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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초자연현상처리반 Fragments 16화

한청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5.13 16: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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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컨디션 난조로 못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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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1)


2012년 12월 21일까지 앞으로 175일. 혁민은 기말고사를 끝내고 뒤풀이로 동기와 함께 저녁을 함께했다. 검정고시를 치르고 수능으로 입학한 혁민에겐 묘하게 검정고시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고, 그 때문인지 그와 어울려주는 건 한 살 아래의 동기인 정혁수뿐이었다.


“이번에 시험 잘 봤지? 교수님이 되게 기대하는 눈치던데.”


혁수가 치킨 다리를 뜯으며 말했다. 혁민은 감자튀김만 휘젓다가 맥주를 들이켰다. 성인이 되고 마신 술은 대부분 입에 맞지 않았지만, 학기 말에 가볍게 한두 잔 정도는 걸치는 건 좋았다.


“뭐, 나야 사람들이랑 어울릴 시간에 공부하는 편이니까.”


혁민은 담담하게 말했다. 꼬리표 자체는 익숙했다. 3개월밖에 안 다닌 고등학생 시절에도 겪었던 일이었고, 다 큰 성인이 그러는 게 한심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또한 최상위권 대학, 곧 엘리트라는 묘한 자각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발생하는 위계 인식에도 신물이 났다. 자신이 더 나은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자신이 더 낮은 존재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오만함이 서로를 서열화하고 계급을 나누려고 했다.


혁민은 그런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잘 알았다. 아니, 반대였다. 그 생각이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이미 겪은 바 있었다.


“그러는 너는?”


그런 의미에서 대학에서 사귄 정혁수라는 친구는 조금 달랐다. 혁민과 같은 검정고시 출신이지만, 혁민보다 한 살 어렸고, 그 때문에 지금도 맥주 대신 콜라를 마시고 있었다.


“나야 뭐, 중간만큼 봤지. 외우는 건 진짜 질색이라 진짜 나올 것 같은 것만 달달 외웠어.”


시니컬하고 매사 분석적인 혁민에 비하면 혁수는 적당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인지, 큰 키에 흔히 말하는 ‘훈남’의 얼굴을 가진 탓인지, 검정고시라는 꼬리표 없이 친구와 선배들이 많은 편이었다.


“근데 넌 약속 없어?”


혁민이 혁수에게 묻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 술 못 마시잖아. 낮 약속은 몰라도 밤 약속은 다들 꺼리는 편이지.”


“아, 그런가.”


“솔직히 한 살 어린 것 때문에 애 취급하는 것도 좀 질리기도 하고.”


혁수의 말에 혁민은 피식 웃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갓 대학에 올라온 사람이나, 대학에 좀 익숙해진 선배들이나, 1살 차이가 빚어내는 위계 속에 살아왔던 만큼 나이와 학번의 문제에 매우 예민했다.


혁수가 혁민에게 거리낌 없이 말을 놓고 어울리는 건, 혁민이 나이를 따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 맞아. 내가 아는 누나가 전시 티켓이 나왔다고 하는데, 보러 갈래?”


“전시? 무슨 전시?”


혁민의 말에 혁수는 잠시 수첩을 꺼내 메모를 확인했다.


“아, 여기. 은평구에서 열리는 색채 유리 전시라는데?”


“색채 유리?”


“유리 공예인가 봐. 되게 화려하대.”


혁민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문화생활은 많이 해서 나쁜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혁민은 무언가 찜찜함이 남아 혁수에게 물었다.


“거기 안전한 데야?”


“안전하다니?”


“초자연현상 말이야. 요새 흉흉하잖아.”


혁민의 말에 혁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2011년 연말부터 멸망의 해가 다가온다고 전국적으로 난리가 났다.


태백산맥에서 십장생이 내려온다는 설부터 해수면이 급속도로 상승해 십장생도와 바다, 둘 중 하나에 삼켜진다는 얘기도 있었고, 국경단절이 물리적으로 일어나 대한민국이 완벽히 고립된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 때문인지 멸망을 위시한 구원론을 설파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늘어났고, 길거리를 좀만 걸어도 인류는 죽을 것이라며 떠드는 광인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혁민과 혁수가 기억하는 세기말에서조차 이만큼 전국적으로 멸망이 키워드로 대두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불안이 실체화된 것인지, 지난 2년 반 동안 잠잠했던 초자연현상이 작년 연말부터 차츰 발생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다니던 대학에서도 기숙사에 초자연현상이 일어나 APOF가 출동하기도 했었다.


“누나 말로는 외진 곳에 세워진 전시라 초자연현상이 노리기엔 부적합하단 곳이라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초자연현상의 존재가 공인된 만큼 이에 대한 연구와 분석 역시 꾸준히 이뤄지고 있었다. 대부분은 유언비어에 지나지 않은 헛소리였지만, 다들 감각적으로 공유하는 사실 하나는 있었다.


초자연현상은 더 많은 사람을 노린다.


혁민이 중학생이던 2007년부터 2008년까지는 그래서 아예 인적이 드문 시골로 내려가자는 귀촌 현상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움직임은 결국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밀집시키는 일이었기에, 지금에 이르러선 거의 사라진 행태였다.


오히려 십장생도 같은 대규모 초자연현상이 아닌 한 대부분 개인이나 수어 명, 많아야 수십 명 단위로 일어나니, 확률상 대도시에 사는 편이 오히려 초자연현상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얘기마저 나올 정도였다.


혁민은 그런 논리로 도시에 사람이 몰렸다기엔, 서울에 사람이 너무 많이 쏠린 게 아닌가 싶었지만, 통계청의 인구 발표에 의하면 심각한 수준의 인구 쏠림 현상은 없다고 하니 그런대로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갈 거야?”


“안 가면 너 혼자 가냐?”


“아무래도 기껏 티켓까지 받아놓고 안 가는 건 좀 뭣 하잖아.”


혁수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어느새 시켜놓은 치킨은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대부분은 혁수가 뜯은 것이었다. 혁민은 혁수가 남겨놓은 다리를 뜯으며 말했다.


“색채 유리 전시회랬지? 주소랑 주최측 좀 알려줘. 따로 조사해보고, 괜찮은 것 같으면 나도 갈게.”


“아, 그래. 그렇게 해서 가준다면 나야 좋지.”


***


혁민은 서울에도 상당한 부지가 공터처럼 남아있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물론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땅은 아니고, 혁수가 말한 색채 유리 전시회가 열릴 거대한 유리 건물이 있긴 했다.

다만 2층도 되지 않는 저층 구조로 넓게 퍼진 만큼, 빌딩숲을 이룬 서울 번화가 풍경에 비하면 황량하단 인상이 남기 쉬웠다.


“오, 먼저 왔네?”


혁수가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말했다. 혁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혁수 뒤로 걸어오는 한 여자가 있었다. 주위에 지나는 사람이 더 없었기 때문에 혁민은 괜스레 경계하며 혁수에게 턱짓으로 뒤를 보라고 했다.


“음?”


혁수가 뒤를 볼 때쯤, 여자는 혁수를 지나쳤다. 혁민은 미간을 찌푸렸다. 특이한 점을 두 개나 가진 여자였다. 하나는 7월 초에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다는 점, 또 하나는 오른쪽 눈을 가리는 검은 안대를 차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자는 혁민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혁민을 지나쳤다. 혁민은 초자연현상이 아닌가 싶어서 안도하면서도, 사람이면 도대체 어떻게 저러고 다니는 건가 싶었다.


“뭐야, 저 여자는? 깜짝 놀랐네.”


혁수가 다가와서 물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혁민이 동감하며 말했다. 여자는 그대로 방향을 꺾더니 전시회가 열리는 건물로 향했다. 혁수는 의미불명의 휘파람을 불었다.


“번호 딸까?”


“너 미쳤어?”


혁민이 기겁하며 외치자, 혁수는 미소를 지었다.


“아니, 이것도 인연이잖아. 이 날씨에 트렌치코트, 상당한 미인인데 안대. 수수께끼로 가득하잖아?”


“요즘 시대에 그런 수수께끼면 열에 아홉은 초자연현상이거든?”


“열에 하나로 사연 가득한 미녀란 얘기네.”


혁민은 혁수의 발상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뭐든지 적당히 하는 듯해도, 마음에 꽂힌 게 있으면 냉큼 저질러버리는 혁수는 4개월을 알고 지냈어도 여전히 혁민에게 의뭉스러운 동기였다.


“어쨌든 우리도 저기로 들어가긴 해야 하잖아. 겸사겸사인 거지.”


“겸사겸사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네.”


혁민은 왠지 벌써 피곤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었다. 초자연현상으로 착각하긴 했지만, 여자의 얼굴이 그렇게까지 낯설다는 느낌은 아니었었다.


혁민은 도대체 어디서 안대 쓴 미녀를 봤을까 싶었지만, 여자와 인연이 거의 없는 그에게 별다른 후보는 떠오르지 않았다.


“근데 혁수야, 넌 색채 유리를 전시하는 것 외에 전시 내용 모르지?”


“아? 뭐, 그렇지? 그런 건 알고 보면 스포일러 아니야?”


혁민은 잠시 미간을 짚었다. 건물에 들어선 두 사람은 접수대에서 티켓 두 장을 내고 전시 안내를 간략하게 받았다.


촬영, 메모 금지. 오로지 눈으로만 감상하며, 전시물에 손을 대는 건 안전상 금지. 뛰면 안 되며, 큰 소음 금지. 음식물 반입 금지. 화장실이 급할 땐 전시 통로 중간에 있는 비상구를 통해 입장. 관람 시간은 평균 2시간 내외.


“그래서 전시 내용이 뭔데?”


“생애, 역사, 주기.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의 삶을 다양한 유리 작품을 통해 보는 게 관람 포인트래.”


“오…….”


혁수는 그 이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혁민은 딱히 기대하지 않았다. 그보다 혁민은 전시 내용보다 앞서간 여자가 신경 쓰였다. 건물 안은 냉방이 돌아가긴 해도 추울 정도는 아니었다. 애당초 그런 게 걱정된다면 가벼운 카디건 정도면 충분할 터였다.


하지만 그 여자는 트렌치코트로 전신을 가리고 다리도 스타킹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얼굴을 제외하면 보이는 부위가 없었고, 얼굴조차 장발에 안대로 식별할 수 있는 부위가 한정적이었다.


그야말로 정체를 꼭꼭 숨긴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이긴 한 건지 의심스러웠다.


“그럼 가봅시다.”


혁수가 앞장서서 걸었다. 혁민은 그 뒤를 따라가며 생각했다. 혁수가 정말로 그 여자를 찾아 접근한다면, 기회를 봐서 혁수를 데리고 건물을 빠져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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