠다고 했다. 살인범에게 나의 역할을 거기까지라고 못 박았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모님은 의사를 매수해 감옥을 빠져나와 병원 VIP실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 들렸다. 법원기록은 5년이면 없어진다. 그 이후는 그들의 거짓이 진실로 둔갑해 세상에 남을 게 틀림없었다. 변호사는 묘한 직업이다. 내가 보고 듣고 행동한 것 자체가 하나의 소설이었다. 나는 법의 제단 뒤에서 일어난 거대한 연극을 나의 첫 소설작품으로 쓰리고 했다. 꿈 많았던 여대생의 죽음이 있고 그 아버지의 처절한 절규가 있었다. 판사 옷을 입은 허수아비와 돈을 뿌리는 악마의 검은 웃음이 있었다. 모니터에 나타나는 한 줄 한 줄의 글을 내가 아닌 주님이 써달라고 기도하면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오랜 시간 고민하면서 쓴 첫 작품이 완성됐다. 나는 그 원고를 정을병씨에게 주고 냉정하게 평가해 달라고 했다. 그는 내 작품을 혼자 살고 있는 빈 집에서 한 줄 한 줄 꼼꼼히 읽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그가 읽은 원고를 가지고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의 손에 쥐어진 내 작품은 오탈자나 토씨까지 하나하나 고쳐져 있었다. 

“첫 소설입니다. 기준에 합당하다면 추천을 해 주세요”

내가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그가 무거운 표정으로 침묵하더니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엄 변호사 나는 이 세상에서 죄인입니다. 왕년의 이름이나 명예는 모두 없어지고 지금 소설가 사이에서 나는 도둑놈입니다. 나한테 추천을 받았다고 하면 오히려 나중까지 불명예가 될 겁니다. 안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가 솔직히 자신의 입장을 말해 주었다. 그는 성경속의 욥같이 철저한 고난 속에 있었다. 외아들이 그에 앞서 죽었다. 그의 옥바라지를 하던 아내도 그 사이에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감옥에 있을 때 나를 찾아와 사정하던 좋은 여인이었다. 가족이 없어지고 그만 혼자 남았다. 횡령범으로 몰린 그는 평생 글을 써서 마련한 집한 채 마저도 팔아서 변상해야 할 처지였다. 평생 소설가로 얻은 명성도 가족도 재산도 그리고 그의 생명마저 꺼지려는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겉 사람을 보지 말고 속사람을 보라고 했습니다. 작품성을 인정하신다면 저는 영혼이 맑은 죄인 소설가 정을병에게 꼭 추천을 받고 싶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제가 추천을 하겠습니다.”

“추천을 받는다면 그 형식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내가 몰라서 호기심으로 물었다.

“예전에 제가 추천을 해 준 다고 말로 하면 그게 끝이었어요. 더러 추천서를 써 가지고 오면 내가 서명을 해 주곤 했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추천은 원로 소설가 정을병 선생이 원고지에 자필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기울여 정확한 평가와 추천의 이유를 써 주십시오. 진정한 문학 혼이 들어있는 추천의 글을 받고 싶습니다. 저는 돌아가신 후에라도 그 글을 제 평생 보물로 삼고 싶습니다.” 

그가 뭔가 고민하는 무거운 표정이었다. 그의 눈에는 나에게 자신이 일생 추구해 온 문학의 본질에 대한 얘기를 해 주고 싶은 애정이 서려 있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엄 변호사가 소설을 써도 문학계에서 누구하나 거들떠보지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열심히 정진해 나가시면 언젠가 ‘법정소설 나부랭이나 쓰는 그 놈’이라는 소리가 들릴지도 몰라요. 그런 소리가 들리면 그 거야 말로 정말 대단한 평가라고 해석하면 되요. 그런 평가가 나올 때까지 노력하시라구요. 소설은 뼈저린 체험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경험 없이 책상위에서 관념적 말장난으로 쓰는 건 문학이 아닙니다. 일본작가들을 보세요. 문장 하나에 목숨을 거니까 빛나는 작품이 탄생하는 겁니다. 영국도 보세요. 작품을 다 쓰고 주머니에 돌을 잔뜩 집어넣고 호수 속으로 들어가 버린 작가도 있잖아요? 그런 순교자적 자세가 문학인에게 필요합니다. 기자들을 몰고 다니면서 유명해지는 소설가는 다 가짜입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 칠십권 이상의 소설을 써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사람이었죠. 그렇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작품들이 다 가짜입니다. 운명이 허락해 준다면 이제부터 단 한 작품이라도 진짜를 쓰고 싶어요.” 

일주일 후 정을병씨는 원고지에 한자 한자 직접 쓴 추천서를 써다 주었다. 그리고 얼마간 소식이 끊겼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오랜만에 궁금해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좀 아파요”

그가 꺼져 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죽음이 가까운 느낌이었다.

“제가 갈까요?”

“오지 말아요 그럴 필요는 없어요.”

그가 거절했다. 임종 때 누구도 없이 혼자 죽겠다는 그의 자존심이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주위에 알리지 말아달라고 했다. 다음날 그는 혼자 조용히 저 세상으로 갔다. 나는 문학인들이 초청한 자리에 나가 그의 인생마지막을 증언해 주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사회부기자출신인 조갑제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 일생을 정의편에서 살아온 그는 두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법정실화소설이니까 법적으로 문제될까봐 출판사들이 꺼렸다. 조갑제씨와도 특별한 인연이었다. 내가 세상에 폭로하고 싶은 사건이 있을 때 ‘월간조선’ 편집장이던 그는 단 한 번의 거절도 없이 모두 받아주었다. 내가 고소를 당하고 법정에 섰을 때는 증인으로 나와 도와주었다. 근거가 희박한 나의 글을 어떻게 그대로 내보내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조갑제씨는 정직한 엄상익 변호사가 보내는 글이면 다 믿는다고 말해 주었다. 내게는 그의 한마디가 최고의 훈장이고 삶에 대한 보상이었다. 현재의 나는 그의 전폭적인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퇴직을 하고 조갑제닷컴,이라는 출판사사장이 된 그는 나의 첫 소설작품을 책으로 만들어 주었다. 책이 나온 날 저녁 교보문고 매대에 가 보았다. 빨간 표지의 나의 책이 이문열씨의 새로운 발표작품과 함께 나란히 올라 있었다. 그건 또 다른 성취고 희열이었다. 그걸 블로그에도 올려놓았다. 170만 명의 네티즌이 내 작품을 보러 들어왔다. 그 때 내 소설의 예언대로 사모님은 나와서 세상에 나와 국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살인범의 거짓증언도 통하지 않은 것 같았다. 사모님은 다시 감옥으로 갔다. 그 대신 내게 줄 소송이 닥쳤다. 살인범은 소설을 썼다고 나를 직무상기밀누설죄로 고소했다. 사모님의 회사는 나 때문에 주가가 폭락했다고 그 손해를 배상하라고 했다. 판사사위는 나의 작품 때문에 판사를 못하게 됐다고 위자료를 청구했다. 소설가가 되기가 이렇게 힘든지 정말 몰랐다. 첫 작품을 내고 몽둥이찜질과 고문 그리고 ‘문인간첩’누명을 쓰고 감옥생활을 했던 정을병 선생이 하늘나라에서 빙긋이 웃으면서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나는 믿음을 가진 변호사소설가가 됐다. 정을병 선생의 예언대로 ‘법정소설 나부랭이나 쓰는 놈’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이제부터 죽기 전날까지 하루하루 터벅터벅 사막을 걷는 낙타같이 그 길을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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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 우리시대의 거짓예언자들 (6)-에덴동산 [1] 운영자 15.03.09 558 2
810 우리시대의 거짓예언자들 (5)-딱 딱 딱 운영자 15.03.06 1601 0
809 우리시대의 거짓예언자들 (4)-시리아 난민촌 운영자 15.03.04 595 0
808 우리시대의 거짓예언자들 (3)-홍합미역국 운영자 15.03.04 1003 0
807 우리시대의 거짓예언자들 (2)-야곱의 팥죽 운영자 15.03.02 851 0
806 우리시대의 거짓예언자들 (1)-헤롯의 피부병 운영자 15.03.02 800 0
805 가장 행복했던 시절 [2] 운영자 15.02.25 1024 0
804 ‘니트족’의 절망을 애도하며 운영자 15.02.11 736 2
803 북한의 부자와 노점상 운영자 15.01.27 825 1
802 ‘갑질’하는 수사관은 정리해야 [2] 운영자 15.01.13 1056 0
801 영혼 없는 허깨비들의 완장 운영자 14.12.30 886 2
800 마음이 추운 젊은 노인들에게 [1] 운영자 14.12.16 1126 1
799 분노를 삭히지 못하는 사람들 운영자 14.12.02 949 1
798 인간을 무시하는 게 존재의의인가요 운영자 14.11.25 779 0
797 만 시간을 투자해 보세요 운영자 14.11.18 1104 1
796 교도소의 변신 운영자 14.11.05 822 1
795 법을 뭉개면 투사가 되는 사회 운영자 14.10.28 780 0
794 어떤 할머니의 돈쓰는 법 운영자 14.10.28 933 0
793 더러운 물과 깨끗한 물의 싸움 [1] 운영자 14.10.09 999 0
792 흰 손으로 쓴 판결문 운영자 14.09.24 1082 1
791 차관님이 사는 법 [1] 운영자 14.09.17 1181 4
790 들고 일어난 대한변협 회장들 운영자 14.09.16 968 0
789 죽음 이후에 어떤 존재가 될까 운영자 14.09.05 1114 2
788 수사기관과 언론의 공개처형 운영자 14.08.27 870 3
787 대법원판결과 진실 [1] 운영자 14.08.13 1165 1
786 우리시대의 가짜예언자들 운영자 14.07.31 919 3
785 청부살인 대처법 운영자 14.07.22 119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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