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한 조명. 곳곳에 노선 상태를 표시하는 화면들. 테이블에는 온더락 글래스.
하이랜더 철도학원의 중앙관제센터에서는 은밀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응응☆! 몸은 좀 어떠신가요, 아마우 아코 선임행정관?"
하이랜더의 이사장, 이자요이 노노미는 온더락 잔을 굴리며 아코에게 물었다.
"... 당신들, 원하는 게 뭐죠?"
"어머나 서운해라~, 거기선 감사인사가 먼저 나와야 되는 것 아닌가요? 히나 부장은 거기서 손 하나만 까딱하면 숨이 넘어갔을 거라구요?"
노노미의 말은 사실이었다. 마코토와의 일기토와 온천개발부의 습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히나는, 하이랜더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대로 사막의 모래가 되었을 것이다.
아코 역시 이를 잘 알았기에, 눈앞의 상대를 최대한 정중히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은혜를 입은 입장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당신네들은 돈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흐음~? 눈에 그렇게 힘 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괜찮은데요?"
꽉 끼는 하이랜더 제복을 입고 거만하게 다리를 꼰 상대에게, 아코는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자요이 노노미. 아비도스 토착기업인 세인트 네프티스의 영애.
후계자로서 주목받던 그녀는, 자신의 경영력을 바탕으로 하이랜더 이사회를 포섭한 뒤 그대로 하이랜더를 인수했다.
그렇다, 인수다. 학원 하나를 온전히 네프티스의 재산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한 후 학원의 이사장으로 취임한 그녀는, 키보토스 곳곳에 철도를 개척하며 하이랜더와 네프티스의 영향력을 더욱 키우고 있었다.
선임행정관으로서의 정보력 덕분에, 아코는 이 모든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저흰 그저 협조가 필요할 뿐이에요. 전장을 지휘 멋진 군인들이, 아쉽게도 네프티스엔 없거든요."
"그걸 우리더러 하라는 겁니까? 우린 용병 집단 따위가 아닙니다!"
"흐음... 역시 하나도 이해를 못 하시나 본데..."
노노미는 말 대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림자 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CCC의 쌍둥이가, 노선을 띄운 화면을 다른 영상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그 영상은, 각종 장치를 몸에 달아놓은 채 병실에 누워있는 선도부장 소라사키 히나였다.
"이, 이건!"
"아직까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서 정말 걱정인 거 있죠~? 보험이 있다고 해도 진찰료가 꽤 나와서, 빨리 일어나셔야 돈을 내실 수 있을텐데."
"이걸 갑자기 왜...!"
"아, 니, 면."
노노미는 테이블 너머에 앉은 아코를 향해 상반신을 쭉 뺐다. 자신의 조소를, 그녀가 더 또렷하게 기억하도록.
"어차피 계속 눕혀놔봐야 손해만 나는 거, 눈 딱 감고 호흡기 하나만 빼면..."
우당탕! 의자가 바닥을 구르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아코는 노노미의 멱살을 잡았다.
"흐엑! 이사장!"
"노노미 대장!"
깜짝 놀란 쌍둥이가 뛰어들려고 했지만, 노노미는 조그만 수신호로 둘을 제지했다.
"당신,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
"그래서, 안 할 건가요? 뭐, 제 목숨값이랑 당신 부장의 목숨값이 쌤쌤이라고 생각하면 그래도 되고요?"
"으, 으흐윽...!"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만 아코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무릎을 꿇을 때이다. 히나 부장이야말로, 선도부의 마지막 희망이니까.
"그래서, 제안이라는 게 뭐죠?"
"사실 별건 아니에요, 병력이라면 가능한 선에서 원하는만큼 제공해드릴 수도 있고요."
노노미는 깍지를 끼며, 겁에 질린 아코의 눈동자를 감상했다.
"말을 안 듣는 거래처가 하나 있거든요, 샌드맨이라고. 그쪽들 목표도 거기죠?"
"그건 어떻게..."
"대놓고 당신네들 군인을 배치해두는데 모르겠어요? 아무튼..."
노노미는 다시 한 번, 아코에게 비릿한 웃음을 흘려보였다.
"그 여자를 조금, 아주 조~금, 혼내주면 좋겠는데요?"
온더락 잔에는 상반된 두 사람의 얼굴이 겹쳐져, 하나의 상을 이루고 있었다.
화려한 조명과 요란한 음악 소리. 룰렛과 플레잉 카드, 파칭코가 즐비한 이곳.
우리는 지금 아비도스 최대의 카지노, "HOTEL SWEET DREAM"에 와 있었다.
"꽤나 어지럽게 생겼구만..."
"의외로 성인인데 이런 곳엔 자주 안 오셨나 보네요?"
"무서운 말 마라. 내가 게임에 돈 쓴 건 클럽 말랑말랑밖에 없어."
"클럽 말ㄹ... 뭐요? 뭐 어쨌든."
카지노에 입성한 나와 이부키는, 긴장을 풀고자 스몰 토크를 나누고 있었다.
"그나저나 드레스 잘 어울리네, 이부키. 아루가 골라준 거였지? 역시 센스 있는 애라니까."
"... 이상한 어른."
"내가 뭘 어쨌다고?!"
어째 대화보단 만담에 가까웠지만, 긴장은 풀렸으니 상관없다.
"아무튼 계획은 안 잊었지? 이부키는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내 옆에 꼭 붙어있어야 된다?"
"정말이지... 네 뭐, 결국 저지르기로 한 일이니까요. 정성껏 에스코트해주시죠?"
이부키가 수줍게 손을 내밀었기에, 난 부드럽게 그 손을 잡아주었다. 자그마한 그 손에서, 온기가 퍼져나갔다.
"그나저나, 다른 사람들은 잘 하고 있으려나요?"
"정 궁금하면, 연락해보지 그래? 안 그래도 통신장비 테스트도 해야되니까."
"아, 그러고보니..."
우리는 오른쪽 귀에 손을 댄 후, 말을 걸었다.
"아, 아. 다들 잘 들리지?"
[이쪽은 사츠키, 문제 없어.]
[치아키야. 이쪽도 오케이!]
[이로하, 준비 완료!]
[이구사 하루카, 잘 들립니다.]
[오니가타 카요코, 마찬가지로 잘 들려. 그것보다도 이봐, 이건 필요할 때 아니면 쓰지 말랬잖아? 괜히 의심받으면 곤란하다니까.]
"필요한 일이었어요. 우리 입장에선, 이게 정말 현장에서도 작동하는지 테스트해야 하니까요."
카요코가 출발 전 나누어준 통신용 인이어 무전기. 그녀가 정보부 시절 밀레니엄에서 주문제작한 이것은, 확실히 바로 옆에서 말하는듯 깔끔한 음질을 자랑했다.
"좋아, 그러면 당장 문제는 없겠고... 슬슬 시작해볼까?"
우리는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룰렛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테이블. 그곳에 앉은 손님들 사이로, 한 웨이트리스가 위태롭게 서빙을 하고 있었다.
한 치수가 큰 헐렁한 유니폼과 힐이 지나치게 높은 구두는, 그녀에게는 엉터리 퍼즐처럼 전혀 맞지 않는듯했다.
"저, 죄송합니다... 잠시 지나가겠... 우와악!"
그리고 결국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자기 몸조차 제대로 못 가누던 웨이트리스는, 그대로 넘어지면서 쟁반 위에 올려진 샴페인 잔들을 흩뿌리고 만 것이다.
"뭐야, 이게 얼마짜린데! 에잇, 오늘따라 재수 더럽게 없군!"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역시 이 자리에서 죽음으로 사죄를...!"
안드로이드 손님이 자신의 정장에 샴페인이 튄 것을 가리키며, 웨이트리스를 힐난했다. 그러나 그는 곧, 웨이트리스의 우는 얼굴을 보고는 만족스러운 무언가를 발견한듯 입맛을 다셨다.
"아니지, 보아하니 이곳에서 일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오히려 내가 미안하군. 사과를 하고 싶은데, 잠깐 따라오겠나?"
"네, 네? 지, 진짜로요...?"
"그럼! 자, 잔말 말고 이리로..."
웨이트리스의 손목을 낚아챈 안드로이드는 어딘가로 향했다.
카지노에 오래 있는 글러먹은 어른들은, 사회에 익숙해지지 않은 처녀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알아낸다. 그 안드로이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여기는 남자 화장실..."
"보아하니 오늘 들어온 신입인 모양이지? 좀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딱히 상대의 의사를 묻지 않은 채, 안드로이드는 그대로 사람이 없는 화장실로 웨이트리스를 끌고 갔다.
"저, 저기..."
"너무 걱정하지 마, 이런 곳에서 일할 정도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뻔히 보이지. 부모가 널 버리고 도망쳤나? 아니면 잘못된 약에 손대기라도 했나?"
안드로이드는 고개를 점점 더 웨이트리스에게 내밀었다. 도망칠 수 없다는걸 각인시키려는 듯이.
"어느 쪽이든 이 정장 값을 물어낼 형편이 아니라는 건 확실해 보이는데... 이쯤 말했으면 눈치가 없어도 알아먹었겠지?"
안드로이드는 허리춤의 벨트에 손을 대고 있었다. 웨이트리스는 겁먹은듯 했지만, 손목을 꽉 붙잡힌 탓에 도망칠 수 없었다.
"그, 그러니까! 저는..."
"저는 뭐? 아, 처음이라 무드 잡는 게 중요한가? 그래, 어디 떠들어봐."
밤은 길었다. 적당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어른의 여유겠지. 안드로이드는 대충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있잖아요... 저, 어렸을 때부터 식물을 좋아했거든요. 트, 특히! 식충식물이라는 걸 좋아했는데요..."
"식... 뭐?"
갑자기 식물? 전혀 예상치 못한 주제였지만, 안드로이드는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엔 함정을 만들어서 곤충을 사냥한다는 게 매력적이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벌레들은 왜 식충식물의 뻔한 함정에 걸릴까? 되게 멍청하다... 라구요."
"그래서 뭐? 자꾸 질질 끌 거야?"
안드로이드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자신이 갑인데, 이게 뭐하자는 짓인가.
그러나 그런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근데 지금 보니까, 생각보다 곤충들은 똑똑할지도 모르겠네요."
"어?"
"그야 그렇잖아요? 곤충들은 적어도 함정 속의 달콤한 냄새에 이끌리는 건데... 당신같은 쓰레기는, 저같이 화약 냄새나는 여자한테 홀려서 이 난리니까요."
두려움은 온데간데없이 살기가 등등한 눈빛으로 안드로이드를 노려보는 웨이트리스는, 붙잡히지 않은 한쪽 손으로 유니폼 외투의 단추를 끌러 안쪽을 보여주었다.
"응? 아니, 잠깐! 그걸 어떻게...!"
이구사 하루카의 외투 안쪽에는, C4 폭약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 콰앙!!
"뭐, 뭐야?!"
"폭탄이라도 터진건가?"
"저쪽이다!"
갑작스런 폭발에, 카지노는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일단 하루카 쪽은 페이즈 1을 성공한 것 같고... 나도 슬슬 움직여볼까?"
모두가 폭발에 정신이 팔린 사이, 아비도스의 탐정 카요코는 자신의 테이블 맞은편을 바라봤다.
"우헤헤, 카요코 선배 이거 엄청 맛있다~! 이로하, 한 잔 더 마시고 싶..."
철푸덕. 그대로 테이블에 고개를 박은 이로하는,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빙고. 마침 좋은 타이밍이네."
물론 이건 카요코가 처음부터 계획한 일이었다. 이로하의 정신연령을 감안한 선생과 카요코는, 카지노의 웰컴 드링크에 수면제를 넣어 그녀를 재우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로하를 재운 이유는 단순히 그 뿐만이 아니었다. 드레스 위에 걸친 겉옷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이걸 적당히 이마 쪽에 흘려주면... 됐다."
병 속 붉은 액체를 이로하의 이마에 흘려주니, 마치 폭발의 잔해로 인해 머리를 다친듯한 모양새였다.
"시간이 좀 더 있으면 확실하게 분장을 할텐데... 어차피 다들 혼란스럽겠다, 이 정도면 되려나."
카요코는 잠든 이로하를 업고, 무장 경비들이 몰린 곳으로 달려갔다.
"허억, 허억! 저기, 여기 의사 없나요? 저기요!"
"손님, 진정하십시오! 지금 사태 파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
"제 동생이 다쳤다구요! 잔해에 머리를 맞았는지, 애가 일어나질 않아요... 으흐윽...!"
아마도 카요코가 탐정이 되면서 게헨나는 훌륭한 배우를 잃었을 것이다. 그녀의 감쪽같은 눈물 연기에, 경비원들은 어쩔 줄 몰라 쩔쩔맸다.
"그, 그러니까... 정말 유감스럽군요, 손님. 야, 막내야! 네가 구급차 좀 불러봐!"
"아, 앗! 넵!"
경례를 한 막내라는 경비원은 곧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했고, 다른 경비원들은 카요코를 달래느라 바빴다.
그런 경비원들 틈에서, 카요코는 폭발이 난 화장실에서 누군가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페이즈 2 완료. 다음 단계로 진행해 줘."
오른쪽 귀에 손을 대고, 카요코는 모두에게 지시를 내렸다.
"으, 으으윽... 콜록콜록! 어후, 죽는줄 알았네."
카요코가 시간을 벌어준 틈에 현장을 벗어난 하루카는, 카지노 뒤쪽의 차고로 향했다.
몸이 튼튼한 게 상당한 자랑거리인 하루카였지만, 방금은 그녀 기준으로도 상당히 많은 폭약을 썼기에 몸 곳곳이 찌뿌둥했다.
"그나저나 놀랐어요... 그 이상한 태블릿, 꽤나 도움이 되는군요."
그 말대로, 이 작전은 선생이 지닌 싯딤의 상자의 도움이 컸다.
일반적인 카지노라면 당연히 출입 전 금속탐지장치를 거치게 된다. 폭약이나 총기는 소지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싯딤의 상자는 일행이 출입하기 전 근처의 금속탐지기를 전부 해킹하는 데 성공했고, 덕분에 모두들 자신에게 필요한 '준비물'을 챙겨 입장할 수 있었다.
"뭐 그런 정신나간 해킹 툴이 있는건지... 아, 그것보다도."
하루카는 주위를 둘러보며 괜찮은 차량이 있나 살펴보았다. 일행의 작전이 성공하고 나면, 탈출에 쓸 차량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적당한 승합차가 있으면 좋겠는데... 어?"
"으, 으흑, 왜 나만..."
그렇게 차고를 돌아다니던 중, 누군가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사람? 이봐, 거기 누구지!"
예상 못한 상황이었다. 아직 사람들이 대피하러 밖에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이었다.
"당장 신원을 밝히지 않으면 발포하겠...!"
"쿨쩍... 응? 우, 우와앗! 아니, 이건 그러니까!"
상대도 하루카의 존재에 깜짝 놀랐는지, 벌떡 일어서며 하루카에게 손사레를 쳤다.
은발 트윈테일에 건강미 넘치는 태닝 피부, 팔에는 선도부의 완장.
선도부의 저격수 시로미 이오리는, 혼자 우는 추한 꼴을 들키고 만 것이었다.
"누구냐고 물었을텐데!"
"잠깐, 이건 오해야!"
하루카가 샷건을 그녀에게 겨누자, 이오리는 손을 번쩍 들고 대답했다.
"그, 그러니까 내가 찾는 사람이 있어서 카지노에 들어가려 했는데... '드레스 코드도 안 갖춘 데다 그런 고물딱지 스쿠터는 담보로도 못 쓴다'더라고. 그래서 여기 있던 건데..."
"... 하아..."
하루카는 그녀의 샷건을 거뒀다. 상대할 가치도 없는 찌질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봐, 여기서 본 건 절대 비밀로 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어? 보아하니 선도부 말단인 모양인데, 같이 나가자고."
"마, 말단이라니! 나는...!"
"약속할 수 있냐고, 없냐고."
"히익! 그, 그래, 약속할게!"
하루카의 살기에, 이오리는 바짝 쫄아 고개를 전속력으로 끄덕였다.
"그래, 그럼."
하루카는 차고에서 본 차량 중 적당히 덩치가 있는 패밀리 밴으로 향했다.
그러고 잠겨있는 운전석과 조수석을 확인한 후...
- 탕! 타앙!
"열렸군. 타자."
"... 너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그렇게 차에 탄 하루카는, 열쇠 구멍에 나이프를 대충 꽂아넣어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좋아, 차량은 구했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면 되나?"
앞서 이야기했듯, 우리 일행이 입장할 때 까만 아로나가 금속탐지장치를 해킹해 무사히 입장할 수 있었다.
그 얘기인즉슨, 우리에겐 실탄 화기가 숨겨져있다는 뜻이었다.
"좋아, 다들 저질러볼까?"
나는 모두에게 시작 신호를 꺼냈고, 코트 안주머니에서 복면을 꺼냈다.
"그... 정말 이것밖에 방법이 없나요?"
"뭐, 확실하긴 하잖아?"
복면을 뒤집어쓴 나와 이부키는, 본격적으로 카지노를 털 준비를 하였다.
아비도스에 처음 왔을 때, 카이저의 비리를 폭로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
그 방법을, 나는 다시 아비도스에서 써먹으려고 한다.
[우리 쪽도 준비됐어, 선생님!]
[몸 쓰는 건 자신 없지만... 뭐, 노력은 해볼게.]
"좋아, 그럼 다들... 카지노를 털자."
복면을 쓴 우리는, 곧바로 환전소 쪽으로 뛰어갔다.
"히, 히이익! 지금 뭐하시는...!"
"어이어이, 보면 몰라! 빨리 돈 담으라고!"
치아키는 꽤 신났는지, 환전소의 노견 수인에게 총을 겨누며 협박했다.
... 교육자로서 학생의 저런 모습을 방관하는 게 맞나 싶지만, 내가 제안한 방법이니 어쩔 수 없나.
"다, 다 드리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뭐, 여기 담으면 돼."
그렇게 말한 환전소 주인은, 사츠키가 가져온 자루에 돈다발을 가득 담아주었다.
"감사해요, 아저씨. 그럼 저흰 이만..."
이부키는 친절하게 감사 인사를 남긴 뒤, 하루카와 통신을 시도했다.
"하루카 씨, 들리시죠? 슬슬 차량을..."
[네, 지금 갑니다!]
무전에서는 힘찬 하루카의 목소리와 함께, 액셀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 투콰앙!
"아니, 이건 또 뭐야!"
"설마 또 폭탄이...!"
"아냐, 저길 봐!"
하루카가 탄 차량이, 벽을 뚫고 질주하고 있었다.
"... 이야~, 터프하네."
난 질주하는 패밀리 밴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 야, 잠깐! 저거 이리로 오잖아아아아악!!!"
"으아아악!"
무장 경비들을 차로 들이받으며, 하루카의 차량은 카요코 앞에 정차했다.
"카요코 씨! 빨리 타요!"
"응!... 잠깐, 얜 누구야? 선도부?"
"어, 그게..."
"그런 건 신경쓰지 말고 빨리요!"
뭔가 이상했지만, 카요코는 일단 잠든 이로하와 함께 밴에 탑승했다.
그리고 다시 질주하기 시작한 하루카는, 이번엔 환전소 앞에 급정거해서 나머지 사람들을 태웠다.
"자! 다들 빨리!"
"아, 고마워. 근데... 선도부가 왜 여깄는거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거든! 이봐, 네 동료가 만마전이란 말은 없었잖아!"
"그럼 그걸 일일이 설명하고 있어? 됐으니까 일단 타라고!"
치아키와 이오리가 다툴 뻔했지만, 하루카가 말려서 시간이 지체되는 일은 없었다.
"이부키! 내 손 잡아!"
"고마워요, 치아키 선배! 앗!"
그러나 급하게 차에 타던 중, 이부키는 손에 들고 있던 돈자루를 놓치고 말았다.
"이, 이런... 어떡하죠?"
"... 저건 두고 가자."
"어? 저거면 몇 년은 놀고먹을 수 있는데?"
사츠키가 강하게 반발했지만, 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가 카지노를 털었다는 사실만으로 목적은 달성했어. 무엇보다, 이 차엔 예상치 못한 손님이 타 있어서 돈자루를 싣기도 버거워."
"... 흥! 그거 미안하게 됐네! 변태 주제에!"
이오리는 도끼눈으로 날 쳐다봤지만, 난 적당히 무시하고 차에 탔다.
"자, 전속력으로 밟습니다! 다들 꽉 잡아요!"
그 말과 함께, 하루카는 카지노의 출구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렇게 우리는 카지노를 털고 유유히 탈주를...
할 수 없었다.
"하, 하루카! 앞에 사람!"
"어, 어? 무리예요, 이 거리에서 급제동은!"
출구 쪽에는 어떤 소녀가 방패와 샷건을 든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 터엉!
"어어?!"
"꺄아아악!"
그녀가 방패로 우리의 차를 튕겨내자, 차는 요란하게 바닥을 굴렀다.
"... 순찰 중에 연락이 와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마치 사신과 같이 조용히 다가온 그녀는, 우리의 얼굴을 하나씩 뜯어살피고 있었다.
"감히 게헨나 떨거지들이 내 왕국을 건드려? 그렇겐 안 되지."
"너, 넌...!"
싯딤의 상자의 보호에도 불구하고 강한 충격에 의식이 흐려지던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넌 분명...!"
"그래, 맞아. 내가 바로..."
틀림없다. 분명 사진 속의 모습과는 달랐지만, 난 그 이름을 안다.
"샌드맨, 당신들한테 영원한 꿈을 선사할 존재야."
아래로 묶은 민트빛 머리와, 방탄조끼 속에 살짝 보이는 하네스.
그녀는 분명 아비도스 학생회 소속이자 호시노의 선배였던, 쿠치나시 유메였다.
*****
이번화에서는 배신자(아님) 노노미의 등장과 함께, 꾸준히 떡밥을 뿌린 샌드맨의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특히 샌드맨의 경우 1화 때 호시노로 추측하신 분이 있었는데, 신선한 충격이었으면 좋겠네요.
과연 그녀들의 존재는 이야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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