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모략

운영자 2010.10.19 11:11:49
조회 300 추천 0 댓글 1

    떠들썩했던 탈주범 신창원 사건 때였다. 수사본부 사무실 철의자에 그가 앉아 있었다. 그의 뒤와 옆으로 칸막이가 쳐 있었고 그 사이에 틈새가 있었다. 변호사로서 나는 조사에 입회하기 위해 구석에 앉아 있었다. 허락되지 않는 것을 억지를 부려 있게 된 것이다. 이윽고 한 여자가  그곳으로 왔다. 수사관은 그 여자에게 칸막이 틈 사이로 신창원을 보라고 했다. 강간당했다는 그 여자는 파출소에 침입한 강도의 인상이 벽보에서 본 신창원 비슷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벌써 언론은 신창원의 강도강간을 기정사실화 해서 대서특필했다. 그 여자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칸막이 틈을 통해 신창원을 찬찬히 살폈다. 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 여자의 뒤에 바짝 따라 붙었다. 그 여자의 눈빛, 표정, 순간적인 태도와 엉겁결에 내뱉는 말을 포착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그 여자가 아니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신창원이 범인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대답하는 순간이었다. 신창원 역시 내게 자기는 절대 강간만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곧 대질신문이 있었다.


    “비슷한 거 같기도 해요”

    여자가 엉거주춤한 대답을 했다. 아니라는 뜻의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범인이면 범인이고 아니면 아닌 거지 비슷한 게 뭡니까 확실히 해요.”  

    수사관이 위압적인 어조로 다구쳤다. 여자는 금세 기가 죽은 채,


    “맞아요 확실해요.”

    부정이 긍정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진술조서에는 내가 순간 포착했던 그 여자의 표정이나 태도 그리고 느낀 진실이 실종됐다. 피해자의 강력하고 명확한 진술만이 남았다. 그걸 보고 확신한 검사가 강간으로 기소했다. 한번 길을 잘못 들어선 그 여자는 법정에서도 궤도수정을 하지 못했다. 난 변호사이면서 동시에 내가 포착했던 그녀의 표정이나 태도에 대한 증인이 되었다. 결국 무죄가 선고됐다. 변호사로서 조사에 입회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변호사의 현장참여는 그만큼 강력했다. 

    송두율씨 사건을 계기로 변호인 입회권이 논란이 되고 있다. 나는 조사과정에 여러 번 입회했다. 힘들 때가 많았다. 젊은 형사에게 모욕을 당한 적도 있다. 새벽까지 벌을 서듯 한 적도 있다. 내쫓기기도 하고 은근히 쏟아지는 수모도 참아야 했다. 친하게 된 베테랑 형사반장은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마음만 먹으면 못만들 증거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또 조작하지 못할 진술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제 변호사는 감시자로서 밀착방어를 해야 한다. 

    수사기록만 보고 판단만 하려는 또 하나의 판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수사서류는 형사의 시각에서 본 기록들이다. 반대 관점에서 변호사가 직접 보면서 대칭이 되는 기록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변호사 입회권은 민주주의에는 절대적 기초이자 정부에는 눈에 가시다. 독버섯 같은 마피아 집사변호사만 조심한다면.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328 법정 곰팡이 없애기 [1] 운영자 10.11.30 234 0
327 악마를 보았다 운영자 10.11.30 401 1
326 빨간 줄 간 호적이 무서워 운영자 10.11.25 423 0
325 엉터리 미륵선사 - 2 운영자 10.11.25 223 0
324 엉터리 미륵선사 - 1 운영자 10.11.25 276 0
323 봉수씨의 운수 좋던 날 - 7 운영자 10.11.23 251 0
322 봉수씨의 운수 좋던 날 - 6 운영자 10.11.23 196 0
321 봉수씨의 운수 좋던 날 - 5 운영자 10.11.19 224 0
320 봉수씨의 운수 좋던 날 - 4 운영자 10.11.19 202 0
319 봉수씨의 운수 좋던 날 - 3 운영자 10.11.19 252 0
318 봉수씨의 운수 좋던 날 - 2 운영자 10.11.19 245 0
317 봉수씨의 운수 좋던 날 - 1 운영자 10.11.19 337 0
316 어느 건달의 후회 - 2 [1] 운영자 10.11.19 483 0
315 어느 건달의 후회 - 1 운영자 10.11.19 529 0
311 저희 같은 사람 말도 믿어주나요? 운영자 10.11.19 247 0
310 소 명 운영자 10.11.12 285 0
309 갑자기 스쳐간 고통의 메세지 운영자 10.11.12 295 0
308 절망, 그 죽음에 이르는 병을 딛고 3 [2] 운영자 10.11.09 462 0
307 절망, 그 죽음에 이르는 병을 딛고 2 운영자 10.11.09 376 0
306 절망, 그 죽음에 이르는 병을 딛고 1 [1] 운영자 10.11.09 471 0
305 특권계급의 울타리인 비자금 운영자 10.11.09 314 0
304 젊은 날의 초상 5 [3] 운영자 10.11.02 589 0
303 젊은 날의 초상 4 운영자 10.11.02 541 0
302 젊은 날의 초상 3 운영자 10.11.02 950 0
301 젊은 날의 초상 2 운영자 10.11.02 420 0
300 젊은 날의 초상 1 [1] 운영자 10.11.02 543 0
299 어느 조폭두목의 변호사 얘기 [1] 운영자 10.11.02 677 1
298 도둑결혼 2 운영자 10.10.28 353 1
297 도둑결혼 1 운영자 10.10.28 382 0
296 마음속에 박힌 가시 운영자 10.10.28 255 0
295 69년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30년후 운영자 10.10.28 292 0
294 조기유학 [2] 운영자 10.10.26 340 0
293 도청에 관한 시론 운영자 10.10.26 176 0
292 용서 운영자 10.10.26 162 0
291 수감자의 생활을 보고 [3] 운영자 10.10.22 533 0
290 비겁한 정부 [1] 운영자 10.10.22 269 0
289 변호사와 돈 [2] 운영자 10.10.22 401 1
모략 [1] 운영자 10.10.19 300 0
287 감독의 딸 운영자 10.10.19 260 0
286 감옥생활 운영자 10.10.19 285 0
285 두 도둑의 참회록 [1] 운영자 10.10.13 310 0
284 긁을려고 보니까 다리가 없어요 [2] 운영자 10.10.13 290 2
283 이태리경찰과 영사 [1] 운영자 10.10.13 289 0
282 이기주의 - 곳곳에 박힌 집단이기주의를 벗어나자 [2] 운영자 10.10.13 240 0
281 법원에 바란다 [1] 운영자 10.10.13 263 0
280 변호사들이 만드는 또 다른 장르의 작품 운영자 10.10.13 193 1
279 이동숙씨의 글을 읽고 운영자 10.10.11 321 0
278 사법 서비스의 질 [4] 운영자 10.10.11 448 0
277 검사의 자질 운영자 10.10.11 542 1
276 자본주의 받치는 법치주의 [1] 운영자 10.10.11 228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