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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히나 씨의 성격이 변했어?! #15 -외전-

ㅇㅇ(211.200) 2019.11.27 23:4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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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은 후로 석 달이 지났다.


내 철없는 기도 하나 때문에 제법 시끄러운 소동이 일었지만, 다들 이젠 없었던 일로 치부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스가 씨도, 나츠미 씨도, 나기 선배도, 심지어 히나 씨도.


그래, 잊는 편이 좋다.


따지고 보면 그 사람이 여기에 머물 동안, 잠깐이라도 행복했던 사람은 나뿐이니까.


지금의 히나 씨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제일 미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휘말리는 바람에 영영 소멸할 뻔했으니.


하지만,


‘어린애 히나 씨…….’


단순히 그리워하는 정도로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겠지?


난 그렇게 합리화하며 그 해맑던 말괄량이 히나 씨의 모습을 이따금씩 떠올리곤 했다.


그때마다 눈가에 짭조름한 이슬이 맺힌다.





“호다카.”


“네?”


“혼자 무슨 감상에 잠긴 거니?”


히나 씨가 부르는 소리에 난 화들짝 놀라서 자기만의 공간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자 잠시 상상력에 자리를 양보한 오감의 기능이 돌아온다.


어둡고 좁은 실내, 향긋한 향수 냄새,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


여기는 타바타역 주변 고가도로에 자리한 다세대주택의 2DK 원룸.


줄여서 말하자면 히나 씨의 집이다.


나기 선배는 2박3일의 수학여행을 갔고, 당분간 이 오붓하고 정겨운 공간은 우리 둘의 차지다.


“아,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잠시…….”


“잠자리 도중에 그러는 건 실례야, 남자든 여자든.”


나와 히나 씨는 알몸인 채로 이불을 덮고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이불 밖으로 얄팍하게 드러난 가슴골이 내 시선을 강탈한다.


순간 장난기가 일었다.


“히나 씨.”


“응?”


“가슴에 뭔가 묻은 거 같은데요.”


“어디어디?”


“잠깐만 그대로 계셔보세요.”


나는 손을 뻗어 이불을 걷고, 요염하게 드러낸 히나 씨의 유두를 엄지와 검지로 살짝 튕겨보았다.


“하윽!”


“헤헤, 걸렸다.”


“호다카, 바보!”


히나 씨가 눈매를 세우면서 볼에 바람을 넣는다.


발차기 한 대는 얻어맞아도 싼 장난이지만 너그럽게 넘어간다. 그야 천사 같은 히나 씨니까.


“에잇!”


“크허억!”


그렇게 마음을 놓고 있는데, 갑자기 고간에 위치한 내 물건이 비명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히나 씨가 손으로 힘껏 붙든 채 오므리며 놔주질 않는다.


천사 같다는 말은 취소.


“히나 씨, 항복! 항복!”


“호~다카?”


“네?”


“용서받고 싶어?”


“네!”


“좋아, 한 번 더하자.”


“네?!”


나는 기겁해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이젠 서지도 않는다. 다섯 번이나 했으면 충분하잖아?


“할 거야, 안 할 거야?”


“하, 하, 할게요! 할게요!”


나는 결국 통각의 위대함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체내의 남성호르몬이 히나 씨에게 전부 빨릴 것만 같다. 구미호 설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거구나.






“후아~ 기분 좋아.”


“헉, 헉, 헉…….”


마약에 취한 듯이 몽롱해진 상태로 편안히 누운 히나 씨, 그리고 완주를 끝낸 마라토너처럼 지쳐 쓰러진 나.


이건 불공정한 게임이다. 한 번쯤은 히나 씨도 움직여달라고요.


“이제 한계예요.”


“그러게 누가 장난치래?”


“……죄송합니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사과했다.


그 사건 이후, 히나 씨가 가장 많이 변한 점은 잠자리에서의 성향이었다.


어린애 히나 씨를 억지로 따라한다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다가, 제일 빨리 익숙해진 부분이 여기인 모양이다.


왜 하필? 차라리 조커 댄스를 추시지.


“미안, 다음에는 내가 움직여줄게.”


“설마 또 하시려고요?!”


“싫어?”


“싫은 게 아니라 진짜 체력적으로 한계예요. 기네스북에 도전하실 게 아니라면…….”


“알았어.”


히나 씨는 빙긋 웃으며 이쪽으로 돌아눕더니, 알몸인 채로 나를 살며시 껴안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히나 씨의 피부 감촉이 생생히 느껴진다.


로맨스와 에로스가 반반 섞인 애정 행위.


얼마나 지났을까,


“호다카, 솔직히 말해 봐.”


“네?”


히나 씨가 장난기를 싹 빼고 제법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도 그 아이 생각해?”


“그 아이라면…….”


나는 말끝을 흐렸지만 단번에 누구를 말하는지 짐작이 갔다.


어린애 히나 씨.


아니, 이젠 더 성숙한 히나 씨라고 불러야 하나?


“……이젠 다 잊었어요.”


“거짓말.”


씨알도 안 먹힌다.


대답이 궁해지자 난 그냥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로 했다.


히나 씨 앞에서는 차라리 이게 낫다. 알아서 정리해주시니까.


“미안해, 호다카.”


“네?”


뜬금없는 사과에 귀를 쫑긋했다.


“갑자기 히나 씨가 왜 사과하세요? 사과할 쪽은 저인데.”


“있잖아, 나도 나름대로 그 아이 흉내 내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 호다카가 그쪽을 더 좋아하니까.”


히나 씨는 쓴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비아냥대는 게 아니라 정말 미안한 듯한 말투다.


“하지만 역시 쉽게 안 되네. 메소드 연기라도 배울 걸 그랬나?”


“히나 씨…….”


억지로 그러실 필요 없다고 말하려는 순간, 입이 굳게 닫혔다.


솔직하게,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억지로라도 한 번은 보고 싶었다.


지금 히나 씨보다 어린애 히나 씨가 더 좋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그때 전하지 못한 말이 있어서 아쉬울 뿐이다.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실은 나도 그 아이, 보고 싶어.”


“네?”


뜬금없는 고백에 나는 귀를 기울였다.


마치 이별의 날에 내리는 폭우처럼 울적한 말투.


그저 나를 위로하기 위한 빈말 같지는 않다.


히나 씨도 그리워하고 있다. 어린애 히나 씨를.


“나 말이지, 그 아이의 모습에서 내가 잃어버린 소중한 무언가를 봤어. 꼭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으로 시간이 되돌아간 것 같더라.”


“히나 씨…….”


“있지, 호다카. 만약 꿈속에서든 어디서든 그 아이를 다시 만나면 이렇게 전해줄래?”


곧이어 히나 씨는 내 손을 다정하게 감싸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꼭 어른이 될 필요는 없다고.”




[21살 대학생입니다. 저세상에 있는 사람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글쓰기 등록 버튼을 누르고 야후! 재팬의 로고가 올라오자마자 후회가 해일처럼 밀려온다.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한 질문이다. 옛날에 가출했을 때보다 수준이 퇴화했다.


그보다 21살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왜 밝혔지? 그때 남은 버릇인가?


아니나 다를까,


「병신.」

「드래곤볼을 모아.」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마세요.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천국에는 진리의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로 오세요.」


난장판이다. 이 와중에 선도하는 종교인은 또 뭐람.


“음?”


그런데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약간 독특한 답변이 보였다.


「황혼의 시간에 간절히 빌어보세요. 그 사람과 운명적으로 묶인 매개체와 함께.」


“황혼의 시간?”


나는 그 사람의 아이디를 클릭해서 프로필을 보았다.


개인 신상은 비공개 처리돼서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사람이 그동안 게시한 글들은 전부 확인할 수 있었다.


양식이 마치 일기 같다.


하나씩 꼼꼼히 읽어가던 나는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한 촌스러운 시골 소녀가 있는데 3년의 시간을 초월해서 인연이 닿았고, 황혼의 시간 덕분에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그 후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도쿄에서 기적적으로 재회하고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좋게 말하자면 자기만의 아름다운 세상에 갇힌 사람, 나쁘게 말하자면 망상증 환자 같다.


하지만 소설이라고 쳐도 정성스럽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세상에는 환상적인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 많구나. 


나는 스가 씨에게 기삿거리로 제보할까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누군가의 아름다운 상상에 흥미본위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와 히나 씨의 이야기가 남들에게 그렇게 받아들여진다면 분명히 나도 화가 나겠지.


“…….”


그래도 한 번만,


한 번만 믿어볼까?


「안녕하세요. 최근에 답변을 달아주신 질문 글의 작성자입니다. 황혼의 시간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나요?」


나는 그 사람의 방명록에 다시 한 번 질문을 올렸다.


지금은 오후 5시.


저녁은 돼야 확인할 것 같아 곧바로 잠자리에 누우려는데,


“어?”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답변이 달렸다.




황혼의 시간이란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없는 것들을 만나게 되는 순간,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순간.


다만 그런 기적이 벌어지려면 조건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둘을 이어주는 운명의 실이 필요하고, 다른 하나는 만나고자 하는 둘의 염원이 일치해야만 한다.


히나 씨와 나를 이어주는 매개체? 맑음 소녀 사이트? 테루테루보즈 인형이 달린 우산?


아니면,


“…….”


나는 내 약지를 내려다보았다.


이젠 세월이 흘려서 빛이 약간 바랜 은색의 반지.


3시간의 고민을 지나서 5년의 인연을 이어준 존재.


마침 어제 히나 씨가 헤어지며 내 손에 끼워주었다.


오늘은 바쁜 일정 때문에 하루 종일 못 볼 테니, 이걸 보면서 자신을 떠올려달라며.


그냥 영상 통화하면 되지 않느냐는 센스 제로의 질문에 점수를 깎아먹은 건 덤이다.


매개체는 이걸로 되겠지.


하지만 두 번째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자갈과 바위에 부딪히며 졸졸 흐르는 물소리.


지금 내가 도착한 곳은 세타가야구 근처에 있는 토도로키 계곡의 상부다.


그래, 악몽이라면 악몽이고 추억이라면 추억인 장소.


어린애 히나 씨를 처음 만난 곳이다.


만에 하나 그녀와 다시 만난다면 여기가 좋지 않을까 하고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풋.”


실소가 나온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정말 백보 천보 양보해서 그 황혼의 시간이라는 말이 진짜라고 하자.


그래도 나와 어린애 히나 씨는 만날 수가 없다.


나야 그녀를 기억에서 지우지 못하고 잠자리까지 설치지만,


어린애 히나 씨도 나를 그만큼 그리워할까?



‘행복해야 돼, 호다카.’



그럴 리가.


그토록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지금의 히나 씨에게 양보했는데.


이제는 모두 잊고 저세상 어디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지.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진다.


아름답고 은은한 석양이 나와 계곡의 전경을 반투명한 주황빛으로 물들여갔다.


그 답변에서 말한 황혼의 시간.


나는 혹시나 싶어서 반지를 어루만지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이 이런 걸 두고 하는 것일 터.


‘……역시.’


인기척이 전혀 없는 평일 저녁의 계곡 그대로다.


나는 알약을 빻아 먹은 것처럼 씁쓸한 맛을 다시며 계곡 아래로 천천히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황혼의 시간은 무슨. 역시 뻥이었잖아. 이래서 야후!에 달린 답변들은 걸러야 한다니까.


그래도 마냥 그 답변자가 밉지는 않다. 덕분에 잠시나마 생생하게 추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이제 집에 돌아가서 씻고, 히나 씨에게 연락을…….


…….


………….


뭐지?


고개를 떨어뜨리고 터벅터벅 걷던 내 시야에 웬 그림자가 하나 비쳤다.


복장으로 봐서 이 근방을 관리하는 공무원은 아니다. 그러자 반사적으로 시선이 정면을 향한다.


양 갈래 머리, 민소매 후드, 짧은 바지 차림의 여자가 기도를 올리고 있다.


누군지 분간하는 건 어렵지 않다. 히나 씨다.


문제는 이거다.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복장은 왜 또 그때처럼?



그런 의문이 드는 것도 잠시, 나는 환희와 감동이 반반 섞인 눈물이 울컥 솟았다.


오늘 히나 씨는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나기 선배의 짐을 정리하느라 바쁘다고 전했다.


집 밖에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면 저분은……!


“히나 씨!”


나는 눈물을 흩뿌리며 그분께 달려갔다.


그러자 조용히 양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리던 그녀는 화들짝 놀라서 이쪽을 바라보았다.


놀람이 기쁨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호다카!”


어린애 히나 씨 역시 나처럼 울먹이며 전력으로 달려왔다.


곧이어 우리 둘은 힘껏 포옹해서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이런 말하면 원래 히나 씨에게 미안하지만, 그때 토리이 밑에서 다시 만났을 때만큼이나 기뻤다.


“히나 씨, 그 히나 씨 맞죠?”


“응!”


“꼭 보고 싶었어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았거든요!”


“응, 호다카! 어떻게 된 거야?”


“방법이 딱 하나 있었어요! 히나 씨가 저랑 다시 만나길 바라지 않았다면 힘들었겠지만.”


“그럴 리가 있어? 너무너무 보고 싶었는걸!”


뒤이어 나는 어린애 히나와 짧지만 긴 회포를 나누었다.


황혼의 시간에 대해선 짧게 설명하고 넘어갔다. 일분일초가 아깝다.


“또 다른 내가 그런 말을 했어?”


“네, 자유롭고 어린 성격 그대로 남아달래요.”


“웃겨! 이젠 걔가 훨씬 애 같을 텐데?”


예리하시다. 재빠른 눈치는 저세상에서도 녹이 슬지 않으셨군.


“히나 씨, 정말 미안해요. 제 기도로 태어나셨는데, 저 때문에 소멸하실 줄은…….”


“아니야, 호다카. 내가 기뻐서 한 일인데.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 걸 보니까 이제 여한이 없어.”


줄곧 전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자 이제 속이 후련했다.


그나저나 이제는 어린애 히나 씨와 성숙한 히나 씨의 칭호를 뒤바꿔야 할 것 같다. 저렇게 성숙한 사람이 무슨 어린애야.


“근데 우리, 해가 질 때까지밖에 함께 못 있지?”


어느덧 야속하게 산 너머로 넘어가는 해.


곧 있으면 하늘은 먹물에 물든 도화지처럼 새까맣게 채색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곧이어 시무룩해진 어린애 히나 씨의 눈물을 닦아주고 힘껏 소리쳤다.


자신이 있었다.


히나 씨를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갈 자신이.


“아니요, 히나 씨. 황혼은 잠시라도, 우리들의 시간은 영원할 거예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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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관객수 1300명을 넘기자 공약으로 쓴 외전입니다.


내일로 넘길까 하다가 2시간만에 호다닥 썼습니다. 퇴고를 전혀 거치지 않은 최초의 원고라서 다소 투박해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린애 히나씨가 불쌍하다는 의견이 많아서 이렇게 행복한 내용으로 써봤네요.




날갤이 죽을 때까지 소설은 씁니다.


다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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