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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히나 씨의 성격이 변했어?! #11

ㅇㅇ(211.200) 2019.11.25 00: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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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금요일 저녁.


나는 가벼운 복장과 착잡한 기분으로 기숙사를 나섰다.


히나 씨를 만나러 가면서 이렇게 홀가분하게 차려입은 건 처음이다.


그와 동시에 마음이 이렇게 무거운 것 역시 처음이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호~다카!”


생머리를 한 히나 씨가 특유의 발랄한 기운을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여긴 곧 영업 종료를 하는 신주쿠 교엔의 근방.


동선이 바로 옆인 행인이나 으슥한 분위기를 즐기려는 커플 말고는 인적이 끊길 시간대다.


히나 씨는 내 목을 팔로 감고는 키스 세례를 마구 퍼부었다. 숨이 찰 지경이다.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약속을 잡았어? 혹시 그렇고 그런 이유? 후후훗.”


“히나 씨.”


나는 그늘이 진 표정으로 히나 씨를 품에서 밀어냈다. 이렇게 적극적인 스킨십에도 전혀 기쁜 티를 낼 수가 없다.


오히려 히나 씨가 웃을수록, 내게 몸을 기댈수록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듯했다.


“호다카?”


그제야 내 이상을 감지한 히나 씨가 한 걸음 물러나더니 손으로 입을 가렸다.


만면 한가득 돌던 화색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너무 싫다, 그런 표정. 왜 그래?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히나 씨…….”


마음은 먹었는데 몸이 말을 듣질 않는다.


입을 떼야 한다. 그 선언을 해야 한다.


용기를 내라, 모리시마 호다카.


전부 히나 씨를 위한 일이다.


이 세상에서 소멸하긴 싫다고 우짖던 본래의 히나 씨의 염원.


그걸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저 사실,”


“사실?”


여전히 개구리 같은 눈을 하며 고개를 갸웃대는 히나 씨.


결국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주먹까지 힘껏 쥐며 소리쳤다.


“따로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어요!”


“……………….”


내뱉고 말았다.


그 말을.


비단 어린애 히나 씨뿐만 아니라, 예전의 그 성숙한 히나 씨조차 들으면 가슴이 와르르 무너질 폭탄 발언.


곧이어 무시무시한 정적이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말로 형용하기가 힘들 만큼 깊고 긴 침묵이다.


히나 씨의 얄팍한 가슴을 들었다 놨다 하는 숨소리만이 귓가를 간질인다.


얼마나 흘렀을까, 영원할 것만 같던 이 정적을 먼저 깨부순 쪽은 히나 씨였다.


“호, 호다카, 그게 무, 무슨 말이야?”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어요.”


말을 더듬으며 고개를 내젓는 히나 씨에게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노, 농담하는 거지? 그렇지? 이거 다 몰래카메라지? 싫다, 이런 장난.”


“진짜라고요!”


결국 나는 갑갑하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꽉 막힌 목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제야 히나 씨는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는지, 대화의 본궤도에 함께 오르기 시작했다.


“……누군데? 누구야, 그 여자?”


“저희 학과 1년 후배예요.”


“학과 후배? 아, 알 것 같아! 호다카 주변에서 꼬리 친 여자애들 중 하나겠지?”


“…….”


“그런 거라면 이해할 수 있어! 호다카도 아직 혈기왕성한 나이니까, 충동적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 나도 가끔 길거리에 멋진 남자들 지나가는 거 보면 눈 돌아가기도 하니까!”


곧이어 히나 씨는 내 머리를 붙잡더니, 내 시선이 자신의 눈을 향하도록 했다.


“아직 안 늦었어, 호다카! 그 고백, 지금이라도 차버려! 정 용기가 안 나면 나도 같이 이야기해줄게! 응?”


“제가 먼저 고백한 거예요.”


“뭐?”


그 말에 어린애 히나 씨의 심리적 저지선이 돌파당하고 말았는지, 이윽고 성난 어조로 공격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가 호다카한테 못해준 게 도대체 뭔데?!”


이전에 충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던 분노 게이지와는 영역이 다르다.


이제 상황은 그 어떤 말로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불만이 있으면 진작 말하던가! 내가 몇 번이고 물었는데 다 괜찮다고 했으면서, 이제 와서 이러기야?!”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목에 핏대를 세우는 히나 씨.


그러나 나는 그 노기의 뒷면에 숨은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아직 히나 씨는 내게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되돌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히나 씨와 나의 인연을 끊으려면, 그 희망까지 철저히 짓밟아야 한다.


“작작 좀 해, 아마노 히나!”


“……!”


기어코 나는 히나 씨만큼 목청을 높이고 말았다. 어중간한 태도로는 도저히 선을 그을 수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징글징글한 것도 정도가 있지, 언제까지 나한테 들러붙어 있을 거야?!”


“호, 호다카?”


“너랑 내가 처음 만난 게 언젠데? 벌써 4년이 흘렀잖아! 설마 중고등학생 때 인연이 평생 갈 거라고 생각했어?”


“…….”


“그동안 네 어리광 받아주느라 나도 고생 많았다. 이제 지쳤어. 너보다 훨씬 성숙하고 착한 애 찾았으니까, 이제 그만 너도 갈 길 찾아서 가!”


“……내가 갈 길?”


“아직 못 알아듣겠어? 너 정도면 달라붙는 남자들 많을 텐데, 거기서 골라서 아무나 사귀라고!”


말을 한 마디씩 할 때마다 발톱을 세운 맹수가 내 심장에 스크래치를 내는 듯했다.


사람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른다는 말은 거짓이었구나.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지금쯤 흘렸어야 했는데.


“오늘 용건은 이걸로 끝이다. 이제 앞으로는 연락하지 마.”


나는 그 말을 기점으로 히나 씨의 손을 뿌리치고는 뒤돌아서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저쪽으로 가면 기숙사로 향하는 지하철이 나온다.


또한 히나 씨의 마음으로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저승과 이승을 가르는 스틱스 강처럼.


그때였다.


“부, 부탁입니다…….”


내 발목이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무거워졌다.


누군가 바닥에 엎드려 발목을 붙들고 간절히 애원하고 있었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그게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저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히나.”


나는 쓰라린 왼쪽 가슴을 움켜잡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가,


“날 잊어 줘.”


짤막한 한 마디만을 남기고 전력으로 질주했다.


몇 번이고 돌아가려는 고개를 억지로 고정한 채 얼마나 달렸을까, 나는 목적지인 지하철 입구에 도달했다.


더 이상 히나 씨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 귓가가 외면하는 소리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마치 귀머거리가 된 것처럼, 근처에서 울리는 모든 소음들이 나를 피해서 달아났다.


졸지에 외톨이가 된 나는 지하철 입구 계단에 몸을 기댄 채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젖병을 뗀 이후로 이만큼 크게 울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오늘은 즐거운 공강 날.


과제와 전문서적들로 꽉꽉 들어찬 가방을 멘 채 발걸음을 재촉하는 학생들이 안쓰러울 따름이다.


나는 폰의 달력 어플을 켜서 일정을 확인했다. 승리자의 여유란 항상 달콤하다.


드디어 미유와 200일 기념 데이트를 하는 날이다.


깜짝 선물도 미리 준비해놓았다.


미유의 SNS 계정 기록을 종합한 결과, 가장 좋아할 만한 선물 1순위로 추천받은 품목이다.


반지.


“…….”


그런데 반지를 포장한 상자를 들고 있자니 멍하게 정신을 놓게 된다.


뭐지, 이 공허함? 내 가슴 한편을 뻥 뚫고 지나가는 이 느낌은?


“선배!”


“으왁!”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고개를 불쑥 내밀자, 나는 반사적으로 반지를 품에 숨겼다.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하필이면 이 선물을 일찍 들켜서는 안 될 상대다.


“미유! 깜짝 놀랐잖아.”


“히히, 선배! 저 몰래 뭐하고 계셨어요?”


“포, 폰 만지고 있었어!”


“으흐으음?”


미유는 갈색 펌 헤어를 손으로 쓸며 한쪽 눈을 치켜떴다. 마치 용의자에게서 단서를 포착한 탐정 같다.


“진짜요?”


“그럼, 저번에 함께 테마파크 놀러갔을 때 찍은 사진들 보고 있었다니까.”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이다.


가장 최근에 폰으로 한 일은 그게 맞다. 방금 전까지 폰을 쓰고 있었다는 말이 틀렸을 뿐.


“저도 한 번 봐요! 잘 나왔으려나?”


미유는 재빠른 움직임으로 내 손에서 폰을 채갔다.


그러자 나는 속수무책으로 모든 현대인들의 1순위 친구를 빼앗기고 말았다. 비밀번호를 걸어놓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잠깐, 미유! 보여줄 테니까 얼른 내놔!”


“뭐 감추고 싶은 사진이라도 있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응?”


요령 좋게 내 손을 피해서 스크롤을 내리던 미유가 눈을 크게 떴다.


“이 여자 누구예요?”


“뭐?”


나는 미유가 가리키는 사진으로 시선을 향했다.


민소매 외투 차림의 양 갈래 머리 소녀가 노란 우산을 쓴 채로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


말도 안 돼.


카메라랑 다운로드 폴더에서 저 소녀에 대한 기록은 전부 지웠을 텐데?


“이거 어느 폴더에 담긴 사진이야?”


“어디 보자, 백업이요.”


“백업?!”


이제야 떠올랐다. 거기에도 남아있었지, 참.


“그래서 누구냐고요.”


“예, 옛날에 잠깐 알고 지낸 친구야. 지금은 연락도 끊겼어. 봐, 날짜도 한참 지났잖아.”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 사진들을 얼른 삭제 처리했다.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아린다는 느낌이 뭔지 알 수 있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데이트가 끝나고, 나는 발걸음을 서둘러 기숙사로 돌아왔다.


미유는 하룻밤 같이 보냈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내가 외면했다.


오늘은 즐겁고 여유로운 날인데도 마음이 종일 불편했다. 이대로는 밖에 오래 있어봐야 우울해지기만 할 뿐이다.


방에 들어와서 씻고 간단히 저녁을 때우고 나자, 허전함과 외로움만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왤까?


나를 좋아해주는 여자와 교제하고 있는데, 이런 쓸쓸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뭐지?


멍한 표정으로 폰 화면을 응시하고 있던 나는,


“…….”


꼭 확인해야만 하는 일이 떠올라서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수동으로 눌렀다.


늦은 시간인데다 무려 반년이 넘도록 연락이 끊긴 상대지만 의외로 금세 받아주었다. 다행이다.


「호다카?」


“나기, 나야.”


나는 무미건조하고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한때 선배로도 불렸지만 지금은 그저 어린 동생 중 하나인 그 중학생 소년이 발끈해서 물었다.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연락하는 거야?」


“미안, 정말 미안해.”


그 사과는 진심이었다.


사실 다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지만, 지금은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러자 나기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착 가라앉는다.


「진짜로 누나가 싫어서 찬 거 아니지?」


“…….”


열네 살 소년의 눈치가 이렇게 빠를 줄이야.


나는 솔직히 시인했다. 나기라면 곧이곧대로 그 사람에게 일러바치진 않을 것이다.


“그래.”


「역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사정이 있구나.」


나기는 거기서 말을 끊고 침묵을 지켰다. 계속해서 열을 올리며 추궁할 줄 알았더니 예상보다 침착하다.


그 사람과 같이 지내다보니 누나만큼 조숙해버린 걸까.


“나기, 미안하지만 딱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


「뭔데?」


“히나 씨 요즘 상태 어때? 옛날 모습으로 좀 돌아온 거 같아?”


「누나? 턱도 없지. 요즘은 내가 누나 먹여 살리느라 바빠 죽어. 어린애처럼 징징대기만 하고.」


“뭐라고?”


그 말을 듣자 나는 손에서 힘이 빠져 폰을 스르륵 흘리고 말았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허무함 때문에 제정신을 차리기가 힘들다.


「호다카, 호다카?!」


얼마나 흘렀을까, 나기가 목청 높여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다시 허겁지겁 폰을 주워들었다.


“나, 나기! 히나 씨 말이야, 혹시 아직도 날 그리워하고 있어?”


「아니, 눈이 퉁퉁 붓도록 울긴 했는데 일주일은 갔나? 그 이후론 형이랑 찍은 사진, 동영상 다 지워버리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어. 잡일은 모두 내 담당이지만.」


“내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 해?”


「응, 요 몇 달 간은 전혀.」


“…….”


그나마 다행이다.


히나 씨는 이제 마음속에서 날 완전히 몰아냈다. 그때 그만큼 거칠게 나간 효과가 있긴 했나보다.


그런데 더 큰 문제에 봉착했다.


왜 본래 인격이 돌아오질 않지?


“아.”


그제야 나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간단한, 하지만 그동안 전혀 신경 쓰지 못한 허점을 알아챘다.


히나 씨만 신경 써서 될 일이 아니었다.



내가…….

내가 못 잊는구나…….



“나가.”


「응?」


나기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나가라니, 그게 무슨?」


대답할 기력이 없었다. 곧이어 나는 폰의 전원을 아예 꺼버리고는 벽에 머리를 세게 들이박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쿵쿵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지끈거린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머릿속 한편을 채우고 있는 그 사람의 기억은 더더욱 생생히 떠오르고 있었다.


“이제 그만 내 머릿속에서 나가요, 히나 씨!”


젠장, 젠장, 젠장!


잊어야 되는데, 기억에서 쫓아내야 하는데!


계산이 완전히 어긋났다. 이래서야 히나 씨한테 그렇게 심한 소리를 한 보람이 없잖아.


그렇게 자해를 한지 몇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심신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바닥에 축 늘어져있었다.


그때,


“아.”


간이 카페에서 할아버지가 해주신 말 한 마디가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히나 씨의 원래 인격을 돌리기 위한 세 가지 방법 중 최후의 수단.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절대로 쓰고 싶지는 않았던 해결법.


그러나 이제는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



“진짜, 진짜 미안해요. 히나 씨…….



---------------------------------------------------------------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갑니다.


13~14화 즈음에서 마무리될 예정.


항상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하고 추천 댓글은 힘이 됩니다.





+ 팬픽 관련 잡담은 웬만하면 팬픽 댓글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갤에 제 팬픽 관련 내용 게시글 올라오기 시작하면 제가 제일 눈치보이고 불편합니다.


특히 팬픽 자체를 싫어하시는 분들한테 피해가 가고 친목의 위험이 될 수 있습니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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