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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번역] 뼈형제가 프리스크 키우는 소설 -9- (완)

ㅃㅂㅎ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04.23 14:06:34
조회 4441 추천 116 댓글 32
														

저자 LeiaLibelle
원제 Puzzles might be fun if you tried them
출처 http://archiveofourown.org/works/5205647


* 번역 지적은 언제나 환영한다.


1-2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288663
3-4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292633
5-6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308974
7-8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318762
9-10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331889
11-12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345127
13-14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349817
15-16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353508



퍼즐도 해 보면 재밌을 거야


파피루스는 인간을 좋은 사람으로 만든다고 약속했지만,
끊임없이 누굴 죽이려는 아이를 키우기는 역시 만만치 않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말자.




17.



  너는 이번에는 플라위를 놓치지 않을 작정이다. 사방으로 날아오는 덩굴은 신경 쓰지 않고—샌즈가 처리해 줄 거라고 믿고—적을 향해서만 달려간다. 덩굴 공격이 통하지 않자 플라위는 또 날카로운 꽃잎들을 쏘아 보낸다. 그 중 한 장이 스친 팔에 피가 흐르지만, 깊이 베이지는 않아 다행이다.


  너는 꽃잎 탄막에 막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때를 기다린다. 이런 공격을 계속 할 순 없을 거다. 등에 꽃잎을 맞고 주저앉을 뻔했는데 마침 공격이 멎는다. 쉴 틈은 없다. 기회가 있을 때 반격해야 한다. 팔과 등이 아픈 건 아직 견딜 만하다. 진짜 아픈 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플라위를 덮쳐 칼을 휘두른다. 꽃은 또 땅속으로 달아나지만, 이번에는 꽃잎 반쪽이 잘려 팔랑 떨어진다. 꽃이 아픔을 느낄까? 상처를 낼 수만 있다면 너는 상관 없다.


  아픈진 몰라도 화가 나긴 잔뜩 났는지 다음 공격은 차원이 다르다. 사라진 플라위를 찾다 보니 땅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샌즈에게 가려는데 한 걸음도 떼기 전에 거대한 덩굴 수십 줄기가 네 주위 눈밭을 뚫고 솟아나서 새장처럼 너를 가둔다. 너는 곧장 덩굴들을 칼로 베어 보지만, 워낙 촘촘히 뭉쳐 있어서 흠도 나지 않는다.


  “헤, 어쩌지. ‘골’치 아프게 됐네.”


  지금 같은 때 농담이 나온단 게 안 믿기지만 샌즈니까 놀랍지도 않다. 샌즈가 지켜줄 수 없게 된 건 조금 불안하긴 한데 원래 너무 의존하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에는 너 스스로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눈 쌓인 땅에서 플라위가 튀어나와 아까보단 짜증이 난 표정으로 너를 째려본다. 뭔가 속셈이 있는지 입꼬리가 비뚜름히 올라간다.


  “안 피곤해? 우리 이제 그만 할까?”


  덩굴로 막힌 이 좁은 공간에서 도망치긴커녕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단 걸 인정하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건 플라위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번 공격으로 끝장을 볼 속셈일 거다. 이번만 넘기면 반격할 기회가 온다. 너는 다가올 공격에 대비해서 신경을 곤두세운다.


  플라위는 네 예상대로 금방 공격한다. 널 에워싼 덩굴들에 가시가 돋고, 덩굴들이 한꺼번에 네게 날아온다. 가슴이 쿵쿵 뛴다. 뾰족한 가시를 칼로 쳐내 보려 하지만, 그런 건 애니에서나 가능하지 너 같은 꼬맹이가 따라하긴 어림없다. 쳐내기는 금세 포기하고 피하는 데 집중한다. 가시 피하기에 겨우 익숙해지려는데 못 보던 덩굴에 다리를 맞고 아파 비명 지른다. 다른 덩굴들도 가세한다. 그나마 가시 없는 건 좀더 피하기 쉽다. 온전히 서 있기 힘들어져 가던 중에 공격이 잦아든다.


  너는 얼른 팔다리를 살핀다. 생채기가 잔뜩 났고 깊이 박힌 가시도 한둘이 아니다. 피하느라 딴 생각 할 틈이 없을 때는 찔린 줄도 몰랐는데 가만 보니 아픔이 확 밀려온다. 끊어질 것 같은 정신을 애써 다잡는다. 아픈 걸 신경 쓸 시간이 없다. 플라위가 빈틈을 두 번 주진 않을 것이다.


  플라위는 네 결심을 눈치채고 두렵고도 화나는지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네가 뛰기 시작하자 다급히 자기 앞에 덩굴 울타리를 치지만, 느리다. 너는 새 덩굴들을 칼로 뚝뚝 끊고 다른 손으로는 가는 꽃줄기를 휘어잡는다. 플라위를 땅에서 뽑아내자, 너를 에워싸던 덩굴들이 금세 생기를 잃고 허물어져 눈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너의 시린 얼굴에 다시 바람이 스친다. 바로 뒤에 샌즈가 말없이 서 있다. 손에 잡힌 플라위는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 빠져나갈 수 없단 걸 알고 그만둔다. 너는 숨을 깊이 들이쉰다.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뭘 기다려?”


  플라위가 웃으며 묻는다. 너는 대답하지 않는다. 놈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화가 치민다. 밉다. 너무 밉다. 영원히 없어져 버리면 좋겠다. 죽이는 게 나을 것 같다. 이 녀석이 착해질 일은 절대 없다는 걸 너는 안다. 너는 파피루스 같은 성자가 아니다. 누구든지 노력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네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지는 건 너야. 리셋하면 내가 돌아와서 다 죽여버릴 거야. 안 하고 나를 죽이면 네가 죽인 죄 없는 사람들이 영원히 못 돌아와. 그렇다고 나를 살려주면 내가 다른 사람들도 죽여버릴 거야!”


  플라위는 깔깔대며 너를 비웃는다. 너는 주먹을 움켜쥔다. 줄기가 쥐어짜인 꽃은 이내 입을 다물고 얼굴을 찡그리며 괴로워한다. 이 자식 말은 들을 필요 없다. 이제 끝내 버리자. 너는 이걸 죽이고 싶다. 너는 이걸 죽여야 한다.


  그러니 어서……


  “아니.”


  뭐라고?


  플라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너를 빤히 쳐다본다.


  “안 죽일 거야.”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죽이고 싶다는 거 나는 알아. 네 감정을 나한테 숨기진 못해. 이제는 아닌 척 하려는 거야?


  “죽여버리고 싶지만 안 죽일 거야.”


  “바보야, 미친 거야? 네 친구들 다 죽인단 거 거짓말 같아? 내가 착해질 수 있을 줄 알아?”


  “네가 변할 거라곤 생각 안 해. 그런데 나는 변할 수 있어. 나는 너랑 달라.”


  …….


  “그렇게 멍청한 얘긴 처음 듣는다!”


  플라위는 폭소한다.


  “넌 힘 없고 영혼 뺏긴 어린애일 뿐이야. 네가 날 어쩌겠어? 난 벌써 모든 괴물들을 고통 받게 할 계획을 세워 뒀어. 그게 실현되면 너 같은 건 나한테 상대도 안 돼!”


  너는 이를 악물며 고개 숙인다. 자신이 없어진다. 꽃이 하는 말은 온몸에 박힌 가시처럼 아프다. 네가 정말 할 수 있을까?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걸로 충분할까? 결국에는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응.”


  “뭐?”


  “너를 죽이지 않고 막을 방법을 찾아낼 거야. 네가 착해질 순 없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옛날에는 너도 착한 사람이었어. 내 기억 속엔 그런 너도 있어.”


  지금까지 네가 한 말 중에 제일 길었던 것 같다. 그 따위 쓸데없는 말 하려고 들이마신 공기가 아깝다. 아직도 모르겠어? 왜 자꾸 희망을 품어? 지금까지 희망을 짓밟힐 때마다 괴로웠던 걸로도 부족해? 지금까지 그렇게 아파했던 걸로도 성에 안 차? 프리스크, 너는 행복해질 수 없어!


  “널 죽여버릴 거야.”


  플라위가 속삭인다. 으름장 같기도 다짐 같기도 하다.


  “지금 날 살려주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죽여버릴 거야.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계속 죽일 거야.”


  “내가 못 그러게 할 거야.”


  “나는 다 기억할 거야!”


  “너도 기억 못 해.”


  너는 차분하게 대꾸한다. 플라위는 대답하지 않고 허를 찔린 표정이 된다.


  잠깐. 너 설마……?


  너는 말없이 작은 꽃을 땅에 내려놓는다. 꽃은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든 표정을 짓고는 뒤돌아서 땅속으로 사라진다. “후회할 거야” 비슷한 말이 들린 것 같다.


  꽃이 사라졌다. 드디어 끝났다. 너는 눈을 감는다. 정신이 아찔해서 쓰러지기 직전 뼈다귀 손이 등을 받쳐 준다. 너는 다시 눈을 뜨고 샌즈를 본다. 살며시 미소 짓자 샌즈도 마주 웃어 주지만, 표정이 좀 이상하다. 그러다 너를 앉히고 가시를 뽑아 준다. 너는 머뭇거리다 입을 연다.


  “죽이는 게 옳았을까?”


  “나도 몰라.”


  “난 정말로 죽여버리고 싶었어. 그런데…… 무서웠어.”


  “뭐가 무서웠는데?”


  “또 누굴 죽이면, 영원히 내가 아니게 될 것 같았어. 그러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이젠 아니야.”


  샌즈는 대답하지 않는다. 너는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한 적이 드물어서 조금 목이 아프다. 한참 뒤 샌즈가 묻는다.


  “이제 어떡할 거야?”


  너는 하늘을 보았다가, 파피루스가 서 있던 자리를 본다. 떠오르는 기억들 때문에 입술을 깨물다가 다시 샌즈를 보며 애써 웃음 짓는다.


  “나는 다시 시작하고 싶어.”




18.



  잠시 너도 샌즈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추운 바깥에 오래 있었더니 뺨이 얼얼하고 다리와 발은 감각이 거의 없어졌다. 싸우다가 베이고 찔린 아픔도 둔해진 건 다행이다. 그런데 어차피 이제 상관 없잖아? 너 돌아갈 거잖아. 폐허에 떨어지고 모든 게 시작되던 날로 돌아갈 거잖아.


  너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다시 샌즈를 쳐다본다. 해골의 얼굴엔 언제나와 같은 웃음이 걸려 있다. 잠시나마 전부 예전처럼 괜찮은 것 같다. 바위 뒤에서 파피루스가 나와 눈덩이를 던질 것 같다. 집에 돌아가서 이불 두르고 핫초코를 마시면 따뜻할 것 같다. 다같이 TV 보며 느긋한 저녁을 보낼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날들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 믿고 싶지 않아도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너는 안다. 조용조용 한 마디씩 말한다.


  “내가…… 아주 나쁜 짓들을 했다는 거 알아. 네 말대로 부서지면 원래대로 고쳐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는 걸 알아. 그래도…… 그래도 나는 다시 해 보고 싶어. 다음에는 더 잘 해 보고 싶어.”


  힘든 줄도 잊고 또 길게 말을 했다. 너는 불안하고 무섭고 샌즈가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지금 바로 리셋해 버리고도 싶다. 내가 봐도 지금 네 의지라면 충분하다. 그보다 더 대단한 걸 할 수도 있다. 이 시간선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이 완벽하게 없어지도록 진정한 리셋을 할 수 있다. 플라위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네가 생각하는 게 그거 맞지?


  샌즈가 갑자기 묻는다.


  “그럼 이제 작별인가……? 나한테만 그런가. 다음 샌즈한테 나 대신 안부 전해 줘. 아, 아니다. 하지 마. 그거 너무 어색하겠다.”


  너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참 먼 길을 왔구나. 이젠 그냥 평범하게 이상한 애 같아. 어쩌면 다음 시간선에서는 너랑…… 친구가 될 수도 있을까? 모르겠다. 부탁 하나만 들어 주라. 다른 나한테는 여기서 있었던 일 얘기하지 말아 줘. 그냥 지금 그대로의 너를 보여 줘.”


  샌즈의 말을 듣다 보니 네 가슴이 아리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마지막 인사 같다. 실은 마지막이 맞다. 그래서 보내기가 이렇게 괴로운 거다. 리셋을 하면 이 샌즈도, 너와 해골들이 같이 보낸 시간도 영원히 사라진다는 걸 너는 안다. 따져 보면 긴 시간은 아니다. 오랜 세월처럼 느껴지지만 세어 보면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겐 그 시간이 바깥 세상에서 보낸 평생보다 더 소중하다.


  이건 네가 저지른 끔찍한 잘못들에 대한 벌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너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너에게는 모든 걸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영원히 죄책감이 떨어지지 않으리란 걸 사무치게 잘 알고 있다. 네가 꿈꾸는 더 나은 결말을 이뤄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너는 도전해 보기로 한다. 이것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옳은 일이라는 걸 안다. 파피루스를 위해서, 샌즈를 위해서,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하지만…….


  너는 입술을 깨문다.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이래도 괜찮을지 속으로 더 고민하려다가, 샌즈에게 달려들어 작은 팔로 있는 힘껏 꽉 껴안고 늘 입는 파란 옷에 얼굴을 파묻는다. 케첩과 느끼한 음식 냄새가 난다.


  “야야, 조심해. 갈비뼈 간지러.”


  당황해 하면서도 손으로는 네 머리를 다정하게 토닥여 준다. 너는 조금도 떨어지고 싶지 않지만 결국 놓아 준다. 이대로 오래 있으면 떠날 결심이 흔들릴 것 같다. 이야기를 더 하고 싶은데 생각나는 게 없다. 생각하는 사이 샌즈가 먼저 말한다.


  “그런데 꼬마는 이름이 뭐야?”


  뜻밖의 물음에 너는 눈을 깜빡거린다.


  “프리스크.”


  “프리스크? 괜찮은 이름 같네. 다음 샌즈한테 알려 주면 재밌는 농담 많이 나오겠다. 후회 안 할 거야. 내가 보장할게.”


  샌즈는 윙크를 하고 너는 킥킥 웃는다. 언젠가 정말로 친구가 된다면 너도 농담 좀 배우기로 한다.


  “안녕, 꼬마. 잘 지내.”


  너는 고개를 끄덕인다. 눈물이 핑 돌면서 앞이 흐릿해진다. 샌즈의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처럼 웃고 있을 줄을 안다.


  눈을 감자, 모든 게 없어진다.




  * * *




  너는 노랑 꽃밭에서 눈을 뜬다. 실바람이 귓바퀴를 살랑살랑 어루만지고, 꽃 향기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팔다리를 뻗어 보니 더는 춥지도 아프지도 않다. 다른 네가 된 것 같다. 달라진 게 맞다. 너는 LV1로 돌아왔다. 우리가 이룬 일이며 우리가 얻은 힘이 그 잠깐 사이 모두 사라졌다. 지금 플라위와 싸운다면 아마 네가 질 거다.


  하지만 네 속엔 의지가 차오른다. 그런데도 더 가뿐하다. 짓누르던 죄악감이 거의 다 떨어져 나가고, 작은 점 하나만 남아 영혼 속 깊고 깊은 구석에 가라앉아 있는 것 같다. 누군가를 죽이는 순간 뛰쳐나오기를 벼르고 있겠지만.


  나? 나는 가만히 기다리겠다. 이렇게 갇힌 채론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돌아올 날이 있을 거다. 딱 한 순간의 의심이면 충분하다. “몇 마리만 죽이면 어떨까? 생명력과 방어력이 조금만 더 높아지면 강한 적을 상대하기 훨씬 편할 텐데. 별로 달라질 것도 없어. 괴물들도 먼저 나를 공격한 잘못이 있잖아?” 봐봐, 다 이렇게 시작하는 거야. 처음부터 나쁜 사람 별로 없어. 힘들어질 때에 비로소 다른 길에 드는 법이다. ‘편한’ 길로 가려고.


  “나는 혼자가 아니야. 친구들이 도와 줄 거야.”


  너는 여전히 꽃밭에 누운 채로 조그맣게 말한다. 그래, 그렇겠지. 친구들이 이것저것 챙겨 주겠지. 그런데 진짜 역경이 닥치면 아무도 도와 주지 않아. 그러면 너는 도로 혼자야.


  “난 괜찮을 거야.”


  안 괜찮다는 거 알지. 포기하고 싶을 때가 올 거다. 절망하는 때가 올 거다. 결국에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게 될 거다. 프리스크, 나한텐 숨길 거 없어. 어려운 결정들은 나한테 맡기니까 편하지 않았어? 해골들이 너한테 말을 걸고 네 머리에 괴상한 생각이며 소원 따위 집어넣기 전에도 괜찮지 않았어? 뭐하러 남을 신경 써. 마지막엔 너를 배신할 텐데. 언젠가 내 말이 맞다는 걸, 내가 만들려는 결말이 최선이란 걸 깨닫게 될 거야. 언젠가는 너도 지루해질 거거든.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어땠을지 궁금해질 거거든.


  너는 대답하지 않는다. 아직도 자신이 없나 보다. 누구든지 마찬가지야. 미래는 알 수 없어. 혼자가 되는 건 무섭지 않아?


  “그래서 너도 나랑 같이 있는 거야?”


  이 멍청이. 왜 웃어? 모든 게 끝나 버렸으면 하는 너의 절망, 너의 바람이 나를 깨운 거야. 나는 네가 네 할 일을 마치고 이 답답한 세상을 없애 버릴 때까지만 지켜보는 거야.


  “너도 사람이었잖아. 너도 친구가 있었잖아.”


  그건 이제 사실이 아니야. 그 삶에선 미움밖에 남은 게 없어. 끝까지 변치 않는 것은 미움밖에 없어.


  “아스리엘은?”


  ‘꽃’? 웃기지 마.


  “좋아했잖아.”


  내가 말했지. 나는 이제 미움 말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 너를 이용하는 것처럼 걔도 이용하다가 쓸모 없어지면 버릴 거야. 이런 얘기 하는 것도 시간 아깝다. 가서 너 원하는 대로 행복한 척이나 하고 살아. 언제가 됐든 나를 부를 날이 올 거다.


  “우린 행복해질 수 있어.”


  아니, 우린 행복해질 수 없어. 너만은 잠시나마 행복해질 수도 있을지 몰라도, 나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어.


  됐다. 그만 할게.




  * * *




  “잘 가렴, 아가야.”


  따뜻하고 포근한 팔이 너를 놓아 준다.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가는 동안 너는 돌아서지 않는다. 언젠가 토리엘을 다시 만나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 이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영영 여기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이번에는 모든 걸 더 낫게 만들겠다고 마음속으로 샌즈와 파피루스에게 약속했으니까.


  문을 지나 폐허 밖으로 나오자마자 찬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목구멍을 할퀸다. 다시 보는 눈밭은 가슴 아픈 기억들을 끌어당기지만, 또한 새 출발의 증거이기도 하다는 것을 너는 안다. 눈 위로 발을 떼어,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만큼 높다란 나무들 아래로 난 길을 걸어간다. 놀랍도록 멋진 풍경이다. 이런 풍경을 전에는 못 봤다니 믿기지 않는다. 그 때는 나무를 올려다 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생각에 잠겨 있느라고 다리 앞에서 일어날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난데없이 들리는 목소리에 너는 화들짝 놀란다. 착각했을까 봐 두려워서 차마 뒤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는다.


  하지만 인기척은 점점 더 가까워지더니 악수를 하자고 한다. 너는 천천히 돌아서서 뼈다귀 손을 잡는다. 손바닥에 뭐가 눌리는가 싶더니 괴상한 소리가 한참 이어진다. 너는 아무 생각 없이 풉, 하고 웃음이 났다가, 이내 배를 잡고 깔깔 웃는다. 바보 같다. 이렇게 촌스러운 장난을 요새 누가 재미있어 하나. 그래도 지금 너는 웃음을 그치지 못한다. 샌즈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은 어느 때보다도 시원하다.


  “헤헤헤. 옛날부터 써먹었던 방귀쿠션 악수. 언제나 재밌단 말야.”


  네 미소도 가시지 않는다. 터질락 말락 치미는 울음을 안간힘을 다해 참느라고 목이 아프다. 할 말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렇게 슬프면서 이렇게 행복할 때가 있을 줄은 몰랐다.


  너는 말없이 샌즈를 따라가다 샌즈가 알맞게 생긴 등 뒤로 숨으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에는 하란 대로 그 뒤에 서서 다음에 벌어질 일을 기대한다. 눈을 감고, 웃음소리 내면 안 된다고 거듭 되새기지만,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다. 너를 보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정말 딱 맞는 등이다.


  “여어, 동생.”


  샌즈가 능청스레 말한다.


  발소리가 다가오자 네 웃음은 더욱 깊어진다.


  이제 뭐든 시작할 수 있다.




  * * *


  끝.













* 아이다운 어휘를 고르려고 애썼고, 독특한 서술 시점을 살리려고 애썼고, 초반과 중후반의 문장이 달라 보이게 하려고 애썼는데, 잘 되었는진 모르겠다.

  긴 글 읽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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