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양민학살사건추모공원
거창양민학살사건 추모공원에 참배했다. 이런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되겠다. 아무리 6.25 전란 중이고 공비토벌이 지상과제라고는 하지만 이럴 수는 없었다. 공비의 생존 근거를 없애는 군사작전이라지만 14살도 못되는 어린애들이 죽은 사람의 반수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양민들을 골짜기에 몰아넣고 무차별 사격으로 사살하고 수류탄을 터트려 산을 메우고 솔가지로 덮었다는 학살현장 박산. 추모비에 머리숙여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학살 후 삼년동안 가족도 접근이 금지되어서 몇 년동안 붉은 색깔의 냇물이 흐르고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이것을 말도 못하고 숨죽이며 지켜보며 살아야 했던 거창 사람들, 이제 이런 부끄러운 역사는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학살후 삼년만에야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으나 신원을 가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뼈가 크고 굵은 것은 남자, 가는 것은 여자, 작은 것은 어린이로 대충 가려서 세개의 무덤에 나누어 함께 묻었다는 묘소에 머리를 숙여 빌었다. 이은상 선생이 시를 쓴 위령비를 유족들로 하여금 정으로 쪼아 글씨를 뭉개고 유족들의 손으로 땅을 파서 묻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을 느꼈다.
고인들이시여, 이 땅의 죄를 널리 용서하소서. 그리고 이 땅에 화해와 평화를 축복하여 주소서.
합천 원폭피해자 복지회관
합천 원폭피해자 복지회관을 찾았다. 전국에 유일한 원폭피해자들을 위한 시설이다. 60여명의 원폭 피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셨는데 대기자가 100명이 된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원폭피해 생존자가 2,500명인 점을 생각하면 시설이 태부족이다.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이 2003년부터 일본으로부터 원호수당을 받게 되어있으나 절차가 까다로와서 제대로 받지를 못한다고 했다. 일본에 가서 피폭당시 증인이 있어야 하는데 어떤 할머니는 일본으로부터 피폭확인증을 받고도 일본으로 건너갈 수 없어서 수당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한일관계에 있어서 민간인 전쟁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세심한 대책이 부족했었다는 지적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정성껏 돌보는 복지회관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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