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의 느긋한 오후, 휴관일인 트리니티 중앙 도서관에는 따스한 햇살이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흥흥흥~, 이건 여기 꽂아두면 되고..."
그곳에서 오렌지빛 머리를 하나로 묶은 어느 여인은, 콧노래를 부르며 도서관의 장서들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 이름은 엔도우 시미코, 트리니티 중앙 도서관의 관장이자 트리니티 도서부의 담당교사였다.
"뭐랄까, 사람이 없는 조용한 도서관도 좋네요~. 평소 같았으면 이렇게 혼잣말을 하며 일하는 건 꿈도 못 꿨을텐데."
책을 사랑하는 그녀이기에, 시미코는 카트를 끌고 다니며 즐겁게 도서관 정리에 임했다. 그때,
- 딸랑~...
"어라? 방문객인가?"
곧 도서관 정문에 달린 풍경소리가 울려퍼져, 시미코는 정리하던 책을 잠시 놔두고 손님을 맞이하러 갔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도서관이 휴관일이어서... 어라? 선생님!"
"오랜만이야, 시미코. 역시 있었구나."
"관장님, 안녕~!"
갑자기 도서관을 찾아온 손님은, 다름아닌 샬레의 선생과 그의 딸이었다.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 혹시 필요한 자료가 있으시면..."
"아, 그런 건 아니고. 오늘은 애엄마가 트리니티 쪽에 약속이 있어서 데려다줬거든. 근데 마침 오늘이 도서관 휴관일인 게 생각나서, 혹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와봤지."
"관장님 주려고 선물도 사왔어! 맛있겠지?"
소녀가 든 봉투에는 아메리카노 세 잔과 오렌지 주스 한 잔, 그리고 조각케이크 세트가 포장되어 있었다. 아마 근처 카페에라도 들렀던 모양이다.
"그리고 혹시... 우이도 있어? 얼굴 못 본지 통 오래돼서, 같이 커피라도 마시면 좋겠는데."
"선배라면 오늘도 고서관에 있어요. 따라오실래요?"
"그럼 부탁할게. 우리 딸도, 우이 이모 보는 건 오랜만이지?"
"응! 빨리 보러갈래!"
그렇게 세 사람은, 중앙 도서관의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음, 으음... 으히히... 이 정도야 뭐..."
고서관의 소파에서, 한 여인이 잠꼬대까지 하며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산발인 긴 생머리를 따로 정리하지 않은 채, 평소 입는 스웨터를 이불삼아 덮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코제키 우이. '마술사'라는 별명에 걸맞는 고서 복원 기술 덕에 믿고 따르는 후배들이 많지만, 일거리가 없을 땐 이렇게 고서관에서 혼자만의 휴식을 즐기는 게 그녀의 낙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휴식을 방해하는 자가 있었으니,
"으, 으음..."
"푸흡!"
누군가가 자고 있는 우이의 볼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웃는 것이었다.
"아이, 진짜 누구야... 어라?"
"자는 얼굴 재밌게 생겼... 엣, 일어났네...?"
"... 잠이 덜 깼나, 왜 하나코 씨가 줄어들었지."
흐리멍덩한 눈으로 소녀를 쳐다보던 우이는, 곧 다른 누군가가 고서관에 있음을 눈치챘다.
"어...? 어, 으에? 선생님!?"
"안녕, 우이. 오랜만에 얼굴 보고 싶어서 찾아왔어."
"정말~! 우이 선배, 또 여기서 주무신 거예요?"
선생과 눈이 마주친 우이는, 급히 입가의 침을 닦고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했다. 연락하지 않고 멋대로 찾아오다니, 여전히 세심함이 부족한 남자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뭐, 뭔가요... 갑자기 찾아오시면 꽤 곤란하다구요?"
"미안미안, 근처를 지나가다 생각이 난 거라. 아이스 아메리카노, 좋아하지?"
선생이 든 봉투에는, 우이가 꽤 좋아하는 카페의 로고가 그려져 있었다.
"정말이지, 이상한 데서 세심하다니까..."
"어? 뭐라 했어?"
"아무것도요. 뭐 잘 됐네요, 잠 깨는 데 커피만한 것도 없고."
일단 소파에 자세를 고쳐앉은 우이는, 바로 앞의 테이블을 적당히 치웠다. 이런저런 서류가 잔뜩 쌓여서, 그대로 쓰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선배! 쉬는 날엔 정리 좀 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업무에 지장만 없으면 상관 없잖아요... 뭐, 앞으로는 주의할게요."
"맨날 말만 그렇게 하고..."
시미코는 우이가 걱정되는지 아니면 단순히 화가 난 건지,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그것보다 관장님, 빨리 케이크 먹자! 맛있을 것 같아!"
소녀는 후다닥 케이크를 포장한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조각케이크가 종류별로 포장되어 있었다.
"오, 머릿수에 딱 맞게 네 조각이네요."
"다들 먹고 싶은걸로 골라봐. 난 신경쓰지 말고."
"정말요? 그럼 저는 치즈케이크로... 선배는요?"
"저요? 저는 그럼 이 딸기 생크림..."
"우, 우으..."
우이가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집으려던 순간, 소녀는 울상이 된 채 뻗친머리를 축 늘어뜨렸다. 가장 좋아하는 맛인가?
세상만사에 귀찮음을 느끼는 우이라도, 아이의 눈물을 모른척할 수는 없었다. 결국 우이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접시에 담아, 소녀에게 주었다.
"어? 나 주는거야?"
"오늘은 아메리카노도 있겠다, 좀 더 달달한 녀석으로 해도 괜찮겠죠. 이 당근 케이크면 적당하겠네요."
"그럼 티라미수는 내껀가? 좋아좋아, 어서들 먹자고!"
그렇게 네 사람은 각자 포크를 들어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움냠냠... 에헤헤, 맛있다!"
"정말이지, 이렇게 다 묻히면서 먹으면 어떡해요! 여긴 고서들도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구요?"
"... 흐음."
포크로 케이크를 꾹꾹 누르면서 먹는 소녀의 모습. 그 모습을 보며, 우이는 잠깐 상념에 빠졌다.
"코제키 선배~!"
"히, 히에아이으엑!? 또, 또 당신인가요... 적어도 노크 정도는 하고 들어오세요."
우이의 졸업 후 1년 반쯤 지났을 때, 고서관에는 종종 손님이 찾아오곤 했다. 우라와 하나코, 트리니티의 영재로 꼽혔던 학생이자...
"항상 느끼는데, 그런 모습으로 제법 잽싸게 돌아다니네요."
"후훗, 칭찬으로 들을게요?"
졸업 후 바로 선생과 결혼해서 아이까지 가진, 한 가정의 어머니였다.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용건이에요? 임산부와 관련된 서적이라면, 시미코를 통해서 보냈을텐데."
"어머나~, 제가 늘 받기만 하는 파렴치한 여자라고 생각하나요?"
"일단 파렴치하다고는 생각합니다만..."
늘 그렇듯 독설을 내뱉는 우이였지만, 하나코가 빈말을 한 것은 아닌듯 그녀의 양손에는 무언가 들려있었다.
"응? 그건 뭐예요? 케이크?"
"후후, 역시 마술사의 눈썰미는 무시 못하겠네요? 짜잔~, 최근에 생긴 카페에서 사와버렸어요!"
한 손에는 케이크 박스를, 한 손에는 음료수를 들고온 하나코는 생글생글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음~, 역시 이 소파는 훌륭하네요~. 하아, 금방이라도 홀려버릴듯한 이 느낌~!♡"
"또 멋대로 앉기는... 뭐, 오늘만큼은 봐주죠."
케이크를 한 조각씩 잘라 각자의 앞에 놓고, 두 사람은 케이크를 음미했다.
"맛이 꽤 괜찮네요... 원두를 좋은 걸 썼는지 아메리카노 맛도 괜찮고. 앞으로 기회 되면 종종 들러야겠어요."
"어머? 그 정도의 호평일줄은 몰랐네요? 확실히 생과일주스도 질이 괜찮은 것 같고..."
케이크를 먹으며 짓는 하나코의 미소를, 우이는 그저 바라보았다.
"음?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선배?"
"아, 아니에요. 보아하니 입에 맞는 모양인데, 좀 더 먹어요. 전 단걸 안 좋아해서..."
"후훗, 그럼 사양 않고..."
우이는 계속해서 케이크를 먹는 하나코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술사는 눈썰미가 좋았다. 수많은 '아이'들을 다루는 게 그녀의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그녀가 바라본 하나코의 미소는... 무언가를 감추고 있었다.
"저기... 하나코 씨."
"네? 왜요?"
"... 아니에요. 급하게 먹으면 체하니까, 천천히 먹어요."
"정말~, 오늘따라 이상하시네요?"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그쪽이면서. 우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아마 상대도 그러길 바랄 테니까.
고민이 있을 때 만나고 싶은 사람의 유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 또 하나는 가만히 서 있어서 기댈 수 있는 사람.
아마 나는 저 여자에게 후자에 해당하겠지. 그러니 이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해주자, 라고 우이는 결론지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하나코가 케이크 한 판을 전부 먹어버린 건 또 다른 이야기이다.
"응? 우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예? 아니, 그게..."
상념에 깊게 빠져있던 탓일까. 선생은 우이를 꽤나 걱정하는 듯했다.
"아, 그냥... 유전인가 싶어서요."
"유전? 우리 딸 말야?"
선생은 소녀를 흘끗 보았다. 여전히 케이크를 먹는 데 몰두한 모습이다.
"하하, 하긴 나도 어렸을 때 생크림엔 사족을 못 썼거든."
"네, 뭐... 그랬군요."
우이는 얼마 안 남은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마저 마셨다.
"잠깐이지만 덕분에 즐거웠어! 슬슬 애엄마 마중나가야 돼서 이만 갈게!"
"관장님, 또 봐~!"
"네, 다음에 또 봐요!"
시미코와 우이는 떠나는 두 사람을 배웅했다. 선생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두 사람은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럼, 슬슬 들어가야..."
"잠깐, 선배."
고서관으로 돌아가려는 우이의 어깨를, 시미코가 붙잡았다.
"응? 갑자기 왜..."
"갑자기가 아니라! 오늘 고서관 상태를 보니 도저히 안 되겠어요! 지금 바로 청소할 거니까, 빨리 창고 가서 도구들 챙겨요!"
"네, 네!? 하, 하지만 그대로 놔두는 게 그때그때 꺼내기 쉬운데..."
"그렇다고 해도 어질러놓는 건 용서 못해요! 오늘은 반드시 결판을 지어야겠어요!"
"하아... 네, 네. 알겠습니다..."
결국 시미코의 손에 끌려간 우이는, 거의 반나절을 고서관 청소에 써야 했다...
*****
이번 소설도 어쩌다보니 예전에 쓴 단편과 이어지는 내용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예 시리즈에 넣어놨으니, 볼 사람들은 후딱 보고 오시면 좋습니다.
그런데 하나코가 만났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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