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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살인(24)

운영자 2012.02.21 15:36:06
조회 782 추천 1 댓글 3

  아침부터 가을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떨어져 쌓인 낙엽들이 비에 젖어 축축한 몸을 떨고 있었다. 선고일 이었다. 법정가는 길이 왠지 마음이 무거웠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변호사는 선고하는 날이 가장 심란했다. 속죄양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잘못되면 그들의 모든 불행이 변호사의 탓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병아리변호사 시절 내가 모시던 홍현욱 변호사는 선고 전날 변호사가 겪는 고통 하나만 해도 돈 받은 값을 다 했다고 내게 가르쳐 주었다.

 

  시계가 오전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법정 앞 복도는 어둠침침했다. 벽 아래 있는 길다란 의자에 강철윤의 딸과 어린 아들이 보였다. 아이들의 얼굴에도 짙은 그늘이 서려 있었다. 뒤늦게 본 아들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였다. 하얀 얼굴에 눈썹이 검은 귀엽게 생긴 꼬마였다. 내가 위로해 주기 위해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니?”

 

  “-------”

 

  아이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아직 어려도 대충의 상황은 파악하고 있는 눈치였다.

 

  “인천에서요-----”

 

  한 참 만에 아이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빠 보고 싶어서 왔구나”

 

  내가 애써 밝은 어조로 달랬다.

 

  “------”

 

  아이는 말이 없었다. 울먹울먹한 표정이었다.

 


  잠시 후 나는 법정의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방청석에는 초조한 표정으로 선고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가득했다. 법대 위에서 위압적인 판사의 붉은 의자가 무심히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고를 하는 판사들은 강심장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애절한 눈으로 사정하는 사람을 앞에 놓고 눈과 눈을 마주치면서 그의 인생을 박탈하기 때문이다. 삶을 이해하는 판사들은 함께 아파하고 위로를 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잔인하고 냉정한 부류도 있었다.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중형을 선고한다. 그럴 때 나는 그 판사의 눈을 살펴본 적이 있다. 가학적 쾌감이 소용돌이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죄인을 사회에서 없어져야 하는 별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독일 나치스의 유대인 인종청소도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윽고 재판장이 배석판사들과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누런 옷을 입은 피고인들이 하나씩 포승에 묶인 채 들어와 재판장의 앞에 서기 시작했다. 한사람씩 자신의 운명을 통보받는 것이다. 턱수염이 부수수 자라있는 사십대쯤의 남자가 수갑을 찬 채 앞에 와 섰다. 여성 재판장이 그의 눈길을 피해 판결문을 보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피고인은 이 자리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현재 존재하지 않습니다.”

 

  남자는 살인범 같았다. 중얼거리는 듯한 한참의 설명 끝에 재판장이 선고했다.

 

  “피고인을 징역 20년에 처한다.”

 

  선고를 듣던 남자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그의 인생도 대충 끝이 난 것이다. 그가 힘없이 돌아섰다.

 

  다음에는 중키에 오십대의 사나이가 선고를 받으러 나왔다. 누런빛이 도는 탁한 눈동자였다.

 

  “피고인은 여자를 추행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데 그거 정말 굉장히 중한 죄입니다. 여자는 그 상처가 평생 마음에 남아요. 어떻게 자기가 가르치는 제자를 추행할 수 있어요?”

 

  재판장의 목소리에는 여성특유의 분노가 묻어나고 있었다.

 

  “피고인을 징역 1년6월에 처한다.”

 

  “아이고 난 못살아”

 

  방청석에서 발작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내인 것 같았다. 법정경비가 그녀를 문 밖으로 내쫓았다. 그녀의 저주와 넋두리가 법정문 틈으로 밀려들어와 공기를 흔들어 놓고 있었다. 그 다음 선고를 받을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재판장은 전과는 달리 부드러운 표정이 되어 입을 열었다.

 

  “피고인의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은 재판부로서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또 아이에게 차비까지 주면서 돌려보낸 걸로 피고인의 성품도 알겠어요. 그렇지만 말이죠. 아이를 유괴해 끌어오는 순간 범죄가 되는 거예요. 법에 형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판사로서도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정말 국회에서 법이 고쳐지지 않는 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재판장은 피고인에게 자기 입장을 납득시켰다. 재판장은 어쩔 수 없다면서 그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어느새 재판정이 텅 비었다. 강철윤의 선고만 남은 상태였다. 강철윤의 꼬마 아들과 딸이 고개를 숙인 채 재판장의 눈치만 보는 거 같았다. 오늘 저녁 아버지를 집에서 보고 싶을 것이다.

 


  “강철윤”

 

  재판장이 무거운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피고인대기실의 문이 열리고 수갑과 포승을 한 강철윤을 교도관들이 데리고 나왔다. 그는 고개를 돌려 방청석에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순간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온몸이 녹아드는 것 같아 보였다. 그가 재판장의 앞에 차렷 자세로 섰다. 재판장이 잠시 뜸을 들인 후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살인의 점에 대해 변호인은 여러 가지 주장을 하고 기존의 증거를 탄핵했습니다. 재판부는 그 점들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슴이 설렌다. 재판장이 계속했다.

 

  “그러나 기록을 자세히 보면 죽은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오랫동안 가혹하게 시달린 게 인정됩니다. 피고인은 그걸 애정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법정에서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은 과도하게 지나친 집착이라고 보여 집니다.”

 

  맞는 소리다. 날카로운 지적이기도 하다. 기분이 찜찜하다.

 

  “재판부는 직권으로 피고인의 정신감정을 했습니다. 그 결과를 보면 피고인이 죽은 여자에게 한 행동은 정상적이 아니었습니다.”

 

  순간 강철윤이 중심을 잃고 휘청하는 것 같았다.

 

  “저 재판장님 잠깐 앉으면 안되겠습니까?”

 

  그가 재판장을 올려다보면서 사정했다. 표정이 낙심한 듯 일그러지고 있었다. 재판장이 배석판사와 눈짓으로 의논하더니 앉는 걸 허락했다. 재판장은 계속 판결이유를 말해 나갔다.

 

  “현실에서 유죄란 반드시 직접적인 증거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반드시 앞에서 직접 목격한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흉기가 압수되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어진 상황을 보면서 법관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의해 전체적으로 인정되는 것이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 법정은 살인에 대해 충분히 증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손도끼에 대해서는 그게 정확히 손도끼인지는 몰라도 그와 유사한 둔기에 의해 피해자가 사망했다고 인정됩니다.”

 

  결론은 난 셈이다.

 

  “피고인 일어설 수 있어요?”

 

  재판장이 냉냉한 눈길로 그를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그는 혼이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교도관 둘이 와서 그를 일으켰다.

 

  “피고인을 원심대로 무기징역에 처한다.”

 

  재판부는 그를 잔인한 살인범으로 인정한 것이다.

 


  “도대체 이해가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강철윤이 부르짖었다. 눈에서 쏟아지는 독기가 판사들을 꿰뚫을 듯 날카로웠다. 지금까지 보던 강철윤이 아니었다. 그가 번개같이 튀어올랐다. 그걸 예상이라도 했던 듯 교도관들이 달려들어 그를 덮쳤다. 그 바짝 마른 몸 어디에 괴력이 담겨있는지 여섯 명의 교도관이 그를 당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판사들이 번개같이 문 저쪽으로 피했다. 그가 몸을 뒤틀고 발길질을 하면서 발악을 했다.

 

  “아 씨팔 왜 이러는 거야---- 에이 씨발-----”

 

  방청석에서 아버지가 교도관과 뒤엉켜 싸우는 것을 본 꼬마아들이 “우에----”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옆에 있던 딸도 울고 있었다. 그게 사건의 끝이었다.


  몇 달이 흐른 어느 날 갑자기 강철윤의 동생이 찾아왔다. 그는 분노한 표정으로 다짜고짜 내게 소리쳤다.

 

  “인권변호사로 알았더니 당신 나쁜 사람이잖아? 진정할거야”

 

  그 말을 들은 나는 온몸의 피가 갑자기 쏴악 소리를 내며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동안 봐 왔던 사람이 아니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얼마 후 다시 전화가 왔다.

 

  “변호사님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감사합니다.”

 

  욕을 하는 인격과 감사하는 인격이 공존하는 사람 같았다.

 

  얼마 후 강철윤으로부터 내게 통고서가 날아들었다. 나에 대한 원망과 저주가 가득했다.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협박도 들어있었다. 일심에서 그를 변호했던 김변호사가 일이 있어 그를 만나고 왔다. 강철윤이 왜 내게 증오를 품고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김 변호사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전혀 그런 게 없던데? 열심히 변론해 줘서 고맙다고 하던데?”라고 했다.

 

  정상이 아니라는 재판장의 말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강철윤을 만난 날 그가 내게 했던 얘기가 기억 저편에서 우연히 떠올랐다. 자기에게는 이상한 증세가 있다는 그 말이다. 길을 가는데 어린아이가 있어 손을 잡고 같이 갔다는 것이다. 떡장사가 보여 아이에게 떡을 사주었다. 아이는 떡을 맛있게 먹었다.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까 아이는 없어지고 자기 혼자 떡을 먹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런 현상이 자기에게 자주 나타난다고 했었다. 그의 말에 미스테리의 살인현장이 겹쳤다. 그는 다중인격자인지도 모른다. 그가 아닌 또 하나의 강철윤이 환상살인을 한 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건 내가 모르는 미신의 영역이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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