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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년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30년후

운영자 2010.10.28 12:12:02
조회 291 추천 0 댓글 0

  변두리 동네 작고 가난한 교회의 한 구석에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꼬마 알전구에서 붉은빛과  푸른빛이 명멸하는 트리가 세워졌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나는 은박지로 쓴 ‘축 성탄’이라는 글씨와 빨간 필라멘트 속에서 나는 하늘나라를 보았다. 아름답고 신비한 천국. 크리스마스 가 되면 동네교회에서는 연극을 했다. 동방 박사로 뽑힌 아이들이 집에서 가지고 온 보자기를 어깨에 비스듬히 둘러매어 묶었다. 알몸이 드러난 어깨엔 때가 꼬질꼬질했다. 동방박사가 아기예수에게 경배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당시엔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몰랐다. 꼬방동네 교회에서는 맛있는 과자를 앞에 놓고 단 한가지만 외우기를 요구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과자를 얻어먹기 위해 내가 외운 최초의 성경 구절이다.


  1960년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춥고 힘든 삶을 영위해 나가던 시절이다. 당시 홍천에서도 한나절 걸어가야 하는 깊은 산 속에 할머니가 살았다. 이리저리 휜 진흙 벽에 검게 썩은 해묵은 초가를 얹은 집이었다. 두 칸 방의 하나는 곡식을 보관해 두었고 아랫방에서 식구들이 잤다. 초등학교시절 겨울방학이 되면 어머니는 나를 할머니에게 보냈다. 겨울이면 산과들은 두터운 흰눈이 이불처럼 덮였다. 늦은 밤 멀리서 우우하고 길게 끄는 늑대소리가 들리곤 했었다. 둔탁한 무쇠 문고리가  하얗게 얼어붙던 깡촌이었다.


  하얗게 눈 덮인 산기슭 길을 뽀드득 소리를 내며 한참을 걸어가면 그곳에도 교회가 있었다. 소나무 둥치로 대강 구조를 얽어매고 수숫대와 진흙으로 벽을 만든 창고같은 집이었다. 보통의 초가집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벽에 흰 회칠을 한 것과 물결모양으로 접은 함석지붕이었다. 교회 앞마당에는 산소통의 밑을 잘라 만든 종이 매달려 있었다. 나무망치로 쳐서 사람들을 부르곤 했다. 외로운 그 교회에는 소설 ‘상록수’에 나오는 주인공이 상상되는 젊은 전도사가 있었다. 먹고 입을게 없지만 예수에 대한 뜨거운 열정 하나로 인생을 바친 사람이었다. 차디찬 교회 마루바닥에서 그는 아이들에게 여러 동화를 얘기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서 소공자와 소공녀의 얘기를 들었다. 또 노래도 배웠다. 그는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에게 탄일종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탄일종이 울린다. 은은하게 울린다. 저 깊고 깊은 산속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그 노래를 부르면서 나는 썰렁한 초가집에도 하늘에서 금빛가루 같은 넉넉한 행복이 내려오는 느낌을 받았었다.


  중학교 3학년 무렵이다. 나는 영화를 참 좋아했다. 버스비를 아끼고 학교에 걸어 다니면서 극장 값을 모았다. 어느 겨울 나는 지금은 없어진 청계극장에 들어갔다. 난방이 안 된 극장은 발이 꽁꽁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극장 전체의 두 구석에 연탄난로를 때웠다. 하루에 한두 번 연탄을 갈아 놓는 게 난방의 다였다. 연탄난로 옆자리는 아예 차지할 수 없었다. 그래도 풍요한 영화장면 속에서 나의 정신적 허기는 채워졌다.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당시 내 또래로 보이는 틴에이저들이 산장 안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고 있던 모습이다. 벽난로에서는 장작이 활활 타고 있었다. 따뜻해 보이는 털 쉐터를 입은 십대 아이들이 기타와 드럼을 연주하는 중이었다. 그 경쾌한 리듬에 맞추어 파티에 초대받은 아이들이 흥겹게 춤을 추었다. 그 옆에는 콜라와 케잌 등이 넘치도록 탁자위에 놓여 있었다. 덜덜 떨며 영화를 보고 있는 나는 그런 모습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그런 파티에 한번이라도 초대받으면 한이 없을 것 같았다. 영화를 다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집은 낙산 밑에 있는 열 평짜리 일본식 집이었다. 지금 기억으로 내 방은 너무 추웠다. 아버지 어머니는 맞벌이 부부였다. 외아들인 나는 항상 혼자였다. 서로 욕을 하며 싸우더라고 서로서로 체온을 나누는 형제가 부러웠다. 당시 나는 벽장에 꽂혀있는 한국문학전집을 수시로 꺼냈다.


  마땅히 다른 오락거리가 없었다. 그날 읽은 소설가 장용학의 ‘원형의 전설’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눈 덮인 산속의 얼어붙은 동굴에서 자신의 정체를 생각하던 주인공과 막연한 일치감을 본 것 같았다. 책을 읽다가 창호지문 가운데로 나 있는 조그만 유리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함박눈이 쏟아 붓듯이 회색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저 멀리 내다보이는 시외전화국의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에 온통 눈의 하얀 점이 찍힌 것 같았다.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이 얼어붙은 듯 뻑뻑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추웠다. 그때 문득 나는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이 느낌과 장면만은 평생 잊지말자고. 그때부터 삼십년이 흘렀다. 이제는 대학을 다니는 딸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리고 법조생활 이십년의 중견변호사다.


  겨울이 되면 나는 아내에게 종종 잔소리를 듣는다. 난방을 너무 높여 놔서 낭비를 한다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때면 나는 아이들에게 친구들끼리 파티 안하니? 하고 묻곤 한다. 주위 친구들 중에서 외롭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불러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즐겁게 지내는 게 좋을텐데.. 라고 혼자서 중얼거린다. 아이들은 반대한다. 아빠가 힘들게 번 금쪽같은 돈인데 소홀하게 쓰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 의미 없이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하느냐는 것이다. 아이들의 그런 마음에서 나는 따뜻함을 느낀다. 하나님은 찌르기도 하시지만 싸매어 주시기도 했다. 상하게도 하셨지만 손수 낫게도 해주셨다. 나는 요즈음 그분의 풍족한 은총을 솔직하게 받아들인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행복과 불행을 평등하게 내리시는 분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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