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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문대회 준우승작]다시, 제자리로 간다-10(완)

ABC친구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9.10 00:40:12
조회 238 추천 10 댓글 4
														

  “내가 약속을 못 지켰니깨워주겠다고 약속했던 거 같은데네가 좀 피곤해보여서얼굴에 내 베개만 덮어주고 먼저 커피 준비를 하고 있었어아직 안 식었으니까 한 모금 해.”

  안나가 테라스 쪽으로 걸어 나가 엘사가 건낸 커피 잔을 받아들었다엘사의 말대로 커피는 아직 따뜻했다.

  “커피는 그렇다 치고초콜릿은?”

  “너 그 나이 때도 계속 초콜릿만 먹었어혹시 취향이 바뀌었을까봐 기껏 준비했더니만.”

  안나가 엘사의 옆에 딱 달라붙어 선 채로 할 말을 잃은 채 커피 잔만을 내려다보았다엘사가 안나의 어께를 툭툭 두드렸다.

  “꿈 아냐지금 이 순간은꿈이 아냐설명해줄게난 아토할란으로 가서 과거의 진실을 알아냈어정확히는 모르지만뭔가 댐이 문제였던 건 확실했던 거야이유는 뭐 그렇다 쳐도댐이 문제라면 댐을 일단 부숴보고 결과를 확인해보면 되는 거 아니겠어그래서 내가 바위거인들을 설득해서 내가 댐을 얼린 사이 바위거인들이 강하게 내리쳐서 댐을 부수기로 했단다그랬더니 숲에 걸린 저주는 풀렸고우리 둘은 무사히 아렌델로 돌아왔지!”

  “?”

  안나가 커피 잔을 입에 살짝 가져가댔다안나의 반문에 담긴 의미는 명확했다엘사가 이라고 말한 부분이 이 이야기의 종착점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의 반문그 반문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엘사는 표정을 숨기려는 듯 안나로부터 고개를 살짝 돌렸다.

  “나는 모든 것을 봐야겠어안나.”

  “...”

  안나가 커피잔을 홀짝였다엘사가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그런 생각을 해네가 옛날에 내게 해준 얘기가 떠올라너에게 당근을 준 게 겔다였다는 이야기너도 기억하니?”

  “.”

  “그런데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

  “아니그때 그건 언니였는데 그렇게 생각할 리가 없지.”

  “정말로그럼 겔다가 너에게 당근을 줬던 일은 생각이 안나그건 거짓 기억이야?”

  “그림 위에 물감을 덕지덕지 처발랐다고 아래 그림이 사라지진 않아둘 다 진짜야덧씌워진 그림도숨겨진 그림도.”

  “그래그게 내가 하려던 말이야.”

  엘사가 한 번 심호흡을 하며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뭐라도 바뀐 게 있을까?”

  “?”

  “아무것도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옮겨가야 할 물건은 그저 옮겨갔잖아그 역할을 내가 수행했을 뿐이야아무것도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

  “당근 말하는 거지?”

  “당근혹은 부서진 댐과 풀려버린 저주모든 것모두 다 계산 안에 있었던 거야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 순간도모두 다 계산 안에 있었던 거야.”

  “마지막 인사유언.”

  안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엘사도 안나를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안나댐이 무너지고 저주가 풀렸던 일을 네가 한 것에서 내가 한 것으로 바뀐 것겔다가 건네준 당근을 내가 건네준 것으로 바뀐 것차이는 없어모두 다 법칙의 계산 하에서 허용된 변칙일 뿐이야깔린 그림도덧씌워진 그림도모두 진실이지그리고 넌 덧씌워진 세계에서 살아가는 거야그게 자연이 허락해준 선물이니까나에게 지금 인사 나누는 이 순간이 모두 선물이니까.”

  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여왕으로 살았던 지난 4년이 한순간의 꿈이 되는 기분이네돌아가려고그 차디찬 밑바닥으로?”

  “말리지 않을 거지?”

  “진실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니야내가 시간을 넘어 방해해서 보지 못한 댐의 진짜 진실결국 봐야 하는 거잖아보지 않으면 그곳에 간 의미도 없게 되는 거고영원히 응어리진 무언가가 풀리지 않게 되는 거잖아.”

  안나가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목소리에 울음기가 올라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고두 사람 중 누구도 안나의 두 눈 가득 눈물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토할란은 마땅히 돌려받아야 할 무언가를 돌려받지 못하게 되는 거지난 선물이었던 걸까엄마의 선행에 의한 선물이 바로 나였다는 네 말이 정말 진실이었을까?”

  “내가 편의대로 해석했어인정할게.”

  “난 대여됐어안나너에게우리 모두에게난 대여되었었어그리고 이제 내 자리를 찾아가는 거야큰 틀에서 그 일이 이뤄지기만 하면 상관없으니까세상은 우리에게 역사를 바꿀 기회를 준거야그리고 그 기회는 이루어졌지바로 이렇게우리 둘 앞에서.”

  “안 가면 안 돼?”

  안나가 실없는 소리를 하듯 툭 내뱉었다하지만 엘사는 안나가 단순히 실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당연히 알 수 있었다마음 속 가장 깊은 진심어린 말을 내뱉으면서도그것을 엘사가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도록 실없이 툭 내뱉은 그 심정을 엘사가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안 돼알잖아그냥 진실을 보러 가는 거라고 생각해.”

  “죽기 위해 가는 거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는 걸.”

  “지금껏 잘 버텨왔어그리고 네가 원했던 건 마지막 인사잖아맞지?”

  “언니!”

  “견디는데 도움이 될 말을 조금 해줄게.”

  엘사가 검지를 하늘을 향해 추켜세웠다안나는 옷소매로 엘사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살짝 닦아주었다.

  “뭔데?”

  “누가 알아언젠가 적절한 봄이 오면 내가 해동되는 것도 허락될지해동되진 않더라도네가 내 뒤를 좇는 것 정도는 허락될지도 모르잖아허락되는 날이 오면너도 알아차릴 수 있을 거고그럼꼭 나를 찾아와줘야 해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곳에서 가장 차갑게 얼어붙어 있을 나를만나러 와줘야 해알겠지?”

  “...”

  안나는 그 이상의 대답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엘사가 거의 기습적으로 안나를 껴안았다.

  “사랑해안나내 인사로는 이것만 기억해줘.”

  “나도나도나도그 말밖엔 못하겠어나도...”

  안나가 조금 멍청하게 어버버 거리는 소리를 냈다엘사는 안나를 강하게 밀쳐낸 다음방 밖으로 뛰쳐나갔다뒤도 돌아보지 않으려는 듯미련도 갖지 않으려는 듯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복도를 지나 성문 밖까지 달렸다안나는 엘사를 쫓아갈 마음을 먹지 못했다대신 그녀는 그 자리테라스에 똑바로 선 채 창밖만을 내다보았다엘사가 피오르드를 통해 북쪽으로 올라간다면 그녀의 뒷모습은 바로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볼 수 있으리라.

  아기억난다오늘이 기억난다. 4년 전의 똑같은 순간이다안나가 처음 여행에서 돌아오고 엘사를 잃은 상실을 추스르며 홀로 테라스에서 밖을 내다보던, 4년 전의 그 똑같은 순간이다덕지덕지 바른 유화 아래 깔려 이제 보이지 않는 잃어버린 4꿈이 된 4하지만 똑같은 그 순간이다이것이 현재다현재였다가 아니라현재다.

  피오르드에 물로 된 말을 타고 물살의 흐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엘사의 모습이 보인다그녀가 만들어낸 그녀의 소중한 친구눈사람을 품에 안은 채 엘사가 피오르드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물살의 흐름을 거슬러가며제자리로 간다다시제자리로 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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