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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재업] 위기의 아렌델 #14

아렌델 파수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4.06.09 0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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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원 사살 완료했습니다, 대장!"

공터 밖의 수풀 한쪽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반대편에서 또다시 대답이 들렸다.

 "좋아, 들어가자!"

분명 화살의 깃대에는 선명히 웨스터가드 왕가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설상가상이라고 했던가. 자신을 서던 제도로 넘기려던 폭도들을 물리친 놈들이 바로 그 서던 제도 수색대라니. 엘사는 절망스러웠다. 이미 엘사의 멘탈을 깨질 대로 깨진 상태였다. 화살이 박힌 시체 8구 가량이 공터 여기저기에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는 공터 내로 십여 명의 서던 제도 병사들이 하나둘씩 수풀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잘 들어라. 우리는 지금 일생일대의 최고의 기회를 잡은 거야. 그것도 그냥 기회도 아닌 우리 인생을 단숨에 뒤집어 엎을 수 있는 기회를 말야."

대장인 듯한 병사가 뒤따라 공터로 진입한 다른 부하들에게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엘사는 귀를 기울였다. 놈들은 점점 엘사가 숨어 있는 돌 틈을 향해서 가까워지고 있었다. 엘사가 그 곳에 있다는 것을 이미 아는 것 같았다. 아니 이미 한참 전부터 이 공터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왕이 도망친 곳만 알아내서 귀환해도 막대한 상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는데 우리는 방금 진짜 여왕을 발견했어! 마법 쓰던거 다들 똑똑히 봤지? 여왕이 틀림없어. 절대 놓쳐서는 안 돼!"

대장 병사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흥분되어 있었다. 평생을 먹고 놀아도 다 쓰지 못할 어마어마한 현상금과 다섯 계급 특진이 엘사와 안나에게 걸려 있었다. 인생 역전이라고 칭해도 모자람이 없을 기회였다.

 "하지만 여왕은 마법을 쓰는 괴물이잖습니까, 저희가 이 인원으로 여왕을 산 채로 생포하는 게 가능하긴 합니까? 아까 숲에서 본 위즐턴 출신 석궁병 신세가 되는 건 아닌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화살이나 매겨 둬. 눈앞에 이런 걸 두고도 그 잘난 마법을 쓸 수 있는 지 한번 보자고."

 

 "아까 저 바위 뒤로 여왕이 들어가던 거, 다들 봤지?"

 "예, 봤습니다만..."

 "그러면 네 녀석이 먼저 들어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대장 병사가 바로 옆에 있던 졸개 하나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네..? 제, 제가요? 그건 좀..."

 

병사들과 대장이 서로 먼저 바위 뒤쪽을 확인해보라며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였다. 별안간 바위에 쩌저적 하고 금이 가더니 이내 산산조각나며 사방으로 돌조각과 얼음 파편이 튕겨져 나갔다. 눈물겨운 양보를 거듭하던 서던 제도 추격조들은 깜짝 놀라 바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위가 산산조각나며 생긴 먼지구름 속으로 여왕인 듯한 사람의 실루엣 형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추격조 전원은 바짝 긴장한 채로 석궁을 겨누며 말했다.

 "꼬, 꼼짝마라!"

 

 "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런데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공터를 쩌렁쩌렁 울렸다. 추격조 대열 뒤쪽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대장을 비롯한 병사들은 또다시 소스라치게 놀라며 시선을 돌려 뒤를 확인했다.

 "어, 어, 어... 이게 뭐지... 대체 무슨 일이...."

놀랍게도 가장 뒤쪽에 엉거주춤 서 있던 병사의 발밑에서 기괴한 형체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시퍼런 칼날들이 거의 사람 키만큼 높이 솟아올라 있었다. 그 위에 서 있던 이미 핏덩어리가 되어 버린 희생자의 육체는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서, 설마... 이거 얼음 아냐?"

 

공터 안쪽부터 살을 에는 차디찬 칼바람이 불어나가기 시작했다.

 

 

 

 

 

 

 

 

 

 

 

 

 

 

 

 

 

*

필립은 한편으로 엘사가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숲에서 석궁병 둘을 마주했을 때 엘사의 손에 죽은 그들이었지만 문제는 그것이었다. 엘사가 불가피하게 그들을 죽인 후 트라우마 비슷한 것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또 화살을 맞은 곳이 여전히 욱신거렸다.

 

마침 잠깐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안나의 모습이 멀리 보였다. 필립은 안나에게 손을 흔든 뒤 뛰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 혹시 여왕님께서는 괜찮으신가요?"

안나가 눈을 번쩍 뜨더니 말했다.

 "아, 저도 지금 언니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찾고 있던 중이었...거든요."

 

 "별일 없으셔야 할 텐데. 그 때 충격이 컸던 거 같아서요."

필립의 말이 끝나자 안나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이윽고 안나가 입을 열었다.

 "언니가 왜 그렇게 위즐턴, 아니 정확히는 위즐턴의 공작을 싫어했는지 아세요?"

 "글쎄요."

 "일국의 외교관으로서의 예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언니가 대외적으로 발표하긴 했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그가 언니에게 '괴물'이라고 불렀기 때문이거든요."

안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마법을 제어하는 법을 익힌 후로 좀 괜찮아지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언니는 자신의 힘에 대해 두려움을 완벽히 떨쳐내지 못했어요.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2년 전에는 저도 하마터면 언니의 마법 때문에 죽을 뻔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여왕님은 괴물이 아니지 않습니까."

 "언니도 결코 자신이 괴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지 않다면 이따금 성문을 열고 아렌델 시민들 앞에서 마법을 펼치거나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남에게 그 소리를 듣는 것은 정말 끔찍히도 싫어해요."

 

 

 "아직 극복하지 못한 겁니다."

별안간 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필립은 거기서 정말로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분명 자신의 발 밑에서 소리가 들렸는데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패, 패비 할아버지?"

 "여전히 엘사의 가슴 깊은 곳에 응어리진 두려움이 있을 테요."

안나의 발치에 있던 바윗덩어리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둥그렇던 현무암 덩어리가 알고 보니 웅크리고 있던 나이든 트롤이었던 것이다. 필립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트롤의 모습에 신기함과 경외감을 동시에 느꼈다.

 

 "위즐턴의 왕자라고 했습니까?"

패비가 필립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직 혼란스러운 듯이, 필립은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네... 그런... 데요."

 "엘사의 마법을 제어하는 데는 진정한 사랑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뇨, 지금 알았는데요."

 

패비는 한 차례 허공에 손짓을 했다. 엘사와 안나가 아주 어릴 적에 그들을 찾아왔을 때 그랬듯이, 패비는 허공에 마법으로 영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2년 전 여름, 아렌델에 갑자기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십 년 넘게 마법의 힘을 억제해온 엘사가 대관식 날 참지 못하고 힘을 방출해버린 것이죠. 온 세상이 얼어 버렸지만 엘사는 다시 녹이는 법은 알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안나 공주님의 진정한 사랑의 행동이 엘사의 마음을 한 꺼풀 녹이는 데는 성공해 겨울을 멈추었습니다."

 

영상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패비는 계속 말했다.

 "진정한 사랑의 깨달음이 그녀에게 마법을 제어하는 법을 깨우치게 한 것이었죠. 하지만 여전히 깊숙히 뿌리박힌 내면의 두려움은 완벽히 녹여내지 못했습니다."

 

영상 속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엘사를 둘러싸고 있었다. 또 영상의 전체적인 색조가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더니 분위기가 한층 음산해졌다. 필립은 굵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 새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강력한 마법에 대한 두려움이겠죠. 비록 조절하는 법은 알고 있지만 조절할 줄 아는 것이 모두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화약으로 비유하면 적당할까요. 언제 터질 지 모르는 거죠."

패비는 숨을 고른 뒤 계속 말했다.

 "진정한 사랑의 행동이 힘을 제어하는 법을 깨우쳤지만, 마법의 힘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엘사가 숲에서 두 사람을 벌써 해쳤다는 게 걸리는군요."

 

영상 속의 엘사를 둘러싼 군중이 엘사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비웃는다. 계속되는 괴롭힘에 한참을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던 엘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그러더니 주변으로 사정없이 얼음 마법의 기운을 발산한다. 엘사로부터 뻗어나간 냉기에 닿은 군중들은 순식간에 얼거나 날카로운 얼음에 찢겨나간다.

 "엘사가 마법으로 계속 사람들을 해치면 결국 그 두려움은 점점 증폭될 테죠. 종국에는 파멸만이 남게 될 겁니다. 결국 그나마 알고 있던 조절하는 능력마저 잃게 될 수도 있겠죠."

 

패비는 바짝 쫄아 거의 석상처럼 얼어붙은 필립의 손을 다시 한번 붙잡으며 그에게 말했다.

 "아마 당신이 큰 힘이 되어 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필립, 저랑 같이 언니를 찾아봐요. 힘들 때 혼자 있기 좋아하는 성격이니까 아마 멀지 않은 곳에서 혼자 시간을 때우고 있을 거에요."

 "공주님께서는 저와 하실 얘기가 있습니다."

 "네? 어떤..."

 

패비의 말을 들은 필립은 검은 숲 밖으로 뛰어나가 엘사를 찾기 시작했다.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하기도 하고, 그보다 엘사가 보이지 않은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행여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을까 걱정이 되던 차였다.

 

 

 

 

 

 

 

 

 

 

 

 

 

 

 

 

 

 

*

아렌델 시내에 주둔중인 서던 제도 침략군. 한스의 작전 변경에 따라 추격조가 귀환하는 즉시 출병할 수 있도록 채비를 마쳐놓은 상태였다. 공격의 핵은 단연 화포가 되겠지만 산간 지방에서의 교전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썩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사실 병력 규모의 차이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에 단순히 맞싸움을 한다면 질 가능성은 1%도 채 돼지 않을 터였지만.

 

 "추격조가 돌아왔습니다!"

망대 위에서 들려온 소리.

 "그, 그런데..."

 

 "뭐야! 무슨 일인데 말을 더듬어?"

망대 아래에서 한스가 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다, 다들 어디로 갔는지... 혼자... 돌아왔는데요. 게다가 지금 혼자 돌아오는 병사 역시 곧 죽을 것 같습니다. 빨리 군의관을..."

 

 

 

 

 

 

 

 

 

 

*

곧 혼자 돌아온 병사 하나가 들것에 실려서 한스의 앞으로 대령됐다. 병사의 전신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여기저기서 입을 벌리고 있었고 그 중에 몇 군데는 시리도록 차갑게 동상에 걸려 있었다. 그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다른 병사들은 어디로 갔나."

고통스러워하는 병사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스는 자신이 궁금한 것만 급하게 취조하듯 따지듯이 물었다.

 "모, 모두 죽었습니다. 저 혼자만 간신히..."

 

 "여왕은, 여왕은 찾았나?"

 "북서쪽으로 올라가면... 눈에 덮이지 않은 화산 지대가 나옵니다... 그곳에 모두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여왕..도요." 

 "어떻게 된 거냐. 다들 무엇에 당한 거지?"

 

병사는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가끔씩 하는 세찬 기침에 핏물이 섞여 튀어나왔다.

 "호, 홀로 있는 여왕을 습격했다가... 모조리 죽었습니다... 무단으로 탈영했던 위즐턴 출신 석궁병 둘도 우리보다 먼저 여왕에게 당한 듯 했습니다......"

 

 "틀림없는 여왕이었나?"

 "틀림.. .없었습니다. ..마법을. .무시무시한 얼음 마법을 부리는. ..괴물이었으니까요..... 컥..."

 

그 말을 마지막으로 병사는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한스는 뒤로 돌아 출정 준비를 어느 새 마친 병사들에게 크게 외쳤다.

 "북서쪽 산정을 향해 전원 진군한다! 모두 출발해!"

 

구름같이 움직이는 병사들과는 달리 한참동안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한스. 마지막으로 출발하는 부대를 맡은 장교가 한스에게 다가와 질문한다.

 "폐하께서는 저희와 함께 가십니까?"

 "아니, 난 잠시 여기에 남겠네."

 "예? 전원이 산으로 올라가버리면 혼자 남으시는데 괜찮으십니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지."

 

의아하게 고개를 갸우뚱하는 장교. 한스와 함께 남은 사람이라고는 직속 친위대 소수와 허드렛일을 하는 일꾼 몇이 전부였다. 행여나 적이 빈 진영을 기습이라도 한다면 어쩌려고 이러는지? 한스는 씩 웃어 보이며 말했다.

 

 "곧 반가운 손님이 올 것 같거든. 손님맞이를 끝낸 뒤에 천천히 따라가도록 하지." 

 

 

 

 

 

 

 

 

 

 

 

 

 

 

*

숲길을 달리던 필립은 한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 한 줄기를 느꼈다. 여왕님인가? 필립은 바람이 불어온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냉기가 천천히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희안한 점은 찬바람이 강하게 불면 불수록,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비린내 역시 점점 강하게 진동하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냉기의 진원지를 찾았을 때는 이미 수풀 하나하나에도 얇게 성에가 앉아 있었다. 얇게 얼어붙은 얼음층으로 코팅된 수풀들을 헤치고 나간 필립의 눈앞에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눈앞에 펼쳐진 작은 공터에는 열 명 가까이 되는 아렌델 시민들이 화살에 맞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공터의 한쪽에는 날카롭게 솟아오른 괴이한 형태의 얼음 칼날의 숲이 빼곡하게 형성되어 있었고 사이사이에 역시 열 명 정도 되는 서던 제도 병사들이 무참하게 썰린 채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며 뒤돌아 서 있는 여인 하나가 보였다. 분명히 엘사였다. 분명히 엘사였지만 그 동안 보였던 엘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필립은 수풀 너머로 발을 옮겼다. 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뒤돌아 서 있던 엘사가 필립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필립은 전신에 소름이 쫙 하고 돋았다.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릴 뻔 했다. 지금껏 엘사가 저런 표정을 지은 것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녀는 미소를 띄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에서는 그동안 느껴지던 따뜻함이라고는 단 한 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엘사의 안색은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소름끼치도록 창백했다. 어쩌면 살기 비슷한 것이 느껴진다고 할 수도 있었다.

 

엘사는 자신이 만든 죽음의 칼날숲을 천천히 걸어 나왔다. 엘사의 몸 여기저기에도 역시 상처들이 여럿 나 있었다. 쓰러진 서던 제도 병사들과의 전투 중에 생긴 상처라기보다는, 자신이 일으킨 얼음 마법에 다친 것 같았다. 엘사는 그러더니 필립을 응시하며 오른손에 냉기를 모았다. 그 뒤 그 오른손을 직각으로 들어올려 필립이 있는 쪽으로 조준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해요?"

 

필립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패비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두려움이 그녀의 적이 되리라.

 "그래요. 어쩌면 이게 진짜 제 모습이었을지도 모르죠."

엘사는 표정의 변화 없이 계속 말을 이었다.

 "얼음 마법을 부리는 사악한 괴물. 마녀. 재앙. 저주. 여기 있던 자들이 저를 그렇게 부르더군요."

 

오른손은 그대로 둔 채로, 엘사는 왼손을 한 차례 흔들었다. 엘사의 등 뒤편 땅에서 얼음 칼날 하나가 솟구쳐 올라오더니 이미 숨이 끊어진 서던 제도 병사의 몸을 관통한다. 핏발이 쫘아악 하고 공중으로 분수처럼 솟아오른다.

 "그래서 그렇게 해 줬죠."

 

필립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엘사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엘사의 오른손 끝에 모인 냉기는 점점 더 격렬해지고 커지고 있었다.

 "당신의 대답이 궁금하네요. 이래도 과연 내가 괴물 같은게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는지."

전에 없던 소름끼치는 표정으로, 엘사는 필립을 향해 말했다. 엘사의 눈빛은 이미 이성이 있는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

 "이런 얘기를 여기서 해도 될 지는 모르겠지만...."

오랜 정적 끝에, 마침내 필립이 입을 열었다.

 "전 껍데기뿐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

 "제 운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제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결정되었습니다. 위즐턴 왕국의 하나뿐인 후계자. 듣기만 해도 엄청나게 근사하죠, 한 나라를 통치하는 자리를 물려받을 운명이라니. 하지만 불행히도, 제게 그런 운명은 너무 과분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가혹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맞겠군요."

 

필립은 이야기하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엘사를 향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람은 살아가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누군가 얘기하지 않았나요. 하지만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가 살아가야 할 이유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세상이 맘대로 정해버린 미래, 그리고 그것을 항상 강요하는 주변 환경, 저는 제 삶이 싫었습니다. 정말 엄청나게 싫었어요. 거기다가 이런 힘든 마음을 누군과와 터놓고 얘기라도 하려고 하면 다들 저를 문제아 취급했습니다."

 

여전히 엘사가 서 있는 쪽으로 천천히 다가가며, 필립은 계속 말을 이었다.

 "사춘기 때의 일이었죠. 한 번은 너무 답답한 나머지 어머니께 그 동안 생각해온 것들을 진솔하게 쏟아냈습니다. 어머니께선 자애로우셨죠.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어머니는 제 얘기를 시작부터 끝까지 들어 주셨으니. 원하지 않는 운명을 받아들이고자 원하지 않는 교육과 훈육을 받으며 원하지 않는 준비를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거든요. 그런 저의 얘기를 하나부터 열까지 들어 주셨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죠. 정말로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세요?"

 

시종일관 차가운 표정으로 일관하던 엘사의 얼굴이 아주 약간 누그러졌다. 필립은 계속했다.

 "어머니와 대화를 나눈 며칠 뒤에 제가 그토록 죽기보다도 싫다고 말해왔던 후계자 교육의 커리큘럼이 몇 배로 빡빡해지더군요. 어머니께서 이 얘기를 아버지께 전했던 모양이었죠. 아마 그것을 그저 나약한 제가 부린 응석이었다고 치부해 버렸던 모양입니다. 충격이었죠. 살아가야 할 이유요? 사실 그런 게 어디 있었겠습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한테도 뒤통수를 맞는 삶이었는데요. 하지만 우습게도 자살할 용기까지는 나지 않더라고요."

 

 

 

어느 새 필립은 이제 엘사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필립을 겨누던 엘사의 오른손의 냉기는 거의 다 사라져 있었다. 엘사의 동공의 초점은 어느 새 흔들리고 있었다.

 "그랬던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믿을 수 없으시겠지만, 저는 아렌델에 도착한 이후 하루하루가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필립의 얼굴에는 어느 새 따뜻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필립은 엘사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눈을 감은 뒤에 천천히, 하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여기에 계셔 주셔서."

 

 

 

 

 

 

 

 

 

 

 

 

 

 

 

 *

뻣뻣하게 서 있던 엘사는 순간 전신의 힘이 쫙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꽉 막혀 있던 속이 뻥 뚫린 듯이, 무엇인가 가슴 속을 따뜻하게 메꾸기 시작했다. 엘사는 한쪽 손을 필립의 한쪽 어깨 위에 올렸다. 그런 뒤에 고개를 푹 숙인 뒤 천천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흐느낌은 점점 더 빨라졌다. 눈물줄기가 엘사의 양 볼을 타고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끄윽, 흑 하는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필립은 어느 새 자신의 품 속으로 들어온 엘사의 귀에 나즈막히 말했다.

 "맹세하건데 여왕님께서는 결코 괴물 같은 게 아니에요. 그저 조금 두려워하고 계신 것일 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엘사는 곧 마치 둑이 터지듯이 울음을 터트렸다. 2년 전에 얼어붙은 안나를 끌어안고 울듯이, 위즐턴 석궁병 두 명을 죽인 후에 안나의 품 속에서 울듯이 감정에 자신을 완전히 맡긴 채 울었다. 근 며칠 동안 받은 모든 스트레스가 만든 응어리를 한 번에 녹여버리기라도 하듯이. 필립에 어깨 위에 올라간 엘사의 손은 점점 더 그의 어깨를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목놓아 우는 와중에도 엘사는 끊임없이 두렵고 무서웠다고 필립에게 고백했다. 필립은 그럴 때마다 같이 가슴이 저려왔다.

 

 ".............?"

필립을 올려다보며 뭐라고 웅얼거리는 엘사.

 "...죄, 죄송하지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필립을 올려다보는 엘사의 얼굴은 어느 새 이전의 온화하고 따뜻한 인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워요."

 "네....네?"

 "고마워요. 정말로."

 

 

 

 

 

 

 

 

 

 

 

 

 

 

 

*

울음을 그친 엘사는 뭔가 민망했는지 황급히 필립을 툭 밀쳐낸 후 그와의 거리를 다시 살짝 벌렸다. 필립은 그런 엘사의 모습을 보고 다소 안심할 수 있었는지 길게 숨을 내뱉으며 왼쪽 가슴에 손을 올렸다. 무심코 뒤돌아본 엘사가 필립의 허전한 왼쪽 가슴을 보더니 말했다.

 "흠흠... 그거 다시 붙이셔도 괜찮아요. 이제는."

 "네...?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엘사는 주머니를 뒤지더니 위즐턴 왕가 문장이 새겨진 양철 배지를 꺼냈다. 며칠 전에 안나가 필립에게 가슴에서 떼어 버리도록 충고했던 그 배지였다. 어째서 저게 엘사에게 가 있는건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만, 필립은 오랫만에 보는 저 배지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위즐턴 왕가를 상징하는 문양이 이토록 반가술 수도 있다는 것을 필립은 방금 깨달았다. 엘사는 핀을 꺼낸 뒤에 손수 그의 왼쪽 가슴에 배지를 달아주었다.

 "제가 바보같았어요. 이런 걸 보고 쓸데없이 혼자서 무서워하고... 이젠 그러지 않으려고요."

 

공터 안쪽을 가득 채우고 있던 찬 기운은 어느 새 사라져 있었다. 필립은 다친 엘사를 부축하며 검은 숲을 향해서 되돌아가는 발걸음을 옮겼다.

 

 

 

 

 

 

 

 

 

 

https://gall.dcinside.com/frozen/1653728 1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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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이 씬이니만큼 수정하고 고치고 할 부분이 너무 많아서 이번 편은 작업하는 데 엄청나게 오래 걸렸네.

 

게다가 시-발 그렇게 시간을 쏟아 부었는데도 어색한 장면 투성이라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사실 지금도 더 고쳐야될것들이 많지만 내 능력에 한계로 여기서 그치겠음.

 

최대한 감성 묘사가 들어가는 장면은 빼 가면서 스토리를 구상하는데 이번 거는 불가피한 장면이라 어쩔 수가 없어서.. 나름 스토리의 전환점이랍시고 설정해 놓은 장면이걸랑.

 

혹시 불안해할까봐 말해두는건데 자캐하고 엘산나하고 엮고 자시고 이런 네덕같은 전개는 일단 아니니까 안심해도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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