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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로지코믹스>를 읽고모바일에서 작성

프레디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2.13 1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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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코믹스는 두개의 축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세 층위의 이야기이다.

1. 2010년대 이 책을 만드는 저자들의 이야기

2. 1939년 반-참전 주의자들과 함께한 러셀의 강연

3. 그 강연에 담긴 러셀의 인생과 논리학자들의 이야기

이 세 층위의 이야기들이 자유자재로 교차되며 책을, 또한 2000년이 넘는 논리학의 역사를 이끌어나간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떠받드는 두개의 기둥은, 즉 이 책의 주제는 "지도"와 "실재", "논리"와 "광기"의 문제이다.

<로지코믹스>는 결국 논리학자들의 비극적 서사시로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논리적 확실성", "의심할수 없는 확실한 앎"이라는 이타카를 찾아 떠나는 미치광이-논리학자 영웅들의 모험인 것이다.

또한 이 책의 기본적 전제는 "광기에서 비롯한 논리학"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논리학자들로부터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들 모두가 정신적인 편집증을 아주 심하게 앓고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광기로부터 논리학이 비롯되었다고 보기까지 한다.

유전적인 정신병을 앓았던 러셀

연속체 가설의 증명에 실패하고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한 칸토어

반유대주의에 빠져 여생을 보낸 프레게

정신지체자 아들을 인정하지 않았던 힐베르트

3명의 형이 자살하고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렸던 비트겐슈타인

평생을 신경증으로 고통받다 결국 정신착란으로 굶어죽은 괴델

동생애로 강제 호르몬 치료를 받고 청산가리 사과를 깨어물고 자살한 튜링

의 사례를 보면 언뜻 그러한 주장은 타당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책에서 실재, 즉 세계는 모순덩어리이며 불완전하고 불확실하다. 논리학자들은 그러한 혼란스러운 광기의 실재를 누구보다도 두려워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혼란스러운 실재를 명확한 지도로 환원"하기를, 불확실한 세계를 명확한 논리로 치환하기를, 불완전한 세계를 일관되고 완전한 체계로 대체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광기로부터의 구원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갈망했으며, 그 천국으로의 한줄기 오솔길이 바로 논리에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논리학자들은 <로지코믹스>라는 거대한 비극 속에서 끊임없는 실패를 맛본다. 기본적 집합 개념을 무너트린 러셀의 역설, 그리고 논리주의자들의 일관되고 완전한 수학 체계에 대한 야망을 완전히 박살내버린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까지. 또한 그들의 실패는 학문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위에 서술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논리학자들은 삶에서 더 큰 실패를 맛보며, 더욱 완전한 논리체계의 지도를 향한 광기와 집착 속으로 침전해간다.

논리학에 대해 아직 기본적인 술어논리밖에 모르는 나에게도 이 책은 어렵지 않았다. 이 책은 근본적으로 "논리학"이 아닌 "논리학자"에 대한 서사시였기 때문이다. 강박증 환자로서, 논리학자들의 인간적인 측면에 상당한 공감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지도"와 "실재"의 혼동이라는 이 책의 주제는,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더미의 역설을 보자. 쌀 한 더미에서 쌀 한 톨을 제거하면 그것은 여전히 쌀 더미이다. 그렇게 계속 쌀을 한 톨씩만 제거해나간다고 해보자. 그러면 결국 쌀이 한톨만 남아도 여전히 쌀 더미라는 역설에 도달한다.

이러한 더미의 역설은 퍼지 논리의 적용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 퍼지 논리는 배중률(어떤 명제는 참 또는 거짓의 진릿값만을 가진다)을 포기하고, [아주-참, 무척-참, 적당히-거짓, 완전히-거짓]과 같은 그 중간값을 인정하는 더욱 연속적인 논리 법칙이다.

제논의 "화살의 역설" 역시 비슷한 선상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날아가는 화살은, 한 점과 그 다음 점에서 머무르게 될텐데, 그러면 날아가는 화살은 머물러 있는 셈이 된다. 그러나 이 역설 또한 연속적인 시간을 불연속적인 점으로 쪼개는 잘못된 전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결될 수 있다.

이 책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주치의 선생님께서 언젠가 내게 해주셨던 말씀이 있다.

한창 강박사고로 고생할 때, 선생님께서는 일직선으로 된 종이 띠를 집어들더니 구부리면서 말씀하셨다. 이 종이가 그렇듯이, 우리 삶의 극과 극은 결국 닿아있다고. 그러나 그 끝은 우리가 결코 살 수 없는 곳이고, 우리의 삶은 그 사이 어디에선가 전개될 수 밖에 없다고. 우리의 삶은 극단이 존재하는 직선이 아닌 원형이어야만 한다고.

분명한 것은 자연은 연속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불연속적이고 명확히 구획된 체계 위에 그것을 놓고자 한다는 것이다.

논리학자들의 고통도 나의 그것과 비슷한 것이 아니지 않았을까 싶다. 세계는 지도로 환원될 수 없다. 이 책은 그것이 바로 광기의 정의라고 말한다. "지도와 실재를 혼동하는 것"

그럼에도, 우리의 인식체계를 자연과 최대한 흡사하게 확장시키고자 했던 그들의 노력은,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효과적"이었다고 해야만 할 것 같다. 단적으로, 내가 지금 컴퓨터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조차, 그들의 노고 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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