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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초자연현상처리반 Fragments 11화

한청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5.07 18: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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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Actions speak louder than words (3)


‘알았다.’


해경이 화장실에서 그동안 목격한 모든 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문자로 보고한 것에 대한 성진의 답이었다. 해경은 어쩐지 진이 쭉 빠지는 듯했다. 하지만 기대할 것도 없었다. 해경의 역할은 이곳을 경험하고 무사히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큰 거였어?”


휴대전화를 다시 숨기고 나오자, 예의 그 여자애가 말을 걸었다. 이름은 성희나. 18살로 해경과 같이 견학을 신청했다가 학교 앞에서 납치당한 쪽이었다. 해경은 가볍게 무시하며 화장실을 나왔다.


“에이, 자꾸 그러기야?”


“별로 친한 척하고 싶지 않거든요, 언니.”


해경은 희나가 처음 대기실에서부터 있었는지 기억이 확실치 않았다. 그때는 각성제를 맞고 주변 정황을 파악하는데 몰두했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해경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자신이 파악하지 않은 사실 하나가 있었다. 깨어난 사람들 그 자체였다.


“희나 언니, 하나만 물어볼게요.”


아직 사람들이 있는 영혼 관측실로 가기 전에 해경이 물었다. 희나는 눈을 크게 뜨며 반겼다.


“그래, 뭔데?”


“아까 위층에서 깨어났을 때, 사람들이 몇 명 정도 있었죠?”


“글쎄? 그건 왜 물어봐?”


해경은 희나의 반응을 살폈다. 순진무구한 대답이었다. 의심할 표징은 없었다. 하지만 해경은 의심스러웠다. 이곳에서 깨어난 이후로, 해경은 끊임없이 위화감과 싸우고 있었다.


“궁금해서요. 제법 신청한 것 같거든요.”


“그렇지? 아무래도 궁금하잖아. 영혼을 치료한다니.”


희나는 가볍게 수긍했다. 해경은 여기서 대화를 끊고 관측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관측실 안이 뒤숭숭했다.


“박사님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나 처음 봤어…….”


“저게 대체 뭐야?”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해경은 순간 온몸이 찌릿했다. 그건 초자연현상에 대한 반응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깊은 상처로 남은 기억에 대한 반응이기도 했다.


통창 너머, 사람 하나가 있었어야 할 자리엔 웬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러나 그 나무의 줄기는 보라색이었고, 이파리는 없이 앙상했다. 뻗친 나뭇가지는 가시처럼 날카롭고 직선적이었으며, 줄기 아래는 손가락 굵기의 뿌리가 바닥을 뒤덮은 채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앗, 저 사람…….”


희나가 나무를 알아보고 말했다. 해경은 곧바로 입을 틀어막고 관측실을 뛰쳐나갔다.


“해경아?”


“우웁!”


해경은 화장실 세면대를 붙잡고 속을 게워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해경은 지금 영성 치료 보호관찰 센터에 있지 않았다. 그녀의 과거, 모든 것이 어그러진 순간, 방문을 열고 맞이한 풍경.


존엄해진 부모님.


“우웨에엑…….”


섬광처럼 기억 속 장면이 해경의 눈앞을 스칠 때마다, 식도가 꿈틀거리고 위가 뒤틀렸다. 목젖이 쓰리고 눈물과 콧물이 얼굴을 간지럽혔다. 해경은 거의 세면대에 쓰러지듯 기대어 섰다.


“세상에나, 해경아! 괜찮아?”


뒤따라온 희나가 해경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 다가갔다. 해경은 가까스로 의식을 붙들고 일어서려고 했으나, 본인이 흘린 토사물에 발이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무, 무슨 일이야?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어?”


“…….”


“사람들 부를까? 아니면 박사님?”


“아냐!”


희나의 말에 해경은 발작적으로 외치며 희나를 뿌리쳤다. 희나는 살짝 물러나며 걱정스럽다는 듯 해경을 쳐다봤다. 해경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일어나 물로 대충 토사물이 묻은 부위를 씻었다.


“그냥……. 그냥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그래요.”


“보통 안 좋은 기억이 아닌 것 같은데.”


“됐어요. 괜찮아졌어요.”


해경은 힘겹게 걸음을 내디뎠다. PTSD 반응으로 인해 진이 빠졌을 뿐, 다른 이유 때문에 체력이 나간 건 아니었다.


“가까운 사람이 존엄해진 거야?”


희나가 물었다. 해경은 벽을 짚고 잠시 숨을 골랐다. 갑자기 짜증이 확 솟구쳤다. 또래 여자애라고 말을 자꾸만 붙이는 것이 거슬렸다.


“우리가 그런 걸 말할 사이였던가요?”


“아니, 그런 사이는 아니긴 하지. 그래도 걱정되잖아.”


해경은 희나를 무시하기로 했다. 해경이 다시 관측실을 찾았을 때, 나무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었다. 정확히는 나무 밑동만 남기고 줄기부터 그 위를 베었기 때문에 뿌리는 그대로 남았다.


보라색 줄기에 나이테는 보이지 않았고, 붉은 수액만 기분 나쁘게 샘솟아 나오고 있었다.


“아, 이거 실례했습니다. 각박나귀꽃 사육에 실패한 사람이었다는 걸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이제 괜찮으신지?”


상황 해명에 나선 김철이 해경을 보고 말했다. 해경은 대충 고개를 주억거렸다. 김철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의 목표 중 하나는 이렇게 존엄해진 인간의 영혼을 다시 되돌리는 것입니다. 소중한 사람이 너무나도 손쉽게 우리 곁을 떠나는 일은 두 번 다시 있어선 안 되겠죠. 그것이 초자연현상에 의해서든, 사람에 의해서든 말입니다.”


“맞습니다!”


“옳소!”


몇 사람이 김철의 말에 동조했다. 해경은 피식 웃었다. 누가 들으면 일장 연설이라도 하는 줄 착각할 것이다. 해경은 희나를 포함한 관광객의 수를 헤아렸다. 자신을 제외하고 15명. 남자 6명에 여자 9명. 어른 13명에 학생 2명. 해경은 머릿속에 차분하게 입력했다.


“그럼 이제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성 치료가 일어나는지 보러 갑시다. 따라오시죠.”


김철의 안내에 따라 모두가 관측실로 나와서 다음 방으로 향했다. 가벼운 여닫이문이었던 관측실과 달리 이번에 들어가는 곳은 위험한 경고 표시가 잔뜩 붙어있는 철제 미닫이문이었다.


김철은 목에 걸어둔 출입증을 인식기에 긁었다. 그러자 문 위에 붉게 점등된 것이 푸르게 바뀌면서 잠금이 풀리고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이곳은 1차 정제실입니다. 정확히는 1차 정제 과정을 관측하는 견학 전용 공간이지만요.”


이곳 역시 통창이 벽 한 면을 채우고 있었고, 통창 안쪽은 관측실처럼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통창 너머는 흰 격자무늬의 방이었는데, 벽 한쪽이 열리면서 일전에 벤나무를 들고 왔다.


“…….”


해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애써 참고 견디기로 했다. 여기서 무너진다면 영성 치료를 권유받을 게 분명했다. 완강히 거절하면 될지 모른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런 게 가능했다면 이곳을 조사하러 오지도 않았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곳 역시 똑같은 필름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럼 한 번 보시죠.”


똑같이 김철이 무전기로 지시하자, 일제히 암전됐다.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기다렸다.


“뭐, 뭐야?”


“저게 아까 본 그거라고?”


앞줄에 있던 사람들이 당황했다. 해경 역시 사람들 사이로 비친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분명 희끄무레하고 유체에 가깝던 영혼은 온데간데없고, 보라색으로 발광하는 식물 몸체에 사람 얼굴 하나가 달린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는 듯 괴로워했다.


식물 몸체는 줄기 이하로 뚝 잘려 끊겼다. 해경은 그 순간 관측실에 남은 뿌리를 떠올리고 다시 속이 뒤집히는 듯했다.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해경은 통창 너머를 바라봤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명백하게 괴로워하고 울부짖는 영혼의 모습을 보며 존엄해진 부모님이 겹쳤다. 그들도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을까? 그들도 여전히 살아있는 것일까?


영성 치료가 정말로 존엄해진 인간을 사람으로 돌려놓는다면, 어쩌면 부모님 역시…….


해경은 그 순간 자기 뺨을 세게 쳤다. 너무 큰 소리는 나지 않아 사람들의 주의를 끌 정도는 아니었다. 해경은 심장을 움켜쥐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건 자신이 할 사고가 아니었다.


자기 생각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존엄해졌고, 그대로 국립수목원에 안치되었다. 돌아올 가능성 따위 생각한 적도 없고,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도 없었다. 부모님은 어떤 사람인가? 그 사실을 해경은 떠올렸다.


치가 떨렸다.


해경은 남동생을 생각했다. 살아있는 유일한 가족. 그녀가 신경 써야 할 건 돌아올 수도 있는 부모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남동생이었다. 오히려 해경은 부모님이 남동생마저 희생시키기 전에 존엄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감정을 뒤집고 부모님이 돌아올 가능성에 빠졌다는 사실에 해경은 경계했다. 이곳에서 꾸준하게 느꼈던 포근함과 안락함이 원인 같았다. 강제로 주입되는 감각이 주의력을 떨어뜨리고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듯했다.


“그럼 1차 정제를 시작하겠습니다. 정제 시작.”


해경은 이 견학의 결말을 생각했다. 그 어떤 결말이 그녀에게 닥칠지라도, 그녀는 살아남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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