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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허수아비 42. 공개대면

운영자 2013.07.31 18:00:21
조회 427 추천 1 댓글 0

  이동팔은 개정시각인 두시가 가까웠는데도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교도관들이 전하는 말로는 증언을 거부하겠다면서 감방에서 안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불리할 때는 어떤 행동도 과감히 하는 인간이었다. 재판장은 그냥 넘어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건 재판이 아니라 모양만 갖추는 것이었다.

  이동팔의 정체를 폭로하는 증인은 직접 사건에 관련이 없다고 배척되기 일쑤였다. 검사는 자기가 필요한 증인을 검사실에 불러 연습을 시키기도 하고 아예 조작도 했다. 법원은 불공평한 심판이었다. 진실을 다투는 법정인데 세상은 조직폭력배 하나쯤 다루는 사건으로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었다. 이동팔은 나오지 않을 모양이다. 나는 재판장의 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주채한 부장판사가 책상 앞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오늘 이동팔이가 꼭 증언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부러 안 나오고 있습니다. 나오게 해주십쇼.”


  내가 요구했다.


  “글쎄요 우리 재판부에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재판장의 얼굴에 귀찮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구인장이라도 발부해서 오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동팔이 법원의 명령을 무시하고 있잖습니까? 유리할 때는 나오고 불리할 때는 피하는 교활한 인간을 왜 보호해줍니까? 만약 구인명령을 내리시지 않으면 제가 끝까지 그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겠습니다.”


  재판장의 얼굴에서 순간 곤혹스런 표정이 보였다. 이동팔을 증인으로 불러달라고 할 때도 그러면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서 주저하던 재판장이었다. 재판장은 문제를 덮고 싶어 했지 진실을 알고 싶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침내 그가 내게 처음으로 한 발 양보했다.


  “알겠습니다. 정 그러시면 구인장을 발부해서 교도관에게 주겠습니다.”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핵심증인의 말을 안 듣고 어떤 재판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구인장이 교도소로 가고 교도관들이 다시 호송버스를 내서 이동팔을 끌고 오는 바람에 재판이 두 시간 지연됐다. 마침내 이동팔이 법정으로 끌려 나왔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비웃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와의 공개법정에서의 일전이 시작됐다.


  “오늘 못나오겠다고 한 이유가 뭐죠?”


  내가 먼저 물었다.


  “오늘 회사에서 부동산을 매매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게 굉장히 중요해서요.”


  그가 느긋하게 대답했다. 그는 감옥 안에서 계속 회사들을 경영하고 있었다. 재판장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이동팔 게이트가 뭐였습니까? 그 핵심내용이 뭐죠?”


  내가 물었다.


  “더 잘 아실텐데 뭘?”


  이동팔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조폭 여강구를 검찰에 이십억 원의 뇌물을 줬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이동팔씨의 담당 변호사는 게이트사건이 터졌을 때 기자회견을 열고 조폭의 보스 여강구를 통해 백억을 뿌렸다고 발표를 했었죠?”


  “저는 그런 말을 전혀 그 변호사에게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그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이상한 변호사예요.”


  “의뢰인이 부탁 하지도 않았는데 검사장출신인 변호사가 정말 그런 해프닝을 벌였을까요?”


  “그랬다니까요”


  이동팔의 턱없는 거짓말이었다.


  “로비자금이라고 이동팔씨가 검찰에서 자백한 내용을 살펴보니까 처음엔 변호사가 백억 원 그리고 그 후 이동팔씨가 사십억 원이라고 했다가 점차로 삼십이억 원, 이십억 원으로 줄어들었다가 나중에 증인은 고등법원에서 로비자금은 사실 한 푼도 없었다고 진술했는데 어떻습니까?”


  나는 그의 거짓말이 조금씩 변한 부분을 적은 조서들을 들이댔다.


  “뭐 결론적으로 그렇게 됐습니다.”


  그가 마지못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사회적 여론이 한풀 꺾이자 항소심에서 처음에 증언한 것과는 백팔십도 다른 말을 했던데 어떻습니까?”


  내가 핵심을 찔렀다. 무고가 아니라 그의 위증죄가 확정되는 순간이다.


  “그거요? 여강구를 위해서 그랬죠.”


  그가 자신의 위증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재판장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무슨 뜻이죠?”


  재판장이 양미간을 찌푸린 채 신경을 곤두세웠다. 위증이라면 대법원판결도 잘못됐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어있었다. 유일한 이동팔의 진술을 근거로 유죄확정판결이 선고되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여강구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는 부탁들이 들어 왔어요. 그래서 좀 애매한 표현들을 사용했죠.”


  그는 교묘한 트릭을 쓰고 있었다. 재판장이 다시 물었다.


  “일심과 이심의 증언이 말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맥락이나 취지는 같다는 그런 말이죠?”


  갑자기 재판장이 판을 뒤집는 유도신문을 하고 있었다. 울화통이 터졌다. 얼마나 힘들게 만든 자리인지 모른다. 재판장은 스스로 나서서 공든 탑을 붕괴시키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이동팔이 신나는 표정으로 화답했다.


  “결론을 같은데 표현만 다른 거였다 그런 거죠?”


  재판장이 재차 이동팔을 도망가게 했다.


  “그렇습니다.”


  지난 일 년 간 추구하고 고발해 왔던 핵심이 사법 권력에 의해 무참하게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녹음도 되지 않고 조서에도 적히지 않았다. 나는 이런 법정에서 계속 신문을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래도 그곳 아니면 이 나라에서는 따질 곳이 없었다.


  “증인은 구치소에서 저를 만났던 것 기억하죠?”


  이동팔이 나를 보고 씩 웃었다. 네가 무슨 말을 해봐라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그때 했던 말들 기억합니까?”


  내가 물었다.


  “제가 무슨 말을 했었죠?”


  그가 웃으면서 물었다. 이어서 나는 그의 사무실에서 검찰이 압수했던 내용증명사본을 내밀어 보였다.


  “이 내용증명 기억하시죠?”


  “기억 합니다.”


  “서울구치소에서 저를 만났을 때 검찰로비로 이십억 원의 어음을 줬다고 한 건 여강구를 혼내기 위해 만들었던 장난이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 양반아 무슨 그런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가 나를 보고 비아냥댔다.


  “변호사가 법정에서 헛소리를 하고 있네요, 그렇죠?”


  “증인은 여강구가 검찰로비자금 사십억 원을 가져갔다고 진술했었죠?”


  “그랬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아니라고 했죠.”


  “그랬죠.”


  “그러면 헛소리는 이동팔씨가 한 거 아닌가요?”


  “아니지 당신이 한 거지”


  이미 그는 논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내가 계속 물었다.


  “처음에 잡히고 나서 담당변호사를 통해 여강구 보고 도망하라고 말을 전한 적이 있죠?”


  “그랬죠.”


  “왜 도망하라고 했습니까?”


  “사건이 확대될까봐 그랬습니다.”


  “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그런 거 아닙니까?”


  “그건 모르죠,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앞에서 듣고 있던 여강구가 코웃음을 쳤다.


  “증인은 저와 안양교도소에서 얼마 전에도 만났던 사실이 있지요?”


  내가 물었다.


  “그랬죠.”


  “증인은 앞으로 여강구에 대해 사건을 만들고 참고인들을 모아 똘똘 말아버리면 여강구는 절대 감옥에서 나가지 못할 거라고 내게 말했는데 기억합니까?”


  “그랬죠.”


  의외로 그가 인정했다. 그때 재판장이 가로막고 나섰다.


  “건수를 만든다는 게 무슨 얘깁니까?”


  “지금 공갈사건은 검사가 수사기록에 있는 것만 뒤져서 만든 거죠, 제가 생각하기에는 여강구는 아직도 사건이 안 된 부분이 많다는 겁니다. 그걸 얘기한 거죠”


  이동팔이 재판장에게 얘기했다. 재판장이 계속 물었다.


  “그럼 여강구에게 불리한 것들이 아직도 많은데 증인 이동팔이 지금도 얘기하지 않은 게 많다 이겁니까?”


  재판장은 논점을 다른 곳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제가 피해를 본 적 중에 사건이 안 된 것들이 많습니다. 여강구가 저에게 피해회복을 해 줘야 하는데 합의나 보상을 안 해주고 계속 버틴다면 사건을 얼마든지 다시 만들 수밖에 없지 않냐? 그런 뜻으로 말한 겁니다.”


  “그렇군요.”


  재판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재판장의 뜻은 분명했다. 내가 주장하는 진실에는 귀를 막고 여강구는 때려잡을 대상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공허한 법정이지만 나는 그래도 음모를 고발하고 소리쳐야 했다.


  “증인 이동팔은 피고인 여강구가 이십억을 주면 오늘 증언을 바꾸어 주고 다른 증인들의 진술도 번복해서 무죄가 나오게 해 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죠?”


  “예이 여보슈, 그런 게 말이나 되?”


  이동팔이 씩 웃으면서 거꾸로 나를 쳤다.


  “여기 같이 있는 황종식변호사가 직접 들었는데? 황변호사가 모략을 했을까? 무슨 이유로?”


  황변호사가 이동팔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은은한 불길이 일고 있었다. 재판장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증거가 있어요?”


  이동팔이 되물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황변호사의 증언이 직접증거 아닐까요? 이동팔씨는 꼭 물증만 증거인줄 압니까? 오랫동안 법관으로 있던 황변호사의 말과 이동팔의 말 중 어떤 게 더 신빙성이 있는 증거가 될까요?”


  그 말에 이동팔이 실쭉한 표정이더니 재판장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저 진태오 변호사님이 저한테 찾아와서 일억을 주면 모든 걸 잘 해결해 주겠다고 했었습니다. 그걸 덮으려고 이 짓거리를 하는 겁니다.”


  그는 나를 놀리고 있었다.


  “왜 일억이라고 그래요? 백억쯤 제가 요구하지 않았나요?”


  내가 맞받아쳤다.


  “그랬나?”


  그가 씩 웃었다. 재판장은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는 자기가 필요한 것만 듣는 것 같았다. 그때 피고인석에 있던 여강구가 손을 들었다.


  “뭡니까?”


  재판장이 물었다.


  “저도 몇 가지를 묻게 해 주십시오.”


  “길어요?”


  재판장이 노골적으로 귀찮은 표정이다.


  “아닙니다. 짧습니다.”


  “그러면 하세요.”


  재판장이 마지못해 허락했다. 여강구가 이동팔을 보고 입을 열었다.


  “저한테 사십억 원의 어음을 주고 이십억 원을 받아간 건 왜 그랬나요? 자금이 딸리니까 그런 거 아니었나요?”


  “그게 아니죠, 협박하시니까 겁먹고 마지못해 내놓은 어음이었죠.”


  “나한테 협박당해서 그렇다 이겁니까?”


  “그랬죠.”


  그때 재판장이 막고 나서서 이동팔에게 물었다.


  “여강구가 증인 이동팔을 해칠 생각이 있었다는 말인가요? ”


  “맞습니다. 재판장님 말씀이”


  이동팔이 신이 나서 대답했다. 재판장이 한발 더 나아갔다.


  “그러니까 여강구가 요구하는 대로 모두 따랐다 이거네요”


  “그렇습니다. 재판장님”


  이미 이동팔은 승자였다. 재판장이 서둘렀다.


  “이걸로 사실심리와 증거조사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검사 의견진술하시죠”


  재판장이 서둘렀다. 뭔가 뒤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손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냉냉한 눈길로 여강구을 내려다보았다. 차디찬 얼굴이었다.


  “여강구를 징역 십년에 처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감정적인 높은 구형이었다.


  “변호인 변론 하시죠.”


  재판장이 사무적으로 말했다. 황변호사가 일어서서 먼저 말했다.


  “피고인 여강구가 호텔운영권을 갈취했다는 공갈죄는 무죄라고 생각합니다. 또 수사절차상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재판장은 긴 변론을 할까봐 벌써 짜증난 표정이었다. 황변호사가 그 눈치를 알고 말을 극도로 줄인 것이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변론요지서를 제출했습니다만 지금부터 한 십 분가량만 말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나는 변호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재판장이 싫어할까봐 눈치를 보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현실에 화가 났다. 왕 같은 재판장 한사람의 기분에 들기 위해 줄타기를 하고 광대춤을 추어야 하는 재판제도였다. 더구나 그는 이미 어떤 결론에 이른 것이 뻔히 표정에 나타나고 있었다. 징역 십년을 구형받은 사람을 위해서 십 분 정도 말을 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미리 준비한 요약된 변론문을 들고 말을 시작했다.


  “법원이나 검찰은 진실보다는 자신들의 권위와 오류를 덮느라고 힘든 걸 보고 있습니다. 이동팔은 그런 사법부의 약점을 감지하고 지금도 역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이동팔은 얼마 전까지도 이 자리에서 재판장을 했던 황종식변호사에게 대담하게도 이십억 원을 주면 모든 기존의 진술을 번복해 무죄가 되게 해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그와 관련된 다른 증인들은 모두 그의 영향권 내에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 법정이나 아니면 고등법원에서 무죄가 되도록 해 줄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노골적으로 사법부를 농락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변호사로서 저의 인격과 이십년간 깨끗한 법관을 해 왔던 황변호사의 인품을 걸고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변호사인 우리 두 사람을 신뢰하느냐 아니면 이동팔을 신뢰하느냐는 역시 재판장의 인격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온 몸으로 변론을 하고 있었다. 방청석은 쥐죽은 듯 내 말을 듣고 있었다.


  “다른 자료들을 볼 필요도 없이 오늘 이 자리에서도 이동팔은 눈에 드러나는 위증을 수시로 했습니다. 조금 전에도 예전의 항소심에서 여강구를 좀 봐주려고 진술을 완전히 바꾸었다고 버젓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로 위증을 인정한 것입니다. 법원에 제출된 이동팔의 증인신문조서는 중학생 수준만 해도 그가 위증을 한다는 걸 당장 알아챌 수 있습니다.

  본 변호인은 위증죄에 대한 절대적 확신을 가지고 이동팔을 고소했습니다. 신중한 검토와 사실 확인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오히려 무고죄로 기소했습니다. 한자리에서 앞뒤 반대되는 말을 하는 이동팔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결론 쪽으로 가고 있었다.


  “대법원판결이 아무리 권위가 있더라도 진실은 그 위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대법원은 이동팔의 거짓말에 속아서 잘못된 판결을 했습니다. 잘못이 있으면 시정할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정의라는 생각입니다.”


  변론을 끝내고 나는 자리에 앉았다.


  “여강구 피고인, 최후진술을 하시죠.”


  재판장이 여강구을 보면서 명령했다. 여강구가 재판장의 눈치를 살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심하는 표정이었다.


  “ 저는 사실 재판에 부쳐진 공소사실들에 대해 당당합니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각본에 의해 꾸며지고 조작된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판이 끝났다. 삼주 후에 선고가 있었다. 모두 유죄로 판결됐고 여강구에게 호텔운영권갈취에 대해서는 징역 삼년이 그리고 내가 고소해 주었던 사실에 대해서는 징역 팔월이 나왔다. 권력에 도전한 대가였다. 다음날 판결문을 받아 보았다. 판결이유의 핵심은 이랬다.


  ‘진태오 변호사는 이동팔이 로비자금 이십억을 주었다는 건 거짓이었다고 털어놓았다고 주장했다. 또 이동팔이 황변호사에게 이십억을 주면 진술을 바꾸어 무죄로 나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말을 했다고 이 법정에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동팔의 그동안 했던 말들이 신빙성이 없다고 단정하기에는 부족하다. 따라서 변호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뭐라고 떠들던 안 듣겠다는 얘기였다. 판결이유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동팔의 진술은 일관성이 유지된다. 따라서 고소사실은 모두 허위사실이다. 그렇다면 여강구는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사건내용과 다른 허위사실로 이동팔을 무고한 것이므로 그 죄질은 매우 무겁다고 할 것이어서 그에 상응한 처벌을 하는 것이다’


  재판장은 나와 황변호사의 얘기를 모두 허위로 몰아 버렸다. 황변호사도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한 달 전까지 같이 판사로 같이 근무하던 후배가 자신이 고발하는 말을 믿지 못한다고 판결문에 썼기 때문이었다. 끼리끼리 확실하게 도와주는게 조직의 생리다. 이제 항소심은 일심판결의 권위를 지켜줘야 할 것이다. 대법원은 고등법원을 지켜줘야 하고. 그럴 것 같았다.


  다음 날 이동팔과 여강구를 모두 잘 아는 강력계형사가 내게 전화했다.


  “법정에 가서 잘 구경했습니다. 이동팔이 모략도 잘하더라구요, 변호사님이 돈을 요구했다고 거꾸로 뒤집어씌우던데요? 모략에는 이골이 난 놈인데 판사들은 그걸 일부러 안보는 걸 보면 정말 한심합디다.”


  방청객이 더 본질을 정확히 파악했다. 교도소로 여강구을 찾아갔다. 그가 화가 가득 난 표정으로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재판장 그 쥐 같은 새끼가 신문도중 장난칠 때부터 이미 알아봤어야 했습니다. 변호사가 진실을 꺼내려고 할 때마다 끼어들어 재를 뿌리고 방향을 돌려버렸잖아요? 또 황변호사가 모략수사를 공격하면 그걸 차단하느라고 바빴죠.

  그걸 보면서 제가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요, 이미 재판장은 진실에 대해 어떤 관심도 없었어요, 이쪽에서 어떤 소리를 해도 듣지 않은 거예요, 아주 약아빠진 놈이죠, 그 재판부에서 여러 정치인에 대해서 재판한 걸 보면 알수 있어요.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한 판결을 하더라구요, 김종필 총재, 삼성의 이학수 회장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오른팔 한화갑은 좋은 대접을 해 줬죠.”


  나는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진 변호사님이 변론을 하기 위해 몇 분만 얘기하겠다고 양해를 구할 때 재판장이 우거지상을 짓더라구요, 강변호사님은 그때 서류를 보시느라고 재판장의 얼굴을 보지 못했어요, 그걸 보니까 만정이 떨어지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최후진술을 하려다가 그만 둬 버렸죠.”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속이 쓰렸다. 재판장에 의해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내가 쓴 글들은 허위가 됐다. 이동팔이 검은 웃음을 흘리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파도가 닥쳐오고 있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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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 검은 허수아비 48. 문학적 성취 욕구 운영자 13.08.01 476 1
726 검은 허수아비 47. 바뀐 재판장 운영자 13.07.31 516 1
725 검은 허수아비 46. 남은 멍에 운영자 13.07.31 43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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