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201504~202110 타입문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201504~202110 타입문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나의 세계.manwha 페이탈베룬
- 싱글벙글 브레이크없는 자전거의 위험성 ㅇㅇ
- 싱글벙글 노후에 자영업 하지말라고 조언하는 후배 차단예정
- 유가상승 악재 ‘경고등’…이란사태에 숨 죽인 비트코인 스탈린
- 오늘 임명된 청와대 인사들 문석열2
- 싱글벙글 고깃집에서 먹는 방법이 다른 영남 특징 ㅇㅇ
- [단독] “폭격음에 지하로 대피”… 중동 경유 한국인들까지 발 묶였다 뽀롱
- 곧 우버로 부를 수 있습니다, 한번 충전에 160km 운행 마스널
- 현직 교사가 말하는 다문화가정의 지능 배그린
- 싱글벙글 오늘 올라온 북괴 공식 언론 1면.jpg ㅇㅇ
- ??? 이란 타령하고 있네 !! 가봤자 칭챙총 소리나 듣는다고~ 한녀부도
- MOM 리오넬 메시 오늘 자 골 장면 모음...gif 메호대전종결
- 이란 핵개발에 영향을 준 리비아 사태 배터리형
- 인류 역사상 최고의 전쟁문학 TOP 10..JPG leeloo
- 등돌린 민심에 끝내 무릎 꿇은 중국 전통주... 마오타이의 몰락 난징대파티
히로시마 2박 3일 쌀먹 여행기 (1~3일차)
때는 작년 10월, 제주항공 특가 이벤이 열림, 그래서 한번 뭐가있나 보는데 히로시마 특가가 남아있었음그래서 친구한테 님 히로시마 가실? 하고는 친구가 가자고 해서 히로시마 여행이 계획됨문제는 내가 1월달에 다른 친구랑 다카마쓰 가기로한 예정이 있었고 나는 학식충이라 돈이 쪼달린다는거임친구도 돈이 쪼달리기는 마찬가지여서 남는건 젊음 뿐이니 둘이서 한번 제대로 쌀먹여행을 해보기로 했음항공편은 제주항공 인천 -> 히로시마 07:45~09:30 / 히로시마 -> 인천 16:30~18:15 으로 오는 편은 특가가 다 팔려서 위탁포함으로 결제해서 왕복 143,150원 나옴아침 일찍 비행기인데 친구가 울산 살아서 그냥 하루 일찍 올라와서 운서역 근처에서 1박함, 'ABC 홈스테이'라는 곳에서 잤는데 침대 2개에다가 꽤 넓고 개인 욕실인데 32500원이라는 개꿀가격이었음 그렇게 다음날 공항철도 타고 인공옴, 스마트패스 있으니까 탑승권 같은거 꺼낼 필요도 없고 탑승할때도 전용줄로 들어가니까 개편하더라 무조건 하셈 ㅇㅇ작년 가을에 주기적으로 했던 제주항공 쌀먹 이벤트로 받은 포인트로 앞쪽 자리 사전 구매 함, 이런 개꿀 이벤트 정보가 갤에 자주 올라오므로 일붕이들도 갤질하면서개꿀정보 습득해서 빠르게 쌀먹하도록 하자 ㅇㅇ그렇게 도착한 히로시마 공항, 대부분은 여기서 공항 리무진 버스 타고 히로시마로 가겠지만 우리는 한푼한푼이 아까운 쌀먹충들이기에 다른 방법을 택함이번 여행 교통비 쌀먹의 핵심인 구루링 패스, 이거 모르고 히로시마 여행가면 유죄임 ㅇㅇ3일동안 3800엔이라는 가격으로JR 산요 본선 (이와쿠니 ~ 오노미치) 구간 재래선 열차 무제한히로덴 무제한미야지마 페리 무료 탑승이쓰쿠시마 신사 무료, 슛케이엔 무료 등말이 필요없는 혜자를 자랑하는 패스임 ㅇㅇ공항 버스로 시라이치 역까지 이동함, 히로시마 가는 리무진 버스가 1500엔이라는 사악한 가격을 자랑하는데 무려 1000엔이나 쌀먹하는거임 ㄷㄷ거기다가 우리는 히로시마 공항에서 히로시마 보다 오노미치가 더 가깝다는 점을 이용해 오노미치를 먼저 가기로 했음한 15분 정도 걸려서 도착한 시라이치역, 그냥 흔한 시골역임 호출벨 눌러서 카메라에 구루링 패스 보여주고 통과함기다리는 동안 건너편에 들어온 227계 전동차, 저 열차는 히로시마역 방향으로 가는 열차임, 얼마 후 열차가 도착했고 미하라역으로 이동함시라이치 역에서 타는 열차는 오노미치 까지 한방에 안가고 이토자키까지만 가므로 미하라역에서 내려서 갈아타야함 (히로시마역도 마찬가지)이토자키에서 갈아타도 되지만 걍 시간이 조금 남으니 신칸센도 멈추는 미하라역에서 내림역 바로 뒤에 미하라 성터 공원이 있다. 별거 없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서 신칸센 지나가는거도 보이고 시간 떼우기 나름 괜찮음이후 다시 기차타고 오노미치역으로 이동함내리니까 뭔가 비싸보이는 열차가 멈춰있고 막 이벤트 같은거 하더라찾아보니까 미즈카제라는 초호화 관광열차였음, 오노미치역에서의 마지막 운행이라고 행사 하는거 였음오노미치역 코인락커에다가 짐 넣어놓고 걸어서 오노미치 라멘 마루보시로 이동함, 2명이서 오면 600엔 락커에 작은 캐리어 2개 쏙들어가서 돈아껴서 좋다.한 20분 정도 웨이팅 한 끝에 입장, 오노미치 라멘 + 가라아게 + 밥 세트로 1200엔임라멘은 쇼유계 특유의 깔끔함에다가 돼지 비계로 추가된 기름진 맛이 절묘하게 조화되어서 상당히 맛있었음가라아게는 말해뭐해 개꿀맛이었다. 꼭 먹으셈 ㅇㅇ이후 로프웨이 비용 500엔 쌀먹을 위해 센코지 정상까지 걸어가기로 함, 돈도 아끼고 골목 정취도 느끼고 다리도 튼튼해지니 1석 3조임 ㄷㄷ가는 길에 115계 똥차도 보고올라갈수록 점점 전경이 드러나기 시작함고양이 골목도 잠깐 들리고, 운좋게 고양이도 봄, 애가 사람이 익숙한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더라 지나가던 일본인들이 막 쓰다듬고 사진찍기도 함올라가는 길, 다리는 아프지만 경치가 좋아서 괜히 더 기분이 좋아지고 설렘매화도 많이 피어있었음, 하지만 이날 저녁부터 온 비로 아마 지금은 상당히 많이 떨어졌을듯전망대, 이날 저녁부터 비가 예상되어 있어서 구름이 많이 끼어서 날씨는 좀 아쉬웠지만 좁은 수로를 둘러싸면서 펼쳐진 마을의 모습이 쫙 펼쳐지는 광경이 좋았음여기 전망대에서 소프트도 먹었는데 핫사쿠 오렌지라는 맛이 있어서 먹어봤는데... 아이스크림이 단맛이 아니라 쓴맛이 남, 찾아보니까 이쪽 지역에서 나는 과일종류인데 자몽처럼 쓴맛이 나는게 특징이라더라, 모르는건 뭔지 찾아보고 먹도록 하자, 레몬맛은 아주 맛있었음 ㅇㅇ이후 역쪽으로 내려와서 푸딩 먹으려고 했는데 원래는 쉬는 날이 아닌데 전날이 천황 생일(빨간날)이어서 그런지 문 닫았더라... 강제 쌀먹하게 됨오노미치역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히로시마역으로 이동함 (이것도 마찬가지로 이토자키 아니면 미하라에서 환승해야함)이후 히로시마역에서 히로덴 타고 숙소로 이동함 (사진 깜빡하고 못찍음)숙소는 Hotel Kuretakeso Hiroshima-otemachi 여기로 예약했고 아고다에서 5만원에 예약함 사실 여기도 2만원에 잘 수 있었는데 욕심부리다가 놓침, 이 이야기는 2일차에 풀도록 하고숙소 사진은 깜빡해서 안찍었지만 해피아워로 주류 한잔 공짜 제공 + 작지만 대욕장도 있는데 이 가격? 그냥 개꿀이었음저녁 사러 가는길에 발견한 '그 손가락' 헬스장저녁은 후쿠야 백화점 식품관에서 초밥 마감세일 하는거 800엔에 구입 + 유어스 리비 마트라는 마트에서 마감세일 하는거 털어옴저기 있는거 다 합쳐도 2000엔이 조금 넘음 ㄷㄷ 돈 아끼고 싶으면 마감세일 + 마트 털이 조합은 신이다. 초밥도 이걸 800엔에 먹는다고 싶은 맛이었음 참치 살살녹음 ㄷㄷ해피아워로 생맥 한잔 시원하게 마시고 저 캔맥주도 처음 먹어보는데 진짜 맛있었음아무튼 둘이서 값싸게 배부르게 먹고 비가 오지만 밤 산책을 나감비오는 밤의 원폭돔과 평화 공원, 비가 와서 특유의 감성은 좋았지만 확실히 사람은 적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운치 있었는듯?아케이드 쪽은 사람이 그래도 꽤 있었지만 오코노미무라 이런곳도 사람이 별로 없었음좀 걸었으니까 토리키 들러서 산프몰 한잔에 안주 몇개 먹어주면서 1일차 마무리1일차 정산 (1인당 비용)점심 오노미치 라멘 약 1000엔코인락커 300엔소프트 아이스크림 450엔석식 + 야식 약 2500엔기타 잡 비용 약 500엔숙소 약 2500엔====================총 비용 약 7250엔- 히로시마 2박 3일 쌀먹 여행기 (2일차, 이와쿠니, 미야지마)마츠야와 함께하는 2일차 아침, 어제 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여전히 오고 있었음, 구루링패스로 히로덴 무제한 탑승되는게 ㄹㅇ 좋았던게 생각보다 히로덴이 타고 다닐일 많음아침 식사 후 체크아웃 한다음에 히로시마역으로 히로덴 타고 이동함, 코인락커에 어제처럼 캐리어 넣고 가려는데, 플랫폼 가는길에 갑자기 문득 생각이 나는거임"ㅅㅂ 물품수취권 안뽑았던거 같은데???" 뒤늦게 헐레벌떡 코인락커로 가봤지만 물품수취권은 없었음, 나중에 열차에서 검색해서 찾아보니까 20초 안에 안뽑으면 다시 들어간다더라 그래서 멘탈이 나갔지만 일단 열차가 곧 출발하므로 타러가고 이와쿠니행 열차 탄 다음에 여기저기 정보 찾아봄 대충 찾아본 결과가 수취권 없으면 코인락커에 적힌 번호로 연락하면 사람이 오고 이래저래 해서 꺼내주는대신 출장비로 1000엔 정도 받는다는 내용들이 많았음 그래서 아... 1000엔 존나 아깝다 ㅅㅂ.. 하면서 일단은 여행을 계속함도착한 이와쿠니역, 키하 40계 동차 발견해서 한장 찍음여기서 버스를 타고 긴타이교까지 이동함 비용은 300엔, 이코카도 됨도착한 긴타이교,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구름이 잔뜩 낌, 사진은 결국 색감인데 많이 아쉬웠음긴타이교 입장권 + 로프웨이 왕복 세트권을 970엔에 구입긴타이교를 건너는데 이거 생각보다 경사 가파르고 미끄럽더라건너자 마자 보이는 아이스크림 집, 무려 222가지 맛이 있다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맛 종류를 자랑하는 아이스크림 집임바닐라, 말차 같은 기본적인 맛 부터 시작해서 와사비, 미소, 카레.... 등등의 특이 메뉴, 클레오파트라의 눈물맛, 악마맛 같은 정체불명의 맛까지 아주 다양함우리는 여기서 남성 인기 랭킹 4위인가 6위인가에 있던 '악마맛'을 먹어보기로 함, 구글 리뷰에서 절대 악마맛을 먹지마.... 라는 리뷰를 봤었기에 아주 궁금했음 그 결과는...맛은 달달한 아이스크림 맛인데 저 정체 불명의 가루가... 진짜 사방팔방에 묻음 만약 흰옷을 입었더라면....만약 가볼 일붕이들이라면 굳이 악마맛은 먹지말고 다른 맛을 시도해보도록 하자로프웨이 타고 올라와서 약 10분 정도 길을 걸어가면 이와쿠니 성이 나옴 이건 가다가 본 특이한 나무이와쿠니성, 안에 역사가 설명되어있는데 영어로 읽어보니까 원래 성이 있었는데 영주당 성 한개만 소유하라는 명령이 내려와서 부셨었다는거 같음 (아닐수도 있음) 지금의 성은 복원한 것, 아무튼 들어가면 이런 역사 같은거 적혀있고 여러 칼들이 전시되어있음1월달에 다카마쓰 성터 갔을때도 있떤데 무한성 개봉때 전국 성들에 콜라보 한듯?성 제일 꼭대기에서 본 전망, 바다까지 보이는 탁 트인 전망이 아주 좋음, 날씨만 좋았더라면...긴타이교를 뒤로하고 다시 버스 타고 이와쿠니역으로 이동함 (300엔)미야지마구치역으로 이동, 이후 페리 선착장에서 점심 먹음나는 시루나시 탄탄멘(사진 깜빡함), 친구는 히로시마 매운라멘 먹었는데 맛있었음 ㅇㅇ 근데 제일 매운맛 하니까 산초맛이 강해서 꽤 맵더라페리타고 미야지마로 이동, 구루링 패스 소지자는 입도세 (100엔)만 결제하면됨저 멀리 보이는 도리이, 날씨가 흐린게 정말 여러모로 아쉬웠음한바탕 싸움? 중인 갤주들, 저러고 막 박치기 하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쪽에서 소리 들리니까 둘다 멈추고 우리를 멀뚱히 처다보다가 다시 박치기 하던데 멀뚱히 처다보는게 ㄹㅇ 웃겼음나가하마 신사 도리이 쪽은 사람이 거의 없어서 고즈넉하니 좋았음, 갤주들도 많이 모여 있고 ㅇㅇ이후 이쓰쿠시마 신사 쪽으로 이동함유명 인사인 '그 사슴', 나중에 갈때 보니까 3마리로 늘어나 있더라, 근데 점마들이 저렇게 입구 막고 있으면 장사 방해되는거 아닌가? 싶었음이것이 말로만 듣던 일본 3대 절경 중 하나? 확실히 바다위에 떠있는 거대한 도리이는 뭔가 일본만의 감성을 자극하는 느낌이 있었음, 날씨만 좋았더라면....갤에서 누가 알려준 등 사이로 찍는 방법 좋더라, 역시 갤질을 하면 좋은 정보를 많이 얻는다 ㅇㅇ오모테산도 상점가에서 아게모미지, 굴튀김 먹음 아게모미지는 붕어빵을 튀긴 맛? 무난했고 나 굴을 초등학교때 이후로 비려서 꺼려했었는데 여기서 먹으니까 맛있더라... 계속 생각나는 맛이었음이후 들어간 이쓰쿠시마 신사, 구루링 패스 소지자는 여기 매표소가 아니라 오모테산도 상점가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입장권 받아와야함도리이 정면에서 찍을 수 있는 포토스팟은 줄 서야 해서 그냥 패스 했음, 썰물때 와보면 어떤 느낌을지 궁금해지는 광경이었음해변가에서 고즈넉하게 시간좀 보낸 다음 다이쇼인으로 이동절인데 왜 호빵맨이 있는지는 몰?루다이쇼인 한번 쫙 둘러봐준다음 이제 히로시마로 다시 돌아감히로시마역에 도착해서 착잡한 마음으로 코인락커를 향해 가는데, 바로 그때 관리하시는 분이 코인락커들 막 점검하고 있었음, 그래서 사정을 이야기 하니까 바로 옆이 관리실이더라? 거기서 열쇠 가지고 오시더니 코인락커 기계 열어보니까 우리 수취권이 딱 들어있는거임 그래서 감사합니다 하면서 수취권 받았음, 마침 우리가 넣은 코인락커가 딱 이랬던거라 이건 정말 운이 좋았던 케이스라고 할 수 있음, 동전 나오는 소리에 어그로 끌려서 잔돈 챙기다가 깜빡했었는데 일붕이들은 반드시 수취권 챙겨놓고 분실 대비해 사진도 찍어놓자이후 히로덴 타고 저녁먹으러 감저녁식사는 오코노미야끼 앗짱에서 먹음 다른데에서는 안먹어봐서 모르겠지만 여기 맛있었음, 그리고 사장님이 엄청 유쾌하셔서 재밌음저녁식사후에 상점가 좀 구경하고 리쿼샵 돌아다니면서 발렌타인 30년 가격 비교하고 면세로 하나 구매하고 (친구 아버지가 하나 사오라고 하심) 숙소로 버스타고 이동함숙소는 '그랜드 프린스 호텔 히로시마' 여기로 예약했는데 클룩에서 3만원 쌀먹 쿠폰 써서 조식 포함 55000원에 예약했음 일단 4성급인데 이 가격인거부터가 말이 안되는데...(여기 사진은 깜빡하고 동영상만 찍어서 동영상 장면 캡처한거라 화질 구림 ㅈㅅ)방이 진짜 개넓음 ㅋㅋㅋ 남아서 업그레이드 해준건가? 싶은데 일단 문열고 들어가자마자 방이 아니라 복도가 나오더라, 화장실, 욕실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고와.. 진짜 일본여행하면서 료칸 아니고 호텔인데 이렇게 넓은 방 처음 써봄 심지어 오션뷰임 그런데 이게 조식포함해서 5만5천이라고? 1인당도 아니고? 말이 안되는 가성비 였다.여기 호텔 진짜 좋았는데 유일한 단점은 히로시마 시내에서 거리가 상당히 멈 (무료 셔틀 운행하기는 하는데 시간대가 한정적임) 하지만 이런 가격에 방 퀄리티라면 무조건 여기에서 묵을듯 함 우리는 일정상 안 맞았지만 여기 호텔 선착장에서 미야지마가는 고속페리도 구루링패스로 편도 무료 탑승 가능한거로 알고있으니까 활용하면 ㄹㅇ 좋을듯호텔 방에서 사온 야식 먹으면서 2일차를 이렇게 마무리함2일차 결산- 조식 900엔- 코인락커 300엔- 긴타이교 버스비 왕복 600엔- 긴타이교 + 로프웨이 세트권 970엔- 중식 1,200엔- 미야지마 입도세 100엔- 간식비 약 1,000엔- 석식 약 2,500엔- 기타 잡 비용 1,000엔- 숙소 1인당 약 3,000엔======================총 비용 약 11,570엔- 히로시마 2박 3일 쌀먹 여행기 (3일차, 원폭돔, 평화공원, 슛케이엔)기분좋게 맞이한 3일차 아침, 방에서 커튼을 치우니까 일단 푸른 하늘이 보여서 기분이 좋았다.여기 호텔은 23층이 조식먹는 곳인데 세토내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탁트인 전경이 아주 좋았음, 조식은 그냥 흔한 호텔 뷔페였는데 오꼬노미야끼랑 굴카레가 특색있었음다시 히로시마역으로 이동해서 코인락커에 짐 넣어놓고 원폭돔으로 이동역시 하늘은 파래야 기분도 좋고 사진도 잘 나온다. 비오는 첫날밤에 방문했을때랑은 여러모로 느낌이 달랐음원폭돔에서 평화 기념관을 보기위해 걸어서 이동함저 불은 전세계에서 핵무기가 완전히 사라질 때 까지 피어오를거라고 하더라기념관은 처음 들어가면 있는 원폭 맞기 전 후의 히로시마 시내 사진이 크게 인상적이었음, 핵무기의 압도적은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달까...기념관은 전체적으로 핵무기의 위력과 그 피해자들의 모습들을 중점으로 되어있었음, 화상을 입은 사진이나 피폭되서 온몸에 발진이 올라온 사진등 다소 혐오스러운 사진도 그대로 전시되어 있어서 핵무기의 무시무시함을 느껴볼 수 있었고,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간략하게 나마 적혀있더라, 이런곳 관람하는거 지루하다고 별로 안좋아하는 사람이더라도 여기는 한번 관람해보기를 추천함, 사실 전세계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 단 두 도시에서만 접할 수 있는 내용들이니까 여기까지 왔다면 꼭 관람해 보기를 바람한국인 피해자 위령비에 들러서 물 한병 올려드리고 잠시 묵념함, 가다가 보니까 일본 현지인 분들도 여기서 기도하시는 분들 계시더라평화의종, 종을 직접 칠 수 있는데 타종되는 부분이 원자 모양으로 되어있더라, 뭔가 묘한 기분...원폭 맞기 전 후의 모습, 여기 바로 근처 상공 600m에서 터졌는데 이렇게 뼈대가 남은것에 세삼 철근 콘크리트의 위대함을 느낌그렇게 원폭돔을 뒤로하고, 점심을 먹으러 이동함점심은 갤추천 히로시마 맛집 돈카츠 키쿠야에서 먹었는데 점보치킨카츠 정식도 맛있었지만 친구꺼 먹어보니까 돈카츠가 진짜 맛있더라, 고기가 진짜 부드럽고 달달하게 느껴짐, 느끼한 맛이 살짝 올라올때 카라시랑 톤지루, 양배추로 싹 가라앉혀 주면 ㄹㅇ 밥 무한 흡입 ㅆㄱㄴ임, 밥이랑 양배추도 리필되므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음. 개인적으로 교토에서 먹었던 2500엔 하는 돈카츠보다 여기가 더 맛있었음 배부르게 먹고 싶은면 점보치킨카츠정식(1100엔), 맛있는 돈카츠가 먹고싶다면 돈카츠 정식(1300엔) 추천함이후 소화시킬겸 걸어서 슛케이엔으로 이동함일본 올때마다 느끼지만 일본식 정원은 갈때마다 실패가 없는것 같은 기분임 항상 좋더라,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겐로쿠엔, 고라쿠엔도 꼭 방문해볼 예정, 슛케이엔 역시 구루링 패스에 포함되어있는데 히로시마 역과도 가까우니 마지막 날에 가볍게 들러보기를 추천함꽃은 항상 예쁘다이렇게 엄청 크지는 않지만 좋았던 슛케이엔을 뒤로하고 걸어서 히로시마역으로 이동한 후 다시 시라이치역까지 열차타고 가서 버스타고 공항으로 이동함2박 3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알찼던 여행이 종료됨3일차 결산버스비 240엔코인락커 300엔평화 기념 자료관 입장료 200엔점심식사 1,200엔시라이치역 -> 공항 버스비 490엔기타 잡 비용 약 500엔=========================총 합계 약 3,000엔1,2,3일차 비용에 비행기 값, ESIM, 여행자 보험 등 다 포함해도 50만원 미만으로 여행했음, 만약 주머니 사정이 여유가 없더라도 일본 여행은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시간만 된다면 고민하지말고 떠나보기를 바람, 이 짓도 젊을때만 가능함 잘 찾아보면 여러 분야에서 비용 절감할 수 있으니까 여러모로 찾아보면 쌀먹가능함, 특히 갤에 주기적으로 개꿀정보 올라오니까 정보탭에 올라오는 글들만 잘 읽어도 일본여행에서 돈 진짜 많이 아낄 수 있음!!!
작성자 : 케마고정닉
바탄의 영웅 에드 다이스
군 갤 이란 떡밥에 개같이 묻혀 밀내갤에 재업https://youtu.be/y9MrRkgdEWg바탄에 대한 일본군의 최종 공격이 시작되기 1~2주 전 어느 날, 여러척의 일본군 함선과 바지선들이 수빅 만에 진입한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할 조지 대령님이 바탄에 본부를 두고 항공작전을 지휘하셨는데, 그 분은 우리와 함께 바탄에 계셨고 바탄 포위망에서 모든 과정을 함께해 주셨기에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맥아더 장군은 단 한번 바탄에 방문했습니다. 에어컨이 설치된 크라이슬러 관용차를 타고 와서 잠깐 둘러보고는 코레히도르섬으로 돌아갔지요. 그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맥아더 장군은 분명 뛰어난 군인이었지만 바탄에 있지는 않았습니다.아무튼 작전에 사용 가능한 기체가 극소수라 정찰임무만 수행하던 우리에게 수빅 만에 있는 일본군 함선을 공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아마도 명령 체계에서 혼돈이 발생해 할 조지 대령이 공격허가를 받았다고 생각하셨던거 같습니다.바탄 비행장에 주둔 중이던 제21추격비행대대 지휘관 에드 다이스(William Edwin Dyess) 대위가 해당 작전을 지휘했습니다.당시 우리가 가진 P-40 (P-40E)에는 동체 하부에 연료 탱크를 장착할 수 있는 거치대가 있었고, 연료 탱크를 고정하는 4개의 버팀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항공 폭탄을 장착 할 수는 없던 장치였는데 에드는 그 거치대에 500파운드 항공 폭탄을 장착하는 기발한 방법을 고안해냈습니다.일본군 제로 전투기는 기체 하부에 커다른 코일 스프링이 감긴 지지대가 설치된 연료 탱크를 장착했었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스프링의 장력으로 기체에서 연료탱크를 밀어냈죠. 바탄에는 그렇게 떨어진 연료 탱크들이 즐비했습니다.에드는 그 연료 탱크들에서 스프링을 추출했습니다. 그리고는 P-40 연료 탱크 거치대에 있던 4개의 버팀대에 각각 스프링을 장착해 항공 폭탄을 사용할 수 있게 개조 했습니다.조종석에 있는 연료 탱크 투하 장치를 당기면 스프링 장력을 이용해 폭탄을 밀어내서 떨어뜨릴 수 있게 된거죠. 이 임시 폭탄 거치대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에드 다이스 대위 뿐이었습니다. 수빅 만 공격에는 제가 지휘하던 마리벨레스 비행장에서 2대, 에드가 지휘하던 바탄 비행장에서 3대, 총 5대의 P-40이 출격했습니다. 첫 공격에서 우리 비행대대 소속 P-40 2대 중 화이트 중위가 조종하던 기체가 대공사격에 격추되었습니다.에드는 큰 배를 표적 삼아 폭탄을 투하했고 그 배는 해안에 좌초했습니다. 폭탄을 투하한 에드는 해안에 있던 일본군들에게 기총소사를 하고나서 비행장으로 귀환했는데, 두 번 더 수빅 만을 왕복하며 폭탄을 일본군에게 투하했습니다.세 번째 폭탄은 일본군 함선에 제대로 직격했습니다. 일본군에 대한 공격은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필리핀 전투 당시 제20추격비행대대장 이었던 조셉 무어 (JOSEPH H. MOORE) 대위의 1998년 인터뷰 내용 중(1971년 중장 전역)1916년 텍사스 올버니에서 태어난 윌리엄 다이스 (William Edwin Dyess, 이하 에드 다이스)는 1936년 존 타를턴 농업대학(현 타틀턴 주립대)를 졸업하고 텍사스 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해 법조인이 되려고 했었다.하지만 자동차를 운전해 로스클에 등록하러 가는 길에서 만난 히치하이커가 그의 운명을 바꿨다.그 히치하이커는 미 육군 항공대 비행 사관생도 훈련 프로그램에 탈락한 사람이었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흥미가 생긴 다이스는 1937년, 육군 항공대에 자원입대 한다. 비행사관생도 시절 촬영된 에드 다이스의 모습제21추격비행대대 엠블럼랜돌프와 켈리 비행장에서 조종사 훈련을 받은 다이스는 최우수 생도로 졸업했고, 중위로 진급 후 제21추격비행대대장에 임명 되었다.당시 미 육군항공대 최연소 비행대대장 중 하나였던 그는 제21추격비행대대와 1941년 11월, 필리핀 마닐라 니콜스 비행장에 배치되었다.태평양 전쟁 개전 직후 일본군의 공격에 괴멸된 필리핀 주둔 미육군 항공대 속에서 대위로 진급한 다이스는 항공작전을 지속했다.이 시기 그는 6대의 적기를 격추하고, 필리핀에 상륙한 일본군에게 공격을 가했다.제21추격비행대대는 수적열세로 개전 몇 주만에 극소수의 잔존기체만 남게 되었고, 다이스와 그의 부대원들은 71보병사단 임시 중대 보병으로 편입되었다.다이스는 1942년 1월 23일 바탄반도 서해안 쿠나완곶에 상륙한 일본군 츠네이로대대 소탕 작전에 투입되었고, 2월 8일 20명의 대원들을 지휘해 해안 절벽에 참호를 파고 농성하던 잔존 일본군들을 소탕하는 전과를 올렸다.보병 훈련을 받은 우리들은 의욕은 넘쳤지만, 어딘가 어색했습니다. 실전 투입 전 거의 2주 동안 산을 오르내리며 일본군을 찾아 수색하는 훈련을 받았는데, 바탄 남부의 협곡에 야영지를 차리고 주변에 온갖 지형을 활용해 훈련을 했습니다.”우리들의 장비는 마치 군수품 벼룩시장에서 주워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소총 말고 사용할 수 있던 기관총은 P-40 전투기에서 회수하여 자체 거치대에 장착한 50구경 기관총과 어깨에 걸쳐서 석면 장갑으로 총열을 잡고 쏴야했던 30구경 루이스 기관총 6정이 전부였습니다.식사 메뉴는 곧 우리들의 무기만큼이나 다양하고 열악해져만 갔습니다... 먹을 수 있는 건 뭐든지 소총으로 잡아서 먹었죠. 결국 그 지역에는 살아남은 원숭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도마뱀까지 먹었는데, 이 날렵한 파충류는 잡기가 쉽지 않았죠.우리들은 참호조차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상태로 일본군과의 첫 번째 교전을 치뤘는데, 적군이 30명이라고 들었지만, 실제 숫자는 수백 명에 달했습니다. 그들에게 포위 공격을 받았고 사상자가 속출했습니다.잠 못 이루는 7일 밤낮이 지나고 나니 우리는 너무 지치고, 더럽고, 굶주려서 총에 맞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에드 다이스의 당시 전투에 대한 증언 해당 전과에 대한 보상으로 다이스 대위와 부대원들은 전투 비행에 복귀할 수 있었다. 추락한 기체들에서 부품들을 모아 재조립한 P-40 전투기들을 이용해 다이스는 2월에서 바탄이 함락되기 전까지 정찰, 의료품 수송, 보급품 투하 임무를 수행했다.3월 3일 다이스는 5개의 P-40을 이끌고 수빅 만에 상륙한 일본군 병력들에 공습을 가해 일본군 함선 여러 척을 침몰 시키고 해안에 양륙된 보급물들을 파괴했다. 1942년 4월 9일, 바탄에 있던 필리핀, 미국 연합군은 일본군의 대공세에 항복한다.항복 직전까지 전투기를 출격해 육군을 지원한 다이스 대위에게 바탄 비행장을 탈출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떨어졌지만, 그는 바탄 비행장을 탈출하는 마지막 비행기 자리를 훗날 유엔 총회 회장이 되는 필리핀 육군 대령 카를로스 로물로에게 양보했다. 에드 다이스 대위는 휘하 비행대 175명의 사병과 25명의 장교들과 함께 바탄에 남았다.포로가 된 에드 다이스는 바탄 죽음의 행진을 거쳐 361일 동안 오도넬, 카바나투안 포로 수요소와 다바오 형무소에서 비참한 전쟁 포로 생활들을 겪었다.왜소한 체격의 일본군 병사가 포로가 된 어느 대위의 주머니를 뒤지다가 그가 노획한 엔화 지폐를 발견했습니다. 덩치 큰 일본군 장교 한 명이 근처에 서 있었습니다. 사병은 지폐를 들어 올리고 고개를 숙인 채 숨을 들이켰습니다.그 일본군 장교가 지폐를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없이 대위의 어깨를 잡고 무릎 꿇게 했습니다. 칼집에서 칼을 뽑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렸죠. 사병은 옆으로 깡충깡충 뛰며 피했습니다.우리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검은 얼굴의 거인이 칼을 휘둘렀습니다. 햇빛이 칼날에 반사되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칼이 휘둘러지는 소리와 함께 마치 식칼로 소고기를 자르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났습니다.대위의 머리가 어깨에서 튕겨져 나가는 듯했다. 머리는 그의 앞 땅바닥에 떨어져 포로들 사이를 미친 듯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몸은 앞으로 쓰러졌습니다.그동안 인간의 몸에 난 상처를 많이 봤지만, 이렇게 피가 솟구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참수된 대위의 심장은 몇 초 동안 계속 뛰었고, 뛸 때마다 엄청난 양의 피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우리 발치에 있던 하얀 먼지는 붉은 진흙으로 변했갔습니다.이것이 내가 본 그들의 첫 번째 살인이었습니다.- 일본군에게 포로가 된 직후의 에드 다이스가 목격한 포로 학살일본군은 야전 병원에 입원했던 부상자들도 포로 행군 대열에 합류 시켰습니다. 사지가 절단된 부상자들은 비틀거리며 걷고자 노력했습니다.그들은 우리가 이런 부상자들을 돕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도와주려던 사람들은 두세 명씩 무리를 지어 우리를 미행하던 경비병들에게 발로 차이거나 주먹으로 가격당했고, 총검에 찔렸습니다. 나중에는 낙오된 사람들과 그들을 도우려던 사람들을 총살했습니다. 시신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겨졌습니다. 뒤따라오는 포로들이 볼 수 있도록 말이죠""마침내 영어를 할 수있는 경비병을 만났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졸려? 자고 싶어? 그럼 길바닥에 누워. 푹 잘 수 있을 거야!- 바탄 죽음의 행진에 대한 에드 다이스의 증언오도넬 포로 수용소에 도착했는데 필리핀계 일본인 소년이 수용소장인 일본군 대위의 연설을 통역했습니다. 당신들은 전쟁 포로가 아니다. 일본의 적일 뿐이다. 명예로운 전쟁 포로처럼 대우받지 못할 것이다.규율도 없이 내가 말하는데도 연설하고 있는데도 차렷 자세도 취하지 않는 당신들은 군인처럼 행동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 곤란한 일들을 겪게 될 것이다.굶주림이 도처에 만연했습니다. 몸무게가 90kg정도 나가던 사람들이 이제는 40kg도 채 되지 않았고, 갈비뼈가 훤히 드러났습니다. 살아있는 해골들이나 다름없었습니다.일본군은 수용소내 미국인 의사들에게 의료 기구나 약품, 심지어 붕대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병상에서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배설물을 씻어낼 물조차 충분히 제공받지 못했죠. 병상이 부족해 많은 미군 병사들이 화장실 근처 들판에 누워 있다가 죽어 갔습니다. 그들 주변으로 수백만 마리의 파리가 들끓었습니다.카바나투안 포로 수용소에서는 각 포로 조 인원 중 20%가 하루 동안 노역 도중 혹은 밤에 막사에서 사망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한번은 12명으로 구성된 조 중 9명이 시신으로 발견된 적도 있었습니다.- 에드 다이스가 증언한 포로 수용소 생활, 해당 기간동안 다이스는 괴혈병, 황달, 뎅기열을 앓았다.1943년 4월 4일, 두 달간의 계획과 준비끝에 에드 다이스는 잭 호킨스, 오스틴 쇼프너, 사무엘 그라시오를 포함한 9명의 미군 포로와 두 명의 필리핀인과 함께 다바오 형무소 탈출에 성공한다. 이 탈출은 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 전선에서 연합군 포로들이 대규모로 탈출한 유일한 사례이다.탈출 후 필리핀 게릴라와 접촉에 성공한 다이스와 동료들은 3개월 반 동안 정글에서 게릴라 활동에 수행했다. 1943년 7월 오스틴 쇼프너와 에드 다이스는 미 해군 잠수함 USS 트라우트에 탑승하여 필리핀에서 호주로 떠날 수 있었다. 호주에서 다이스 대위와 쇼프너는 바탄 죽음의 행진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맥아더에게 보고했다. 1943년 8월 에드 다이스는 미국으로 귀환했고 고위 군 장성들에게 필리핀에서 겪은 자신의 포로 생활에 대해 철저하게 보고했고, 이후 웨스트버지니아 주 애쉬포드 종합병원으로 재활치료를 받았다.병상에서는 시카브 트리뷴 기자 찰스 리벨과 인터뷰한 다이스는 포로생활 동안 겪은 일본군의 만행과 잔혹행위를 낱낱이 고발했다.시카고 트리뷴에 연재되기로 계획된 그의 경험담은 너무나 참혹해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거란 우려와 해당 보도 때문에 태평양 전선에서 포로가 된 미국인 군인과 민간인들에게 일본이 더 큰 위해를 가할거란 판단하에 전쟁부에서 보도 금지초치를 내렸다.두 달간의 재활 기간을 거친 에드 다이스는 중령으로 진급했고, 두 개의 무공훈장, 두 개의 은성훈장, 두 개의 수훈십자장이 수여되었다.그는 전투에 복귀하길 원했고, 유럽 전선에 파병되기 위한 비행 훈련을 재개했다.1943년 12월 22일, 다이스 중령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을 P-38 전투기로 정기 비행 훈련 중이었다.엔진에서 갑자기 불꽃이 솟구쳤고, 빠르게 기체에 옮겨 붙기 시작했다. 인구 밀집 지역 상공에서 발생한 화재였다. 그는 조종간을 꺾어 버뱅크 고속도로에 불시착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고속도로 상에 운전 중인 차량들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윌리엄 E. 다이스 (William Edwin Dyess)중령은 비상 탈출로 인해 추락하는 기체가 민간인들에게 줄 피해를 최소화 하고자 끝까지 조종간을 부여잡았다.불길에 휩싸인 P-38은 작은 공터에 추락했고 윌리엄 다이스는 산화했다. 향년 27세 였다.윌리엄 다이스 사망 한 달 후인 1944년 1월, 전쟁부는 그가 남긴 경험담을 언론이 보도 하는 것을 허가했다.시카고 트리뷴을 비롯한 여러 일간지에 "다이스 이야기"란 제목으로 연재된 25부작 시리즈는 이후 바탄 죽음의 행진: 생존자의 증언(Bataan Death March: A Survivor's Account)책으로도 출간되었다.다이스의 이야기는 진주만 공격 이후 미국 국민들에게 던져진 가장 큰 폭탄선언이었다.정체되었던 전쟁 채권 판매가 되살아났고, 미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복수와 승리에 대한 여론을 다시금 결집시켰다윌리엄 E. 다이스를 기리고자 텍사스 주 애빌린 공군기지는 1957년 다이스 공군기지로 개명되었다.2015년, 텍사스 주 의회는 윌리엄 E. 다이스에게 텍사스 주 의회 명예훈장을 수여했다.오늘날 다이스 공군기지 정문에는 바탄 전투 당시 윌리엄 E. 다이스의 전용 기체 P-40E KIBOSH를 재현한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P-40E KIBOSH 프라모델 작례들 참고자료https://www.afgsc.af.mil/News/Article-Display/Article/1598093/commentary-happy-birthday-to-lt-col-william-edwin-dyess/https://legionmagazine.com/the-incredible-story-of-captain-william-dyess/https://bataancampaign.wordpress.com/2015/12/08/ed-dyess-and-the-first-day-at-war/
작성자 : 투하체프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