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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브랜드 스토리] 최초의 등록상표 '부채표 활명수'

ceonew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8.27 11: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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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NEWS=김병조 기자] 동화약품은 몰라도 '부채표'와 '활명수'는 안다. 부채표 활명수를 생산하는 기업이 동화약품이라는 사실을 몰라도 '부채표'와 '활명수'는 100년 넘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9월 브랜드 스토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록된 상표인 동화약품의 '부채표 활명수'를 소개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동화약품'


우리나라에서 창업 후 한 번도 상호가 바뀌지 않고 업종 변경도 없이 100년을 넘긴 회사는 동화약품이 유일하다.

동화약품은 1897년 9월 25일에 창업했다. 그보다 1년 전인 1896년에 두산그룹이 창업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두산은 창업 당시에는 '박승직상점'이었고, '두산'이라는 상호를 쓴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이고, 업종도 바뀌었다. 그래서 업종 변경 없이, 같은 상호를 사용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회사는 동화약품이다.

그러니까 동화약품은 대한민국 최초의 제조회사이자 제약회사다. 2025년 현재 기준으로 창립 128주년을 맞이했다.

동화약품의 창업 당시 이름은 '동화약방'이었다. 구한말(대한제국) 시절이던 1897년, 궁중 선전관(무관) 출신인 민병호와 그의 아들 민강이 서소문에서 개업한 '동화약방'이 동화약품의 시작이었다.

1931년 주식회사 동화약방으로, 1962년 동화약품공업으로, 2009년 동화약품으로 상호가 조금씩 바뀌었지만, '동화'는 128년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동화'라는 이름은 주역에 나오는 말로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예리함이 쇠도 자를 수 있다. 나라가 화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들면 나라가 부강해지고 국민이 평안해진다"는 뜻이다.


활명수 개발과 동화약품 창업 동기

아버지 민병호는 궁궐에 드나들며 평소 친분 있게 지낸 전의(典醫)에게 궁중 비방을 전해 듣고, 1897년 국내 최초 양약인 활명수를 개발한 뒤 아들 민강과 함께 활명수의 대중화를 위해 동화약방을 창업했다.

그러니까 약방을 차리기 이전에 먼저 약을 개발했다는 의미다. 약을 팔기 위해 약방을 차린 셈이다.

당시 민중들은 급체, 토사곽란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았는데, 활명수를 복용한 이들이 회복되는 사례가 늘자 활명수는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 불리며 만병통치약 대접을 받았다.

활명수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97년 9월 25이다. 대한제국이 1897년 10월 12일부터 시작이니까 대한제국 이전인 조선시대부터 팔렸다는 뜻이다. 창립자 민병호가 처음 만들었을 때는 '활명액'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팔았다.

당시 제조 레시피를 보면 계피 4g, 정향 3g, 감복숭아(살구)씨 6g을 침출기에 넣고 적포도주 150g을 가해 잘 혼합한 다음 3일간 침출시킨 뒤, 이 침출액에 다시 박하뇌 0.15g, 장뇌(dl-캄파) 0.03g을 넣고 백설탕 40g과 증류수 70g을 가한 후 잘 혼합해 용해한 후에 여과하면 완성된다.

초기 활명수는 지금처럼 바로 음용 가능한 방식이 아니라 원액을 물에 1~2시간 정도 희석시키는 과정이 필요한 터라 큰 병에 원액을 담아 판매했었다. 이후 미리 희석돼서 바로 음용 가능한 지금의 활명수를 담은 작은 병이 출시되었고, 원액을 담은 활명수와 바로 음용 가능한 활명수가 판매되다 원액을 담은 활명수는 완전히 사라지고 지금의 형태로 굳어지게 됐다.


우리나라 최초 등록 상표 '부채표 활명수'

활명수는 일반의약품에 해당하는 소화 기관용 약이다. 쉽게 말하면 소화제다. 식욕감퇴(식욕부진), 위부팽만감, 소화불량, 과식, 체함, 구역, 구토에 효능이 있다.

활명수를 개발한 동화약방은 1910년 '부채표'를 상표 등록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등록된 상표다.

'부채'를 상표로 정한 것도 심오한 뜻이 있다. "종이와 대나무가 서로 합하여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紙竹相合 生氣淸風(지죽상합 생기청풍)"에서 따왔다. "민족이 합심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민족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동화약방은 기네스북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제조회사이자 제약사, 최초의 등록상표, 등록상품 등 4가지 부문에 등재된 기업이다.

1910년 국내에서 최초로 상표 등록한 1931년 법인으로 전환해 상호를 ㈜동화약방으로 변경하고 1937년에는 윤창식이 동화약방을 인수하게 된다.

주인이 민씨에서 윤씨로 바뀐 사연

동화약방을 창업한 민강은 1906년에 현재의 서울대 약학대인 '조선약학교'를 설립하고, 이듬해인 1907년에는 소의학교도 설립했다. 그런데 창업 40년 만인1937년 회사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사실 민강은 독립운동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동화약품은 민족기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이던 1919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성 연통부 행정책임자로서 활명수 판매수익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했다.

그런 이유로 일제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1931년 주식회사로 전환했으나, 민강 초대 사장은 독립운동에 힘쓰다 두 차례 걸친 옥고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죽음으로 사세가 기울어지자 1937년에 독립운동 동지였던 보당 윤창식에게 인수됐다.

윤창식은 회사를 인수한 그해에 만주국에 '부채표 활명수' 상표를 출원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기업의 최초 해외 상표등록이다. 만주국은 일본 제국이 1932년 중국 동북부 만주 지역을 점령해 세운 나라로 1945년 일본 패망과 함께 해체됐다. 명목상으로는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를 황제로 옹립한 제국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일본이 통치한 식민지였다.

윤창식은 1938년 만주국에 안동지점을 설치하고, 만주 안동에 분공장도 설립했다. 이때 우리나라 최초의 여약사가 생겼는데, 그녀는 만주 안동지점장을 지낸 장금산이었다.


2세 경영인의 제약 외길 인생

1962년 동화약품공업(주)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이듬해인 1963년 윤창식이 세상을 떠나자 장남인 윤화열이 6대 사장에 취임하며 2세 경영이 시작됐다. 윤화열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재의 경기고)와 일본 메이지대학을 졸업한 후 1942년에 동화약방에 취체역(이사)으로 입사해 1963년 4월 사장에 취임했다.

윤화열은 임직원들의 사세확장 건의에도 오로지 제약 한길만을 고집한 외곬 기업인이었다. 이에 따라 그는 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양약만 만들고 모든 식구가 정성을 다해 잘살 수 있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소신을 가졌다. 또한 자신이 돈을 벌기보다 회사발전을 위한다는 뜻에 따라 젊은 인재를 주용하고 이윤은 모두 재투자해 그의 재임기간이었던 1968년 매출 10억원을 돌파하면서 동화약품의 사세가 급신장하는데 기틀을 다졌다.

1967년 '활명수'에 탄산가스를 첨가해 청량감을 보강한 '까스활명수' 개발도 그의 업적이고, '알프스 디'와 '판콜' 등 간판 제품들도 그가 경영할 때 만들어진 것들이다.

1974년 윤화열이 회장이 되고, 동생 윤광열이 부회장에 취임하면서 형제가 대를 잇는 2세 경영이 계속되다가, 1977년 윤광열이 회장에 취임하고 윤광열의 장남인 윤도준이 2008년 대표이사/회장을 맡으면서 3세 경영으로 이어진다. 2009년 상호를 동화약품(주)로 변경했고, 현재 윤도준 회장의 아들이 대표를 맡아서 4세 경영을 하고 있다. 활명수에 이은 히트작 '부채표 후시딘'이 2017년 연매출 200억원을 달성하고, 2025년에는 베트남에 약국-편의점 결합 매장 1호점을 오픈하는 등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128년 동화약품의 현주소

'최초' 타이틀을 많이 가진 동화약품이지만 현재의 기업 사정은 그리 화려한 편은 아니다. 지난해 매출은 4,649억원이고 영업이익은 134억원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매출이 2배 이상 증가하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지만, 가장 오래된 기업이자, 현존하는 기업 중 주식시장에 가장 먼저 상장한 기업치고는 아쉬운 성적표다. 덩치만으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할 수 없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다만, 지금까지 83억 병 넘게 팔린 활명수의 판매 데이터가 현재도 실시간으로 집계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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