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선생님."
"왜 그러니, 이부키?"
"그 네비게이션, 정확한 거 맞죠?"
"... 그렇냐는데, 아로나?"
[알려주신 주소는 여기가 맞습니다. 실제로 안에서 생명 반응이 감지되고요. 다만...]
"거짓말..."
"우와! 귀신의 집이다!"
이로하의 말대로였다.
전임 정보부장 쿄고쿠 사츠키의 집은, 도저히 사람이 살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 으스스한 저택이었다.
"저, 실례합니다... 아무도 안 계세요?"
대문의 초인종을 계속 눌러도 대답이 없자, 우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문을 살짝 밀어보았다.
거짓말처럼 문이 스르르 열렸기에, 우리는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우으... 이로하 왠지 무서워졌어..."
"손 잡아줄까?"
"진짜? 치아키 완전 착해!"
치아키의 손을 잡고 이로하가 씩씩하게 걸어가는 동안, 나와 이부키는 1층의 로비를 둘러보았다.
"쿄고쿠 집안은 상당한 부를 지녔다고 듣긴 했는데... 생각보다 더 엄청나네요."
"이런 말은 좀 그렇긴 한데... 그런 부를 지녔으니 내전에도 멀쩡한 거겠지. 여기가 워낙 게헨나의 외곽인 것도 있겠지만."
그 말대로, 각종 조각상을 천장의 샹들리에가 은은히 비추는 풍경은 소유주의 재력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막상 집 주인이 어딨는지 모르면 말짱 도루묵인데..."
"으음... 어? 다들 들어봐! 이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데?"
저택 안을 한창 돌아다니던 중, 치아키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쪽은... 내려가는 계단인가?"
"확실히 바람 소리같은 게 들려요. 지하실이 있는 것 같아요."
"으엑! 쥐가 나오는 건 아니겠지?"
여기까지 온 이상 내뺄 수는 없었다.
우리는 다 같이, 지하로 내려가보기로 결정했다.
"우으... 쥐는 싫은데..."
"쉿, 이로하 선배. 거의 다 왔어요."
왠지 떳떳하지 못한 기분 때문에 조용히 계단을 내려온 우리는, 이윽고 지하실의 문을 발견했다.
"설마 이것도..."
끼이익, 당연하다는듯 열렸다.
"저기, 이쯤하고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어쩌면 함정일지도..."
"치아키 선배, 마음은 이해하지만 방법이 없어요. 일단 들어가보죠."
이부키는 용감히 지하실 문을 열었고, 그곳에는...
"컥, 커허억, 푸흐으..."
속옷만 입고 소파에서 잠든 사츠키가 있었다.
"... 난 좀 기다렸다 들어갈게."
"안 그래도 그러라고 할 참이었어요."
내가 문 앞에서 기다릴 동안, 이부키와 아이들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여긴... 서재인가?"
"우와, 책 엄청 많다! 만화책은 없나?"
"이로하 선배, 조금만 조용히..."
이부키는 들뜬 이로하를 진정시키며, 사츠키에게 다가갔다.
그녀를 깨우기 위해 이부키가 손가락을 사츠키의 볼에 가져다 대려는 순간...
덥썩.
"히익!"
"누가... 허락도 없이 여기 들어온거지?"
언제 깼는지 눈을 부릅 뜬 사츠키가, 이부키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 저기, 이건 그러니까...!"
"무단 침입은 중범죄... 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렇게까지 겁먹은 거 보면 도둑은 아닌 거 같고... 여자애들끼리 온 걸 보니 내 몸이 목적도 아닌 거 같은데?"
"응? 선배 몸이 왜?"
"이로하 쨩, 제발 입 좀..."
눈치없는 이로하는 뒤로 하고, 사츠키는 소파에서 일어나 이부키와 눈을 맞췄다.
"옷가지를 보아하니 만마전 같은데... 나 같은 퇴학생은 이제 당신네들이랑 볼일 없는 것 아녔나? 뭐하러 찾아왔지?"
"그, 그건..."
이부키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완전히 겁먹은 거겠지. 이건 어쩔 수 없나.
"어이, 거기!"
"응? 뭐야, 남자 목소리?"
문 뒤에 서있던 나는, 이부키를 돕기 위해 서재로 들어갔다.
"미안하지만 돌아가, 남자랑 노닥거리는 취미는 없어서."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사츠키는 내 존재가 신경쓰였는지 소파에 걸려있던 외투를 걸쳤다.
"나도 미짜 건드리는 그런 남자는 아니니까 착각 마라? 그것보다도 사실은, 뭐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야."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니? 아니 그것보다도, 당신은 뭔데 만마전이랑 같이 움직여? 요즘 만마전은 이런 신원도 불확실한 사람이랑 어울리는거야?"
사츠키는 독살스런 말들을 마구 내뱉었지만 상관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건 정면돌파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만마전의 의장 하누마 마코토가 당했어. 선도부장 소라사키 히나도 어디론가 사라졌고. 우리는 지금, 선도부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알아야만 해."
"...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와서 어지럽긴 한데, 그걸 진짜 내가 알 거라 생각하고 여기 온거야?"
"소라사키 히나는 1학년 시절 정보부 출신이었죠. 당신은 그런 그녀의 동기였고요. 싸움에 말려들고 싶지 않은 당신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선도부장을 추적하기 위해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하아... 이래서 만마전을 나간 거였는데."
미간을 잡은 사츠키는, 어쩔 수 없다는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 뭐, 히나 녀석이 뭔가 꾸미고 있다면 짚히는 게 있어."
"그게 정말인가요? 그렇다면!"
"그렇다고 조급해하진 말고, 꼬맹이. 그러다 일을 망칠 수 있으니까."
적당히 소파 근처에 있던 슬리퍼를 신고, 사츠키는 서재의 깊숙한 곳으로 걸어갔다. 당연히, 우리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우와... 책, 엄청 많네?"
"거기다 이 책들, 전부..."
"우와! 신비동물학 사전이다! 연금술 책도 있네?"
아까는 갑자기 방문했기에 눈치채지 못했지만, 서재 안을 걸으면서 둘러보니 오컬트와 관련된 온갖 책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고보니 사츠키는 최면술에 관심이 많았지... 이 세계에서도 비슷한 취향인건가?"
혼잣말을 하던 중, 난 갑자기 사츠키가 멈춰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이건... 역사서인가?"
"뭔가 지금까지와는 결이 다른 것 같은데... 당신 오컬트 마니아 아니었어?"
"오컬트야 취미고, 이건 정보부 업무랑 관련해서 모으던 거니까 말야. 그 중에서도... 아, 여깄다."
사츠키는 까치발을 들어 책장 위쪽에 있는 책 한 권을 꺼냈다.
"이 책은... '뇌제의 마지막 발자취 - 아비도스 편'?"
"히나 녀석은 예전부터 뇌제의 유산에 관심이 많았거든. 그리고 이 책에 나온 내용 중에..."
사츠키는 책을 넘기며 띠지로 표시해둔 부분을 펼쳤다. 거기에는...
"자 꼬맹이, 네가 직접 읽어보라고."
"'게헨나의 뇌제는 전쟁을 끝낼 병기를 개발했으나 그것을 종전까지 사용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 행방을 현재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일설에서는 당시 강대 학원이었던 아비도스와의 우호 관계의 상징으로써 맡겨졌다고 한다'... 이게, 정말인가요?"
"나도 모르지, 그냥 사학자들이 멋대로 떠든 것뿐이니까. 하지만 히나는 거기에 꽤 집착했어."
"집착이라니? 대체 왜?"
"그 녀석은... 뇌제가 세운 질서를 아주 싫어했거든."
"뇌제가 세운 질서?"
우리 모두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부담됐는지, 사츠키는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하아... 더 이상 얘기하면 꽤 곤란해지는데. 뭐 좋아, 어차피 여기까지 왔는데 뭘 숨기겠어. 외부인이 있는 게 거슬리지만, 그냥 잠자코 들어."
그렇게 사츠키는 자신의 정보부 시절을 이야기해주었다.
사츠키와 히나는 1학년 시절 정보부 동기였다고 한다.
첩보 활동으로 두각을 드러낸 두 사람은, 당연히 모두에게 정보부의 루키로 인정받았다.
사츠키는 그런 주변의 시선에 만족했지만, 히나는 그렇지 않았다.
"응? 히나, 뭐 해?"
"아, 사츠키구나. 별건 아니고..."
히나는 종종 뇌제와 관련된 기록물을 열람하곤 했다고 한다. 사츠키는 그저 히나가 뇌제를 존경하나 보다 생각했지만...
"있잖아, 사츠키."
"응? 왜 그래, 히나?"
언젠가 같이 식사를 하던 중, 히나는 자신의 의중을 사츠키에게 드러냈다.
"요새 뇌제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 조사하는 중인데 말야, 확실히 그 시절엔 엄청난 수의 전투가 매일 발생한 것 같더라."
"그야 그렇겠지, 분란의 시대였으니까. 그치만 그걸 뇌제가 정리한 덕분에 이 학원엔 평화가..."
"근데 그 전투가, 과연 무익한 거였을까?"
"... 어?"
히나의 주장은 이랬다. 분란의 시대에서 과학과 예술을 비롯한 문명이 발달했고, 뇌제의 통치가 시작된 이후부터 이것이 점점 쇠퇴했다는 것이었다.
"너,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몰라. 하지만 난 해낼 수 있어, 내 이론을 증명할 수 있다고."
히나가 먼저 자리를 뜨는 동안, 사츠키는 충격에 그 자리에 가만히 굳어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는, 아마 너희들도 알거야. 2학년부터 현장에서 뛰기 시작한 히나는, 실력을 인정받아 선도부로 들어갔고..."
"자신의 지지를 바탕으로 전쟁을 일으켰군요.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사츠키의 눈에는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히나를 진심으로 걱정했던 건 아녔을까? 그리고 그건 히나도 마찬가지여서, 일부러 이 저택을 공격하지 않았다던가?
그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런 추측보다도, 지금은 눈앞의 일을 해결하는 것이 급했다.
"그래서, 아비도스로 가야 된다는 건 알겠는데..."
"이후엔 어쩌지? 여기에도 결국 뇌제의 병기가 어딨는지 안 나와있고, 무엇보다 이게 어떻게 생긴 건지도 모르잖아."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아비도스... 위험한 곳이지만 가볼 가치는 있겠네요."
"재밌겠다! 이로하는 찬성!"
확실히, 아비도스는 위험한 곳이다. 황량한 사막과 작열하는 태양이 우릴 반겨줄 거고, 그리고...
'이 세계의 아비도스 대책위는, 어떤 아이들이려나...'
아비도스 비상대책위원회. 개성이 강하긴 해도, 스러져가는 학교를 부흥하기 위해 힘쓰는 심지굳은 아이들.
학생들이 반전된 이 세계에선, 그녀들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럼 결정됐네. 만마전에 돌아가면 아직 굴러가는 차 한 대 정도는 있을거야. 아비도스까진 금방 갈 수 있겠지."
"에에~? 이로하는 전차타고 가고 싶은데..."
"큰일날 소리 마세요, 선배. 포함 외교하러 가는 게 아니라구요."
"운전은 내가 할게. 외부인인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그 정도니까."
그렇게 우리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을 때,
"잠깐, 나도 같이 가."
"응? 사츠키, 너도?"
의외로 계속 시니컬한 반응을 보여주던 사츠키가 동행 의사를 표했다.
"오해는 마. 난 히나가 폭주하는 게 무서워서 만마전을 탈퇴한 겁쟁이지만... 그래도 뭐, 그 애를 잘 아는건 나니까. 그리고..."
사츠키는 책상 서랍을 뒤지다, 어떤 명함을 꺼냈다.
"아비도스는 거친 사람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니까, 도움이 필요할 거거든."
사츠키가 꺼낸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68번지... 탐정 사무소?"
"흐음...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나."
한편, 저택 밖에서 만마전 일행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이가 있었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발을 핥아진 수모를 갚고 싶지만... 침착하게 움직여야겠지."
선도부의 저격수 이오리는, 휴대용 망원경으로 적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어디 두고봐라, 내가 반드시 그 녀석 머리통에 바람 구멍을...!"
"저기 학생, 그 망원경 말야... 안 살거면 슬슬 내려놓지? 요즘 내전 때문에 장사가 안 돼서 뒤숭숭한데."
"에? 아, 응, 미안..."
다만 땡전 한 푼 없이 몸만 끌고 나온 그녀에게, 당장 복수는 힘들듯했다...
"헉, 허억... 부장님... 부장님...!"
게헨나와 아비도스의 접경 지대에 있는 사막, 그곳에서 선도부의 선임행정관 아코는 필사의 각오로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등에는, 의식을 잃은 선도부장 히나가 업혀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아비도스예요... 부디 그때까지 버텨주시길...!"
히나는 전면전이 실패하면 아비도스로 향할 것이라고 아코에게 말한 바 있었다. 그곳에는 '샌드맨'과의 협상을 위해 파견해둔 병력이 있었기에, 이들과 합류한다면 역전의 기회를 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실치는 않지만 그 뇌제의 병기가 이곳에 묻혀있기도 했기에, 아코는 포기할 수 없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걸으, 면..."
하지만 한계였다. 온천개발부의 급습 이후 지친 몸을 이끌고 사막까지 걸은 아코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안, 돼... 좀만 더 가면, 되는데... 부장, 님..."
탈수 증세 때문일까,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대로 말라버리는 건 시간 문제겠지.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
"어, 진짜다! 대장 말대로 여기 사람이 쓰러져 있어."
"저, 저기 히카리... 역시 돌아가자... 이 사람들 그 선도부잖아,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목소리. 분명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이런 삭막한 곳에, 구원의 손길이 닿았다.
"안돼안돼! 대장이 반드시 데려오랬어, 샌드맨이랑 싸울 때 필요하다 그랬다고!"
"그, 그치마안..."
왠지 갈팡질팡하는듯한 목소리. 여기선 움직여야만 했다.
"이, 이봐요... 저, 저기..."
"히익! 나 발목 잡혔어!"
"어차피 힘도 없어 보이는데 차버리면 되잖아?"
난 녹색 쌍둥이 중 한 명의 발목을 잡고,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흐느꼈다.
"제, 제발... 전 상관, 없으니까... 부장을... 살려, 주세..."
"... 그, 역시 데려가자, 히카리."
"응? 방금까지 싫다며?"
"그, 그래도!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무시할 수도 없고..."
쌍둥이 중 트윈테일 쪽이 얼굴을 붉히며 말하자, 곱슬머리 쪽이 만족스럽다는듯 웃으며 답했다.
"응, 역시 그렇지? 노노미 대장도 좋아할거야."
*****
어찌저찌 저번화로부터 일주일만에 올렸네요...
사실 지제네 이터널하다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츠키의 과거회상에서 언급된 히나의 흑화 계기는 좀 억지스럽지 않나 생각했는데, 이번에 일섭쪽 제결전 보니까 딱히 이상할것도 없겠어서 그대로 넣었습니다.
과연 아비도스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사실 제가 즉흥적으로 소설을 쓰는 스타일이라, 저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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