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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하얀 결혼(10)

태지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07 00:13:14
조회 234 추천 12 댓글 4
														

 1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6458

2편: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8080

3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9174

4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9405

5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9519

6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71066

7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71890

8편: https://gall.dcinside.com/m/tobyfox/21626

9편: https://gall.dcinside.com/m/tobyfox/21760


“메타톤이 보낸 사진이야.”


  너는 컴퓨터 모니터를 가리켰다. 네 손가락도 어느새 윤기를 잃고 손톱도 메마르고 버석하다. 그것은 네가 나이를 먹어서 자연스럽게 노화한 흔적인지, 아님 몇 년 전 병마와 싸운 뒤에 생긴 흉터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꽤나 큰 병이었는데 너는 아직 살아있다. 후유증도 남아있고 재발 우려 때문에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하지만, 너는 아직도 숨을 쉬고 있고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아직도 살아남은 채 네 곁에서 네가 불 켜진 초처럼 닳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누가 먼저 갈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의 끝이 멀지 않았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나는 조금씩 아려오는 무릎을 성가시다 생각하며 네 곁에 간다. 거기에는 모습 만큼은 누구보다도 변하지 않은 메타톤이 다양한 인종의 인간과 활짝 웃고 있었다. 은퇴한 이후 메타톤은 훌쩍 떠나듯 가방 하나만 들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괴물뿐만 아니라 인간 사이에서도 나름 유명세를 탔던 그인지라, 은퇴했다고는 해도 길거리 공연을 하고 괴물과 인간의 담화를 주도하며 자신의 일을 하고 있지만.

  너는 메타톤의 메일을 읽고 난 뒤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벽에 걸린 사진을 바라봤다. 지상에 올라와 처음으로 찍은 단체 사진. 곱게 액자에 넣고 소중히 다뤘지만, 햇볕에 잉크가 산화되는 건 어쩔 수 없어 지금은 많이 바래고 흐릿해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너는 그 사진이 고화질 텔레비전이라도 되듯 바라봤다. 나는 이미 저 순간의 상황도, 감정도, 그 날의 햇살의 향기도 희미해지다 못 해 잊어버리기 직전인데.


“살아가는 건, 언젠가 죽을 날을 위해 달려가는 것 같아.”


  그런 네 말에선 한탄도 후회도 미련도 그리움도 없었다. 다만 아득히 먼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그래, 지상으로 처음 올라왔을 때 봤던 노을처럼 한없이 넓고 한없이 눈이 부시다.

  많은 시간이 지났다. 갓난아기 때 처음 본 도가미와 도가레사의 아이는 대학생이 된 지 오래였다. 그 아이뿐만 아니라, 지상에서 태어난 괴물이 이미 다음 세대의 주축으로 자리했다. 직장을 가진 아이도 있고 대학생이 된 아이도 있다. 그리고 몇몇은 속도위반으로 자신의 부모에게 손자를 안겨주는 업적을 이루기까지 했다. 뭐...... 다음 세대 아이들은 지하의 어두컴컴함과 눅눅함을 모르고 자랐으니, 그걸로도 우린 우리의 역할을 다 한 셈이다. 남은 건 그들의 자식과 손자들의 몫이다.

  그 시간 속에서 생(生)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죽음도 어김없이 존재했다. 초창기에 악의 서린 테러에 휩쓸린 가여운 생명도 있었고, 운 나쁘게 사고로 명을 달리한 괴물도 있었다. 단순히 수명이 다해 숨을 거둔 자도 있었고...... 자신의 몸을 던져 많은 생명을 구하고 스러진 영웅도 있었다. 언다인. 무심결에 그 이름을 중얼거린다. 죽은 사람의 이름은 좀처럼 불리지 않는다. 그리고 점점 부르지 않게 되다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순간 영원히 어둠 속에 가라앉는 것이다. 언다인이 조금 일찍 그렇게 됐을 뿐이지만, 나도 너도 언젠가 맞이할 운명이다. 네가 끝이라고 말한 이 끝이, 영원하단 것이 증명된다면.

  지상으로 올라온 언다인은 자신의 특기를 살려 경찰이 됐는데, 근무 도중 발생한 테러에서 많은 목숨을 구하고 숨을 거뒀다. 거기에는 괴물도 있었고 인간도 있었다. 잔인한 소리지만 언다인의 목숨은 남은 괴물의 안위와 안정을 위한 기반이 됐다. 그야말로 영웅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배척과 다름으로만 보였던 괴물이란 존재가 인간과 동등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친구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특히 알피스. 알피스는 오랫동안 슬픔에 젖어 살다가 지금은 연락마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온 힘을 다해 수색을 해봤지만, 작정하고 숨어버린 건지 생사의 여부마저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어딘가에서 알피스가 건강하게 살기만을 기도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파피루스는, 애인이랑 잘 살고 있다. 파피루스를 닮아 유쾌하고 어딘가 독특한 인간이었다. 뭐 둘이 나름대로 이것저것 재밌게 하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 아스고어랑 토리엘은 마지막까지 재결합에 실패했지만, 그래도 좋은 친구였고 둘 다 거기에 후회는 없는 것 같으니 제 삼자인 내가 뭐라 할 건 아니겠지만.

그렇게 모두가 살아간다. 그렇게 모두가 숨을 거둔다. 그렇게 모두가 타오르다 사그라드는 불꽃처럼 이 세상에 왔다 간다.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너는 그렇게 말하고 가벼운 기침을 했다. 날씨가 추워진 탓이다. 불 뗄까? 그렇게 물었지만 너는 괜찮다고, 스노우딘에 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스노우딘이라. 강산이 몇 번이나 변했을 세월 동안 그곳은 이미 내가 아는 스노우딘이 아니겠지. 내가 살던 그 시절의 스노우딘은 어디까지나 내 속에만 남아있을 것이다. 


“실은 말이야.”

“응.”

“일기, 다 썼어.”

“수고했어.”

“나야말로.”


  고대 유산 중에 몇백 권이 넘는 역사책도 있다는데, 네가 쓴 것은 그것에 필적하거나 이미 그것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거기다가 그 역사책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과 삶을 하나 하나 이어 만든 것이라면, 너의 일대기는 오직 너 한 명으로 무수히 많은 시간을 자아낸 것이다. 어느 쪽이든....... 아름답다고 해야할까 서글프다고 해야 할까. 반짝이며 흐르는 냇물과, 그 냇물에서 튀어오른 물고기, 물고기를 먹는 곰. 자연의 이치 속에서 우린 울어야 할까, 두려움에 몸을 떨어야 할까, 그것을 끌어안고 달려가야 할까. 너는 그림자가 드리운 미소를 지으며 빈 컵을 매만졌다.


“처음엔, 죽음이란 게 두려웠고 그 다음엔 죽은 친구를 바라보는 게 겁이 났어.”


  네가 불에 타거나, 얼음에 베이거나, 창에 뚫리거나, 전기에 감전되거나, 뼈가 으스러지는 기록을 곱씹는다. 너는 많은 죽음 속에서 닳아버린 것일 거다. 많은 시간도 거쳤다. 너만 먼저 죽어버린 시간도 있었고, 너 빼고 다 죽은 시간도 있었다. 얼마 안 가 끝난 순간도 있었고 지독할 만큼 끈질기게 붙은 목숨으로 이어간 적도 있었다. 닳기까지 무수히 많은 반복을 거쳤다. 리 단위의 크기를 가진 바위에 천 년이란 세월마다 찾아오는 선녀가 옷자락으로 가볍게 쓸고 가고, 그 바위가 닳아 한 줌 흔적도 없이 사라질 만큼. 그런 아득한 시간의 반복 끝에야 너는 벗어날 수 있었다. 형벌일까, 축복일까. 너는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걸까 인간이 아닌 길로 떨어진 걸까.


“슬퍼서, 그대로 죽어버린 적도 있었어. 그걸 몇 번 반복했지. 실패해서 억지로 살아야 했던 적도 있었고, 너무 지쳐서 못 한 적도 있었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숨에 가까운 숨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위로도 격려도 한낱 흩어짐에 불과할 뿐인데.


“몇 번 그래 보니까, 결국 남은 사람은 살아가게 되더라. 아주 긴 시간 동안 고통스러웠다가도, 길에 핀 민들레나 가게 간판 따위로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그래. 그렇게 살아가더라.”


  무수한 반복 속에서, 찰나에 불과한 들꽃의 삶이 네게 위로가 됐단 건 다행이다 해야 할까 아님 안타깝다고 탄식해야 할까.

  너는 컵을 치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비틀거렸다. 부축하는 네 팔이 꽤 가늘다. 언제 이렇게 마른 나뭇가지 같아졌을까. 네가 지하에 처음 왔을 때 움켜쥔 그것처럼.


“마지막엔 끝이 없는 게 무서웠어.” 

“지금은?”

“끝나는 순간에,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생각했던 게 무섭진 않을까. 그거 하난 무서워.”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두 손으로 네 손을 움켜쥐었다. 기도하듯이. 어쩔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거밖에 없다. 늙고, 작고, 약한 해골이 할 수 있는 건 무기력하게 붙드는 것밖에 없다. 너는 말없이 있다가, 무릎도 꿇고 바닥에 컵도 내려놓고 마치 결혼식 때 맹세했듯 손을 맞잡고 속삭였다.


“내가 숨을 거둘 때만은, 곁에 있어 줘.”

“내가 먼저 죽지 않는다면.”


  우린 오랫동안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인간이 죽고 나면 마지막까지 남는 감각은 청각이라 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 날에 무슨 말을 속삭여야 하는 걸까. 겨울이 다가옴을 알리는 바람에 뼈가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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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편으로 해도 됐을까 싶었지만 역시 12편으로 해야겠다. 억지로 줄이기 애매하네.

예전에 30편 넘게 연재했던 적도 있으니까 이 정도는 뭐 문제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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