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원희룡 에세이] 노동자를 벗 삼아 지냈던 야학 교실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202.136) 2007.04.04 12:03:33
조회 2896 추천 1 댓글 4

   제1장 스타트 라인에 서서


  3. 그들을 위해 살겠다 - 노동자를 벗 삼아 지냈던 야학 교실


  나는 1983년 5월 시위 중에 붙잡혀 유기정학을 받은 후 하반기에 구로공단에서 야학 활동을 하면서 구로동의 노동자들을 동생 삼아 벗 삼아 지냈던 경험이 있다.


  야학 시절은 소박하고 건강한 벗들과 함께 한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구로동 교회에서 먼저 야학을 시작한 친구가 함께 할 것을 권유했을 때 나는 흔쾌히 응했다. 캠퍼스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민중과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야학생 모집 안내문을 돌리면서 나는 학생들이 야학이라는 곳에 정말 찾아와줄 것인가 걱정을 많이 했다.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 젊은 대학생들에게 자존심을 버리고 다가와 줄 것인가.


  그런데 놀랍게도 공지한 시간이 되자 공단에서 일하는 여학생들이 하나 둘 교실 문을 밀고 들어왔다. "저어… 여기가 공부하는 곳 맞나요?" 쭈뼛거리며 들어오는 수줍음 가득한 앳된 얼굴들이 나를 황홀케 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공부를 하겠다고 찾아 온 그들이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whr_018.jpg

 


  야학에서는 그들에게 한문, 문학, 교양 등을 가르쳤다. 전문적인 노동운동가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교회에서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내용으로 주로 노래, 독서, 근로기준법 같은 것들이었다. 여공들은 수업에 정말 열심이었다. 야근과 철야에 지쳐 있었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칠판을 바라보는 그들에게서 나는 삶의 충만한 에너지를 느꼈다.


  나는 학과수업보다 그들과 함께 하는 레크레이션이나 대화 시간이 훨씬 재미있었다. 공장에서 속상했던 이야기, 시골에 두고 온 동생 이야기, 남자친구 이야기 등등. 화제는 끝이 없었다. 나는 그들을 가르치려고 야학을 시작했지만 정작 내가 그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에 비해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고, 너무 좋은 조건이었지만 삶에 대한 애착과 희망은 그들이 더 강렬했다.


whr_019.jpg



  그러나 야학도 순조롭지 않았다. 겨우 활동을 본 궤도에 올려 놓았을 무렵 여러 회사에서 운동권 학생의 명단이 적힌 블랙리스트를 공원에게 보여주며 야학에 나가지 말도록 종용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학생들을 계속 야학에 참여시키기가 어려워졌다. 겨우겨우 명맥을 이어가던 중 유인물을 돌리다 경찰에 연행되었다. 내 자취방에서 등사기구가 발견되었고, 10여 일 동안 구금되어 조사를 받았다. 결국 구로동 야학은 문을 닫아야 했다.


  야학이 실패한 후 좀더 내 자신이 단련돼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야학의 실패는 4학년 여름, 공장으로 들어갈 결심을 굳히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노동자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야학 강사를 넘어 노동운동가로 살아가야 하는 길 위에 서 있었다.
>>< src= width=1 height=1>>>>>

추천 비추천

1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SNS로 싸우면 절대 안 질 것 같은 고집 있는 스타는? 운영자 24/05/06 - -
28 [원희룡 에세이] 아버지는 모질게 장사를 하지 못했다 [31] 운영자 07.06.29 4212 10
27 [원희룡 에세이] 목표에 대한 과정은 우리의 몫 [5] 운영자 07.06.28 1873 2
26 [원희룡 에세이] 아버지는 나를 믿으셨다 [5] 운영자 07.06.26 2172 3
25 [원희룡 에세이] 아버지는 생계보다 자식이 더 귀했다 [3] 운영자 07.06.22 2066 1
24 [원희룡 에세이] 인류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라 [2] 운영자 07.06.20 1819 1
23 [원희룡 에세이] 최고의 운동선수 [2] 운영자 07.06.18 1861 2
21 [원희룡 에세이] 마라톤에서 정직을 배우다 [4]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5.23 2157 4
20 [원희룡 에세이] 달리는 본능에서 생긴 존재감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5.11 1609 1
19 [원희룡 에세이] 마라톤을 향한 첫 발 [3]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5.04 1761 1
18 [원희룡 에세이] 요슈카 피셔의 <나는 달린다> [3]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30 2082 2
17 [원희룡 에세이] 운동에 대한 갈망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27 1784 2
16 [원희룡 에세이] 부산지검을 떠나던 날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24 1760 4
15 [원희룡 에세이] 마약과의 전쟁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20 2146 4
14 [원희룡 에세이] 각각의 사건이 하나의 사건으로 [3]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18 1855 2
13 [원희룡 에세이] 서울지검 원희룡 검사 [3]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16 3161 4
12 [원희룡 에세이] 삶의 가장 큰 선물 [5]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13 2163 4
11 [원희룡 에세이] 뚜벅이 청년의 아내과 두 딸 [7]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11 3098 2
10 [원희룡 에세이] 아내, 그리고 새 생명과의 첫 만남 [6]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09 2877 6
9 [원희룡 에세이] 나의 한계와 뜨거운 열정 [6]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06 2134 1
[원희룡 에세이] 노동자를 벗 삼아 지냈던 야학 교실 [4]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04 2896 1
7 [원희룡 에세이] 노동자로서의 삶, 나에게 묻는다 [4]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02 2001 1
6 [원희룡 에세이] 유기정학과 사글세 연탄방 [4]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3.30 2279 1
5 [원희룡 에세이] 새내기의 꿈, 그리고 험난한 여정의 시작 [3]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3.28 1971 1
4 [원희룡 에세이] 가을의 춘천에서 달리다 [4]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3.26 1864 2
3 [원희룡 에세이] 더 쓰임새 많은 발가락 [4]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3.21 1930 1
2 [원희룡 에세이] 42.195km, 첫 풀코스의 경험 [5]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3.19 1912 1
1 [원희룡 에세이] 프롤로그- 달리기는 늘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29]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3.16 2681 3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