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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여자 살인 사건 3

운영자 2009.11.24 12:12:09
조회 3722 추천 10 댓글 2

3


  깡마른 몸매에 코가 길쭉한 검사가 회장부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회장부인역시 만만치 않은 파란 눈길로 검사를 응시했다. 회장부인은 목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권력가나 부자들은 법정에서 흔히 휠체어를 타기도 했다.  회장부인의 변호인단이 긴장한 표정으로 대기했고 방청석에는 회장 측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나는 뒤쪽에서 총지휘를 하는 회장을 얼핏 보았다. 검은 얼굴에 대머리였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서운 사람이라는 소문이다. 기록에 나타난 그 부인의 혐의 역시 몇 건의 살인청부였다. 경영권을 노리는 회사간부의 살인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도 죽이려고 했다. 결국 사위와의 관계를 의심한 그 딸을 죽이는데 성공했다. 

  “피고인 김귀숙씨는 그동안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게 맞습니까?”
  검사가 냉랭한 어조로 확인했다. 

  “아니요, 틀려요. 법원에서 진술한 게 사실입니다.”
  회장부인이 도전적으로 당당한 태도였다. 

  “왜? 왜 그랬죠?”
  검사의 눈초리가 파고드는 듯 했다. 

  “지금 뒤 방청석에 앉아 있는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가 어떻게나 언론몰이를 하는지 방송에서는 벌써 내가 살인을 사주한 걸로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어요. 또 경찰은 그 내용대로만 나를 몰아쳤고요.” 

  그녀는 사주라는 법률용어가 어느새 입에 밴 것 같았다. 왜 그럴까.  

  “그럼 법원에서는 사실을 얘기한 이유는 뭐죠? 계속 묵비권을 행사하시지.” 

  검사의 어조에는 빈정거림이 묻어 있었다. 

  “재판부에서는 이제 진실을 알아주실 것 같아 말하는 겁니다.”
  회장부인은 ‘판사는 너희들과는 달라’ 하는 표정이었다. 

  “여대생이 죽은 걸 확인하고 나서 살인청부의 잔대금을 주셨던데?”
  검사가 이윽고 본론을 꺼냈다. 

  “그건 검사님의 억측이시죠.”
  회장부인이 맞받아쳤다. 살인죄로 재판을 받으면서 보통 강심장이 아니다. 

  “하여튼 사건 후 돈이 살인범 김용국에게 건네 갔던데, 그건 맞죠?”
  검사가 한발 물러서면서 사실을 확인했다. 

  “정확한 기억은 못하겠는데 3천만원 정도 준 건 사실입니다. 제가 미행심부름을 시킨 조카 김용국이가 저에게 협박을 하는 거예요. 다른 아이들을 시켜 미행을 했는데 중간에서 사고를 냈다는 거예요. 제가 막 화를 냈죠. 미행만 시켰는데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욕을 해 줬어요. 그랬더니 나보고 자꾸 그런 식으로 하시면 살인을 교사 한 것으로 말아 버릴 테니까 알아서 하라는 거예요. 그 말을 들으니까 겁도 나고 경황이 없는 중에 3천만원을 빼앗긴 겁니다.” 

  회장부인은 당시를 떠올리듯 겁먹은 표정으로 유연하게 진술했다. 김용국이 옆에서 고개를 떨군 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옆에 있는 김용국 말은 회장부인께서 살인을 직접 지시하셨다는데?”
  검사가 김용국을 슬쩍 쳐다보며 물었다. 

  “제가 지시 할 수 있는 일일까요? 이건 김용국이 다 꾸민 일입니다” 

  회장부인은 얼굴을 돌려 옆의 김용국을 표독스럽게 노려보았다. 김용국은 감히 시선을 받지 못한 채 눈을 꾹 감고 있었다. 검사가 질문을 계속했다.
  “김귀숙 피고인은 김용국이 베트남에 도망을 갔을 때 그곳으로 전화를 한 적이 있죠? 왜 그랬죠? 통화내용 기억합니까?” 

  “제가 전화로 용국이를 꾸짖으면서 진상을 물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어떻게 된 건지 내용을 몰랐으니까요. 제가 죽인 상황을 비로소 알고 용국이를 꾸짖었습니다.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집안을 엉망으로 만드느냐고 말이죠. 미행을 시킨 저도 도의적 책임은 있죠.” 
 
도덕성은 인정하면서 살인의 법적책임은 빠져나갔다. 

  “김귀숙 피고인은 여대생이 피살된 직후 김용국을 몰래 만나 9천만원을 현찰로 준 적이 있던데 어때요? 김용국의 말은 살인 잔대금이라고 하던데.” 

  “집을 사는데 도와달라고 해서 돈을 준 사실이 있어요. 그래도 용국이는 제 친정 조카예요. 친척이 어려우면 평소 도와준 적들이 있어요.”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소리였다. 

  “검찰에서는 그런 돈을 준 적이 없다고 부인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줬다고 그럽니까?” 

  “그때는 온통 매스컴에서 내가 돈을 주고 살인을 교사했다고 해서 사실대로 말하면 뒤집어 쓸 것 같아서 그랬어요.”
  그녀가 뭔가 생각하는지 잠시 쉬었다가 이렇게 말했다. 

  “일심에서도 그런 선입견으로 판단해서 제가 유죄판결을 받은 거예요.” 

  “그러면 사건 후 9천만원 준 사실은 이제야 인정하는 거네?”
  그녀는 순간 자기 변호사들을 쳐다보았다. 인정해도 되느냐는 물음이었다. 

  “피고인 김귀숙은 여대생을 살해한 청부업자인 마기룡을 알고 있었죠?” 

  “언론에서 떠들어서 알았어요. 그전에는 몰랐죠.” 

  “김용국에게 공항에서 준 돈이 현찰이던데 그렇게 현찰로 준 이유가 뭐죠?” 

  “사업을 하는 사람의 아내로서 항상 현찰을 많이 준비해 둡니다. 남들도 다 그래요. 검사님도 그 정도는 아시잖아요? 특히 친정에 주는 돈은 그렇죠.”
  “남편이 바람을 피는 바람에 집안에 불화가 많았죠? 그래서 딸만은 자신과 같은 운명을 만들지 말아야 하겠다는 집착이 강했다는데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여자들과 관계를 가집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사업가의 아내로서 남편의 외도에 눈을 감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남편은 그런 것들을 다른 걸로 보상해 주곤 했어요. 그런 것들이 살인의 동기라는 건 말도 안돼요. 꾸며낸 얘기라고요. 전 남편이 돈도 많이 법니다. 사위가 판사고 딸도 명문대를 나왔어요. 아들은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요. 내가 뭐가 모자라서 살인을 교사하겠어요? 검사님 한번 생각해 보시라고요.” 

  검사가 오히려 논리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럼 그렇게 오래 미행을 계속시킨 이유가 뭐죠?”
  검사가 다른 방향으로 질문했다. 

  “미행이라는 걸 막상 시켜보니까 정말 어렵습디다. 한 팀에게 맡기고 현장을 가보면 없어요. 근처 목욕탕에서 시간이나 때우고 돈을 달라는 짓거리들을 해요. 다른 팀으로 바꾸고 가보면 당구장에서들 살고 있어요. 열심히 미행하면 두세 번 만에 뭔가 나올 텐데 전부 그 짓들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미행자들은 항상 여운을 남기는 거예요. 뭔가 있긴 있는데 놓쳤다는 거죠. 그러니까 나도 그만둘 수 없죠. 그런 말들에 현혹되어서 계속했어요.” 

  회장부인과 조카인 김용국 중 누가 교활한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회장부인의 변호인단은 막강했다. 김용국을 묵사발을 만들면서 무죄를 주장해 갔다.
  이제 김용국은 살인죄 외에 착한 고모인 회장부인을 모략한 범인이 됐다. 

  이차공판이 그렇게 끝났다. 법정 앞 복도는 회장 측 사람들로 웅성거렸다.  그런데 그중 외롭게 겉도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김용국의 처였다. 파출부인 그녀는 회장 측에서 총대만 메주면 평생 먹고 살 돈을 주겠다고 제의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믿지 않았다. 돈 거짓말에 속아 남편만 사형당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창문 앞에 반백의 부수수한 머리의 남자가 지친 표정으로 혼자 서 있었다. 김용국의 처는 그 남자가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저 실례합니다만 피해자인 여대생의 아버님이시죠?”
  내가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를 했다. 그가 뜨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전 김용국의 새 변호사입니다. 직업이 직업이라 살인범이라도 변호를 하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먼저 김용국을 대신해서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비슷한 또래의 딸을 가진 아버지입니다. 아픔이 어떠실지 알고 있습니다.”
  그의 한 맺힌 얼굴에서 금세 눈물이라도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저도 나름대로 명문을 나오고 삼성그룹에서 18년을 일해 왔던 사람입니다.
  저는 고시에 합격해서 큰 로펌 변호사가 되면 정의를 위해 일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회장부인 변호사들을 보면 정말 저래도 되나 한스럽습니다. 사실자체를 왜곡시키지 않습니까? 전 끝까지 싸울 겁니다.”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살인교사를 부인하는 회장측은 그에게 사죄할 수 없었다. 죄가 없는데 아무것도 미안할 수 없다. 회장부인은 법정에서 오히려 그를 언론플레이 한다고 몰아쳤다. 그가 계속했다.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딸의 죽음을 보고 세상에는 귀신이 있구나 생각했어요. 딸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부부가 달려갔어요. 제가 보는 순간 죽은 딸아이가 한쪽 눈을 뜨는 거예요. 한이 맺혀서 아빠엄마가 갈 때까지 영혼이 거기 있었나 봐요. 제가 손으로 그 눈을 감겨줬어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다른 쪽 눈꺼풀이 올라가는 거예요. 엄마가 그 눈마저 감겨줬더니 입이 씰룩거렸습니다. 저는 딸아이의 원한을 느꼈어요. 그렇게 바쁘게 살던 아이였습니다. 짧은 인생을 살고 가려고 그렇게 새벽시간까지 아꼈던 것 같아요. 산속에서 죽는 그 순간 마음이 어땠겠어요?”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의 뺨이 씰룩거렸다. 그 역시 살인범 김용국이나 마기룡이 여러 차례 죽이려고 했었다. 살인범들이 자백했다. 위험했던 그로부터도 진실을 듣고 싶었다. 장소를 옮긴 나는 그의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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