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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소셜포비아

마리엔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2.17 01:10:38
조회 1868 추천 58 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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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십시오! 혜성이 둘로 분열되어 무수한 유성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혜성의 핵이 갈라졌다는 겁니까?"


"로슈 한계는 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혜성 핵 내부에서..."


"...운석화되었을 경우에도 거주지에 떨어질 확률은..."


"이런 광경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 때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2.


방송국 직원들이 모두 창 밖을 쳐다보고 있는 사이 나는 세트장에서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 채 혜성 관련 뉴스를 내보냈다. 남들에게 멋진 광경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이 정작 그 광경을 직접 보지 못하고 있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이 어쩐지 불합리하게 느껴져서 방송 내내 얼굴을 찌푸리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했다. 시청자들에게 '저도 혜성이 보고 싶으니까 5분 뒤에 방송 재개하겠습니다' 같은 소리라도 한 뒤 혜성을 보러 달려가고 싶었다. 그래야 나의 우울증이 극복될 것 같았다.


"...이상으로 8시 뉴스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도 빠르게 달려가면 혜성을 볼 수 있을 거라는 판단 하에 카메라가 꺼지는 것을 확인한 뒤 빠른 움직임으로 세트장을 빠져나가 창가로 달렸다. 스태프 한 명이 나를 따라 달렸다. 나와 같은 생각인 게 분명했다.


그런데 막상 세트장을 빠져나가니 건물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다들 창가에 모여 혜성을 바라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직원들은 다들 어딘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데다 긴장되고 경직된 분위기가 건물 전체에 감돌았다. 일이 어딘가 잘못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이 나에게 다가왔다.


누군가가 나에게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상사인 것 같았지만 혼란스러운 마음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었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스케줄 끝났으면 이만 퇴근해도 좋네. 나머지 일은 다른 직원들이 알아서 처리할 걸세."


그래서 그 말을 듣자마자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허겁지겁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나머지 일'이라는 말에서 왠지 모를 무거움이 전해졌다. 가로등이 거리를 걷는 나를 비추며 불길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집까지 가는 길이 평소보다 멀게 느껴졌다. 해야 할 집안일이 산더미 같았지만 지칠 대로 지쳐서 옷을 벗지도 않고 정리해 놓은 이불 위에 드러누웠다. 허리와 사지가 쭈욱 펴지며 드는 기분을 내 체세포들이 충분히 만끽할 수 있도록 잠깐 동안 그렇게 있었다. 졸음이 솔솔 몰려왔다. 그대로 눈을 감고 싶었지만 체세포들의 원성을 무시하고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다. 리모컨을 손에 쥐고 TV를 켰다. 선배 앵커가 긴급 뉴스를 전달하고 있었다.


"긴급 속보입니다. 오늘 오후 8시 30분경 하늘에 나타난 혜성의 핵이 갈라져 그 파편이 히다 시의 거주 지역에 낙하했다는 소식입니다. 현재 혜성에 직격당한 히다 시 이토모리 마치는 대부분의 민가와 공공 시설들이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으며 이에 따른 사상자 수는 현재 집계 중에..."


방송국 안에 돌던 그 분위기가 이것 때문이구나,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방금 전까지 내가 '행운'이라고 표현한 그 아름다운 혜성이 재앙을 만들어냈다고 선배 앵커가 말하고 있었다.


순간 뭐라 말할 수 없는 거대한 죄책감이 나를 덮쳤다. 그건 행운이 아니었다.


3.


다음 날인 토요일 아침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도 방 안의 공기는 여전히 답답했고, 화장을 하려고 거울을 봤는데 눈 아래에 다크서클이 생겨 있었고, SNS에 댓글이 평소에 몇 배 이상으로 폭주해 있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SNS를 체크했다. 예상대로 대부분이 악성 댓글이었다. 새로 댓글이 달린 게시물을 전부 지워 버렸다.


어째서 나는 그런 말을 했던 걸까. 내가 행운이라고 했던 그 혜성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거나, 또는 살아남았더라도 살 곳을 잃고 헤매고 있을 것이다. 물론 나만의 책임은 아니다. 그 혜성이 주거지에 떨어져 그런 재앙을 만들어내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과학자들도 그랬다. 나는 과학적인 근거를 안고 그 멘트를 입 밖에 냈던 것 뿐이다. 나 또한 이제는 불행으로 바뀌어 버린 '행운'의 피해자일 뿐이다. 가해자가 아니다. 인과 관계를 따져봐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죄책감은 이미 나의 심장을 겹겹이 둘러쌌고 쉽게 떨어져나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의미없는 변명으로 느껴졌다. 결과가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이유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나운서 일을 하면서 아주 많은 사건사고들을 겪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누군지도 모를 남자와의 스캔들, 나에게 접근해 오는 남자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체험하는 괴로움들. 대중은 그 때마다 나를 외면했고 나는 온갖 악성 댓글들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상황은 나를 힘들게 했고 혜성 사건은 그런 나의 고통에 쐐기를 박는 것 같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전화를 거는 것마저도 너무나 힘겹게 느껴졌다. 신체의 모든 부분들이 평소보다 에너지를 몇 배나 요구하는 느낌이 들었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는 것도 커다란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 미안해. 오늘은 좀 쉬고 싶어. 나중에 보자."


지금의 남자친구와 했던 점심 약속을 취소한 뒤 침대에 다시 누웠다. 원인 모를 두통이 찾아와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고 뭔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은 완전히 사라졌다. 마치 온 몸의 근육들이 움직이기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SNS를 다시 켰다. 그새 나를 향한 비난의 화살들이 갑절로 날아와 있었다. 새로 달린 댓글들을 전부 삭제하고 자기소개란을 수정할까 하다가 단념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우울함이 엄습해서 지레 겁먹고 어플리케이션을 삭제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토가 밀려왔다. 바깥의 햇빛도 보기가 괴로워서 커튼을 모두 쳐 버렸고 침대에서 벗어나기가 싫었다. 잠도 오지 않아서 한참을 뒤척이다가 새벽이라고 생각되는 시간대가 되어서야 겨우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그러고는 아침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보랏빛 하늘이 드리운 시간이 되자마자 귀신같이 일어나 버렸다.


4.


우울장애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몇 년동안 지속적인 악성 댓글과 인간관계 유지 문제 및 과로 등으로 인한 복합적인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얼마 전부터 나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삶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스트레스가 심해서 어느 정도 예상한 바이긴 했다. 쇠사슬은 내 발목을 감아 나의 걸음을 몇십 배는 무겁게 했고 마음 속에는 커다란 쇳덩어리가 들어와 나의 감정들을 억압했다. 그 상태에서 나는 힘겹게 걷고 있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일부러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병원으로 갈때 부딪혔던 전신주가 나를 한 번 더 위협할 것 같다는 터무니없는 생각 때문이었다. 주변에 스쳐가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고 나는 그런 사람들이 두려워져서 최대한 빠르게 걸었다. 실수로 누군가의 어깨를 치고 지나갈 때마다 공포에 떠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하고 말했다. 나에게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음량이었다.


집에 돌아와도 발목에 감긴 쇠사슬은 벗겨지지 않았다.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었지만 왜인지 술이 마시고 싶어져서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꺼냈다. 마시다 보니 어느새 세 캔째였다. 평소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나는 아주 가끔씩 한 캔 정도를 마실 뿐이었는데. 처방받은 항우울제까지 복용했더니 속이 쓰렸다.


기자 일을 하는 남자친구는 오늘 아침 취재를 위해 혜성이 떨어진 지점인 히다 시의 이토모리 마을로 갔다. 나를 아껴주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내 마음을 하나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의사가 추천한 대로, 그리고 아나운서로서 준수해야 할 매뉴얼에 쓰여있던 대로 잠깐 휴직이 필요할 것 같아 점심을 대충 차려먹은 뒤 오후 2시쯤 되어 무거운 발을 이끌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나이 든 상사는 초췌해진 내 모습을 보고 퍽 놀라는 인상이었다. 나는 거두절미하고 우울증이 생겨서 당분간 일하기가 힘들 것 같다는 말만 했다. 내가 그렇게 말을 딱 잘라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울 지경이었다.


"우울증이라... 그럼 쉬다 오게. 빠른 시일 내에 쾌유하기를 비네."


그는 나처럼 굳은 목소리로 딱 잘라서 허가를 내주었다. 나는 대충 대답하고는 필요한 문서들을 제출하고 도망치다시피 그 방에서 나왔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말소리는 모두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 목소리로 들렸다. 바깥으로 나가는 유리문을 막 열고 지나가려는 참에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선배님!"


뒤를 돌아보니 평소 가깝게 지내던 후배 아나운서였다.


"오늘 일 없으실 텐데 어째서?"


그러고는 내 차림새를 쓱 훑어보았다. 그 반응이 있고 나서야 옷매무새가 가다듬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평소에 정장을 최대한 말끔하게 입고 다니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후배가 그 점을 이상하게 여긴 것 같았다. 그런 사소한 것까지 나를 쿡쿡 찌르는 기분이 들었다. 빨리 이 장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휴직... 신청하러 왔어. 요즘 우울증이 있어서..."


"...요즘 무기력해 보이시더니. 여쭤봐서 죄송합니다. 빨리 호전되길 빌게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우울증은 혼자서 극복하기 어려우니까 꼭 상담도 받고, 가능하다면 약물치료도 받으시는 게 좋아요. 집에서 푹 쉬시면서 최대한 스트레스 생길 일을 피하시고, 또..."


"나도 알아!"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질렀다. 주변 사람들이 전부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째서 이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쳐다보는 거야. 그런 시선들이 고통을 주었다. 앞에 서 있는 후배는 깜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이다가 다시 고개를 떨궜다.


"죄송합니다. 괜한 참견이었나 보네요.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후배는 나에게서 빠르게 멀어졌다. 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끄러워졌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못이라도 박힌 듯이 서 있다가 그런 나 자신이 싫어져서 유리문을 몸으로 열어젖히고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숨이 턱 막히고 몸이 힘들었다.


5.


"...다행히 사망자는 아무도 없었어. 마침 그 날 마을에 있었던 소방 대피 훈련 덕분에 마을 주민들이 전부 고등학교 운동장에 모여 있던 상황이었고, 그래서 아무도 죽지 않고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었지. 대신 마을이 통째로 사라져 버려서 지금 피난민들은..."


"그만... 그만. 됐어."


평소에는 마시지도 않던 에스프레소를 쭉 들이켰다. 이 남자친구라는 작자와 만나는 것도 이 카페가 마지막이다. 내 상태를 알고 있는 남자친구도 오늘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모두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주민들이 기적적으로 모두 생존했다는 소식도 나에게는 전혀 위안이 되지 못했다. 말하자면 정말 지랄맞은 상황이었다.


일요일 밤의 카페는 섬뜩할 정도로 한산했다. 사람이 없다는 것에 안심하면서도 동시에 공포심이 찾아왔다.


"일 그만둔 지 얼마나 됐었지?"


...역시 이 인간도 이제 나에게 관심이라고는 전혀 없구나.


"2주 정도."


뭐라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말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힌 지 2주가 지났다. 그동안 나는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새벽에야 겨우 잠이 들어 동이 트기도 전에 깨어나는 것으로 매일 하루를 시작했고 술을 사거나 병원에 가야 할 때만 밖에 나갔다. 방 안의 공기는 날로 답답해졌고 다크서클도 점점 짙어졌다. SNS의 댓글들은 하나하나가 가시처럼 나를 찔렀다. 다시는 뉴스 나오지 마라. 행운 좋아하시네. 꼴보기도 싫다. 가시가 너무 아파서 끝내는 SNS의 모든 글을 지우고 회원 탈퇴를 했다. 그 과정에서 우울함은 점차 세상에 대한 분노로 바뀌어갔다.


그 짧은 대화 이후로는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동자를 굴리다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빠르게 시선을 뗐다. 그럴 때마다 유리창을 깨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싫어서 몸에 힘을 쭉 빼고 앉아있기만 했다.


"죄송합니다만, 이제 폐점 시간입니다."


카페 주인이 그렇게 말할 때가 되어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뒤로 나를 따라 건물 밖으로 나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것마저도 나의 속을 긁어 뒤집어놓을 것 같았다. 모든 일이 스트레스였고 모든 일이 내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가을 바람은 필요 이상으로 차가웠다. 그런 바람에 등을 떠밀리듯이 말했다. 더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미안해. 이젠 그만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방금 전까지 남자친구였던 사람은 무덤덤한 얼굴로 서 있었다.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그걸 알면서도 기분이 나빠지는 이유는 스스로도 특정하기가 힘들었다.


"알았어. 그동안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더 좋은 사람 만나."


사람 하나와 관계를 단절하는 일은 이렇게 쉽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나는 인생을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전혀 살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가로등에 비친 내 모습이 만들어내던 그림자 속 불길함은 현실로 다가왔고 나는 그 현실과 마주했을 때 극복하지 못했다.


언젠가 카미유 클로델이라는 조각가의 삶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한 남자 때문에 기쁨과 슬픔을 모두 겪고 끝내는 스트레스로 수용소에서 쓸쓸히 죽어간 여자. 나는, 비단 남자 때문인 것만은 아니지만, 지금의 무너져 가는 기분만큼은 그 사람과 공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까지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가방을 풀어헤치고 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1일 복용양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항우울제를 평소의 세 배 정도 복용했다. 남아 있는 캔 맥주들을 모조리 따서 마셨다. 신체와 정신이 모두 망가지고 있었다. 방 안에서도 산소가 전부 빠져나간 것처럼 숨이 막혔고 다크서클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리고 오늘은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다시 걸을 수 있을지,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있을지마저 확신이 들지 않았다.


* * * * * * * * * * * * * *


아침부터 인터넷 뉴스는 씁쓸한 소식을 전했다. 혜성 참사 이후에 '혜성을 볼 수 있는 것이 행운'이라고 발언했다는 이유로 어떤 아나운서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었다. 평소에도 악성 댓글과 스캔들에 시달려 온 데다 이번 일이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의 심화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모양이었다.


엉뚱하게도 나에게 그 아이의 존재가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새삼 느꼈다. 나 또한 그런 힘든 상황에 있었지만 나에게는 세상을 다시 걷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구두가 있었다. 하지만 그 아나운서는 그렇지 못했다. 어떠한 것도 가지지 못한 채, 고통에 비명을 질러대도 아무도 자신을 봐 주지 않았다.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까, 비슷한 경험을 한 나조차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복잡한 기분으로 TV를 꺼 버리고 아침 공기라도 마시러 베란다로 향했다. 밤새 비가 내렸는지 구름 낀 하늘은 회색빛으로 가득했고 다육식물의 잎에는 물방울이 이슬처럼 맺혀 있었다. 그 물방울은 바람이 불어도 흔들릴 뿐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마치 필사적으로 잎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전화를 할 사람이 없는데?


"여보세요."


"유카리?"


이제는 익숙하다고는 할 수 없는 남자의 굵은 목소리였다.


"이토 선생님... 갑자기 왜 전화를?"


"별 건 아니고... 그냥 요즘은 어떤가 싶어서."


"많이 나아졌어. 맛도 느낄 수 있고. 침울한 기분도 들지 않아."


대화는 서로 필요한 말만 하는 방향으로 최대한 간결하게 진행되었다. 이제는 연인 사이도, 직장 동료 사이도 아닌 그저 '알던 사람'끼리의 대화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이토 선생님을 탓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런 상황이 찾아올 때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상한 면이 있으니까, 라고 히나코 선생님이 했던 말을 되뇌는 것도 이제는 버릇이 되었다.


"...그럼 끊을게. 잘 지내."


아키즈키에 대해 물어볼까도 싶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걷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언젠가 만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 아나운서도 우리처럼 되었다면, 그랬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잎에 붙어있던 물방울이 거센 바람을 맞아 끝내 잎에서 떨어져 나갔다. 문득 비가 조금만 더 내려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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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까 말까 고민하던 아나운서 팬픽 진짜 적어봤다.. 쓰면서도 아무 죄 없는 아나운서를 이렇게 힘들게 해도 되나 싶어서 너무 우울했는데.. 어떻게 생각해도 밝게 끝낼 수 없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마지막 부분의 화자는 다들 알겠지만 유키노. 단순한 인슐린도 아니고 사람 힘들게 하는 우울한 이야기라서 미안하다. 잘 읽었으면 평가 같은 것도 해주면 고맙겠음.


평소보다 내용이 좀 긴 편인데 2부작으로 나눠 쓸까 하다가 6천자 정도는 괜찮겠지 싶어서 그냥 올림. 제목인 '소셜포비아'는 동명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게 맞고, 맨 위 이미지는 글 분위기랑 맞는 이미지를 찾을 수가 없어서 직접 편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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