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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재판과 비판

운영자 2012.03.12 17:31:23
조회 294 추천 0 댓글 0

  우연히 대한변협신문의 편집인을 맡게 됐다. 타블로이드판 12면의 작은 신문이다. 기사작성은 변호사를 겸직하는 나와 보조하는 한 명의 변협직원이다. 무엇을 쓸까 고민했다. 매주 한명씩의 변호사를 찾아가 삶의 현장과 고민을 듣고 인터뷰기사를 썼다. 철학을 가진 모범이 되는 변호사들을 소개함으로써 빛과 소금이 되게 하고 싶었다. 소외 된 변호사들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발굴해 보라는 요청이 있었다.

 

  때마침 이슈가 된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를 봤다. 모델이 된 변호사는 전문가 사회의 변경쯤에 위치한 노동전문이었다. 주인공인 박훈 변호사를 만났다. 진폐증으로 죽은 광부의 아들로 주방용품을 팔러 다니기도 한 특이한 경력의 소지자였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에도 월급 80만원의 노동전문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재판장이 일심에서 증거조사를 했는데 항소심에서 다시 할 필요가 없다면서 증거신청을 배척하더라고 했다. 그건 관점의 차이일 수 있었다.

 

  그와 대화중에 더 중요점을 발견했다. 판사의 의무가 법률의 해석까지인지 그보다 더 나아가 인간의 본질까지를 심판할 수 있는지였다. 박변호사는 석궁사건을 엘리트주의와 엘리트주의의 충돌이라고 평가했다. 주심인 이정렬판사가 개결한 자존심을 가진 나이 먹은 김교수의 자질까지 판결에서 거론한데서 불꽃이 튀었다고 했다. 이해가 갔다. 이 판사 역시 독특한 판결과 비밀을 지켜야 할 합의사항을 공개한 강한 주관을 가진 인물 같았다.

 

  ‘석궁테러와 빗나간 엑소시즘’이라는 유명신문사 논설위원실장의 칼럼이 발표됐다. 그는 영화의 허구성을 비판하며 감독을 깔아뭉갰다. 비판이라기 보다는 비난으로 보였다. 모델이 된 박변호사를 언론플레이를 하는 괴짜라고 공격했다. 사법부가 침묵한다며 진보성향의 판사들이 나서서 외쳐야 한다고 했다. 영화를 만든 정지영 감독의 얘기를 들었다. 정감독은 논설위원실장이라는 사람이 아예 독한 마음을 먹고 시사회에 참석했다가 악의적으로 쓴 글이라면서 분노했다. 무게 있는 중견언론인이 돌을 던지면 보통사람은 죽을 지경이다.

 

  대한변협신문은 작지만 독립적이다. 광고주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경영체계도 없다. 만이천명 지식인을 대변하는 단체의 입으로 성역 없이 바른 소리를 해 줄 수 있다. 일면 기사에서 논설위원실장의 이름을 분명히 하면서 칼럼 한 줄을 인용했다. 기명으로 한 건 논문같이 정확한 출처를 밝히고 소송에 걸릴 각오도 했다는 의미다. 즉각 논설위원실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는 흥분해서 내가 인터뷰를 했던 박변호사와 같은 부류라고 몰아쳤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당신을 혼내는 글을 다시 준비하는 중이라고 선언했다. 정당한 비판에 감정이 개입되기 시작했다.

 

  다음날 그 신문사의 ‘지평선’이라는 대표칼럼에 그의 글이 발표됐다. 그는 “사법부의 신뢰를 허무는 이기적인 악의가 도사리고 있다”면서 “대한변협신문이 황당한 석궁사건 변호사를 인터뷰한 것”이 그 상징이라고 했다. 심지어 칼럼은 “글쓴이가 법률가가 맞나 싶다”라고 인격적 모독까지 곁들였다. 정당한 비판이 담겨야 할 유명신문의 소중한 지면을 이렇게 써도 되나 싶었다.

 

  그가 욕한 대로 내가 법률가가 맞는지 반성해 보았다. 인터뷰기사를 쓰는 데 굳이 적용법조문의 검토가 필요 없었다. 어쩌면 광부아들의 노동전문 속에서 사상성향을 추측해서 그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본질에 대해서도 다시 신중히 생각해 봤다. 감독의 날카로운 눈은 법조인인 내가 습관같이 젖어있던 일면을 각성시켰다. 증거채택 여부는 당연히 판사의 전권으로 알았다. 그러나 영화는 판사가 증거신청을 받아들이느냐 그걸 믿느냐 여부에 따라 진실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문제를 제시하고 있었다.

 

  물론 재미를 위해 극적으로 일부를 부각시킨 부분은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일 뿐이었다. 장미를 구태여 현미경을 들이대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석하겠다고 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헌법은 국민이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어떤 판사의 권한도 국민의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 위에 군림할 수 없다. 영화가 내게 던지는 의미는 헌법에 규정된 국민이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지키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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