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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초자연현상처리반 Fragments 9화

한청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5.06 19: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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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Actions speak louder than words (1)


해경은 눈을 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정신이 몽롱했고, 몸에 기운이 없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팔이 따끔하면서 손목을 통해 무언가가 주입됐다.


“아흑!”


해경은 얕은 신음과 함께 몸을 움츠렸다. 각성제가 주입되면서 정신이 또렷해졌다. 외근부에서 지급한 팔찌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해경은 자신이 어느새 환자복으로 갈아입혀진 걸 확인했다. 그리고 자기 주위엔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환자들로 가득했다.


본인을 포함한 환자들이 앉아있는 곳은 대기실로 보였다. 탁 트인 데다가, 천장에는 감시카메라로 보이는 것들이 설치돼 있었다. 기묘할 정도로 넓은 공간이긴 했지만, 끝은 존재했다. 다만 의자가 있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은 대기실 중앙, 이곳뿐이었다.


해경은 몸을 더듬었다. 속옷과 그 안에 든 이물감은 그대로였다. 통신 수단을 뺏기지 않은 데엔 안도했지만, 꺼내서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해경은 잠시 감시카메라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렇게 넓은 곳에선 환자들을 가림막 삼아 꺼내더라도 연락하기 힘들었다.


거기에 다른 환자들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듯했다. 해경은 일단 다른 환자들처럼 멍때리는 척하며 상황에 변화가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다행히 변화는 금방 찾아왔다. 멀리서부터 문이 열리며 의사 가운을 입은 남자 둘과 간호사로 보이는 여자들 여럿이 수레 몇 개를 끌며 나타났다.


“다들 각성제 놔드려.”


“네.”


머리를 짧게 깎은 남자가 지시하자 간호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한 명 한 명 세심하게 주사를 놓았고, 주사를 맞은 사람들은 움찔거리다가 침을 닦으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어, 선생님? 이분은 이미 깼는데요?”


해경의 차례까지 오자, 해경의 표정을 본 간호사가 말했다. 남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손을 내저었다.


“가끔 그런 분 있어. 견학이니까 괜찮아.”


“들으셨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간호사는 해경에게 미소를 보여주고는 해경에게 놓을 주사를 카트에 다시 두고 다른 사람에게 다른 주사를 놓았다. 해경은 위생만을 목적으로 주사를 다르게 쓰는 게 아니란 걸 눈치챘다.


영성 치료 보호관찰 센터. 경남 합천에 설립된 곳으로, 초자연현상에 의해 지어진 곳이 아니란 점이 특기할 만한 사항이었다. 해경은 그곳에서 진행된 임상 실험 대상자들의 행방이 묘연해지거나, 혹은 이전과 다른 성격을 가지게 됐다는 보고를 받고 조사 임무를 받게 됐다.


‘깊게 들어가는 건 조사관들에게 맡길 몫이다. 넌 대략 어떤 곳인지 파악하면 돼. 조사관에겐 기대하지 못하는 통찰과 지혜가 네게 있으니 말이지.’


성진은 그리 말하며 영성 치료 보호관찰 센터의 견학 프로그램에 해경의 이름을 올렸다. 해경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 기다리는 일이었다.


꼭두새벽, 동네 뒷산 으슥한 골목에서 기다리던 해경은 벤치에 누워있던 노숙자에게 기습당해 기절하고 말았었다. 그리고 깨어나니 바로 이곳, 영성 치료 보호관찰 센터였다.


“자, 여러분. 너무 놀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곳은 영성 치료 보호관찰 센터고, 저는 여러분의 견학 안내를 맡은 김철 부센터장입니다.”


머리를 길러 뒤로 묶은 남자가 인사하며 주의를 끌었다. 깨어나기 시작한 환자들, 아니, 관광객들은 김철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모시게 된 점은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이곳의 보안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김철은 정말 죄송하다는 듯 합장하며 말했다. 해경은 여기서 손을 들어 질문을 할지 말지 고민했는데, 그녀를 대신해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제 옷가지와 휴대전화는 어디로 간 거죠?”


“아, 그건 모두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옷과 장구류, 이곳의 위험 품목들은 출구 옆 탈의실에 안전하게 보관 중입니다. 나가실 때 모두 돌려드릴 예정입니다.”


“옷을 갈아입히는 동안 아무런 짓도 안 한 거 맞죠?”


나이 든 여자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김철은 곤란하다는 듯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성별에 맞는 간호사들이 옷을 갈아입혔습니다. 그런 일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옷을 모두 환자복으로 통일한 건, 앞으로 여러분이 견학할 공간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안전을 위한 조치이니 양해 바랍니다.”


“설명 좀 해보쇼!”


대머리 아저씨 한 명이 팔짱을 낀 채 소리를 높였다. 표정으로나, 자세로나, 현 상황이 굉장히 불만인 듯했다. 김철은 잠시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그 대답은 견학하면서 설명해드리죠. 일단 다 일어납시다. 보시다시피 이곳이 보통 넓은 곳이 아니라서요.”


해경은 일련의 질답을 통해 품었던 의문들을 대강 해소했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 하나가 풀리지 않았다. 어째서 대기실은 이런 구조를 취하고 있는가?


관광객들은 군말 없이 김철의 인도를 따랐고, 해경도 그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동행했다. 대기실은 단순히 걸어서 중앙에서 벽까지 5분 거리로 엄청나게 넓었다. 걷는 동안 김철은 영성 치료 보호관찰 센터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희는 이름 그대로 고장 난 영혼들을 치료하고 관찰하는 곳입니다. 초자연현상이 시시각각 인류를 위협하는 지금, 우리는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의 힘을 키워 초자연현상으로부터 스스로 구원하고, 맞서 이겨내야 하죠. 그러한 취지 아래 설립된 곳입니다.”


해경은 말은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공상이라고 여겼다. 인류, 아니, 대한민국에 영혼을 관측하고 다루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혼의 실체조차 입증하지 못했었다.


“센터의 설립자이자 센터장이신 유창준 박사님께선 영혼을 다루는 기술을 발명해내셨죠. 비록 그 논문은 아직 통과된 건 아닙니다만,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이쪽에서 이미 실험과 검증을 모두 끝마쳤으니까.”


그런데 그것이 갑자기 가능해졌고, 그것을 통해 무언갈 할 수 있다면……. 그 수단은 절대 정상적인 무언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외근부에 조사 임무 명령이 떨어졌다.


“여러분이 견학하실 내용은 영혼의 관측과 추출, 그리고 치료 및 보호관찰이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그 이후 희망자에 한해서 여러분의 영성 역시 치료해드리겠습니다.”


김철은 그리 말하며 대기실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계단이 보였는데, 내려가는 계단뿐이었다. 계단을 본 해경은 곧바로 주위를 둘러봤다.


이토록 넓은 대기실에 창문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이곳 외에 다른 출입구는 맞은편에 희미하게 보이는 문뿐이었다. 그런데 계단은 내려가기만 한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첫째, 맞은편 문이 아까 말한 출구로 이어지는 탈의실이고, 지금 계단은 지하로 내려가는 것이다.


둘째, 맞은편 문은 별개의 공간으로 이어지고, 이곳은 지하가 아닌 2층 이상의 공간이다.


“영성 치료의 효과는 단순히 볼 게 아닙니다. 인간이 가진 잠재력을 모두 끌어내는 건 물론이고, 여태 가진 적 없던 힘 역시 가지게 되죠. 놀라실 겁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히어로가 탄생하는 순간으로 보일 테니까요.”


하지만 해경은 계단을 내려가던 중, 수레를 끌던 간호사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상식적으로 당연했다. 수레는 계단을 내려갈 수 없었다. 그건 다시 말해 부센터장 일행이 나온 문과 지금 관광객들이 통과한 문은 다른 문이라는 얘기였다.


해경은 머리를 짚었다. 방향 감각이 뚜렷하지 않았다. 계단은 좌측으로 내려갔다가 우측으로 선회해 내려가는 구조였다. 단순한 방향 전환에도 해경은 건물의 구조를 머릿속으로 체계화할 수 없었다.


“아직 약효가 남으신 분들은 조금 어지러우실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니까요. 인체엔 무해하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길.”


김철이 칭얼거리는 관광객들을 향해 답했다. 해경은 견학일 뿐이라고, 무사히 관찰하고 나면 얌전히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부주의하게 마지막 계단을 내려가다가 가슴이 흔들리면서, 그 안에 속옷 속에 감춘 핸드폰의 무게감이 그녀에게 전해졌다. 해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판단력이 흐려질 뻔했다.


정말로 견학이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끝나는 거라면, 어째서 해경에게 몰래 통신할 수단을 남겼겠는가? 당사는 이미 센터의 납치 방식을 알고 있었다. 팔찌가 그 증거였다. 그렇다면 통신 수단 역시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봐야만 했다.


“그, 죄송한데요.”


해경이 손을 들었다. 아래층으로 향하는 문을 열기 직전이었다. 김철은 고개를 돌렸다.


“질문 있으신가요?”


“혹시 화장실이 급하면 어떡하죠? 견학 중간에 다녀올 수 있나요?”


김철은 진지하게 들으려다가 별것 아닌 질문에 피식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모진 사람들 아닙니다. 화장실이 급하시면 주위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화장실까지 안내해드릴 겁니다. 그리고 너무 오래 계시지만 않는다면, 견학 자체는 오늘 내내 천천히 이뤄지는 만큼 놓칠 염려 역시 없습니다.”


“넵, 감사합니다.”


“그럼 소개하죠. 이곳은 스피릿 섹터입니다.”


김철이 문을 열며 말했다. 환한 빛이 쏟아지면서 모두가 잠시 눈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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