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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부아의 유령들>을 보고

프레디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2.13 13: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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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아의 유령들>에서는 두가지 방향의 빛이 제시된다. 하나는 수직적인 방향의 빛(형광등, 내리치는 번개) 다른 하나는 수평적인 방향의 빛(영사기에서 쏘는 빛, 불타는 축구공을 차고 노는 것)이다.

수직적인 빛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힌다는 점에서 위계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수평적인 방향의 빛은 경계를 지워내며 뻗어나가면서, 같은 층에서 하나로서 공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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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영화는 첫 쇼트에서 수직적인 빛의 하나로 내리꽂히는 형광등의 빛을 보여준다. 그리고 스크린과 그 옆의 (혼을 불러내는 듯한 느낌의)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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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영화는 뜬금없이 번개가 치는 어느 마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화면 중 한 곳에서 계속 불빛이 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 불빛이 스크린에 쏘아지는 영사기의 불빛이며, 제시되고 있는 번개치는 마을의 모습은 상영되고 있는 영화임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번개는 "수직적인 빛" 중 하나다.) 또한 이 마을은 영화의 제목으로 말미암아 나부아라고 생각되는데, 나부아에 굉음과 함께 내리치는 번개는 폭격을 연상시키며, 나부아라는 지방의 (공산당 소탕을 위해 군대가 주둔했던) 슬픈 역사를 환기시킨다. 즉, 영화에서 상영되고 있는 번개치는 마을의 모습은 나부아의 슬픈 역사이자, 과거의 기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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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번개치는 나부아의 모습을 보여주던 카메라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트래킹하며, 또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뒷걸음질치며 사라지는 한 아이와 그 아이를 "사라지게 하는" 영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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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이어 일종의 '영화관'의 모습이 정지된 쇼트로 보여진다.

이 영화관은 현재 나부아의 공간이며, 예상한대로 번개치는 나부아의 과거가 영화로 스크린에 상영되고 있다. 영사기에서 나오는 수평적인 빛은 스크린에 쏘아지고 있는데, 이 스크린으로 인해 빛이 가로막히며 스크린 위의 "과거 나부아의 기억"과, 그 스크린 바깥의 "현재의 나부아"는 서로 분리되고 있다. (조금 억지해석이지만, 스크린은 우뚝 서 있는 것이므로 수직적인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경계를 지우고자" 직진하는 영사기의 수평적인 빛은, 스크린이라는 (수직적인) 경계에 막혀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현재의 관객, 현재의 나부아와 단절되게 된다. 또한 이 영화관은 형광등이라는 수직적인 빛이 지배하고 있는데, 그러한 점에서 이 영화관이 가지는 위계적인 특성을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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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경계가 존재하는" 영화관으로, (아까 영상에서 아이가 사라졌던 방향인) 오른쪽에서 아이들이 불타는 축구공을 차며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이 점에서 우리는 저 아이들이 아까 제시되었던 번개치는 과거의 나부아에서 사라졌던 아이이며, 이들이 곧 '나부아의 유령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아피찻퐁의 영화 속에서 '유령'은 억압된 기억을 지닌, 역사에서 소외되고 잊혀진 자들로, 이승과 저승,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지우는 자들이다. 그들은 과거 번개치는 나부아에서 사라져, 그 기억이 상영되고 있는 현재의 나부아의 영화관에 등장하면서, 존재 자체로 과거와 현재,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그들은 불타는 축구공을 서로 차면서 천진난만한 놀이를 하는데, 이 불타는 축구공은 마치 혼불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또한 '불'이라는 점에서 원초적인 빛의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부아의 유령들이 불타는 축구공을 차고 노는 모습은, 수평적인 빛의 운동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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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등(수직적인 빛)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아이들은 불공을 차면서 수평적인 빛의 놀이를 계속 하다가, 결국은 그 불공을 영화관의 스크린으로 찬다. 스크린에는 불이 옮겨붙고, 불은 "아래에서 위로" 확산되며 영사기의 빛과 유령아이들을 가로막던 스크린을 전소시켜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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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이라는 경계가 없어지며, 마침내 과거의 기억이라는 영화는 스크린 위에 존재하며 현실과 분리된 형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을 넘어 현실의 영화관에서 무한히 뻗어나가며 유령아이들과 직접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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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피찻퐁은 마지막 샷을 통해 이 영사기의 수평적인 빛을 관객에게도 보여준다. 이 빛은 단순히 스크린 위에 투사된 제한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고, 소리와 함께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며, 이를 직접 마주하는 관객에게 일종의 공감각적인 체험을 준다.

이 영화는 수직적인 빛이 지배하는 영화관을 인식하는 쇼트로 시작해서, 수평적인 빛을 관객이 직접 마주하게 되는 쇼트로 끝난다. 아핏차퐁은 그 과정에서 나부야의 유령들을 과거의 기억에서 현재의 영화관으로 소환함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수평적인 빛의 불놀이를 통해 스크린의 경계를 말소시키도록 한다. 그럼으로서 영화는, 스크린이라는 경계 위에 쏘아진 현실과 분리된 "과거 기억의 재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영화관 속에서 무한히 뻗어나가며 관객들에게 하나의 공간 속에서 체험되는 것이 된다.

아피찻퐁에게 영화란, 과거의 기억과 현실이 경계가 지워진 채 한 곳에서 존재하는 공간이며, 그 공간을 관객으로 하여금 체험하게 하는 매체인 것이다. 특히 이 영화는 원래 설치미술이었다는 점에서, <나부야의 유령들>은 "체험되는 영화"의 한계를 시험하는 그의 또다른 실험 중 하나이자, 새롭고 독특한 "경험"으로서 관객을 매혹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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