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좋은 계획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대체 어느 누가 조직의 보스를 만나기 위해, 조직의 돈줄을 턴다는 미친 발상을 하겠는가.
다만 위험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우리 역시 나름대로 계획을 철저히 세웠었다.
현재 싯딤의 상자에 있는 또다른 아로나의 힘을 빌려-그러고보니까 원래 있던 아로나는 대체 언제 깨어나는 거야?- 금속탐지기를 해킹하고, 훔친 돈은 전부 카지노 앞에 버리고 갈 생각이었으며, 무엇보다 CCTV를 해킹하지 않아 얼굴이 알려졌을 것이기에 바로 자수하려고 했다.
이 정도로 눈에 띄는 짓을 하면 아비도스의 일인자인 '샌드맨'을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만나게 됐으니 성공이라면 성공이다.
다만... 그 샌드맨을 너무 얕본 게 문제였다.
"흐어억! 오, 키보토스!"
겨우 의식을 차린 나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확인했다.
분명 뒤집힌 차 안에 있어야 할 터인데, 어째선지 우리는 밧줄에 묶인 채로 어딘가에 무릎꿇려져 있었다.
"으윽... 아직도 머리가 울려요..."
"아무래도 제대로 당한 모양이네... 설마하니 방패 하나로 차를 막아버릴 줄은."
"아니, 그게 가능해? 아까 전속력으로 밟았잖아!"
"그게 되니까 이런 사막에서 군림하는 거겠지... 한 방 먹었어."
보아하니 이부키와 사츠키, 치아키와 카요코도 겨우 깨어난 모양이었다. 그리고...
"으아앙~! 싫어! 왜 이런 변태랑 같이 묶여있어야 하냐고오!"
내 옆에 묶인 이오리 역시 크게 다친 곳은 없는듯했다. 음, 건강해보여서 다행이네.
"흐으, 흐윽... 으으..."
"움냐움냐... 주포, 발사..."
다만, 하루카와 이로하는 쉽사리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카는 운전석에 앉아있어 충격이 컸던 것 같고 이로하는... 그냥 수면제에서 깨어나지 못했나 보다.
"아무튼 작전은 성공인가보네, 그나저나 여긴... 샌드맨의 펜트하우인가? 하지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곳은 누군가의 아지트라기엔 뭔가 이상했다.
곳곳에 있는 락커와 책걸상, 어지러이 놓인 서류. 이건 은신처라기보단...
"꼭, 회의실 같은 느낌인데요? 그것도 흔히 볼법한..."
"학교에 있는 학생회실. 맞아, 아비도스에서 쓰던 걸 거의 그대로 가져왔거든."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기에, 우리는 일제히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안대를 쓴 소녀가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죠? 여기에 왜..."
"질문을 하는건 나다. 멋대로 침입한 건 너희들이니까."
이부키의 질문을 손을 들어 저지한 그녀는, 말을 이었다.
"내 이름은 아사기리 스오우. 샌드맨을 대신해 너희들을 심문할 예정이지. 자, 그럼 이야기해주겠나? 무슨 베짱으로 그녀를 자극했는지 말야."
스오우는 의자 하나를 빼서 적당히 걸터앉은 후, 우리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얘기하지만, 돈이 목적은 아녔다고! 훔친 건 전부..."
"현장에 두고 갔더군. 물론 알고 있다. 단순히 목표를 놓친 머저리거나,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게 타당하겠지."
치아키의 말을 끊고, 스오우는 신랄한 독설을 내뱉었다.
"바로 그걸 묻고 있는거야. 돈이 목적이 아니면서, 대체 왜 이렇게까지 요란한 짓을 벌였지?"
"... 만나고 싶었거든요. 당신네 보스, 샌드맨을요."
"음?"
이부키의 대답에, 스오우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예상 못한 답변이었나?
"듣기로는 샌드맨은 아비도스 학생회 출신이었다죠? 이 방을 보니, 그건 사실인 것 같구요."
"... 이건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쓰는 것 뿐이야. 제 기능을 하는데 그냥 쓰면 되지 않냐고, 내가 제안했지."
"스오우는 거짓말을 못하는구나?"
"닥쳐라, 어른."
어머나, 까여버렸네. 하지만 정말이지 엄청 티 나는 거짓말이었는걸.
아무 일 없었다는듯, 스오우는 책상 위에 놓여있던
"아무튼, 샌드맨이 학생회 출신인 게 무슨 상관이지?"
"우린 지금 뇌제가 아비도스 학생회에게 맡겼다는 비밀병기를 찾고 있어요. 우리의 적대 세력인 선도부가, 그걸 악용하기 전에요."
뇌제. 그 이름이 나오자, 스오우의 표정은 명백히 구겨졌다.
"... 또 그 인간의 이름에 홀린 머저리들인가."
"뭐가 어째!"
"야, 조용히 있어. 저 녀석 기분 안 좋아보이니까..."
치아키는 스오우의 독설에 흥분했지만, 재빨리 사츠키가 말려서 큰일은 나지 않았다.
"하아... 좋다, 까짓것 설명해주지. 지금껏 뇌제가 숨겨뒀다는 '그것'에 집착하는 녀석들은 많았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스오우는, 몸을 낮춰 이부키와 눈을 맞추었다.
"너희들 말대로, 아비도스 학생회와 뇌제가 협력 관계였던 것은 사실이다. 뇌제가 게헨나 내전에 아비도스를 끌어들인 대신, 그쪽도 아비도스에 이런저런 지원을 해줬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 그렇다면!"
"하지만 너희들이 찾는 그런 엄청난 병기같은 건 여기 없어. 초노급 열차포나 도시 하나를 날릴 열압력탄같은 거라도 기대했다면, 아쉽게 됐군."
"그럴, 수가..."
이부키는 조금 기대한 눈치였지만, 이어지는 설명을 듣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심문을 계속해도 되겠나? 묻고 싶은 게 아주 많은데. 우선..."
스오우는 고개를 돌려 은발의 트윈테일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 이봐. 왜 그렇게 뚫어지게 보는데?"
"분명 만마전과 선도부는 적대 관계 아니었나? 왜 이 녀석이 여기 있지?"
지극히 당연한 질문이었다. 현재 두 세력은 내전 중이니까.
"나라고 여기 있고 싶은 줄 알아! 난 그저..."
"얘가 날 못 잊었다지 뭐야?"
"전혀 아니거든!"
능글맞게 내가 대신 대답하자, 이오리는 꽤나 재미난 표정을 보여주었다.
"뭐, 보아하니 이 녀석이 너희랑 같이 있는 건 뭔가 일이 꼬였던 모양이군. 그럼 다음 질문이다."
스오우는 책상 위에서 무언가를 집었다.
"앗! 그건!"
"역시 당신 물건이었나, 어른. 이게 뭔지 설명해주실까."
스오우가 들고 있는 태블릿은, 틀림없는 싯딤의 상자였다.
"당신네들 차량에서 찾은건데, 왜인지 작동이 안 되더군. 어떻게 쓰는 건지 알고 싶은데."
"이걸 알아서 뭐하게?"
"... 그건 당신이 알 바 아냐."
기분 탓인가? 잠시 스오우의 눈빛이 흔들린 것 같은데.
"알려주지 않으면 나도 협력 못해. 그걸로 무슨 짓을 할지 내가 어떻게 알고?"
"주도권이 있는 건 나다, 어른! 샌드맨이 오기 전에 빨리...!"
"내가 뭘 어쨌다고?"
문 쪽에서 들려오는 다른 목소리. 분명 차가 뒤집혔을 때 들렸던 목소리다.
"아...! 새, 샌드맨. 벌써 왔군."
"생각보다 정리가 오래 걸리진 않았어. 어질러진 건 직원들이 치울거고, 화장실 정도야 나중에 다시 지으면 되니까."
유메는 천천히 걸어와 근처 소파에 앉았다. 쿠션에 몸을 기댄 그녀는, 우리를 죽일듯이 노려봤다.
... 잠깐, 저거 쿠션 맞나? 분명 어디서 봤는ㄷ...
"뭘 그렇게 쳐다보는거야, 기분 나쁘게."
"넵, 자제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내 시선이 꽤 신경쓰인 모양이다.
"우리가 온 목적과 기타 사항은 전부 당신 동료에게 얘기했어. 더 할 말은..."
"말? 이봐,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카요코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샌드맨이 샷건을 장전한 후 다가오자 그 눈빛이 흔들렸다.
"내가 느긋하게 대화나 하러 온 것 같아?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너흴 전부 이 사막에 묻어버릴 수 있어."
"으윽...!"
"자, 잠깐 샌드맨! 이자들은 내가 처리하겠다고 말했잖나!"
스오우는 샌드맨의 어깨를 붙잡고 말렸지만, 그녀는 오히려 총구를 스오우에게 겨눴다.
"이봐 스오우, 그 결과가 겨우 이거야? 내가 분명히 이것들 눈앞에서 치워버리라고 했잖아."
"하지만, 이걸 봐라!"
스오우는 책상 위에 놔둔 싯딤의 상자를 들어보였다.
"태블릿? 그게 뭐? 말했잖아, 정보를 모을 때 컴퓨터 따윈 부질없다고..."
"그런 게 아냐. 이건... 아마 총학생회의 오파츠 같다."
"뭐?"
잠깐, 총학생회? 저 아이들이 왜 거기에 신경쓰는 거지? 분명 이 세계의 총학생회는 유명무실한 조직이라고...
"틀림없어. 이 디자인은 총학생회의 물건만 쓸 수 있는걸로 알고 있다. 이게 있다면, 그걸 쓸 수 있을지도 모르..."
"그거 이리 줘."
"어? 어어, 여기."
스오우는 얼떨떨한 채로 상자를 넘겨줬다. 그리고...
- 탕! 탕탕!
"이, 이봐!"
"... 확실히 오파츠는 오파츠네. 이만큼 쏴도 안 망가지는구나."
샌드맨이 샷건을 상자에 박았지만, 그것은 멀쩡했다.
"적당히 갖다버려. 어차피 필요 없으니까."
"하지만!"
"두 번은 말하지 않아, 스오우."
"읏...!"
반발하는 스오우였지만, 샌드맨의 압박에 짓눌려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겸사겸사 저것들도 치워. 외지인이랑은 한 마디도 하기 싫으니까."
"그래... 알겠다."
결국 스오우는 바닥에 떨어진 상자와 우리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 게헨나는 상당히 축제 분위기였다.
"하~ 하핫! 오늘은 아주 기쁜 날이군, 메구!"
"응, 부장! 덕분에 오늘은 온천을 잔뜩 터뜨릴 수 있겠어!"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온천개발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녀석들이다! 온천개발부가 떴다!"
"다들 도망쳐! 이 일대가 쑥대밭이 될 거라고!"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화약을 잔뜩 터뜨리는 그녀들은, 이미 선도부를 이을 공포의 화신이 되어 있었다.
게헨나를 지배하려던 선도부와 달리 순수하게 파괴를 즐기는 온천개발부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닥치는대로 '온천'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게헨나의 주거 구역과 상업 지구는, 이미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밖에 남지 않았다.
"정말 굉장하다, 부장! 역시 부장만 믿고 따랐더니 만마전도 선도부도 손쉽게 제압해버렸네? 다음엔 어디로 갈까?"
"흐음~, 그렇지. 다음이 문제란 말이지..."
순수하게 신이 나 화염방사기를 마구 흔드는 메구와 달리, 카스미는 고민과 낙심이 섞인 복합적인 표정이었다.
"어라? 부장, 왜 그래? 이제 우리 세상이 왔는데, 안 기뻐?"
"그럴 리가! 계획이 딱딱 들어맞는 것보다 신나는 일은 없지. 다만... 이대로는 너무 싱거워서 말야."
"싱겁다니? 아, 소금 좀 줄까?"
"아, 그래. 고마워, 메구."
메구가 품에서 온천 계란과 소금을 건네주었기에, 카스미는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으으음... 슬슬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 모모톡!
"오호라?"
갑자기 온 모모톡에, 카스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응? 무슨 내용이야?"
"히나 부장과 아코 선임행정관이 어디로 갔는지 파악된 모양이야. 아비도스라는 모양인데?"
"아비도스? 그 사막 말야? 우와! 나 사막은 처음인데!"
새 장난감을 받은 어린아이와 같이 신난 메구처럼, 카스미도 흥분할 뻔한 것을 겨우 참았다.
"그래, 메구. 이건 재밌는 경험이 될 거야... 게임은 이제 시작됐으니까 말이지, 선도부장."
파괴의 화신은, 게헨나 하나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 것이다.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게 될 거다. 선생이라고 했나? 이 태블릿의 작동법을 알려줄 마음이 든다면, 그때 날 부르도록. 그럼 이만."
우리를 창고같은 곳에 가둔 스오우는, 매정히 돌아서서 떠나려고 했다.
"아니, 잠깐! 난 만마전이 아니라 선도부라니까! 난 풀어줘!"
"만마전이든 선도부든, 너희들이 외지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난 샌드맨의 명령을 따를 뿐이다."
이오리가 스오우의 뒤통수에 대고 외쳤지만,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한 채 나가버렸다.
철컥, 하는 소리가 들린 걸 보니 문도 잠근 모양이네.
"으아앙~! 싫어! 내가 왜 이런 변태랑 갇혀야 하는데~!"
"저기... 그때 일은 미안하니까, 이제 그만 울어줄래? 꽤 상처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이오리는 목놓아 울었다.
"이제 어쩌죠... 이렇게 묶인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대체 뭘 어떡해야..."
"그러게. 그나마 다행인 건, 학원에 무언가 있다는 건 확정이라는 거려나."
"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선배, 뭔가 감을 잡은거야?"
카요코의 발언에, 우리는 주의를 기울였다. 탐정으로서 무언가를 알아낸 건가?
"선생, 혹시 스오우가 했던 말 중에 그거 기억해?"
"어? 어떤 거, 상자랑 관련된 거?"
"그래, 그거. 분명 샌드맨과 대화할 때, 상자로 무언가를 작동시킬 수 있을거라고..."
"그 얘기는... 아!"
오파츠가 있어야만 겨우 작동시킬 수 있는 것. 그거라면 분명...!
"우트나피쉬팀의 배!"
"그래, 뇌제의 병기가... 잠깐, 무슨 배?"
아, 맞다. 여기 애들은 그런 거 모르지.
"아, 아무것도 아냐. 하던 말 계속해."
"어, 뭐... 아무튼 뇌제의 병기나 그에 준하는 무언가가 여기 있고, 그걸 작동시킬 방법을 몰라서 상자를 이용하려는 거 아닐까?"
"확실히 그런 거라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대체 그게 뭔진 몰라도, 금속탐지장치를 해킹하는 걸 보면 보통 물건은 아니니까요."
"확실히 그건 그런데..."
카요코와 이부키는 상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난 오히려 의문에 빠졌다.
상자를 써야될 정도의 물건이라고? 대체 그런 걸 뇌제는 어떻게 만들었고, 왜 여기 놔둔거지?
"그럼 이걸로 의뢰 해결... 이라 하고 싶지만, 그 물건을 찾아야 해결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의뢰주 님?"
"네, 당연하죠. 선도부가 강탈하기 전에요."
"빠져나갈 수 있을 때 얘기지만 말야."
사츠키가 초를 치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결국 갇혀있다는 사실은 똑같으니까.
"그러게, 나가는 게 문제인데..."
그런 고민을 하던 중, 누군가가 몸을 꿈틀대는 느낌이 들어 돌아보니...
"으, 으으윽... 머리가..."
"후아암~, 잘 잤다! 어라, 여긴 어디야?"
"어? 하루카, 이로하! 일어났어?"
아직까지 의식을 차리지 못했던 하루카와 이로하가 깨어났다.
"보아하니, 작전은 실패인가요...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죠? 방패로 차를 튕겨내다니..."
"아! 이거 방탈출이야? 재밌겠다!"
두 사람은 낯선 장소에서 깨어난 탓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치 우리가 깨어난지 얼마 안 됐을 때처럼.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뭔가 아이디어 좀 내봐, 탐정 나리! 이런 상황도 겪어봤을 거 아냐!"
"이봐, 탐정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우린 모험가가 아니라고."
치아키가 카요코에게 시비를 걸자, 그녀 역시 도끼눈으로 응수했다. 아무리 신경 예민해질 상황이라지만, 싸우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역시 여기선 내가 말려야겠네.
"저기, 둘 다 싸우기보단..."
"뭐,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냐."
"어?"
정정. 딱히 내 도움은 필요없나 보다.
"저기 위에 창문 보이지? 아무래도 여긴 반지하인 모양인데, 저기로 나가면 바로 지상일거야."
"하지만 저만한 창문으로 누가... 아."
치아키는 말을 하다 말고, 이부키를 바라보았다.
"네? 제가요? 하지만...."
"의뢰주한테 일을 시키는 건 영업 방침에 어긋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어. 도와줄 수 있지?"
"... 네, 알겠어요. 제가 뭘 하면 되죠?"
카요코의 부탁에, 이부키도 결심한 듯했다.
한편 카지노 펜트하우스에 있던 유메는, 도저히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아 소파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었다.
"... 그렇게나 어린 애가, 왜 여기까지..."
만마전과 선도부는 내전 중이었다. 그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껏해야 열 살이 조금 넘은듯한 꼬마가 전쟁에 휘말렸다는 것은, 유메에게 특히 충격이었다.
"호시노 쨩... 너라면 어땠을 것 같아?"
유메는 소파에 있던 쿠션, 아니 배게를 들어올리곤 말을 걸었다. 물론 대답을 바라고 질문한 것은 아녔지만.
- 하, 하나도 탐 안 나거든요! 그런 바보같은 배게가 어디 있다 그래요? 어디서든 꿈나라로 입장할 수 있다니... 그, 그래도 아주 조금은...
"호시노 쨩... 나는..."
눈물은 나지 않았다. 호시노를 잃은 그날, 사막에서 전부 말라버렸으니까.
만마전의 창고 탈출 작전은 순조로웠다.
"자! 하나, 둘!"
우리들은 타이밍에 맞춰 몸에 힘을 잔뜩 주었다가 뺐고...
"어, 됐다! 나왔어요!"
그렇게 생긴 밧줄의 틈으로, 이부키가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빠진 덕분에, 우리 역시 일단은 행동이 자유로워졌다.
"묶여있을 땐 몰랐는데, 생각보다 밧줄이 헐겁네?"
"응, 어쩌면 그 스오우라는 사람... 아니, 그것보다도."
카요코와 하루카는 즉시 창문을 연 후, 두 손을 모아 이부키를 올려줄 준비를 마쳤다.
"우리 손을 밟고 올라가면 돼, 이부키."
"그 다음은 뭘 해야되는지 알지? 바로 창고로 돌아와서, 우리가 있는 방을 찾아서 여는거야."
"네, 맡겨주세요."
이부키는 고개를 끄덕인 후, 두 사람의 손을 사뿐히 밟고 올라갔다.
"으윽, 생각보다 좁은... 우왓!"
창문 사이를 비집고 겨우겨우 빠져나온 이부키는, 차가운 사막의 밤 공기를 맞으며 자유를 느꼈다.
"드디어, 밖으로... 아, 맞다!"
감상에 빠지는 것도 잠시, 이부키는 해야할 일을 떠올리고 급히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다른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선, 이곳 경비들의 눈에 띄지 않고 창고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그럼, 여기서 어디로 가면... 어?"
경비의 눈을 피해 움직이던 중, 이부키는 주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리고 경비들끼리 떠드는 소리를 들어보니...
"그게 진짜야? 하이랜더가 예고도 없이 멋대로 오고 있다고?"
"그렇다니까? 심지어 게헨나의 그 뭐냐, 선도부였나? 거기랑 손잡았다는 말도 있던데?"
"선도부...!"
이부키는 조용히 경악했다. 그녀들이 벌써 이곳에 왔다고?
"아무튼 일단 모르는 애들도 많으니까 함부로 떠들고 다니진 말고. 괜히 분위기가 혼란스러워지면 큰일이니까."
"뭐 그래, 이따 일 끝나고 보자고."
두 경비가 각자의 구역으로 헤어지는 것을 본 후, 이부키는 재빨리 창고의 문으로 향했다.
"시간이 없어요, 우리가 선수를 치지 않으면..."
조급해진 이부키는, 급히 문을 열고 창고에 들어갔지만...
"역시 이리로 왔군, 꼬맹이."
"스오우 씨...? 당신이 왜 여기에..."
문 뒤쪽에는, 이미 스오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거기서의 탈출 루트라고 해봐야 뻔하지. 뭐, 동료를 버리지 않은 건 칭찬해주마."
"... 비켜주세요, 스오우 씨. 전 여기 있을 수 없어요!"
"아, 그래? 그렇다면... 비켜주지 뭐."
"당신이란 사람은... 네? 잠깐, 뭐라고요?"
스오우는 대답 대신 살짝 몸을 비켜 건너편을 보여주었다.
"어, 그게... 안녕, 이부키?"
거기에는 방에서 나온 만마전 일행이 서 있었다.
"사라져서 얼마나 걱정한 줄 아나? 멋대로 일을 벌리긴..."
"... 당신, 대체 진의가 뭐죠?"
"샌드맨은 자기 눈 앞에서 너흴 치우라고 했지, 죽이라곤 안 했어. 그럼 내 멋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지."
스오우는 근처에 주차된 지프를 꺼내, 창고 앞으로 몰고 왔다.
"타라, 갈 곳이 있으니까."
"잠깐, 어디로...!"
"어디긴 어디야."
기분 탓일까, 스오우의 표정이 잠시 침울해진 것처럼 보였다.
"학생회장의 골짜기, 거기에 너희들이 찾는 게 있을거다. 그리고... 유메가 왜 샌드맨이 됐는지도, 곧 알게 될 거야."
의심스럽지만, 달리 방도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우리는, 적과의 불편한 동행을 선택했다.
*****
네, 스오우는 여기서도 배신합니다.
과연 아비도스와 게헨나에 얽힌 진실은 무엇일까요?
다음화, 아수라장이 된 아비도스와 함께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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