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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블레싱- 3. 도피성

운영자 2013.08.01 18:48:47
조회 436 추천 0 댓글 0

  미디언광야의 세일 산지에서 38년간 맴돌던 이스라엘 민족이 북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 가데스바니아까지 도보로 열 하룻길을 갔다. 거기서 다시 세넷 시내를 건너 모압으로 갔다. 나는 기름을 가득채운 도요타 타코마 지프를 타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미디안 광야에서 홍해연안의 아카바 항구로 나와 아르바광야로 들어섰다.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갔던 사막도로가 외줄기로 뻗어 있었다. 드문드문 싯딤나무가 단아한 자태로 광야에 홀로 서 있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경유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적한 산비탈의 도벨마을이 아직도 존재했다. 붉은 바위산만 있는 에돔의 험한 산악지대를 통과할 때였다. 들개 떼들이 내가 탄 차를 향해 미친 듯 짖어대며 덤벼들기도 했다. 베두인들의 정착촌을 지날 때 도로를 플라스틱의자로 점령한 채 돌려가며 물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도 보았다.

  점심 무렵 아랍인마을의 촌장 집에 들렸었다. 상자곽 같은 2층 바라크 집이다. 늙은 촌장부인이 ‘다왈리’와 밀빵을 내왔다. 양고기를 포도 잎으로 싸서 삶은 것과 작은 호박 속을 파고 그 자리에 다른 걸 넣은 음식이었다. 그들은 낯선 동양인이 신기했는지 서로 연락을 해서 동네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손님대접을 한다고 음식을 강권하기도 했다. 다시 길을 떠났다. 사막도로를 한참이나 달린 차는 오봇광야 깊숙이 들어섰다.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민족의 숙영지 중의 하나였다. 차를 모래언덕 아래 세우고 짐칸에서 주전자를 가져다 나뭇가지를 꺾어 물을 끓였다. 이스라엘 민족이 만나를 먹은 곳에서 우리는 컵라면으로 대신 저녁을 때웠다. 해가 진 오봇 광야에는 신비한 기운이 서려있었다. 3천5백년전 와글대던 이스라엘 민족의 소리들이 공기 중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다음날도 오후쯤 군데군데 누런 회오리바람이 이는 모압 광야로 들어섰다. 사람도 짐승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높고 낮은 구릉조차 보이지 않는 평평한 광야였다. 갑자기 광야 저쪽의 뿌연 모래안개 속에 거대한 성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신기루 같았다. 핸들을 잡은 이목사가 말했다.

 

  “구약을 보면 3천5백년 전 쯤 이스라엘 민족은 모압광야의 베셀이라는 곳에 ‘도피성’을 만들었어요. 죄를 지은 사람이 그 성에 도피해 오면 살려주도록 되어 있었죠. 바로 그 성입니다.”

 

  성경에서 도피성을 읽을 때는 전설 같이만 느꼈었다. 신비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도피성으로 갔다. 살려달라고 절규하며 도망치던 사람의 마음을 느끼려고 애써 보았다. 돌로 된 텅빈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구약을 보면 성문 바로 위에 있는 마을회관에서 장로들이 도망 온 사람을 심판했다. 무너진 돌더미 틈에 달라붙은 도마뱀이 호기심어린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목사는 돌더미에 앉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도피성은 3천5백년전의 고성이 아니라 바로 예수고 오늘 우리들이 마음을 기댈 상징적인 존재인 걸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16년간 광야기도를 해 오면서 신학이론을 멀리하고 직접 현장에서 성경을 깨닫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소원했죠. 한국의 목회자들도 한번쯤은 이 광야로 나와서 직접 보고 기도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광야에 계시는 살아있는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같아도 사람들이 말하는 하나님이 모두 달라요. 돈의 신 맘몬을 하나님이라고 하기도 하고 똥파리를 의미하는 바알을 하나님이라고 착각하기도 하죠. 하나님은 금이나 은으로 만든 십자가에 있지 않고 바로 이 광야에 계시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들은 도피성을 나와 다시 광야 길을 갔다. 갑자기 누런 회오리바람이 귀신이라도 붙은 듯 우리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차가 짙고 뿌연 모래먼지 속에 들어갔다.

 

  “바람 반대방향으로 도망갑시다.”

 

  이목사가 그렇게 말하면서 핸들을 이리저리 돌려 회오리바람을 따돌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마치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 속에 들어간 것 같았다. 얼마 후 차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옆을 나사같이 돌며 아슬아슬하게 내려갔다. 이스라엘 민족이 마지막으로 통과했던 아르논 계곡이었다. 돌들과 메마른 흙 이외에는 풀 한포기도 보이지 않았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마지막으로 묵었던 이 광야근처에 성이 있었죠. 내가 그 성을 찾았습니다.”

 

  이목사가 말했다. 아래쪽으로 오래된 성터가 보였다. 계곡 바닥으로 내려왔다. 메마른 땅 위에 나무 한그루가 보였다. 새끼손톱만한 작은 잎을 가진 가시달린 나무였다. 그 나무그늘이 유일한 쉴 곳이었다. 베두인들은 그 나무를 허파나무라고 불렀다. 또다시 밤이 내리고 있었다. 계곡아래는 제법 넓은 공간이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숙영했던 곳이고 또 초기 기독교 박해 때 많은 신도들이 숨어살던 곳이라고 했다. 그 근처의 아랍인촌의 이름이 ‘물고기마을’인 건 초기 피해 살던 그리스도인들 때문이라고 했다. 이목사와 나는 광야에 텐트를 쳤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이목사가 내게 말했다.

 

  “성령이 명령한 저의 마지막 소명은 아까 제가 알려드린 성에 수도원을 세우고 이스라엘에 교회를 세우는 거였죠. 그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금식기도를 했어요. 한국의 한 목사님이 아르논 계곡의 성경에 나오는 성을 살 돈을 보내주셨죠. 그리고 엉뚱하게도 몇 명 안 되는 신도를 가진 안산의 보리떡교회와 또 미국의 한인교회에서 선교헌금을 보내줘서 갈릴리 호숫가에 교회를 개척했죠. 현지인을 신도로 하는 한국인 교회가 세워진 겁니다.”

 

  “대단하네요.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의 본고장에 한국인 목사가 그들을 이끄는 교회를 만든 게 말이죠.”

 

  “그렇지도 않습니다. 바로 방해가 시작됐어요. 이스라엘 당국에서 저의 입국을 거절했어요. 목사가 못가고 교회건물만 남게 되니까 갑자가 제가 사기꾼이 되어 버렸어요. 그게 지금 저의 입장이죠. 제가 선교사인 걸 무슬림 당국에 고발해서 축출을 하겠다는 협박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광야의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나는 광야의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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