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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범인 없는 사건 연 22만건… '미제 블랙홀' 빠진 대한민국

파이낸셜뉴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6.02.24 17:02:25
조회 1478 추천 7 댓글 19

9년 전보다 40% 폭증… '사기·초국경 범죄'에 멈춰버린 수사
비대면·초국경 범죄 확산에 피의자 특정 난항...사건은 늘고 수사 여건은 제자리
전문가들 "구조적 미제 누적 악순환"



[파이낸셜뉴스] 경찰의 끈질긴 추적에도 끝내 범인을 파악하지 못한 채 멈춰선 사건이 지난해에만 22만건에 달한다. 강간살인 등 죄질이 무겁고 사회적 파장이 커 경찰이 별도의 전담팀을 꾸린 ‘중요미제사건’은 최근 20년 동안 270건이 넘는다. 켜켜이 쌓인 수사 기록은 단순한 통계 그 이상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의 흔적은 희미해지고, 그 빈자리에는 우리 사회의 신뢰와 정의를 위협하는 ‘법적 공백’이 남기 때문이다. 파이낸셜뉴스 사건팀은 3회에 걸쳐 장기미제사건의 현실을 진단하고, 묻혀버린 진실을 다시 세울 방향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경찰이 수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미제사건 수가 다시 빠르게 늘고 있다. 한때 감소세를 보이며 주춤했던 범인 없는 사건들이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폭증하며 연간 20만건 시대를 굳히는 양상이다. 비대면·초국경 범죄 확산과 검·경수사권 조정 후 수사 환경 변화가 배경으로 꼽힌다.

■9년 전보다 40% 폭증
24일 파이낸셜뉴스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경찰청으로부터 확보한 '연도별·유형별 미제사건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관리미제사건 수는 22만525건으로 집계됐다. 9년 전인 2016년(15만7150건)과 비교하면 6만3375건(40.3%) 증가한 수치다. 통상 경찰의 한해 접수 사건이 약 300만건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의 7% 정도를 해결하지 못하는 셈이다.

관리미제사건은 시기별로 뚜렷한 변동 흐름을 보여 왔다. 2016년 15만7150건이었던 관리미제사건 수는 폐쇄회로(CC)TV 확산으로 절도 피의자 특정과 검거가 수월해지면서 2017년 13만2556건으로 감소했고, 2020년(13만5801건)까지 13만건대를 유지했다.

그러나 2021년 16만7449건으로 다시 증가세로 전환된 후 △2022년 21만4882건 △2023년 22만9145건 △2024년 22만8794건 △2025년 22만525건으로 수년째 20만건대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다이렉트 메시지(DM), 페이팔 등을 활용한 비대면·비실명 거래가 늘면서 용의자 특정이 어려운 사기 사건이 급증한 것이 핵심 원인"이라고 밝혔다. 이어 "관리미제사건 비율이 7%를 넘기지 않도록 수사력을 강화하고 공소시효 초과 사건을 관리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이스피싱 등 초국경 범죄 확산은 관리미제 증가를 유발하는 주요 배경으로 지목된다. 범행이 여러 국가에 걸쳐 이뤄질 경우 현지 수사기관과의 공조에 시간이 걸려 피의자 특정이 지연되고, 그 사이 사건이 장기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범죄 양상이 초국경화되고 있는 사기 사건의 미제 건수는 유형별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8년 7093건에서 지난해 8만839건으로 11.4배 증가했다.

김영식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죄가 국제화·첨단화되면서 수사에 소요되는 시간은 길어지는 반면 처리해야 할 사건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결국 한 사건에 충분한 수사 역량을 투입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미제가 누적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초국경 범죄·수사권 조정 '원인'
2021년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나타난 수사 환경 변화도 관리미제 증가 요인으로 거론된다. 경찰의 책임과 권한은 확대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력과 예산은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다.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분쟁이 형사 고소로 이어지거나 소액 절도 사건까지 수사 대상에 포함되면서 일선 수사관들의 사건 부담이 가중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균 한국범죄심리학회 고문(백석대 경찰학부 교수)은 "경찰이 담당해야 하는 사건 수가 늘어난 데다 범행 수법이 고도화·전문화되면서 경찰 수사가 이를 따라가기 힘든 상황"이라며 "이런 가운데 경찰이 수사 종결권을 갖게 되면서 사건을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는 대신 미제사건으로 관리·편입하는 경우가 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타 범죄 대비 발생 빈도가 높은 절도 사건에서 이같은 흐름은 두드러진다. 지난해 절도 관리미제사건의 경우 4만7347건으로 집계되며 4대 범죄(살인·강도·절도·사기) 관리미제사건 중 사기 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충분한 수사 시간과 전문성이 보장됐다면 해결 가능했을 사건들이 구조적 요인 탓에 미제로 남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관리미제 누적 현상은 강력범죄에서도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살인 관리미제사건의 경우 △2022년 3건 △2023년 6건 △2024년 1건 △2025년 4건 등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으나, 피해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미제로 남았을 때 사회적 위험성이 크다.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프로파일러)는 "미제사건 증가의 사회적 의미는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피해자가) 법치주의 국가의 기능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고 사적 복수의 기대를 갖게 해 법보다 힘에 의존하는 원시 시대로의 회귀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박성현 장유하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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