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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귀공자의 추락, 이혼 그리고 자살 (2)

운영자 2014.01.06 16:43:11
조회 1042 추천 0 댓글 0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지 벌써 7년이 흘렀다. 내가 법원 앞에서 조그맣게 변호사 사무실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됐을  때다. 모든 것이 참 힘들었다. 임대보증금은 아내가 옆집에서 꾼 돈으로 마련한 것이었고, 사무실 집기는 부도가 난 친구가 쓰던 것이었다. 나는 마치 초라한 점포에서 무료하게 손님을 기다리는 가게 주인 같았다. 실패 없이 인생길을 가는 사람도 있건만 내가 걸어 온 길은 굽이굽이 도는 길이었다. 경력도 변변치 못하고 능력도 없는 변호사로서 초라하게 시작한 법률사무소였다.



  어느 날 고교동창인 고일심이 불쑥 내 방으로 들어섰다. 구겨진 겨울 점퍼에 비닐가방을 멘 채였다. 푸석푸석한 얼굴은 마치 병자 같았다. 그 모습은 내가 아는 고일심이 아니었다. 그를 보자 12년 전 초급 장료시절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초급 장교로 전방 근무를 하고 있었던 나는 모처럼 외박을 얻어 서울로 올라왔다. 때마침 그날이 고교동창회였다. 이제 갓 삼십에 다다른 동창회는 패기에 차 있었다. 침을 튀기며 각자 입사한 회사 자랑이며 자기 일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멋쟁이가 고일심이었다.



  갈색의 고급 재킷에 줄무늬 와이셔츠를 단아하게 받쳐 입은 그는 짙은 일자 눈썹에 검은 눈이 상대적으로 희 피부와 어울리는 미남이었다.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그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별로 그와 가깝지 않았던 나는 그저 부잣집 아들이려니 추측했었다. 동창회가 끝날 무렵이었다.



  “어이! 엄중위, 같이 가서 한잔 하지?



  그가 내게 2차를 권했다. 나는 머뭇거렸다. 나의 구겨진 초라한 군복이 의식되면서 내가 그와는 안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짐작에 그가 가는 술집이 꽤나 호화스러울 것 같았다. 주머니에는 꼬깃꼬깃 접은 만원 권 한 장이 달랑 들어 있었다. 잠시 후 나는 그의 차에 편승해서 한남동의 룸살롱 앞에 내렸다. 하얀 와이셔츠에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들이 뛰어와 공손하게 차 문을 열었다. 고급 대리석을 깐 방 안은 궁전 같았다. 늘씬하게 빠진 미모의 아가씨들이 들어와 남자들 사이에 끼여 앉았다. 나는 안절부절했다. 그곳의 팁은 최하가 3만원이라고 들었는데 주머니가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존심상 고일심에게 팁까지 대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해말쑥하게 생긴 이십대의 여자가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예뻤다. 호기를 부리며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가 나 때문에 허탕칠 것을 생각하니 근심스러웠다. 빨리 다른 방으로라도 보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나는 억지로 불쾌한 인상을 짓고 무뚝뚝하게 있었다. 그녀는 멋쩍은 표정으로 내 옆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나는 진땀이 흘렀다.



  “요즘 정치 상황이 말이야..



  고일심은 나이를 뛰어 넘은 완숙한 태도와 노숙한 어조로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비판했다.



  고급양주와 송이버섯과 꿀 등 고급안주가 상 위에 가득 펼쳐졌다. 밴드가 나와 흥겹게 연주를 시작했다. 같이 온 친구 한 명이 내게 속삭였다



  “고일심이가 어떤 신분인지 아니?



  나는 그가 장관출신 거물 정치인의 아들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은 알고 있었다.



  “지금 뭔데?



  내가 물었다



  “얼마전 T그룹 총수의 맏딸과 결혼했어. 딸만 넷 있는 그 재벌회장은 아예 맏사위 고일심을 후계자로 삼기로 발표까지 했어. 고일심이는 지금 후계자 수업을 받는 중이지.



  그의 결혼은 고관집과 재벌의 결합이었다. 그건 귀족들의 만남이었다. 나와는 먼 나라의 얘기였다. 그는 귀공자답게 한 점의 흠도 없었다. 술자리가
끝나갈 무렵 그가 두둑한 지갑을 꺼내어 팁을 돌렸다. 내내 불안했던 나의 고민이 일순간 풀어졌다.



  하지만 12년 후에 사무실로 찾아온 그의 모습에서는 예전의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뭔가에 쫓기듯 불안한 눈초리였다. 그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민완수사관 한 명 소개받을 수 없을까?



  “왜?



  “꼭 잡아야 할 나쁜 놈이 있어서.



  그의 눈에서 강한 증오가 뿜어 나왔다.



  “누군데?



  내 말에 그의 얼굴에 잠시 계산하는 빛이 어렸다.



  “그건 나중에 필요하면 알려 줄께.



  나는 호기심이 일었다.



  “어떤 내용인데? 그것도 비밀이야?



  내가 물었다.



  “사실 난 지금 굉장히 고통 받고 있어. 누군가 나를 죽이려고 오래전부터 비방 굿을 하며 주주하고 있어. 먼저 무당 놈을 꼭 잡아야 해.



  그가 이를 갈았다. 섬뜩했다. 나는 아마도 사업상의 적이 아닐까 막연히 짐작했다. 내가 덧붙여 물었다.



  “고통 받는 증상은 어떤데?

 
“몇 년째 이따금씩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이 아프고 온 몸에 힘이 빠져. 그런데도 병원에 가보면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거야.



  그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가 다시 나를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나 같은 과학도가 그런 소리를 한다고 이상하게 여기지는 말아줘. 확실히 주기적으로 나를 저주하는 인간이 있어. 미신이라고 할지 몰라도 확실해. 그런데 내 실력으로는 현장을 덮쳐서 무당이나 굿을 시킨 놈을 잡을 수가 없다는 거야. 그래서 민완수사관이라도 한 사람 사서 그자들을 잡으려는거야.



  그의 표정은 절실했다.



  “그런 기미를 어떻게 느꼈어?



  내가 물었다.



  “일정 기간마다 귀신같이 속옷이나 내가 입던 옷이 없어져. 그런 일이 있은 후 얼마가 지나면 좀 전에 얘기한 아픈 증상이 나타났어. 벌써 몇 년째야. 그리고 수소문을 하니까 나를 저주하는 그놈한테 자주 나타나는 박수무당도 있고.



  그의 확신은 화석같이 굳었다.



  “설령 비방 굿을 했어도 그건 법적 처벌 대상이 아니야. 수사관 동원은 힘들 것 같은데..



  내가 거절했다. 그가 실망한 표정으로 조용히 사무실을 나갔다. 그에게서 어떤 허물어진 모습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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