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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들이 빼앗기는 것

운영자 2012.09.20 15:06:52
조회 346 추천 1 댓글 1

  대한변협의 상임이사로 일한지 일 년 반이 넘어가고 있다. 협소한 개인법률사무소를 넘어 변호사 전체의 문제점을 보게 된다. 변호사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을 여러 번 봤다. 검경 수사권을 조정하는 대통령령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되기 하루 전이었다. 그 안에 변호사들에 대한 치명적인 독소조항이 있는 걸 발견했다. 형사나 검사는 조사에 참여하는 변호사가 걸치적거릴 때는 언제든지 쫓아버릴 수 있도록 했다. 경찰과 검찰의 실무자들이 막후에서 은밀하게 규정을 만들고 법무부는 대한변협에 의견 한 번 묻지 않았다. 사실상 조사 시 변호사의 입회권이 위태롭게 됐다.

 

  조사에 입회하려다 쫓겨난 적이 있다. 송파경찰서에서였다. 담당형사가 피의자와 함께 간 변호사인 나를 보면서 “당신은 공부 잘해서 변호사가 되고 나는 머리가 나빠 형사가 됐지만 이 조사에서 변호사가 입회하면 조서를 나쁘게 써 줄 거야”라고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수사에 장애가 있기 때문에 변호사의 입회를 거절한 게 아니었다. 과거 정보기관에서는 변호사를 하루 종일 기다리게 했다가 잠시 옆에 두고 사진을 찍어서는 조서의 신빙성을 높이는데 이용하기도 했다.

 

  변호사의 입회는 진실을 바로 잡는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 옆에 있으면서 엉터리 조서에 대해서는 초동단계에 서명을 거부하고 수정을 요구하는 게 핵심적이다. 입회권을 제한하는 대통령령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변협회장과 임원들이 집단으로 총리실을 찾았다. 국무총리도 법조인이기 때문에 이해할 것으로 생각했다. 변협으로서는 이례적인 집단행동이었다. 총리면담부터 거절됐다. 기자실을 찾았었다. 기자들도 시큰둥했다. 변호사에 대한 세상의 부정적인 인식이 어떤지 경험했다.

 

  심지어 변호사들 중에도 입회권을 반기지 않는 의견이 있었다. 냉대 받는 경찰이나 검찰에서 피의자 옆에서 하루 종일 고생할 필요가 뭐 있느냐는 반응이었다. 돈도 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은근히 조사 시 입회권이 사라졌으면 하는 눈치도 있었다. 여러 번 조사에 입회를 했던 나는 생각이 달랐다. 조사를 하는 형사나 검사를 통해 정확한 수사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식으로 수사방향을 바꾸기도 했다. 나는 변호비를 일한 시간당 타임차지로 하고 있다. 조사받으면서 함께 고생한 변호사에게 그 돈은 아까와 하지 않았다. 변호사가 피의자와 마음이 소통되는 순간은 함께 잠시라도 고통을 겪는 때다. 한밤 중 형사과 뒤쪽의 보호실에 함께 있어주면 그 사람들은 두고두고 그 정을 잊지 못한다. 마음도 얻고 돈도 생기는 인권을 위한 귀중한 영역이다. 그런 영역을 우리 선배변호사들이 모두 빼앗겨버리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 중에서도 요즈음은 일등석과 이등석 그리고 삼등석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대형로펌에서 자문을 담당하는 변호사들은 변호사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 경험도 관심도 없었다.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권리를 위한 투쟁에 진심이 담길 리가 없다. 변호사라고 다 같은 변호사가 아니다.

 

  그렇게 변호사의 중요한 권리를 빼앗겼다. 한 번의 항의방문으로 그들이 빼앗은 권리를 되돌려 줄 리가 없다. 일만 이천 명의 변호사들은 각자 벌어먹고 살기 바빠서 어떤 귀중한 걸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변협이 알아서 하겠지 하고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변협임원이라는 자리도 각자 자기 일을 하면서 어쩌다 모여 회의를 하는 비상임의 협의체다. 생활비를 버는 것 까지 포기하고 변호사 전체를 위한 투쟁에 온 몸과 시간을 바치기 힘든 게 현실이다.

 

  변호사를 하다보면 정말 분통터질 때가 많았다. 민사의 증거로 쓰기 위해 형사기록복사신청을 해도 검찰직원이 거절한다. 진실이 수사기록 속에 뻔히 있는데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면서 법원은 외면한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닥친다. 개인의 정보보호가 법적정의보다 더 귀중한 것 같다. 그러나 이면을 보면 그건 명분에 불과하다. 양형기준에 공탁을 하면 감경사유가 된다. 그러나 변호사가 공탁을 하려고 해도 피해자의 이름이나 주소를 알 수 없어 공탁자체가 불가능하다. 피해보상보다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게 왜 더 중요한지 이해할 수 없다. 형사판결이 선고되면 법원은 당사자에게 판결문을 송달해 준다. 그러나 변호사에게는 절대 그런 서비스를 해 주지 않는다. 언론이나 당사자들은 판결문도 의뢰인보다 나중에야 얻는 변호사를 불필요한 존재로 인식한다. 변호사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모두들 “어떻게 좀 해 봐”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직접 열정적으로 나서는 변호사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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