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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문대회 준우승작]다시, 제자리로 간다-1

ABC친구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9.09 23: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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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라도 바뀐 게 있을까?”

  엘사가 중얼거렸다. 잠시 뒤, 그녀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 옮겨가야 할 물건은 그저 옮겨갔잖아. 그 역할을 내가 수행했을 뿐이야. 아무것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

  그 말은 실로 옳았다.


****


  ‘정신 차려야 해. 세상이 끝난 건 아니잖아.’

  안나가 자기 자신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그녀의 눈앞에는 아직 다 날아가지 못하고 떠도는 눈송이들이 아른거렸다. ‘물에는 기억이 있다.’ 방금 전에 세상을 떠난 올라프는 살아생전에 그렇게 말했었다. 그렇다면 지금 그녀에게서 멀어져가는 이 눈송이 하나하나에도 올라프의 마지막 기억이 남아있을 것이다. 행복한 기억들이었을까? 분명 그랬으리라 믿었다. 마지막 순간 안나는 올라프를 으스러질 듯이, 이미 스스로도 으스러지고 있는 올라프를 완전히 박살낼 것만 같은 기세로 껴안았으니까, 그리고 올라프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그런 포옹을 사랑했으니까, 그러니까 그 아이가 남긴 마지막 기억의 물방울들은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었다.

  ‘정신 차려야 해. 똑바로 생각하자. 내가 여기서 주저앉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 잘 알잖아. 그럼 일어나야지. 일어나서...’

  하지만 안나는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녀 주위를 휘날리던 눈송이들은 모두 바람의 정령이 가져가버려 품 안에 남은 것은 바싹 마른 잔해들뿐이었다. 조금만 꽉 쥐면 날카롭게 쪼개질 것 같은 그 나뭇가지처럼, 안나도 지금 상황에 대해서 조금만 더 생각하다가는 삐죽삐죽한 유리조각들로 부서져 내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끔찍했다. 지옥 같았다.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짧은 시간이 흘렀지만, 엉겁 같은 시간이 흘러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잠시 뒤에는 시간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동굴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의 방향의 변화만이 실제로는 꽤나 긴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었다. 안나는 자신의 품에 안겨진 나뭇가지들과 돌멩이들, 그리고 웃기게 생긴 당근 하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아이가 남기고 간 것이 고작 이것뿐이라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왜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어야 하는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지금은 그녀의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인지. 적어도 뭔가 영혼의 흔적, 의식의 흔적은 남아 그녀에게 말을 걸어줘야 맞는 것 아닌지. 불합리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안나는 벌벌 떨리는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가 자신의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속도만큼이나 천천히 그녀의 오랜 친구가 남기고 간 유품들을 하나하나 가방에 주워 담았다. 커다란 눈망울에 물기가 가득 맺힌 것이 느껴졌다. 이제 눈을 한 번 살짝 깜빡이기만 하면 눈물이 흘러내리리라. 여기서 그녀가 눈물을 흘린다면, 그것은 항복의 신호였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의심하지 않겠다는, 벌어진 사건들을 사건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사실을 사실 나름대로 추모하겠다는 항복의 신호였다.

  안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언니... 미안해... 확실히 막지 못했던 거... 미안해...”

  무의미한 희생은 아니었을 것이다. 안나의 눈앞에 보였던 충격적인 장면. 그 장면이 가리키는 진실은 분명히 소중하고 필요했다. 엘사가 목숨 바쳐 알리고 간 그 진실은 안나로 하여금 앞으로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확실히 알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 대가가 왜 엘사의 목숨이어야 했을까? 왜 올라프의 생명이어야 했을까? 안나는 올라프가 사라져가는 순간 엘사가 남기고 간 다른 유산들, 즉 마시멜로와 스노기들도 모두 소멸되었으리란 사실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다. 단순히 과거를 밝혀내겠다고 바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목숨이었다. 너무나도 큰 대가였다. 너무나도...

  안나는 천천히 동굴의 구멍을 향해 나아가 그 밖에 있는 숲의 댐을 바라보았다. . 처음부터 패비 할아버지가 보여주었던 환영에 댐이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

  “과거의 진실이... 왜곡되어있다고요?”

  “. 그리고 그것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두 분께 다시 평화가 찾아올 수는 없을 겁니다.”

  패비가 하늘에 오로라와 비슷한 영상들을 띄워주며 말했다. 엘사와 안나는 서로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본 다음 패비가 보여준 영상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안나가 침을 꿀떡 삼키며 패비를 쳐다보았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가요?”

  “여러분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누굴 대신 내세우겠습니까?”

  “이 일은 내가 잘 알아. 이 일은 내가 알아서...”

  엘사가 다시 한 번 모든 짐을 혼자 떠안겠다는 태도로 말을 꺼냈다. 안나가 엘사의 그런 듣기 싫은 말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우리 함께 가야지. 크리스토프, 스벤, 마차 준비시켜줘. 여기서 운전할 사람이 둘 밖에 더 없으니까.”

  “안나...”

  엘사는 안나에게 반발하려는 것 같았지만, 안나의 단호한 눈빛을 보고서 이내 입을 다물어버렸다. 안나는 엘사의 무책임한 생각을 꺾는데 성공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다시 패비에게 돌아섰다.

  “그리고, 패비 할아버지가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아렌델로 돌아가 언제 다시 닥칠지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세요. 이제 아렌델에서 일어나던 소란은 한 결 잠잠해진 것 같은데, 당분간은 또 별 일이 일어나진 않겠죠?”

  “아마도요. 하지만 일이 너무 오래 걸린다면 다시 깨어난 정령들이 분노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도 제가 최선을 다해보지요. 아렌델에 다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저희가 이 땅의 사람들만은 반드시 안전하게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패비가 그렇게 약속했다. 패비는 말을 허투루 하는 트롤이 아니니까 분명 자기 말은 제대로 지켰을 것이다. 아렌델은 문제없을 것이다. 안나는 마법의 숲에 들어온 직후 댐을 바라보며 크리스토프와 나누었던 대화를 다시 떠올렸다.


****

  “. 멀쩡히 세워져있네.”

  안나가 크리스토프에게 말했다. 크리스토프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놀라운 일이긴 하네. 아무런 유지보수나 관리도 없이 아직까지도 아주 멀쩡해 보이는 걸.”

  “어느 순간에 무너졌어도 이상할 게 없는 거잖아, 그렇지?”

  “그러게. 이 숲의 특이한 힘이 댐도 지켜주고 있는 걸까?”

  “그건 좀 이상하지. 저 댐은 인공물이잖아. 숲의 힘이 뭣하러 저 댐을 지켜주겠어? 아마 댐을 무너뜨릴만한 무언가가 전혀 없었나봐. 그렇다 해도...”

  안나가 잠시 고민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안나가 문득 크리스토프를 올려다보며 심각한 질문을 던졌다.

  “언젠가 댐이 무너진다면, 아렌델이 위험해지진 않을까?”

  “? 어째서?”

  “어째서라니? 그야 이 협곡은 아렌 피오르드랑 곧장 연결되어 있잖아. 만약 댐이 무너진 이후 그 물이 곧장 다 피오르드로 간다면 아렌델을 덮칠 수도 있지 않아?”

안나의 말에 크리스토프가 고심하는 표정을 지으며 협곡이 이어진 물줄기를 쓱 훑어보았다. 잠깐 동안의 고민을 미친 크리스토프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렌 피오르드의 모양새는 얼음 캐느라 북쪽으로 자주 돌아다닌 내가 더 잘 알아. 피오르드는 충분히 넓고, 여기부터 거기까지의 거리는 충분히 멀어. 댐이 무너진다면 처음에는 엄청난 급류가 이 근방을 덮치겠지만, 아렌 피오르드를 거칠 때쯤엔 상당히 약해질 거고 아렌델까지 왔을 때는 그곳의 넓은 협곡에 물살이 쫙 분산 되서 별 다른 위험이 되진 않을 거야.”

  “그렇게 되는 건가...”

  크리스토프의 설명은 안나가 어릴 적부터 보았던 아렌델의 지형지도의 모양과도 일치했다. 확실히 이 곳의 댐이 무너진다고 아렌델에까지 해가 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안나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명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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