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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받치는 법치주의

운영자 2010.10.11 16:54:57
조회 229 추천 0 댓글 1

    보험외판을 하는 예쁘장한 삼십대 가난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에게 우연히 한 미치광이가 따라붙었다. 남자는 집요하게 그녀를 괴롭혔다. 남편과 이혼하고 자기에게 오라고 협박했다. 마지막에는 오일 후에 죽이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인간이란 본능적으로 자기의 죽음을 아나보다. 그녀는 경찰서에 가서 사정했지만 거절당했다. 경찰인력이 그런 사정까지 봐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경호업체에 물어봤다. 가격이 너무 비쌌다. 도저히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예고된 날짜에 그녀는 쇠망치로 맞고 살해됐다. 여자의 언니가 법정에 나와 무참하게 희생된 동생의 죽음을 얘기할 때는 살까지 떨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절규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서민들은 죽어야 비로소 요식행위인 사법권이 발동이 된다. 온 언론이 오버한다 싶을 정도로 한 재벌회장을 성토했다. 인민재판 수준이다. 

    묻혀졌던 과거의 악취들이 기회를 만난 듯 불거져 나왔다. 회장은 경찰의 바쁜 특별수사팀이나 조폭을 사병같이 사용했다.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 전에는 불법행위를 했어도 사법기관은 침묵했다. 돈이 많으면 일등석을 타고 서민은 짐칸에 조차 타지 못한다. 변호사를 하다보면 눈이 밝지 않아도 여러 일을 보게 된다. 몇 년 전 한 기업 회장님의 심야폭행사건을 옆에서 꽤 세밀하게 본 적이 있다. 경제전망대 등 방송에서 유명하던 회장의 주문사항은 무죄였다. 그때도 여론이 빗발쳤다. 일단 그걸 의식한 듯 잠시 구속영장이 떨어졌다. 

    변호인단은 밤을 새면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증거인멸에 피해자에 대한 포섭 작전이 감행됐다. 처음에는 분노하던 피해자가 수억대의 돈 약속에 결국 넘어갔다. 목격자들은 돈만 준다면 어떤 거짓말도 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검찰요직에 있던 굵직한 변호사들이 추가됐다. 담당검사는 입건된 회장이 “그런 일 없다”고 부인하는 대사를 조서에 그대로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판사 역시 아무리 기록을 살펴봐도 증거가 없었다. 여론은 잠잠해 져 있었다. 판사는 무죄를 선고됐다. 회장님의 만들어진 결백이 성공했다. 전세가 역전됐다. 어리석은 피해자는 졸지에 자해공갈범이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됐다. 

    내가 보았던 법치주의의 일그러진 한 장면이었다. 무죄판결을 선고받은 그 회장은 24억원이나 들었다고 툴툴댔다. 그는 자기를 몰아 부친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본전을 뽑기 위해서다. 그 회장은 법에서 진실을 말하면 큰일 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회장만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지 모른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크다. 사람들이 몸으로 나서고 있다. 법원 앞에는 회장 아무개를 무기징역에 처하라는 데모가 흔하다. 섬뜩한 내용의 붉은 글씨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사람들은 격렬한 감정에 호소하고 나선다. 재판이 열리는 공판정안도 시끄럽다. 변호사를 욕하고 판사에게 야유를 보냈다. 데모법, 인민재판법, 국민감정법이 소용돌이치는 광란의 현장을 매일같이 보면서 산다. 논리도 법원칙도 없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법관들의 약한 심장은 뛰고 있다. 인민재판식의 여론이 강한 기세를 떨칠 때와 사람들의 망각 속으로 사건이 묻힐 때의 처리가 수시로 달라져서는 안 된다. 

    법은 배안의 바닥짐 같이 중심을 잡는 기능을 해야 한다. 조그만 대한민국은 이제 경제대국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영혼은 아직 바늘 끝보다 더 좁고 각박한 것 같다. 일부 부자들은 과시하고 대접받기는 원하면서도 관용과 정직성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 중에도 청빈이 아닌 적빈(赤貧)이 많다. 부자만 보면 배가 아프다. 정신적으로 우리는 아직도 최빈국이다. 욕심과 경쟁이 들끓는 자본주의의 버팀목은 법치주의다. 법은 뼈와 뼈가 직접 부딪치는 일을 막아야 한다. 돈이나 여론에 흔들려 균열이 생기면 거대한 민주주의의 방파제는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우선 법이 바로서야 나라가 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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