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스타트 라인에 서서
4. 새로운 세계로의 마중 - 아내, 그리고 새 생명과의 첫 만남
세상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미는 생명의 첫 울음소리를 기다리는 시간. 인생에서 자식을 마중하는 시간보다 설레이는 때가 있을까. 그것은 남자로서 새로운 세계를 향한 가슴 벅찬 출발이다. 한 여자와 자식을 책임져야 할 가장이 된다는 것은 남자의 인생에 있어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병원의 대기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간호사가 아기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첫 딸 소정이가 태어난 순간이었고, 내가 드디어 아버지가 된 순간이었다. 나에게 첫 딸의 출현은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내 혈육이 생겼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내는 5시간이 넘는 산고가 힘들었는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무언가 멋진 축하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겨우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라는 두 마디였다. 멋없어 보이는 말이었지만 정말 고마웠고, 정말 사랑스러웠다.
이제 우리 부부에게 소정이라는 새로운 인연의 끈이 생긴 것이다. 감격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부부가 부모가 되었을 때 인생에 또 다른 고비를 맞이한다고들 했다. 아이를 가질 것인가? 신혼살림을 차린 우리 부부에게 큰 숙제가 아닐 수 없었다. 아내는 뒤늦게 의과대학에 복학해 이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병원 생활을 해야 할 처지였다. 객관적으로 우리 부부가 아이를 낳아 기른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힘든 도전이었다.
나는 힘들더라도 아이를 갖자는 입장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남자라서 좀 쉽게 생각한 면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다고 우리들 상황이 더 여유로워 질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 낳는 것을 마냥 피하고 미룰 수는 없었다. 아내는 자신의 삶이 더 고단해 질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흔쾌히 동의했다. 아내는 그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가장 믿음직한 동지이다.
대학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줄곧 아내에게 많은 빚을 지며 살아가고 있다. 내 아내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얼마나 쓸쓸했을까 싶다. 지금 돌이켜보니 우리의 만남은 오래 전부터 예정돼 있었던 숙명 같기도 하다. 우리는 같은 대학, 82학번 동기, 똑같은 제주도 출신의 유학생이었다. 그러나 처음 만난 곳은 제주도가 아닌 서울에서였다. 제주 출신 서울대 신입생들의 모임에서였다. 교정의 4.19탑 아래서 첫 만남을 가진 후 나는 아내에 대해 계속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 낯선 환경 속에서 생길 수 있는 동지애와 같은 감정이었을 것이다.
반면 아내는 익히 제주도에서부터 내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다고 했다. 원희룡이라는 이름 앞에 '학력고사 전국수석'이라는 꼬리표가 늘 붙어 다녔기에 아내는 나를 그 꼬리표와 함께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 또한 당시 화려한 성적표를 갖고 있었던 수재였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나를 보자 맨 처음 묘한 라이벌 의식을 느꼈다고 했다.
유난히 화통하고 이해심이 많았던 아내는 당시 대부분의 모든 남학생과 허물없이 지내던 성격 좋은 여학생이었다. 나는 차츰 순수한 아내의 매력에 반했다. 자기만의 뚜렷한 컬러를 지니고 활달했던 아내에게서 제주도의 향수를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나는 좀더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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