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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명

운영자 2010.11.12 17:39:41
조회 283 추천 0 댓글 0


  얼마 전 오랫동안 간직해 온 작은 꿈을 이루었다. 서초동 법원 담장 밑 손바닥만한 못생긴 땅에 나의 변호사 사무실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베니스의 뒷골목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점방같이 법률사무소 입구를 꾸몄다. 격자창 옆에는 하얀 나무 덧창을 붙이고 배가 볼록한 예쁜 쇠 창틀을 달았다.


  창을 통해 한적한 골목길을 바라다보면서 톡톡 키보드 자판을 두드린다. 스피커에선 플룻과 피아노의 조화로운 선율이 감미롭게 흘러나오고 있다. 그 창을 통해 눈송이가 흩날리는 하얀 겨울도 내다보았다. 이런 따뜻한 행복을 주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린다.


  14년 전 처음 변호사를 시작할 때에는 너무도 두려웠었다. 한 달 임대료와 월급을 준다는 게 두려워 독립된 사무실을 낼 용기가 없었다. 한 국회의원 사무실에 가서 있게 되었다. 변호사를 겸직하는 의원들은 사무실이 국회, 지구당, 그리고 자기의 법률사무소 등 세 군데에 있었다. 국회의원이 안 쓰는 틈을 이용해 그 사무실을 빌려 내 업무를 했다. 그 대가로 국회의원이 민원업무를 해주기로 했다.


  어느 날, 가뭄에 콩 나듯 한 고객이 나를 찾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 고객과 약속한 시간에 우연히 사무실 주인인 국회의원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황급히 고객을 데리고 빌딩 근처 지하다방으로 가야 했다. 더러는 상담을 하다가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다. 명패도, 사무실도 없는 게 무슨 변호사냐고 비웃는 것이었다. 브로커 아니냐는 욕까지 들었다.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허술해 보이는 좁은 사무실도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법원 뒷골목에 예쁜 점방 같은 내 사무실을 가지면 좋겠다고 기도했었다.


  변호사의 화려한 상품성은 경력에서 나오는 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장관, 대법관, 총장, 법원장 등 화려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재벌기업과 외국회사들을 상대하는 거대한 법률회사들이 마천루 같이 서울 곳곳에 우뚝 서서 군림했다. 나 같은 경력도 없는 변호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하나님께 열심히 물었다. 일용할 양식을 돈으로 달라고 투정도 해봤다. 나는 매일 퇴근 전 사무실 불을 끄고 책상 위에 양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다. 돈 때문에 비겁하거나 교활한 꾀를 내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그러면서도 한 달 운영비를 걱정하는 삶이었다. 예수님이 마지막 기도를 할 때 자던 제자들 같이 뜻은 있으나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생활이었다.


  어느 날 명상 속에서 예수님 말씀이 내게 다가왔다. 예수님은 교회 안 벽에 달린 것 같이 구리로도, 나무로도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뼈와 살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 감옥 안에서 얻어맞고 터져서 피가 흐르고 고름이 흐르면서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외롭게 있다는 것이다.


  그랬다. 예수님이 다시 세상에 오신다 해도 화려한 성전에 군림하실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감옥 안에 있는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 가장 비참한 모습의 죄인으로 고문당하고 계실 젓 같았다.


  내가 받은 변호사라는 달란트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 좋은 차를 타고 잘 먹고 잘 살라고 주신 게 아니었다. 내게 보내신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라는 소명을 위해 주신 방편임을 뒤늦게 알았다. 사무실에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어둠 속에서 절규하는 사라들을 찾아 나섰다. 춥지 않은 서울 근처 교도소에서 몇 달 만 더 있게 재판을 끌어달라는 노인을 만나기도 했다. 딸을 위해 죄를 지은 가난하고 늙은 엄마의 법정도 지켜봤다. 시집에 그 사실이 알려질까봐 면회도 못 오는 그 땔 때문에 더 추위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 중에 우연히 대도 조세형도 또 탈주범 신창원도 내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언론에선 그렇게 스타처럼 떠들었지만 막상 무료변론을 하겠다는 변호사는 보지 못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나를 찾아오진 않았을 것이다.


  흔히들 변호사는 도둑놈이라고 비난한다.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비롯해 잘못을 많이 저지르기 때문이다. 욕심은 사람을 도둑으로 만든다. 요즘 나는 마음속으로 법 노동자임을 자처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가 일한 시간만큼 정확하게 품삯을 달라는 것이다. 돈보다 귀한 나의 시간을 거저 빼앗으려는 사람을 나는 도둑으로 간주한다. 돈 번 자랑 말고 검소한 걸 자랑하라고 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길거리 아무 데서나 국수 한 그릇 말아 요기할 수 있는 삶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좁은 사무실이지만 벽 가득히 책들을 꽂아놓고 독서하는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얼마 전에 읽은 소설 『혼불』을 형이 확정된 신창원에게 보내주었다. 그걸 다 읽고 다른 재소자에게 넘기라고 했다. 다들 무척 좋아하더라는 답장이 왔다. 교도소 안 한 켠에 내가 보낸 책들로 도서관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금 소망을 품어본다.


  하나님은 내게 과분할 정도의 축복을 주셨다. 늘 꿈꾸던 예쁜 카페같은 사무실을 만들었다. 땅주인이 금액의 반은 몇 년 후에 내라고 했다. 갑자기 일흔 다섯의 어머니가 사시는 변두리 허름한 집이 넓은 도로로 편입되면서 많은 액수의 보상금이 나왔다. 은행에서는 사무실과 그 위에서 내가 살 집 지을 돈을 꾸어 주었다. 사무실 위층에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주택이 지어졌다.


  매일 밤 나는 조용한 사무실에서 흰 모니터와 대화한다. 감미로운 재즈 음향이 바닥에 은은히 깔린다. 포근히 내려앉은 창 밖의 어둠 속에 노란 나트륨 등이 달같이 둥그렇게 떠 있다. 예쁜 창 앞에서 하얀 눈이 펄펄 내리던 날에는 내가 노인이 되어 죽을 때까지 하루하루 그분이 주신 소명을 다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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