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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하얀 결혼(8)

태지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02 01:31:00
조회 406 추천 12 댓글 6
														

1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6458

2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8080

3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9174

4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9405

5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9519

6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71066

7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71890


  멈춰있는 듯, 그러나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너와 나는 숨을 쉬고 있었다. 우리는 살아있다. 병에 걸려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도 없고, 불우의 사고로 신체의 일부를 잃지도 않고, 어쩐지 이렇게 살다 너는 머리가 새하얗게 세고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채로, 그닥 상상이 안 가지만 나도 뼈가 몹시 푸석푸석해지고 금이 가는 등 풍파에 닳은 듯한 모습이 될 것 같은....... 아스고어가 여자 옷을 입고 메타톤과 춤을 추는 것보다 더 상상이 안 가는 모습이, 어째선지 요즘 따라 그려지곤 했다. 기억인지 상상인지 헷갈릴 만큼 아련한 모습으로. 햇빛에 눈이 부셔 제대로 눈도 못 뜬, 그런 흐릿한 시야 속에서 노랗게 문지른 듯한 풍경이.

  너는 긴 머리를 가지런하게 묶고 화단을 가꾸고 있었다. 노란색 꽃. 아쉽게도 꽃에 식견이 없어, 무슨 꽃이라고 콕 집어 이름을 말할 순 없었다. 그나마 팬지 정도만 말할 수 있는 정도. 너한테 무슨 꽃이냐고 물어볼까 싶기도 했지만, 어차피 내게 꽃은 꽃일 뿐 개개별로 의미를 부여할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말없이 물뿌리개를 가져오는 게 고작이었다.


“고마워.”

“꽃 좋아하네.”

“친구를 떠올리게 해서.”


  너는 친구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나는 그 친구가 누구냐고 묻지 않음으로써 대화를 이어간다. 다른 사람에겐 침묵이나 우리에겐 이루 말할 수 없는 소요였다.


“지하에 일기 늘었더라.”

“응. 이러다가 꽉 차면 어쩌지 싶어.”

“그러면...... 내 방 써도 상관없고.”

“안 돼. 개인 공간은 개인 공간이니까.”


  싹둑. 단호하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시든 잎이 가위에 잘려 떨어진다. 팔랑팔랑 흔들리는 갈색 잎이 흙으로 돌아간다. 영원하지 못한 생명은, 자신에게 깃든 불을 활활 태우고 나면 어김없이 잘게 흩어진다. 괴물이든 인간이든. 썩어 없어지는 것이나 덧없이 스러지는 것이나 끝은 똑같다. 아무리 강한 인간이라해도 허무할 만큼 사라진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땐,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온다. 며칠 전에 있었던 사고에 대한 이야기다. 앵커들이 비통함을 최대한 억누른 목소리로, 그러나 절제한 안타까움을 실어 전달한다. 화재가 나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는 골자부터 시작으로 누군가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희생한 미담부터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에 대한 쾌유를 기원하는 내용까지.......


“안타깝네.”

“응. 정말 안타까운 일이야.”


  너는 잠시 가위를 내려놓고, 정원 구석에 마련한 의자에 앉았다. 쉬겠다는 의사임과 동시에 나와 대화하고 싶단 신호다. 라디오는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나한테는 약간 높은 의자에 올라간 뒤 숨을 한 번 삼켰다가 뱉는다. 하늘이 약간 흐린 게 비라도 오려는 걸까.


“슬픈 일도, 기쁜 일도....... 결국 돌고 도는 것 같아.”

“응. 그렇네.”


  너와 내가 겪은 순환의 길이는, 우주 전체의 크기와 지구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만큼 참으로 거대하고 참으로 비교하기도 우스운 수준이지만 그래도 나는 감히 빗대본다. 거대한 우주 속에서도 빛이 태어났다 암흑으로 죽어가는 과정이 반복되고, 지구 속에서도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이 반복되듯 필연적인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라고. 그러니까 너와 나 역시 거대한 법칙 앞에선 어쩔 수 없다고.

  지상으로 올라오고 놀란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악한 인간도 있으나 그 이상으로 선한 인간도 있단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런 인간의 세상은 입에 담기도 어려울 만큼 참혹한 비극과 눈물을 자아낼 만큼 아름다운 신화가 교차하고 있단 것도. 희망도 적으나 참혹함도 적었던 지하와 비교하면 지상은 여러모로 불꽃 같은 느낌이었다. 생명력도 넘치나, 그것을 파괴할 폭력성도 차고 넘치는.


“처음엔 아팠어.”

“지금은?”

“안 아픈 건 아니야. 그렇지만.......”


  너는 차분하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말없이 손을 잡았다. 변함없이 온기 넘치는 손이었다.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 부정하지도, 그렇다고 부풀리지도 않고.”

“패스를 잘하게 됐군.”


  응. 너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웅장하고 곧게 자란 나무처럼, 하지만 매끈함보단 부러진 나뭇가지가 아문 옹이 자국과 껍질이 벗겨졌다 바스라진 흔적을 머금은 것처럼 모든 것에 상처받고 모든 것을 이겨낸 듯한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으로, 여기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었던가.

  너는 지하의 기록을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나 또한 읽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네가 꽃길만 걸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싶은 이야기가 꽤 있었다. 나 외에 다른 사람이 이 기록을 읽는다면 갑자기 이 세상이 유토피아처럼 보이고 천국으로 바뀔 만큼.

  물론 끔찍한 과거만 얼룩진 건 아니었다. 분명 좋은 세상도 있었다. 확실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네가 너의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며 썼기 때문에 완벽하게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지금보다 더 이상적이고 더 반짝이는 과거도 분명 있었다. 어째서 그 시간에서 버려지고 여기 온 건지 탄식하진 않았을까 싶을 만큼.

그리고 지금 너는 여기 있다.


“.......그래.”


  나는 짧은 말 한 마디만 뱉고 너의 손을 쥐었다. 수고했다, 고생했다, 힘들었겠다, 괜찮아, 등등. 무슨 말을 고를까 고민하다 결국 아무 말도 고르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도 너에게 닿기엔 한없이 미미하다. 너라면 무슨 말이든 받아들이겠으나 그 중 하나를 콕 집어 골라 전달하자니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는 무한에 가까운 유한의 끝을, 나로서 마무리한다.

  과거의 기록 중 유독 글씨체가 떨리는 기록들이 있었다. 극히 미세한 차이였지만, 1%의 불순물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기록들과 달리 1%의 불순물이 섞이는 걸 막을 수 없었다는 듯한 글씨체에 나는 그 기록들은 조금 공을 들여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몇 안 되는 기록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고선, 노트를 덮은 뒤 전등 아래 둥둥 떠다니는 먼지를 한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네가 어머니로서 살았던 시간이었다. 아이를 뱃속에 품고, 세상에 내놓고, 온 힘을 다해 끌어안고 키웠고, 그 아이가 장성하는 것을 지켜봤던 시간. 아이가 아이를 낳은 시간도 있었으나 자신이 낳은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관에 넣어야 했던 시간도 있었다.

  나로서 마무리하고 싶었던 이유 하나를 알게 됐으나, 거기엔 어떤 번뜩임도 후련함도 없었다. 유레카를 외치며 욕조에서 뛰쳐나간 과학자나 자신이 쓴 수식을 과거로 돌아가 찢고 싶다는 과학자와는 판이했다. 그냥 그랬다. 거기에 어떤 의미도 부여할 이유도 없었고, 해석할 가치도 없었다. 그냥 너는 나로서 마지막 권을 장식하고 싶은 것이고 나는 그런 네게 맞춰 나아갈 뿐이다.

  어차피 우린 끝을 향해 나아갈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우린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바라봤다. 노란색이 아름답게 흔들린다. 찰나에 피고 지는 생명이, 어쩌면 저리 아름답게 타오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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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all.dcinside.com/m/tobyfox/21591


오늘 이 게시글에서 연중된 문학 얘기 나와서 한 번 써봄.

결말은 이미 쓰기 시작할 때부터 결정된거였고, 옴니버스 식에 가까워서 쓰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중간에 약간 슬럼프 겪은 것부터 시작해서 드라이브 터지고 날아가는 바람에 더 안 쓰게 됐음.


"그 문학 절반은 썼는데 그래도 완결해야하지 않나"속으로 생각은 많이 했는데,

애매해서 안 붙잡다가 오늘 얘기 나와서 다시 정주행해봄. 만약 정주행하고 안 떠오르면 쓰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다시 읽으니까 개요 다 떠올라서 어렵지 않게 씀. 12편으로 완결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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