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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살인(10)

운영자 2011.09.29 18:02:44
조회 433 추천 0 댓글 0

  나는 교도소 보안과 입구의 검은 비닐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래된 콘크리트 바닥위에 여기저기 놓인 철 책상들 앞에서 교도관들이 사무를 보고 있었다. 바닥에 편지뭉치들을 깔아놓고 분류를 하는 직원도 보였다. 담당계원이 내게로 다가와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다.
 

  “무슨 이유로 이 공문이 온 거죠? 이런 건 우리가 처음이라서 ---”
 

  그가 재판장의 명령이 적힌 공문을 내게 보이며 물었다. 나는 사건의 내막을 설명 했다. 그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갔다. 얼마 후 계장이 와서 사유를 또 물었다. 또 다시 같은 내용을 말해 주었다. 그는 서류를 가지고 과장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안 되어 과장도 납득이 안 되는지 방을 나와 내게 와서 사유를 설명해 달라고 했다. 또 얘기해 주었다. 한없이 늘어졌다. 책임문제를 생각해서 모든 게 서류로 만들어져야 했다. 서류가 계원, 계장, 과장, 부소장, 소장등 순차로 결제가 되어야 했다. 사람 숫자를 세고 또 세고 서류를 만들고 또 만들고 절차에서 시작해서 절차로 끝나는 게 교도소인 것 같았다.
 

  교도소는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죄수뿐 아니라 그 안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나 시설까지 낙후된 것 같았다. 60년대 쓰던 무쇠로 된 연탄난로를 볼 수 있는 곳이 교도소이기도 했다. 행정도 몇 십 년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한없이 기다렸다. 무료한 중에 벽에 걸린 씨씨티브이 모니터가 눈에 들어왔다. 여러 감방 안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그중 한 모니터가 눈에 들어왔다. 비좁은 감방바닥이 내려다 보였다. 카메라의 위치가 천정 중앙쯤인 것 같았다. 구석에는 각목으로 네모난 틀을 만들어 비닐을 친 화장실 문이 보였다. 그 앞에 육중한 몸의 30대쯤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물같이 가만히 있었다. 조폭의 냄새가 풍겼다.
 

  ‘책이라도 읽으면 세월을 낭비하지 않을 건데’
 

  갑자기 그런 안타까움이 들었다. 감옥을 살아도 삶이 전부 달랐다. 모임에서 지방신문사의 한 간부를 만났었다. 필화사건으로 구속됐다가 넉 달 만에 석방됐다고 했다. 그는 감옥에 있는 동안 바빠서 못 본 책이나 실컷 읽겠다고 결심하고 매일 책 한권 읽기운동을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잠잘 때까지 밥 먹고 청소하고 운동하는 시간 이외에는 독서에 전념했다. 목표를 150권으로 잡았는데 그걸 미처 달성 못한 상태에서 철컹하고 감방문이 열리면서 나가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살 줄 아는 사람은 어디서건 사는 법이다.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로 유명한 도종환 시인한테서 들은 얘기도 잊혀지지 않았다. 그는 전교조운동으로 징역을 살았다고 하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감옥생활을 할 때 정말 시를 쓰고 싶더라구요. 시인이 시를 쓰지 않으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그래서 교도관에게 연필 달라고 투쟁했어요. 당시만 해도 뾰족한 물건은 흉기가 된다고 해서 필기구를 금지하고 있을 때였죠. 어느 날 운동을 마치고 감방으로 들어오는데 운동권 출신 학생 하나가 볼펜심 반 토막을 슬쩍 건네줬어요. 얼마나 고마웠던지 눈물이 났죠. 그걸 가지고 밤이면 책들의 여백에 시를 썼어요. 종이가 없었으니까요. 석방 되는 날 세 명의 교도관이 소지품 검사를 하다가 시들이 적혀있는 책들을 보고 반출이 안 된다는 거예요. 내 책인데 왜 못가지고 나가느냐고 항의했죠. 그중 한 교도관이 내 시가 적힌 책들을 따로 비닐 백에 분리했어요. 압수당한 거죠. 피를 말리면서 쓴 시들이 책의 여백마다 깨알같이 적혀있었는데 정말 아까웠죠. 교도소 철문을 나설 때 였어요. 따라 나오던 교도관이 시가 적힌 제 책들을 담은 비닐봉투를 얼른 손에 쥐어 주는 거예요. 그리고 싱긋이 웃는 얼굴로 경례를 부치면서 “안녕히 가십쇼”라고 인사했어요. 입으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 행동으로는 준거예요. 정말 눈물이 핑 돌았죠. 그게 교도소 생활이예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도 많아요.”
 

  살 줄 아는 사람들에게 감옥은 감옥이 아니었다. 하나의 수도장이고 독서실이고 학교였다.
 

  “변호사님 오랫만입니다.”

  그때 옆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교도관이었다.
 

  “예전에 대도 조세형 변호하실 때 제가 뵙고 의견을 말씀드릴려고 했어요.”

  그는 나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뭘요?”

  내가 물었다.
 

  “조세형을 보니까 눈에 독기가 덜 빠졌더라구요. 그건 제 입장에서 볼 때 또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거죠. 교도관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그런 걸 느낄 때가 종종 있거든요. 집에 데리고 가서 같이 생활까지 하신다는 소리를 듣고 그 말을 전해 드릴려고 그랬어요.”
 

  교도관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직업적 육감이 있었다.
 

  “언제 그런 독기를 느끼셨는데요?”
 

  “텔레비젼의 인권운동사랑방이라는 프로에 제가 나갔는데 거기 석방된 조세형이 나왔더라구요. 안다고 눈인사를 하는데 그때 눈을 보니까 그랬어요.”

  눈빛은 가장 정직한 대화였다. 그가 덧붙였다.
 

  “교도관들을 보면 이 감옥 안에만 살아서 그런지 의외로 단순하고 착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단점도 있어요. 죄를 진 사람들하고 사니까 닮아가는 거예요. 부하직원들을 보면 어떤 잘못은 뻔히 보이는데도 무조건 부인부터 해놓고 보는 거예요. 오리발 내미는 건 닮아가요.”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교도관들이 일어나 구내식당으로 가고 있었다.
 

  “교도소 점심 한번 드셔보시죠.”

  그가 내게 친절하게 권했다.
 

  “조금 전에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왔어요. 감사합니다.”
 

  더러 교도소에서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도심 외곽에 고립된 부산교도소 같은 곳은 접견을 가면 밥 먹을 장소가 없다. 그런 때 구내식당에서 재소자들이 만들어주는 밥을 얻어 먹기도 했었다. 이윽고 나를 안내할 교도관이 다가왔다.
 

  “자 저를 따라오시죠.”
 

  오랜 시간 끝에 허락이 떨어진 것이다. 나는 그 교도관을 따라 동굴 같은 교도소 내부의 통문을 따라 깊숙한 안쪽으로 향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있는 철창을 통과했다. 양쪽으로 목욕탕, 이발실, 수사접견실등 시설이 보였다. 이발소 안으로 들어갔다. 육십년 대 동네이발소 같은 풍경이었다. 이발의자가 놓여 있었고 벽에는 머리를 감는 시멘트 세면대가 있었다. 그 앞에서 머리를 쳐 박고 있으면 이발소의 잔심부름을 하는 소년이 머리를 박박 감아주곤 했었다. 강철윤이 나와 있었다. 그 옆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재소자 이발사가 서 있었다. 가운 아래 다리부분에 죄수복이 보였다.
 

  “변호사님 어떻게 머리를 깍을까요?”

  나와 있던 이발소 담당 교도관이 물었다.
 

  “먼저 스포츠형으로 깍아 주세요. 그걸 사진 찍은 다음에 빡빡 깍고 면도날로 퍼렇게 밀어주세요.”
 

  내가 말했다. 교도관이 서랍을 열고 거기서 이발도구를 내어 재소자 이발사에게 건네주었다. 그러고 보니 거울아래 선반에는 스폰지와 물통이외에 이발도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발 도구를 전부 이렇게 따로 보관합니까?”

  내가 이발소 담당 교도관에게 물었다.
 

  “그럼요. 면도칼을 대 위에 올려놨다가 그걸로 제 목이 뎅겅 잘리면 어떻게 하라구요?”
 

  그곳은 언제 돌변할 지도 모르는 야수성을 가진 인간들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머리를 깍는 강철윤을 향해 가지고 간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이발사가 마지막에는 그의 머리에 비누거품을 묻히고 면도를 했다. 그때 지켜보던 교도관이 내게 말했다.
 

  “이 안에서 찍으시면 플래쉬가 거울에 반사 되 안 나와요. 밖으로 나가서 찍으시죠.”
 

  나는 강철윤과 함께 이발소의 외부로 나왔다. 교도소 운동장 옆이었다. 철망으로 구획 진 저쪽에서 재소자들이 공을 차면서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어디에서도 인간은 웃고 떠들고 살아가기 마련이었다.
 

  “왜 평소에 삭발을 하죠?”

  내가 강철윤에게 물었다. 나는 그의 방에 설치된 신당이 떠올랐다.
 

  “그냥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쑥스러운 표정이었다. 나는 그의 무속적인  행태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을 땡초라고 표현을 했다. 자신을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강철윤의 앞면 뒷면 옆면 윗면을 사진 찍었다. 교도관에게 의자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해서 거기 올라섰다.
 

  “앞으로 가다가 얼굴을 뒤로 살짝 돌려서 나를 쳐다봐요.”

  내가 말했다.
 

  “어떻게요?”

 
  “아 목격자인 여자가 범인이 경비실쪽으로 가다가 뒤돌아 보더라고 했잖아요? 그런 포즈를 한번 잡아보자는 거지.”
 

  “이렇게요?”

  그가 밑에서 나를 뒤로 힐끗 돌아보면서 말했다.
 

  “몸통은 앞으로 가고 얼굴만 뒤로 쳐다봐요.”
 

  “이렇게요?

  그가 몸통을 앞으로 둔 채 얼굴을 돌려 카메라를 올려다 보았다.
 

  “맞아 그렇게”

  그 순간 셔터를 눌렀다. 내 눈에 비친 그의 뒷모습은 목격자가 봤다는 범인과는 분명 다른 사람 같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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