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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갤문학]하얀 결혼(7)

태지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23 16:01:50
조회 419 추천 13 댓글 2
														

1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6458

2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8080

3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9174

4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9405

5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9519

6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71066


“지하실에 있는 일기, 언제든 읽어도 돼.”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다. 옆집 개가 새끼를 낳고, 올해 태풍으로 마을이 다소 어수선해도 하늘의 태양은 변함없이 동쪽에서 뜨고 우리는 달걀을 반찬으로 먹는다. 너는 내일은 조금 더울 거라던가, 저녁 반찬은 볶음밥이라던가 하는 이야기로 언제나 운을 띄웠다. 우리는 그렇게 몇 년을 몇 달처럼 살았고 며칠을 몇 광년처럼 살았다. 그저 그렇게 살았다. 지구가 돌고 새 생명이 태어나고 죽듯이 우린 규칙과 법칙에 따라 살았다.

  그렇기에 그 주제는 별똥별이나 우박처럼 일상에선 약간 벗어난 성질을 품고 있다.


“남의 사생활을 읽어도 되는 거야?”

“일기를 들켰다고 부끄러울 나이는 지났으니까.”


  톡. 포크에 찔린 노른자가 터지며 흰자가 노랗게 물든다. 


“혹시, 지하에 있었던 일?”

“정확히는 내가 겪어온 시간들.”


  그런 말을 하면서도 너의 얼굴은 고요함 그 자체였다. 과거의 아픔에 몸서리치거나, 혹은 돌아갈 수 없는 추억에 눈물을 보이거나, 아님 미처 풀지 못 한 앙금에 분노를 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심하다 할 수 있냐 하면 그건 분명 아니었다. 길가의 돌멩이, 혹은 의식하며 인식하지 않는 풍경을 보는 얼굴도 아니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뚜껑을 열기 전 고양이가 죽어있을 가능성과 살아있을 가능성이 공존한다는, 세간에 알려지면서 본질이 다소 흐려진 이론을 가져와야 그럭저럭 설명이 될 얼굴이었다. 뚜득. 잘못 조준한 포크가 접시를 신경질적으로 긁는다.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 할 수도 있지만, 나름 기록해봤어.”


  이유는? 이라고 물어보려 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갔으나 어느 쪽도 그리 시원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안개 속에 손을 넣고 쥐는 것과 마찬가지다. 촉촉한 감촉이 손바닥에 닿아도 막상 꺼내 보면 선명한 형태가 남지 않는 것처럼.


“지금 풀고 있는 퍼즐이 너무 질리면 읽어볼게.”


  하루에 한 페이지도 풀지 않는, 파피루스가 선물한 퍼즐 책을 완벽하게 풀려면 강산이 몇백 번은 바뀌어도 시원찮을 것이다. 그럼에도 너는 그렇게 하라며 남은 식사를 마저 먹는 것이었다. 읽어도 읽지 않아도 너에겐 아무 상관도 없을 거라는 듯. 내가 다혈질이거나, 혹은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 하거나, 혹은 애정에 의심을 품은 자라면 망설이지 않고 읽었을 것이다. 내가 지나친 의심을 품고 있거나, 가설에 미련을 못 버린 채 과거를 배회하고 있다면, 혹은 지금 너무 행복하여 그것이 부서질까 불안한 비관론자라면 망설이다 읽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읽을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그 말을 들은 후로도 몇 년간은 읽지 않았다. 한 번은 물어봤다. 막상 그렇게 말했는데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어쩔 거냐고. 그랬더니 너는 그것도 그렇네, 라며 이미 예상했다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그런 너의 반응에도 놀라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놀라거나 설레거나 신선하단 감정을 품기엔 닳고 닳았다. 남아있는 건 무릎의 연골이며 그것 또한 언제가 닳아 사라질 것이다.

  그 사이 파피루스는 두 번 정도 연애를 했고 메타톤은 세계급 스타는 아니어도 나름 이 나라에서 잘 나가는 스타가 되었다. 알피스랑 언다인은 여전히 깨가 쏟아지며 토리엘은 학교를 증축했다. 아스고어는 토리엘에 대해 어느 정도 마음을 정리했는데, 오히려 토리엘과 좀 더 편안해진 듯한 모습을 보여 주변 사람들이 안심할 정도였다. 우린 그들의 변화를 관찰할 뿐이었다. 우리는 변하지 않았단 소리를 들으며 아직 살아 있었다.

  앞자리 숫자가 한 번 바뀐 탓일까, 소녀에서 여인으로 변했던 그 시기처럼 말하기는 어려우나 눈으로는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변화를 보였다. 너는 확실히 나이를 먹었다. 나 또한 뼈의 탄력이 미묘하게 없어짐으로써, 뼈 또한 노화할 수 있단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시간이 돌아간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노화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는데. 파피루스 또한 그런 변화를 알아차린 건지 저번에 만난 이후 택배로 보습제를 하나 보내준 것이다. 쓴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보습제를 처음 뜯고 바른 날, 지하실에 내려갔다.


“지하실 일기.”


  청소를 끝낸 네게 다가가 운을 띄운다. 너는 조용히 나를 바라 본다.


“그거 너무 많던데.”


  두툼한 노트 한 권이 수십 권은 꽂혀있는 책장을 보며, 각오를 하고 짐작을 했음에도 숨이 턱 막히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그래도 몇 권은 꺼내 읽어봤다. 자신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네가 아닌 다른 제 3자가 감정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오직 사료로서의 기능을 위해 기록한 듯 어떤 감정의 들썩임도 확인할 수 없었다. 거대한 두 눈이 나를 천장에서 응시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침대 밑 귀신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된 듯한 기분에 노트를 도로 꽂고 올라왔단 사실은 털어놓는 게 좋을까 감추는 게 좋을까.


“아직 다 못 했는데. 어떻게 하지.”

“다 기록할 순 있고?”

“아마, 안 되겠지.”


  너는 머쓱하게, 그러면서도 머뭇거리는 기색 없이 웃어 보였다. 


“읽을 생각이 들었어?”

“몇 권만 읽었어.”

“어땠어?”

“잘 썼어. 뼈가 시큰거릴 만큼.”


  지하실의 차가운 공기와 희미한 먼지 냄새가 여기까지 쫓아온 것 같다. 나는 소파에서도, 그 중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앉아 뼈를 데운다.


“궁금하면 물어봐도 돼.”

“이런 질문, 꽤 많이 받았나?”

“응. 많이.”


  너는 천천히 입을 연다. 동화를 들려주는 어머니와도 같은 음색이다.


“으스대기도 했고, 짜증 내기도 했고.”

“나랑 이렇게 살아본 적은?”

“시간선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느라 살아보기도 했고, 파피루스랑 엄마가 먼저 죽으면서 갈 곳이 없어져서 살기도 했고.”


  나는 내가 읽었던 노트의 내용을 떠올렸다. 네가 지나온 시간은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었다. 쥐를 해부한 뒤 꼼꼼하게 기록한 기록물마냥 네가 해체되고 갈기갈기 찢긴 시간 또한 존재 했다. 괴물이나 인간이나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고 말할 만큼 잔혹하게 산 시간도 있었고, 괴물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시간도 인간이 과거의 영광을 한 번 더 누렸던 시간도 있었다. 그 사이에서 너는 톱니바퀴에 낀 가여운 쥐 마냥 내장이 터지고 가죽이 찢어진 채로 굴러가곤 했다. 그럼에도 네가 기록한 노트엔 눈물 자국이나 종이가 구겨진 흔적 따윈 없었다.


“나 말고 다른 괴물하고 살아본 적은?”

“음. 많았지. 가끔 언다인이랑 알피스가 잘 이뤄지지 않는 시간도 있었거든.”


  그런 시간도 있었다니, 놀랍긴 하면서도 그럴 수도 있다고 자연스럽게 납득한다. 가끔 둘이 무서울 정도로 싸운 적도 있었으니까.


“나 말고 다른 괴물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본 적은?”

“의도적으로 말한 적도 있고, 의도치 않게 털어진 적도 있고.”

“의도치 않게?”

“처음엔 너무 괴로워서, 몇 번이나 죽으려고 시도했었거든. 그 과정에서 알게 되기도 했었어.”


  다치고 흉터를 얻고, 그 흉터마저 완전히 아물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고, 그 아물어버린 흔적조차 망각할 만큼 긴 시간을 거쳐온 듯 너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다들 자기 일처럼 힘써서 도와줬어. 그래도 실패로 돌아갔지만, 한없이 고마웠어. 물론 돌아간 뒤엔 슬펐지만.”


  그 뒤로도 몇 번의 질문을 했지만, 생각보다 동요가 일어나진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곧 질문하기를 멈췄다. 무엇보다 생각 이상으로 의미가 부여되지 않았다. 그 시간은 없는 시간이나 마찬가지다. 적어도 그런 시간이 있었단 기억이나, 하다 못 해 데쟈뷰라도 있다면 모르겠으나 어떤 기시감도 잔류감도 없는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에 불과했다. 남의 이야기, 아니 잘 짜여진 소설을 듣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말없이 앉아 있었다. 땅거미가 지고 그림자가 짙어지고, 텔레비전도 켜지 않고 우린 가만히 있었다. 그저 한 뼘 떨어진 곳에 손을 놓은 채 말없이 허공을 응시하거나 그림자가 서서히 기우는 것을 바라봤다.


“저녁 먹을래?”


  먼저 일어난 건 너였다. 나는 그러겠다며 일어나 어두워진 거실에 불을 켰다. 전원을 누른 텔레비전에서, 방금 저 멀리 있는 나라에서 내전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으며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텔레비전은 여전히 제 목소리를 내느라 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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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맺기가 다소 애매하네. 예상은 10이었는데 12까지 갈지도.

가볍게 썼는데 벌써 7까지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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