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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편FF] 소행성 01

Denaly(58.231) 2021.04.28 00:03:09
조회 110 추천 2 댓글 0
														

소행성

- Written by Denaly

 

 

 

* * *

 

 

01

 

 

* * *

 

 

 

"우주야. 나 좀 데리러 와줘."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예상했던 일이라 한숨을 쉬며 겉옷을 주워들었다. 평소에는 잘 나가지도 않으면서, 나가는 날에는 밤 늦게까지 놀다 들어오는 이유는 뭘까. 나가는 김에 평소에 생각해뒀던 일을 다 몰아 하는 걸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집을 나섰다.

 

 

 

지금 시각은 9시. 저녁쯤부터 천둥이 칠 정도의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많이 내리고 있어서 하늘은 짙은 검은빛이었다. 낮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으니까 아마 우산도 챙기지 않았을텐데. 지금쯤 버스 정류장에서 천둥소리를 들으며 오들오들 떨고 있겠지. 선명하게 그려지는 모습. 저절로 한숨이 나오게 만드는. 민주는 겁이 참 많았다. 무서워하는 것도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어두운 걸 못 견뎠다. 그럴 때마다 내게 의지하는 편이었는데, 그것 자체는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언제나 옆에 있어주지는 못할 테니까. 그리고 우리가 자랄수록 점점 더 빈틈이 많아질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니 문득 서글퍼졌다.

 

 

 

걷다 보니 버스 정류장이 눈에 보이는 곳까지 와 있었다. 예상대로, 민주는 정류장 지붕 밑에 서서 몸을 떨고 있었다. 큰 눈동자에 불안한 기색을 한가득 담은 채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나를 찾는다. 그게 안쓰러워 나는 걸음걸이를 빨리 했다. 이내 민주도 나를 찾아냈고, 공중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그 순간 그 작은 얼굴에서 걱정은

 

 

 

비에 씻기듯

 

 

 

사라지고,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 모습이 눈에 담기고 순간적으로 심장 고동에 속도가 붙는다. 온몸이 부서질 듯 울리는 심장을 느끼며 나는 민주 앞으로 걸어간다. 민주는 나를 보며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왔어?"

 

"응."

 

"미안. 비 많이 내리는데 나오게 했네."

 

"괜찮아. 이 정도 가지고 뭘."

 

"우산 하나만 가져왔어?"

 

"어. 급하게 나오느라 까먹었네. 미안."

 

"아냐, 괜찮아."

 

 

 

그러고는 내 품 안으로 뛰어들어 내 팔에 팔짱을 꼈다. 나는 잠시 굳었다. 자주 있는 일임에도 겪을 때마다 숨이 멎는 듯한 느낌. 그럼에도 난 태연한 척하며 왔던 길 방향으로 눈짓 했다.

 

 

 

"……가자."

 

"그래."

 

 

 

가까이 붙은 민주에게서 익숙한 향기가 났다. 민주가 좋아하는 향수의 냄새. 언제 맡아도 기분을 울적하게 만드는 향이라 살짝 슬퍼졌다. 네가 가까이 올 때마다 나는 숨이 가빠지는데 너는 아니. 어느 날은 알아줬으면 싶고 어느 날은 계속 모르길 바라.

 

 

 

다시 한숨이 쉬어졌다.

 

 

 

나는 김민주를

 

 

 

내 쌍둥이 누나를

 

 

 

사랑하고 있다.

 

 

 

* * *

 

 

 

나와 민주는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입학할 쯤부터는 떨어져 자랐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한 탓이었다. 나는 아버지 손에서, 민주는 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우리 둘이 같이 살게 된 것은 고작 3년째였다. 그 전까지 우리는 특별한 날에 가끔 얼굴만 보는 사이였다. 어렸을 때는 굉장히 친밀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선지 우린 다시 만나자마자 애틋해졌다.

 

 

 

다시 만난 건, 내가 고등학교 입학하기 직전. 아버지가 재혼을 했고, 난 새어머니가 조금은 불편했다.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살 결심을 했고, 서울을 떠나게 되었다.

 

 

 

재회했던 그날을 기억한다. 너무 선명하게. 어머니와 민주가 사는 곳은 서울 외곽의 아파트였다. 짐은 미리 택배로 다 부쳐 놓고, 느긋하게 집 앞에 도달해보니 햇살 내리던 오후 3시였다. 겨울에도 햇빛 만은 굉장히 밝아서 눈이 아플 지경이었고, 바람이 조금 불고 있었다. 내가 살게 될 집이 어디 쯤에 있을지 찾아서 아무 생각 없이 위를 올려다봤는데, 2층 베란다에 서 있던 민주와 그대로 눈이 마주쳤다. 민주는 하얀 잠옷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하얀 피부와 옷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그 순간

 

 

 

세상이 잠시 멈췄고

 

 

 

나는……

 

 

 

* * *

 

 

 

창을 열어 놓고 가만히 손을 뻗었다. 젖은 공기를 좋아해서 비 오는 날에 일부러 창을 열고 자는 일이 종종 있다. 비가 들이치지 않을 정도로만. 비가 아직 사납게 몰아치고 있는 걸 손바닥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오늘 창문을 열고 자는 건 포기해야 할지도. 이 비가 언제쯤 줄어들까 가늠해보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정갈하게 단 두 번. 단번에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들어와."

 

 

 

끼익. 문이 열리고, 문 틈새로 민주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울상인 얼굴과 손에 꼭 쥐고 있는 베개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도?"

 

"……응."

 

 

 

무서워서 혼자 못 자겠어. 작게 내리 깔린 목소리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시 얘기하지만 민주는 겁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찾는 건 나, 오직 나. 김민주라는 사람에게 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를 인지하는 순간이었고, 나는 민주가 내게 의존할 때마다 행복했다.

 

 

 

내 허락이 떨어지니 민주가 내 옆으로 와 누웠다. 내게 등을 보인 채로 내게 다가왔고, 난 늘 그래온 것처럼 민주의 허리를 한 팔로 감았다. 침대가 둘이 눕기에는 살짝 좁아서 이렇게 해야만 했다. 마주 본 채로 껴안기는 조금 이상하니까, 이렇게 뒤에서 안은 자세로. 민주의 체향이 훅 끼쳐왔다. 심장이 떨리고 가슴팍에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민주가 지척에 다가올 때마다 느끼는 이상한 기분. 난 아직도 이 기분을 정의 내리지 못했다. 좋으면서도 살짝 아프기도 한 이상한 느낌. 난 이렇게나 떨리는데 민주는 어떤 생각으로 내게 안겨올까.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는 없는 것.

 

 

 

"미안."

 

 

 

그때 갑자기 민주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속내를 들켰나 싶어 몸이 굳었다. 아니겠지. 민주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게 되뇌고 있는데 민주가 몸을 돌려서 나와 눈을 마주쳐왔다. 어두운 와중에도 민주의 맑은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좁지…… 나 때문에."

 

"……."

 

"내가 겁이 너무 많아서 미안. 불편할텐데."

 

"아냐. 괜찮아."

 

 

 

내가 말을 하는 순간 섬광과 함께 천둥이 쳤다. 민주가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내 품에 묻어왔다. 심장이 부풀어올라 터질 것 같아 난 숨을 멈췄다. 민주는 잠시 후 진정한 민주가 다시 얼굴을 베개 위에 올렸다. 우린 다시 어둠만 사이에 두고 마주 본 형태가 됐다. 민주의 가지런한 숨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진짜 나 너무 민폐인 것 같아."

 

"아냐. 걱정하지 마."

 

"뭐가 아냐. 너도 귀찮을텐데. 근데 너무 무서워서…… 혼자 못 자겠어. 미안."

 

"……."

 

"조금만 더 참아줘. 나 진짜 졸업할 때까지만 이럴게."

 

"응. 그래."

 

 

 

졸업할 때까지만. 이럴 때마다 민주가 달고 사는 말이었다. 기쁨이 조금 가라앉았다. 곧 있으면 고등학교도 졸업이고, 나나 민주나 성인이었다. 성인이 다 된 남매가 이렇게 껴안고 자는 건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 우리는 조금씩 멀어질 일만 남은 것, 이라는 생각이 요새 자꾸 든다. 그와 동시에 아직 혼자를 무서워하는 민주가 걱정된다. 내가 영원히 옆에 있어주고 싶지만 이제 우린 멀어질 일만 남았으니…… 또 혹여나 다른 사람이 민주의 옆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면 그건 또 어떨지. 나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다.

 

 

 

하지만 민주는 내 그런 생각들을 모른 채로 다시 등을 돌렸다. 민주의 뒷통수가 왠지 내게서 돌아설 일만 남은 민주를 암시하는 것 같았다.

 

 

 

"잘 자."

 

 

 

그 말과 함께 민주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숨소리만 새근새근 어둠을 갈랐다. 곧 다가올 분리를 나는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그에 대한 생각들이 자꾸만 찾아와 나는 밤을 꼬박 지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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