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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FF] [RE] 옆집에 사는 강광배 양 -81-

글쟁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4.09 05:05:48
조회 106 추천 7 댓글 3
														





"오빠에게 장밋빛 순간은 언제였어요?"



"좋았던 순간 말하는 거지? 콕 집어 말하기엔 많아서.. 너는 언제였어?



"전 지금이요."




주말을 맞아, 채원이와 온 서울대공원. 거기서 채원이는 나와 함께하는 지금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고선 수줍은 미소로 나를 올려다보는 채원이. 노골적으로 본인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귀여워서, 반사적으로 웃음이 나왔다. 헤헷. 그러니까 채원이도 나를 따라 웃는다. 브라운 컬러로 적당하게 웨이브를 넣은 긴 머리를 보자니, 꼭 푸들 같네. 반짝이는 눈망울은 꽃사슴 같기도 하고?   




"저어.. 오빠..?"




너무 쳐다보시는 거 같은 데에.. 아. 나도 모르게 채원이를 계속 쳐다본 듯? 어느새 얼굴이 붉어진 채원이가 신발 앞굽을 콕콕 차면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ㅅ..싫다는 건 아닌데요.. 우리 지금 봐야 할 것도 많으니까.. 그것들도 보면서 저를 봐주시면.. ㅁ..뭐래..!!"



"..."




가요!! 덥석. 채원이는 내 손을 잡고는 성큼성큼 앞서 나갔다. 이제는 손잡는 것이 제법 자연스러워진 우리. 그렇게 나는 채원이가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그러다가 동물원에서 사자와 호랑이를 실컷 보고 오는 길에 발견한 캠핑장. 여름이라 그런지, 계곡 근처에서 캠핑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둘이서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진짜 재밌어 보이더라.




"우와.."




채원이도 나와 같은 마음인 듯, 아까부터 감탄을 내뱉고 있다. 21년 살면서 한 번도 캠핑이란 것을 해보지 않았는데, 이참에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근데 간다면 누구랑 가지..? 동네 친구들이나 대학 동기들은 대부분 군대에 있고.. 가족들이랑 가자니, 부모님 두 분 다 어디 놀러 가는 걸 싫어하고.. 그러면 남는 사람은..




'난.. 너랑 ​같이 있을 때 설렜단 말이야..'




강혜원. 내 옆집 이웃이자 친구. 이 녀석이라면 아무리 여자라고 할지라도, 쿨하게 같이 1박을 다녀올 수 있는 관계다. 그러나 최근에 내가 몰랐던 감정을 알게 된 후부터, 예전처럼 못 대하겠더라. 정말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서로 싸워서 불편하다면 풀면 그만인데, 이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캠핑은 다음에 가야 하나 아쉬워하던 내가 잊고 있었던 한 명이 있었다. 오빠.




"캠핑 가보고 싶지 않아요..?"









"나? 이제 집 앞 도착했어. 응응. 에이, 아니야. 나도 덕분에 꽃 구경하고 좋았는데 뭘."




채원이를 친구 집에 데려다주고, 전화하면서 집에 돌아가는 길. 채원이의 목소리가 들떠있다는 것은 휴대폰 너머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오늘 나와 채원이는 흔히 말하는 데이트 비슷한 걸 했으니까. 손도 잡고, 서울대공원에서 많이 돌아다니고, 저녁까지 함께했으니, 다른 사람이 봤을 땐 우리가 연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터. 나는 어땠냐고? 당연히 채원이 같은 애가 나를 좋아해 주는데 싫을 리가 있겠어?




"내일 아침 일찍 간다고 했지? 그래. 지하철 잘못 타서 반대로 가지 말고. 너 여기 올 때도 그랬다며?"




그건 표지판이 이상하게 생겨서 오해한 거라니까요!? 어휴, 깜짝이아. 꿀 떨어지던 채원이의 목소리가 한순간에 날이 섰다. 이렇게 놀리는 대로 반응이 딱딱 돌아오니, 앞으로도 장난을 끊을 순 없겠군. 계속 통화하다 보니, 어느덧 익숙한 골목길이 보였다.




"나 집 다와 가서 이만 끊는다? ... 내일 또 전화하면 되지? 영상통화..? 어어.. 그건 좀 생각해볼게.."




어디 안 받기만 해 봐요? 캠핑 때 오빠한테 일 다 시킬 거니까. 뚝. 후우.. 괜히 장난쳐서 본전도 못 건진 꼴이 돼버렸군.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




그렇다. 나는 당장 다음 주에 채원이와 캠핑을 하러 가게 됐다. 그것도 단둘이서!! 혜원이 아니면 여자와의 1박은 여자친구랑만 있었던 일이었는데, 나한테서 긍정의 대답을 기대하는 채원이의 표정과 주먹을 꽉 쥔 떨리는 두 손을 보니까 차마 무시할 수 없었다.




'ㅅ..싫다는 건 아닌데요.. 우리 지금 봐야 할 것도 많으니까.. 그것들도 보면서 저를 봐주시면.. ㅁ..뭐래..!!'



'...'




그리고 채원이와 있으면서 순간 두근거렸던 내 가슴의 신호를 무시할 수 없겠더라고. 시나브로. 내가 모르는 사이, 내 마음에 조금씩 채원이가 채워진 게 아닐까.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그럼 내가 무슨 대답을 해야 믿을 건데!?"




뭐지? 마지막 골목을 돌자마자, 내가 사는 원룸 앞에서 남녀가 언쟁하는 소리가 팽팽하게 들렸다. 더군다나 여성 쪽은 많이 들어 본, 내가 잘 아는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아무튼 인제 그만 찾아와."



"야, 강혜원!!"



"하.. 이제 추행까지 하겠다 이거지?"




생각보다 상황은 심각했다. 건물 안으로 돌아가려는 혜원이의 손목을 붙잡은 남성은 저번에 그녀의 생일 축하를 해준 남성과 동일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 그 때문에 나는 주변의 전봇대 뒤에 몸을 숨겨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손 놓으라고 낑낑대는 혜원이와 그럴수록 단단히 붙잡는 남성. 이건 도저히 지켜가 볼 수 없잖아? 터벅터벅.




"이거 놓죠."



"... 뭡니까?"



"이주원..?"




휙. 그대로 걸어가서 혜원이를 잡고 있던 남성의 팔을 뿌리쳤다. 신경질적인 어투로 나를 째려보는 남성. 이 사람, 양반은 못 되겠구만.




"싫다는 거 안 보여요?"



"... 그쪽이 뭔데 참견입니까."



"옆집에 사는 이웃이 해코지당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해코지? ㅋㅋㅋㅋㅋㅋ 어이가 없네."




남성은 실소를 터트렸다. 그러면서 나와 혜원이를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중얼거렸다. 그런데 씨발. 저놈 주둥아리에서 사람 입에선 나올 수 없는 말이 나오더라. 




"야. 네가 말한 애가 쟤였어? 하긴, 옆집에 살면 볼 거 다 봤"




퍽. 나는 그대로 다리를 들어 남성의 복부를 가격했다. 미친 새끼. 읏- 하는 소리와 함께 주춤하던 남성은 정당방위라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남성의 덩치가 제법 있었기에, 달려오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꾸라진 나. 남성은 그대로 내 상체 위에 올라탔다. 이야, 겁도 없이 선빵을 쳐? 좆됐다. 이러면 뒤지게 처맞을 거 같은데.




"멈춰!!"




그때였다. 이를 지켜보던 혜원이가 소리를 지르더니, 우리에게 달려왔다. 정확히는 남성에게. 제발 그만하라며 남성의 몸을 두들기는 혜원이었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남성은 여전히 나를 내려다본 채, 손을 뻗어 가볍게 혜원이를 밀쳐냈다.




"꺅!!"



"넌 잠시 꺼져. 지금은 얘한테 관심 있으니까." 

 



철퍼덕.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을 땐 혜원이가 바닥에 쓰러진 후였다. 아까 양반은 못 되겠다는 말 취소다. 이 새끼는 평민이라는 말도 아까운 망나니 새끼였어..!!




"짜증 난다 진짜.. 되는 게 하나 없네. 야. 너 좀 맞자."



"그래, 때려. 내가 뭐 살려달라고 빌 줄 알았냐?"




퉤. 내 침은 정확히 녀석의 면상에 적중했다. 덕분에 흥분한 녀석은 위에서 내 얼굴을 가격했다. 와, 존나게 아프네 진짜. 세 대쯤 맞았을 때,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녀석은 자리에서 도망쳤는지, 복부 위에 있던 무게감이 사라졌다. 그리고 경찰관이 나에게 달려와서 의식을 물었지만, 나는 그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




새하얀 천장, 특유의 소독약 냄새. 눈을 뜨자마자, 여기가 병원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양손에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 오른손에는 주사가 꽂혀있고, 왼손에는 침대에 고개를 뉘고 잠들어 있는 강혜원의 두 손이 포개어져 있다. ... 지금 몇 시지..? 마침 내 정면에 걸려있는 디지털시계는 AM 02:17을 표시하고 있었다. 꽤 흐른 시각. 나 기절한 건가. 아무래도 쓰러지고 나서 곧바로 응급실로 실려 온 모양이다.




"... 야. 광배."




나는 두 손으로 덮여있는 왼손을 빼내, 혜원이의 정수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움찔하면서 고개를 든 혜원이는 내가 깨어난 것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이 좀 부은 거 같은데 울었나..? 일단 모른 척하자.




"너..!!"



"그래. 일어났다."




혜원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두 팔을 벌렸다. 으응? 갑작스러운 행동에 심히 당황스럽다. 안기라는 거야, 뭐야? 요즘 들어서 복잡 미묘한 우리 사이에 포옹은 좀.. 퍽. 엣?




"미쳤어.. 미쳤어..!! 거기서 네가 왜 나서!!"



"자자자자깐!! ㅁ..말로 해라 좀!!"




퍼억. 혜원이는 나를 안으려는 것이 아녔다. 그대로 내 가슴팍에 손을 두드리면서 나의 무모한 행동에 대해 나무라는 중. 싸움도 개 못하면서 그 새끼한테 덤비긴 왜 덤벼!! 그..그렇다고 쌩깔 수는 없잖아!! 주사가 꽂혀있는 오른손 때문에 한 손으로 혜원이의 공격을 받아내자니 힘이 드는군. 다행히도 주변에 다른 응급 환자분들이 있으셔서, 우리의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그나저나 넌 다친 데 없음?"



"... 몰라."




기다리고 있어. 의사 쌤 불러올 테니까. 내 걱정과 다르게, 혜원이는 멀쩡해 보였다. 다행이네. 나도 그렇게 크게 다친 건 아녀서, 바로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기껏해야 입술이 찢어지고, 얼굴에 군데군데 멍이 든 정도? 눈이 밤탱이가 되지 않아서 다행이군. 병원을 나와, 앱으로 택시를 기다리면서 발목을 돌려봤는데 통증이 느껴졌다.




"아.. 나 발목도 삔 거 같다."



"어쩔. 다 네가 자초한 거."




아까 넘어지면서 발목도 접질렸나 보다. 심한 건 아니지만, 당분간 집에 박혀 있어야겠더라. 게다가 혜원이가 나더러 의사 선생님이 2주간은 야외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라고 말씀을 하셨다고. 경미한 뇌진탕이 왔을 수도 있다나.




"그 새끼는 어떻게 됐어?"



"대충 벌금 내고 돌려보냈대. 좀만 더 처맞지. 그러면 감방 보내는 건데."



"진심 같아서 더 무섭다..?"




이후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데 그 남성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누구였을까. 둘 다 말없이 있기엔 적적해서 내가 먼저 물었다.




"걔야. 작년에 같이 벚꽃 보러 간 남자애."



"그.. 네 친구가 좋아했다던?"



"..."




혜원이는 말없이 창밖을 응시했다. 아무래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겠지. 대충 짐작이 갔다. 그 녀석은 아직 혜원이에 대해 미련을 못 버리고 얼마 전에 찾아왔겠지. 어쩌면 얼마 전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때 혜원이를 따라다녔던 스토커가 그 녀석임이 틀림없었으니까.




"너 농활 갔을 때 내가 전화한 것도 그 새끼 만나서 전화한 거였어."




물론 네가 안 받았지만. 아, 그래서.. 당시에 농활 마지막 날이라고 정신없이 술 퍼마셨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전혀 몰랐네.




"미안."



"... 뭐가?"




뜬금없는 내 사과에 혜원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네가 왜 사과해?




"요즘 들어 너한테 너무했다 싶어서. 너 나한테 크게 실망하고 화냈잖아."



"그러니까 그게 다 네 탓이라는 거?"



"어.. 아무래도.."



"지랄."



"응?"



"내가 이상했던 거지."



"..."




이상하다는 건 무슨 말일까. 설마 네가 나에게 느꼈다던 그 감정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혜원이는 아예 내 쪽으로 몸을 틀어 앉았다. 




"아까 너 쓰러졌을 때, 나 엄청 무서웠어. 만약 잘못되면 어떡하지? 이렇게 영영 안 깨어나면 어떡하지?"



"... 그거 가지고 죽겠냐."



"우씨. 넌 모르겠지만, 난 엄청 진지했거든!?"




손을 들어서 주먹으로 위협하는 혜원이를 보니,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아까 남자 주먹으로 처맞아서 그런가.




"어쨌든 넌 잘못 없어. 내가 꼬여서 그래. 요즘 들어 심술이 나더라."



"심술..?"



"네가 정장 후배랑 같이 있는 거."



"..."



"웃기지 않아? 내가 뭐라고 네가 걔랑 있는 걸 불편해하는 걸까? 우린 그저 친구잖아?" 



"..."



"난 네가 걔랑 잘 돼서 날 떠날까 봐 불안해. 네가 내 삶에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커져 버린 거 같거든."




주원아.













"나.. 이상한 거 맞지?"






============================================


추원강.. 인공쉑 암살 실패.. 



양심고백) 중간에 혜원이가 멈추라고 외치는 장면을 쓰면서 빵 터졌습니다.. '학교폭력 멈춰!'라는 밈이 떠오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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