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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에세이] 노동자를 벗 삼아 지냈던 야학 교실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202.136) 2007.04.04 12:03:33
조회 2549 추천 1 댓글 2

   제1장 스타트 라인에 서서


  3. 그들을 위해 살겠다 - 노동자를 벗 삼아 지냈던 야학 교실


  나는 1983년 5월 시위 중에 붙잡혀 유기정학을 받은 후 하반기에 구로공단에서 야학 활동을 하면서 구로동의 노동자들을 동생 삼아 벗 삼아 지냈던 경험이 있다.


  야학 시절은 소박하고 건강한 벗들과 함께 한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구로동 교회에서 먼저 야학을 시작한 친구가 함께 할 것을 권유했을 때 나는 흔쾌히 응했다. 캠퍼스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민중과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야학생 모집 안내문을 돌리면서 나는 학생들이 야학이라는 곳에 정말 찾아와줄 것인가 걱정을 많이 했다.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 젊은 대학생들에게 자존심을 버리고 다가와 줄 것인가.


  그런데 놀랍게도 공지한 시간이 되자 공단에서 일하는 여학생들이 하나 둘 교실 문을 밀고 들어왔다. "저어… 여기가 공부하는 곳 맞나요?" 쭈뼛거리며 들어오는 수줍음 가득한 앳된 얼굴들이 나를 황홀케 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공부를 하겠다고 찾아 온 그들이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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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학에서는 그들에게 한문, 문학, 교양 등을 가르쳤다. 전문적인 노동운동가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교회에서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내용으로 주로 노래, 독서, 근로기준법 같은 것들이었다. 여공들은 수업에 정말 열심이었다. 야근과 철야에 지쳐 있었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칠판을 바라보는 그들에게서 나는 삶의 충만한 에너지를 느꼈다.


  나는 학과수업보다 그들과 함께 하는 레크레이션이나 대화 시간이 훨씬 재미있었다. 공장에서 속상했던 이야기, 시골에 두고 온 동생 이야기, 남자친구 이야기 등등. 화제는 끝이 없었다. 나는 그들을 가르치려고 야학을 시작했지만 정작 내가 그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에 비해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고, 너무 좋은 조건이었지만 삶에 대한 애착과 희망은 그들이 더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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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야학도 순조롭지 않았다. 겨우 활동을 본 궤도에 올려 놓았을 무렵 여러 회사에서 운동권 학생의 명단이 적힌 블랙리스트를 공원에게 보여주며 야학에 나가지 말도록 종용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학생들을 계속 야학에 참여시키기가 어려워졌다. 겨우겨우 명맥을 이어가던 중 유인물을 돌리다 경찰에 연행되었다. 내 자취방에서 등사기구가 발견되었고, 10여 일 동안 구금되어 조사를 받았다. 결국 구로동 야학은 문을 닫아야 했다.


  야학이 실패한 후 좀더 내 자신이 단련돼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야학의 실패는 4학년 여름, 공장으로 들어갈 결심을 굳히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노동자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야학 강사를 넘어 노동운동가로 살아가야 하는 길 위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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