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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국보다 낯선>을 보고모바일에서 작성

프레디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2.13 13:3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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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은 미국, 특히 뉴욕의 영화계에 있어 특별한 1년으로 남아있다. 뉴욕대학교를 갓 졸업한 짐 자무시가 제작한 "천국보다 낯선"이 칸 영화제 황금 카메라상 (신인감독상)과 로카르노 영화제 황금 표범상,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석권하면서 소위 "뉴욕 인디펜던트"라고 불리는 실험적 영화 운동의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31살의 젊은 감독이 고작 9만 달러만을 써서 만들어낸 이 흑백의 로드무비는 영화사의 위대한 고전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저렴하고도 기념비적인 걸작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자.

"천국보다 낯선"은 부다페스트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에바와 그녀의 사촌 윌리, 그리고 윌리의 절친인 뉴요커 에디가 겪는 이야기를 '신세계', '1년 후', '천국'이라는 3가지의 단편영화로 엮어내며 보여주고 있다. 원래 짐 자무시 감독은 '신세계'를 1982년에 먼저 완성했는데, 이 단편영화가 좋은 반응을 얻자 '1년 후', '천국'을 속편으로 찍어 "천국보다 낯선"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 영화를 만드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위대한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로, 그는 영화를 찍고 남은 40분짜리 16mm 필름을 자무시에게 건넸고, 자무시는 이를 사용해 '신세계'를 제작한다. 그렇게 그들은 칸 영화제에서 만나 각각 황금종려상과 황금 카메라상을 거머쥐게 된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복잡할 것 없이 간단하다. 첫째 단락 '신세계'에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에바는 클리블랜드에 있는 엄마의 집으로 가기 전 뉴욕에 있는 사촌 윌리의 집에서 10일 동안 머무르게 된다. 윌리는 낯선 방문객 에바를 석연치 않아 하며, 둘은 10일 동안 미국에서 무료한 생활을 보낸다. 그러나 그 10일 사이에 정이 든 것인지, 윌리는 에바에게 드레스를 선물해 주고, 에바가 클리블랜드로 떠나자 공허함을 느낀다. 둘째 단락 '1년 후'는 '신세계'로부터 1년 뒤의 시간이 흐른 뒤이다. 뉴요커 친구 에디와 함께 도박 사기를 쳐서 큰돈을 번 윌리는, 에바가 있는 클리블랜드로 에디와 함께 휴가를 떠난다. 잔뜩 기대를 품고 도착한 클리블랜드였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매서운 눈보라와 뉴욕에서와 다를 것 없는 무료한 생활이었다. 윌리와 에디, 에바는 곧 클리블랜드와 고집불통인 로티 고모 (에바의 어머니)에게 질리게 되고, 따뜻한 플로리다로 또 다른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마지막 단락 '천국'에서 그들은 플로리다에 도착한다. 그러나 플로리다도 뉴욕, 클리블랜드와 다를 것 없는 황량하고 쓸쓸한 땅일 뿐이었고, 윌리와 에디는 여기서도 다를 것 없이 개 경주 도박을 하다가 번 돈을 거의 다 잃게 된다. 그들은 잃은 돈을 다시 도박으로 메꾸려고 말 경주 도박을 하러 떠나고, 에바는 이에 화나서 홀로 해변을 걷다가 어느 마약쟁이한테 다른 사람으로 오해받아 엄청난 거금을 손에 쥐게 된다. 윌리와 에디 또한 말경주 도박을 통해 돈을 꽤 벌어 숙소로 돌아오지만, 그들은 서로 길을 엇갈리게 되고, 윌리는 에바를 찾으러 부다페스트로, 에디는 자동차로, 에바는 숙소로 돌아오며 그들은 헤어진다.

이 영화는 "뉴욕 인디펜던트"라는 영화 운동에 속하는 미국의 독립영화이다. "뉴욕 인디펜던트", 소위 "뉴욕 인디"는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상업적이고 대자본적인, "미국적인" 영화산업에 반대해 독창적이고 개성적이며 예술적인 사조를 추구한 독립영화 운동으로, 1980년대 뉴욕을 강타하며 미국의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아까 말했다시피 이 영화는 "뉴욕 인디" 운동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며, 젊은 짐 자무시는 이 영화로 단숨에 "뉴욕 인디"의 상징적인 감독으로 떠오른 바 있다.

이 영화는 주제에 있어서도 다분히 "뉴욕 인디"적이다. "천국보다 낯선"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찍어내는 미국이라는 성공의 땅에 대한 환상을 철저히 파괴하며, 그러한 "천국" 같은 미국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윌리와 에바 모두, 성공의 땅 미국에 대한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헝가리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꿈은 영화가 시작된 지 4분 만에 파괴된다. 감독은 에바가 윌리의 집에 가면서 지나는 거리를 롱테이크로 담아내며, 뉴욕의 현실적인 뒷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 거리를 지나 에바가 맞이한 윌리의 집은 좁디좁은 원룸이며 몇 년 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매우 더럽고 너저분한, 흔히 말하는 '성공의 땅'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피폐한 현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담아내는 씬은 윌리의 저녁 식사 장면이다. 윌리는 스테이크나 피자, 햄버거 같은 만찬을 즐기지 않는다. 그는 값싼 알루미늄 호일에 담긴 인스턴트 식사인 "TV 저녁"을 먹는다. 에바는 윌리가 먹는 다진 소고기를 보며 고기같이 생기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자 윌리는 이렇게 말한다. "에바, 딴지 걸지 마. 미국에선 다 이렇게 먹어. 고기도 있고, 감자도 있고, 채소도 있고, 디저트도 있지. 설거지할 필요도 없어." 그러한 "TV 저녁"을 먹은 뒤 그들은 새벽까지 TV를 보고, 낮까지 잠을 퍼질러 자다가 일어나서 담배를 피우며 무기력한 생활을 반복한다.

에바는 이러한 미국의 생활방식에 처음에는 잘 적응하지 못한다. 에바가 윌리의 집에 있는 수납장의 문 닫는 순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헷갈려하는 모습은 이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또한, 그녀는 미식축구의 "하프백"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를 바보 같다고 말하며, 윌리에게 딴지를 건다. 그러나 에바도 슈퍼마켓에서 몰래 여러 음식을 훔쳐 오는 등 "미국식" 생활방식에 조금씩 적응하며, 윌리와 점점 친해지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미국"이라는 곳에 속하지는 못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국외자들이다. 그들은 헝가리에도, 뉴욕에도, 클리블랜드에도, 플로리다에도 속하지 못한다. 특히 "윌리"라는 인물이 그렇다. 그는 에바와 로티 고모에게 헝가리어 대신 영어를 쓰라고 하고, 자신의 원래 이름인 "벨라"를 부정하고 자신을 "윌리"라고 칭한다. 친구 에디가 그가 헝가리인인 줄 몰랐다고 말하자, 윌리는 불평하며 자신도 미국인이라고 말한다. 그는 로티 고모의 집에 와서도 굴라쉬 같은 헝가리 음식 사이에서 맥주를 찾는다. 윌리는 자신의 "헝가리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인하고 미국인처럼 행동하며, 미국 사회에 소속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와 에디는 도박과 사기를 일삼으며 미국의 주류 사회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간다. 그들에게 (심지어 미국인인 에디에게조차) 미국은 낯설기 그지없는, 소속되지 못하는 공간이다. 에디는 클리블랜드와 플로리다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아름다운 호수와 해변이 있다며 그 장소들을 동경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호수는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보이지도 않고, 해변은 예상과는 달리 황량하고 쓸쓸한 모습에 불과하다. 에디는 이에 대해, "웃기지 않아? 새로운 곳에 왔는데 모든 게 그대로 같아."라며 자조한다. 미국은 어디를 가든 그들에게는 다 똑같다. 그들은 국외자이기 때문이다. 플로리다에는 로티 고모의 집과 똑같이 생긴 집이 있고, 미국 어디를 가든지 체스터필드 담배는 다 똑같이 있다. 그들은 자신만의 "천국"을 상상하며 여정을 떠나지만, 그들에게 미국은 어딜 가든 속하지 못하는 낯선 장소들일 뿐이다. 이러한 현실을 발견하는 순간, 천국을 향한 환상은 무너지고, 현실은 "천국보다 낯선" 곳이 된다.

이러한 "천국보다 낯선" 세계를 찍는 짐 자무시의 카메라는 상당히 "국외자"적이다. "뉴욕 인디"를 대표하는 감독답게, 그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전개법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한 씬당 하나의 컷을 고수하며 정적인 카메라로 현실을 사실주의적으로 담아낸다. 내러티브를 뒤흔들어 놓지는 않지만, 할리우드에 비해서는 훨씬 간소한 내러티브와 독립영화다운 단순하고 간단한 편집을 보여준다. (+짐 자무시는 고정된 카메라를 통해 인물보다 공간에 집중하는 촬영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방법론은 영화의 주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가만히 고정된 공간을 비추는 프레임 안팎으로 인물들이 오고가는 모습은, <전도서>의 한 구절처럼, 세상은 움직이지 않고 불변하며, 오직 사람들만이 그 자리를 채우며 오고갈 뿐이라는 것을 체감시킨다.) 짐 자무시는 프랑스에서 1년간 유학하면서 고다르, 브레송, 멜빌 등의 유럽 영화감독들뿐만 아니라 야스지로, 미조구치와 같은 일본 영화감독들에게도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것이 그를 미국영화계의 "국외자"로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오직 미국에서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영화의 제재는 "미국"이 아닌 "천국"이다. 윌리, 에바, 에디의 이야기는 모든 "천국"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훌륭한 영화는 일개 개인이나 집단을 다루는데에 그치는 영화가 아니라, 개인을 통해 사회와 보편적인 인간성에 대해 통찰하는 영화일 것이다. PTA 스콜세지 등등) 우리 모두 환상의 세계를 마음속에 가지고, 무의미하고 지루한 현실을 살아간다. 그리고 매일매일 그러한 "천국보다 낯선"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천국이라는 것은 하나의 관념으로써 우리의 정신 속에 있는 것이다. 반면 구체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현실은 오히려 우리 밖에 존재해, 우리의 존재를 위협하는 불가해하고 어색한 공간이다. 그러므로 현실이 "천국보다 낯설다"는 것은 자명하다.) 자신과 세계 간의 괴리를 느끼며 낯설어하고, 이 괴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강력한 욕구를 느낀다. 이 괴리를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세계를 자신의 천국 안에 종속시키려고 하거나, 오히려 독방에 들어가 세계를 자기 자신으로 한정시킨다. 그러나 누구에게든, 현실은 천국이 될 수 없다. 알지 못하는 세계 속에 피투된 이방인일 뿐인 인간에게 현실은 언제나 "천국보다 낯선" 곳일 뿐이고, 짐 자무시는 이를 너무 잘 알았다. 그것이 그의 영화 "천국보다 낯선"이 위대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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