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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점 주인의 지게철학

운영자 2017.08.02 14:57:06
조회 138 추천 0 댓글 0
가구점 주인의 지게철학

  

논현역 일번 출구를 나오면 오래된 가구점이 나온다. 70년대 말 강남이 개발되고 주택이 들어서면서 처음생긴 가게였다. 서구취향의 집들이 들어설 때 집주인들은 집에 어울리는 그럴듯한 가구들을 원했다. 그런 호경기를 타고 그 거리에는 가구점들이 번성했다. 강남의 부동산 가격이 뛰고 신흥부자들이 늘어나자 가구점들은 이태리나 독일제품들을 수입해 짭짤한 재미들을 봤다. 달이 찰 때가 있으면 기울 때도 있듯이 장사도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있는 모양이다. 외환위기가 닥쳐오자 가구점들이 하나씩 둘씩 문을 닫았다. 그중 유일하게 추운겨울을 나목처럼 버텨온 가게는 처음에 생긴 그 가구점이었다. 가구점 주인은 나와 친했다. 오랫동안 소송을 맡아 처리해오면서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소송을 대리하다보면 의뢰인의 벌거벗은 속을 알게 된다. 욕심과 분노 같은 마음의 창고에 숨겼던 본성이 그대로 분출하기 때문이다. 그의 가구점은 특이했다. 회색 톤으로 담백하게 처리된 실내에 실용적으로 보이는 소파와 탁자 침대들이 묵직한 바위처럼 각자 침묵하며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어쩌다 손님이 들어오면 한참 뒤에 소리 없이 구석에서 직원이 나와 조용히 뒤에서 지켜보는 정도였다. 가구를 판매하는 것인지 지키는 건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가구점주인은 가구점 뒤쪽의 골방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항상 성경을 읽고 있었다. 그의 옆 탁자에는 기독교 서적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는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러나 소박한 삶의 모습은 항상 똑같았다. 한번은 그가 이런 얘기를 했다.

“내가 어려서 시골에서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자주 갔는데 거기서 깨달은 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 욕심을 내서 지게에 나무를 자꾸 얹으면 그걸 지고 걸어갈 수는 있어요. 그런데 말이죠 돌아와서 지게를 내려놓으려고 무릎을 굽힐 때는 영락없이 나가자빠지는 거예요. 가구점을 하면서도 그걸 잊지 않았어요. 욕심을 부려 부피를 늘이면 우선 가게가 잘 굴러가는 것 같아도 어느 순간 망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빚지지 않고 항상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물건을 만들거나 사오고 그게 다 팔릴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죠. 남들은 미련하게 봐도 세상흐름을 타는 가게들은 들어섰다가 망해 나가더라구요. 그러다 보니 이 가구거리에서 어느새 내가 제일 고참이 됐어. 삼십대 말에 가게를 했는데 이제 칠십대 중반이 됐으니까 말이예요.”

그는 가게 하나 꼭 잡고 성경을 읽으면서 일생을 행복하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생각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입을 열었다. 

“며칠 전 들은 얘긴데 중국에서 한 재벌회장이 마약을 취급한 게 걸려서 사형선고를 받게 됐대요. 그런 데 그 신흥재벌 회장이 후회하면서 하는 말이 이럴 줄 알았으면 가게 딱 하나만 가지고 식구들하고 즐겁게 사는 건데 너무 욕심을 냈다고 하더래요.” 

“맞아요 내가 아는 분도 몇 조나 되는 재산가인데 나와 친해져서 속을 터놓고 여러 얘기들을 해요. 며칠 전에 봤는데 이제 나이를 먹으니까 그 많은 재산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다고 말합디다. 오히려 자식들이 재산을 넘보면서 서로 욕심을 내고 돈을 뜯으려고 하니까 골치만 아프다는 거예요. 재산이라는 게 많아도 그냥 생활의 익숙한 일부지 아무런 감흥이 없다는 거야. 그러면서 자기도 나 같이 가게 하나만 딱 맞을 텐데 너무 많다고 하더라구.”

자기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그리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게 즐겁게 사는 비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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